블랙리스트 2심 법원, ‘박근혜 공모’ 인정
“박, 지원배제 보고 받고 승인” 판단
‘창비’, ‘문학동네’ 등 특정해 지시도
“문화 억압 땐 전체주의 길” 경고
‘좌파 배제’ 위법한 지시 책임 물어
“박, 지원배제 보고 받고 승인” 판단
‘창비’, ‘문학동네’ 등 특정해 지시도
“문화 억압 땐 전체주의 길” 경고
‘좌파 배제’ 위법한 지시 책임 물어
박근혜 전 대통령.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박근혜(66) 전 대통령이 ‘지원배제 행위’의 공범이라고 판단했다. ‘보수 대통령의 좌파 배제는 국정기조’라고 본 1심 판결을 깨고, 박 전 대통령이 ‘문화예술계 농단’의 정점에 있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정부가 자신과 다른 견해를 표현하는 문화를 억압하거나 차별적 대우를 하는 순간 자유민주주의의 길은 폐색되고 전체주의 국가로의 문이 열린다”며 관련자 모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조영철)는 23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국정 최고책임자인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직권을 남용했고, 지원배제 행위에 순차적으로 공모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인식에 따라 문화예술계에서 좌파를 배제해야 한다는 국정기조가 형성됐고, 김 전 실장은 이에 따라 좌파 배제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며, 박 전 대통령이 지원배제 행위의 시작점이자 정점임을 분명히 했다. 그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 내용은 물론, ‘블랙리스트’의 모태 격인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문건과 다수 개별 문건을 보고받고 승인하는 등 초반부터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특정 단체를 콕 집어 지원 배제를 지시한 점도 주목했다.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에게 “건전콘텐츠 관리를 잘하라”고 지시하고, 그해 4월 김상률 교문수석에겐 고교 은사의 편지를 건네며 “<창비> <문학동네> 등 문예지 예산이 지원되는데 보수 문예지는 예산이 축소됐으니 해결하라”고 지시한 뒤 대책을 보고받은 사례 등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
특히 항소심은 “보수 대통령이 좌파 지원축소-우파 지원확대라는 국정기조를 표방한 것은 위헌적이거나 위법하지 않다”는 1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재판부는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책임을 고려하면, 박 전 대통령이 ‘좌파 배제-우파 지원확대’가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선언한 것에 그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통령의 선언이 상징적 국정기조를 넘어 구체적 지침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개입 사실을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도 “부당한 지시라고 볼 수 없고, 구체적 보고 절차와 내용도 알 수 없다”며 공모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1심이 진행 중인 박 전 대통령 재판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2심이 사실상 사실관계 심리를 마무리하는 최종심인 점을 고려하면 박 전 대통령 재판에 미치는 무게감도 1심 때보다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