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서지현 검사 폭로로 본 검찰 조직문화
서지현 검사가 검찰 고위간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지 8년 만에 ‘폭로’라는 방식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검찰총장 지휘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검찰의 조직문화 탓이라는 게 중론이다.
과거 검찰청법에 규정돼 있던 ‘검사동일체 원칙’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검찰사무에 관한 지휘·감독관계’로 완화됐지만 검찰 내에서 개인의 의견을 선뜻 드러낼 수 없는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 검사는 지난 29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너무나 부당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며 “‘너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는 말을 듣고) 그저 제 무능을 탓하며 입 다물고 근무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서 검사의 글에 달린 응원 댓글에도 “댓글로 인해 일정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상황이더라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댓글 하나를 다는 일조차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많은 것들이 두려웠기 때문에 한 번도 이런 글에 생각을 적어보지 못했다”는 등의 반응이 많았다. 검찰 내에서 조직과 관련된 문제제기를 하는 순간 ‘튀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보복당할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남성 검사들 중심의 ‘감싸주기’ 문화가 서 검사 경우처럼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나 (사건을 은폐하려 한 것으로 지목된)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속해 있던 법무부 검찰국처럼 검찰 내에서도 최고 ‘에이스’ 조직에 속한 검사들은 부서를 옮긴 뒤에도 자기들끼리 따로 모임을 갖는 경우가 많다”며 “서로 한식구이자 형제같이 생각하는 조직문화가 이번 사태를 키우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검찰이 ‘범죄와의 전쟁’ ‘부패와의 전쟁’ 등 ‘거악 척결’에 초점을 두고 일하면서, 그 과정에서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내부의 ‘일탈행위’는 묵인해 온 결과 여러 잘못들이 누적돼 왔다”고도 했다.
이러한 조직문화 때문에 검사들이 어렵게 문제를 제기해도 묻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지역의 한 검사는 “대검찰청 감찰본부에서 이따금씩 자기가 겪거나 들은 성폭력 사례들을 조사하지만 이후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가해자가 처벌받는 등 후속 조치는 없었다”며 “서 검사 사례는 스스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검찰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