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제자 삼아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9. 24. 22:43

제자 삼아라 (28:16-20)      설교집Ⅰ<아침마다 새로우니> 3 No.18

성경본문[개역개정]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가 미국 그랜드 캐년에 갔을 때 전망대에 서서 참 광대한 장관을 눈으로 보면서도 눈에 다 담지 못하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또 하나 그렇게 눈에 담아서 돌아왔습니다마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거기에 갔다 온 사실만은 분명하지만, 한 순간에 내 눈 앞에 펼쳐진 그 세계를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워요. 그 며칠 후에 제가 한 책방에 들어가서 1시간 동안 둘러보다가 그랜드 캐년에 대한 사진 화보집이 아주 두툼한 것이 있기에 그걸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았더니, 그때 보았던 그 전체의 모습과 그 부분 부분의 모습이 만나면서 제 머리 속에 다시 한 번 정리가 되면서 감동이 있고 경탄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전체와 부분, 서로가 꼭 필요한 거예요. 한 번 보았다고 본 게 아니에요. 눈으로 보았다고 본 게 아니에요. 책을 펼쳐서 그 마디 마디 숨어있는 내용들을 봐야 되는 것이지요. 여행을 할 때마다 박물관을 즐겨 찾습니다만 박물관 구경은 1시간만 구경하면 머리가 아파요. 분명 여기 들어있는 건 보물인데 가장 귀한 보물들만 모아놨지만 그 하나 하나 보는 안목이 없기 때문에 내 머리가 감당을 못해가지고 터질 것 같은 거예요. 1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인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 마지막 명령을 주십니다. 사실은 역사적 사건이에요. 심지어는 눈으로 보면서도 오늘 지금 무슨 일이 내 앞에 일어나고 있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고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이 장면은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면입니다만 알고 보면 마지막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의 개인적인 신앙고백과 맞물려서 역사를 움직여 가시는 하나님의 그 구원의 사건 속에 내가 오늘 어디에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마치 그랜드 캐년에서 찍어온 비디오를 다시 보면서 그때의 그 감동을 그대로 다 재현해 내는 것같이 날마다 새로운 시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신앙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것을 일컬어서 종말론적 신앙이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예전에 올림픽 시합 중에서 유도를 봤는데 한국선수가 일본선수를 업어 쳐서 이겼어요. 그랬더니 중계방송 하시던 분이 드디어 우리가 이번 올림픽에서 유도 종주국인 일본을 제압했습니다.’ 라며 감격하였습니다. 이제까지는 유도하면 일본이었는데 비로소 한번 우리나라가 엎어놓았다 이거지요. 흥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유도를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 감동을 그렇게까지는 느끼지 못했지만 참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태권도 종주국이거든요. 지난 번에 앞으로 올림픽에서 과연 태권도가 채택될 것이냐 하는 것을 가지고 투표한다고 난리를 치지 않았습니까? 살아남았습니다만 종주국의 체면이 있는 거예요. 사실은 태권도가 세계에 잘 보급이 되고 외국사람들이 열심히 한다고 그럴 때 그걸 보면서도 한편에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군에 가서 기본적인 것을 배운 거 외에는 태권도를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혹시라도 외국사람이 한국사람 보면 물어볼 거 아닙니까? ‘태권도를 좋아 하십니까?’ ‘태권도를 하십니까?’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이게 종주국 국민의 위기입니다. 자부심이 있습니다만 동시에 거기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는 것이지요.

오늘 여기 보면 예수님께서 보잘것없는 제자들을 불러가지고 이들에게 앞으로 역사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마땅히 이 자리에 서야 할 사람이 누구냐? 종교를 책임지고 있다고 하는 제사장들이요, 서기관들이요, 바리새인이어야 할 터인데 그 사람들은 어디 갔는지 없고 보잘것없는 제자들이었다. 왜 그렇습니까?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그것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실패했어요. 자기들이 영적인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목소리는 높였습니다만 그것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은 실패한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과감하게 그 주도권을 오늘은 보잘것없지만 내일의 비밀을 안고 있는 제자에게 맡기셨습니다.

그 유대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치르게 된 대가는 참혹합니다. A.D 70년에 예루살렘은 로마의 침략으로 완전히 초토화되고 유대인들은 다 고향에서 쫓겨나서 2천 년을 유리 방황했어요. 사실 유대인이 정체성이 강해서 오늘날 살아남았지 2천 년 흩어진 민족치고 다시 제 모습을 찾은 나라가 없거든요. 이것 또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에요.

제가 주말에 챙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불멸의 이순신>입니다. 점점 긴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보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참 아픕니다. 그 이후의 역사를 배워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7년 전쟁 끝에 어떻게 되었냐? 동아시아가 격변에 휘말리게 됐어요.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전쟁은 끝납니다. 일본은 도꾸가와 이예야스가 정권을 장악하게 돼요. 그리고 중국은 명나라가 점점 쇠퇴해지고 저 만주족이 일어나서 드디어는 청이라 하더니 중국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어요. 그 국제정세의 격변기 속에 이제 우리나라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할 것인가? 임진왜란의 참혹한 경험을 통해서 왕이 된 광해군은 청나라는 오랑캐요 만주족이요. 명나라야말로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범이다,’ 라고 하는 명분보다는 어떻게 해야 우리 민족이 