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자신에 대한 류여해 전 최고위원의 발언을 이 허위로 보도했다며 MBN에 당 출입금지와 취재거부 조처를 내렸다. 사진은 지난 2일 홍 대표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신임당협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MBN은 오늘부터 출입금지한다. 앞으로 당사 출입도 못한다. MBN은 이제 안 되겠다”며 MBN 기자들에게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모습. <연합뉴스TV> 화면 갈무리.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987년부터 1995년까지 검사였습니다. 노태우 정부 시절 검찰은 경북고-서울법대 출신들이 ‘주류’였습니다. 대검찰청과 서울지검 요직을 경북고-서울법대 출신 검사들이 독차지했습니다.
검사들은 경북고 출신을 당시 가장 비싼 생선회였던 ‘광어’에 비유했습니다. 경북고가 아닌 대구·경북 지역 고교 출신은 ‘도다리’라고 했습니다. 그 밖의 다른 지역 고교 출신들은 ‘잡어’라고 했습니다. 극심한 경북고 편중 인사의 배경은 경북고 출신 노태우 대통령과 권력 실세 박철언 의원이었습니다.
홍준표 검사는 대구에 있는 영남고등학교 출신이었지만 ‘도다리’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기질이 권력에 추종하지 않는 ‘이단아’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경북고 출신 검사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자 김영삼 대통령이 나온 경남고 출신들이 검찰 안에서 약진하기 시작했습니다. 홍준표 검사는 경남 창녕 출신이었지만 피케이(부산·경남) 정권에서도 아무런 덕을 보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이 바뀌었어도 역시 검찰 내 비주류였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홍준표 검사는 기자들과 무척 가까운 검사였습니다. 그는 정의감이 유난히 강했고 그런 그를 기자들은 좋아했습니다. 그는 재벌 사주와 권력 실세의 비리와 범죄 단서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추적했습니다. 당시 기자들은 함승희 검사와 홍준표 검사를 ‘거악’과 맞서 싸우는 특수부 검사의 전형으로 평가했습니다.
홍준표 검사는 수사 내용을 적절한 수준에서 기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검찰 수뇌부의 수사 방해를 돌파하기 위해 언론을 적절히 이용할 줄도 알았습니다. 검찰의 잘못된 인사를 기자들 앞에서 성토할 수 있는 배짱이 있었습니다. 그가 기자들과 어떤 관계였는지 자서전에 일부 써 놓았습니다.
“그 사건 수사 도중 검찰 고위층은 끝없이 수사중단을 요구하면서 수사 방해를 했으나 D 일보 기자들의 도움으로 나는 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있었다.”(2005, 나 돌아가고 싶다)
“퇴근했다가 한밤중에 다시 검찰청으로 돌아온 남부지청 간부는 대검 지시라면서 담당 국장의 신병을 풀어주라고 했다.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간부의 뜻대로 석방을 결정하고 새벽에 집으로 차를 몰고 가려는데, D 일보의 L 기자가 내 차 문을 열면서 덥석 옆에 탔다. 그는 노량진 사건의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신문사 사회2부장이 피해자의 친척이어서 노량진 수산시장의 경영권이 강탈당하는 과정과 관련 인물들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올림픽 도로를 타고 개포동 집으로 가는 30여분 동안 나는 사건의 공개 여부를 고민했다. 그날 새벽까지 나는 그 기자에게 사건의 전모를 알려주고 기술적으로 공개하라고 했다. 어차피 수사하지 못할 바엔 언론의 힘을 빌려 수사를 계속하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2009, 변방)
“경찰청장, 치안감, 병무청장, 6공 황태자, 고등 검사장 3명 등 40여명이 연루된 초대형 사건을 대검 중수부도 아니고 지검 특수부도 아닌 강력부 검사 몇 명이 뭉쳐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그러나 그 수사 이후 나는 별종으로 취급받으면서 검찰 내부로부터 철저한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중략) 그 이후 나는 일 년 동안 나를 찾아오는 기자들과 내기 바둑만 두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2009, 변방)
홍준표 검사는 기자들과 허름한 술집에서 술도 자주 마셨지만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술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술집이 문을 닫으면 기자들을 자신의 집까지 데려가서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홍준표 검사의 이런 기질은 국회의원이 되고 난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홍준표 의원은 정치부 기자들과 잘 지냈습니다. 속을 털어놓고 얘기했지만, 기사가 잘못 나가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기자들과 신뢰가 쌓여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래전 이야기를 한참 한 것은 ‘홍준표-<엠비엔>’ 사건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의 출발은 ‘엠비엔의 오보’였습니다. 그런데 홍준표 대표의 과잉 대처로, 사건의 본질이 ‘홍준표 대표의 언론 길들이기 사건’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습니다.
언론은 오보할 수 있습니다. 오보한 언론사와 기자는 정정보도를 하고 사과를 하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오보라면 민형사상 책임까지 져야 할 것입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2일 오후 경북 경주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청년전진대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홍준표 대표가 <엠비엔> 기자들의 자유한국당 출입을 금지하고 부스를 철수시킨 것, 그리고 당 소속 의원 및 관계자에게 취재를 거부하도록 한 것은 지나친 대응입니다. 세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비례성의 원칙을 어겼습니다.
<엠비엔>의 오보는 고의성 있는 악의적 보도가 아니라 실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엠비엔> 기사의 제목은 ‘류려해도 #Me Too 동참? “홍준표에게 수년간 성희롱당해왔다”’였습니다. <엠비엔>은 ‘수년간’은 아니라는 류여해 씨의 지적을 받고 기사를 삭제했습니다. 그리고 홍준표 대표가 펄펄 뛰자 오후에 정정보도문을 냈습니다.
“문제가 된 ‘수년간’이라는 표현은 기사 내용을 제목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법적 실수에 따른 것으로 확인했다. 이로 인해 잠시나마 해당 기사를 읽은 독자는 물론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과 홍준표 대표에게 심려를 끼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이 정도면 적절한 정정과 사과입니다. 남은 문제는 <엠비엔> 내부에서 책임자를 찾아내 징계하면 될 일입니다. 홍준표 대표가 <엠비엔>의 오보를 악의적이라고 판단해도 언론중재위원회나 민형사상 조처로 대응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이 <엠비엔> 기자의 당사 출입을 금지하고 부스를 철수시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으로서 지나친 대응입니다.
둘째, 홍준표 대표는 자신과 당 전체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엠비엔>의 오보는 홍준표 대표에 대한 기사였지 자유한국당 전체에 대한 기사가 아니었습니다. 홍준표 대표가 자유한국당을 대표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대표와 당 전체를 지나치게 동일시하는 것은 납득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소속 의원들에게 “당 대표 관련 가짜 뉴스가 있었다. 가짜 뉴스와의 전쟁에 동참해 달라”며 당원 대상 시청거부 운동 독려까지 공지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홍준표 대표의 1인 정당도 아닌데 국회의원에게 취재에 응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당원들에게 <엠비엔>을 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지나친 조처입니다.
셋째, <엠비엔>의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가짜뉴스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는 가짜뉴스의 의미를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람이 금전적, 정치적 이익을 보기 위해 고의로 여론을 오도하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엠비엔>이 홍준표 대표를 상습 성희롱자로 몰아서 금전적, 정치적 이익을 보려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엠비엔>은 이명박 정부 때 정부의 허가를 받아서 시작한 종합편성채널입니다. 오히려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호의적인 매체였습니다.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홍준표 대표의 선전포고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연상시킵니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 <시엔엔>과 <뉴욕 타임스>를 가짜뉴스라고 공격했습니다. 트럼프의 잘못은 언론의 존재 이유가 권력을 감시하기 위한 것임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언론을 ‘워치 독’이라고 부르는 것은 권력을 감시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이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부르는 것은 몰상식한 일입니다. 저는 홍준표 대표가 도널드 트럼프보다 나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홍준표 대표가 <엠비엔>의 오보를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기자 출입금지, 국회의원 취재거부, 당원 시청거부까지 몰고 가는 모습을 보고 저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홍준표 대표가 검사 시절, 국회의원 시절, 기자들과 언론과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맺었던 사람이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사회부 기자들과 의기투합해 불의에 맞서던 그때 그 홍준표 검사는 어디로 갔을까요? 정치부 기자들과 속을 터놓고 논쟁하던 그 홍준표 의원은 어디로 갔을까요?
홍준표 대표는 <엠비엔>이 정정보도와 사과를 했는데도 “
명예훼손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소송이 끝날 때까지 당사 출입금지, 취재거부, 부스 빼고 300만 당원들과 국민들에게 가짜뉴스 시청거부 운동을 계속하겠습니다. 변명문에 불과한 것을 올려놓고 정정보도문이라고 강변하는 것도 참 가증스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취재의 자유보다 취재거부의 자유가 우선 한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끼도록 해 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지나칩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제1야당 대표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요? 너무 심하게 하면 ‘의도가 뭐냐’고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낮으니 언론 탓을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옵니다. “여럿과 맞서서 불리할 때는 제일 약한 한 놈만 골라서 팬다”는 ‘싸움의 기술’이라는 수군거림도 들립니다. 홍준표 대표의 인격에 비추어 그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명예훼손 민사소송은 제기하든 제기하지 않든 홍준표 대표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러나 기자 출입금지와 취재금지 조처는 해제해야 합니다. 그게 상식적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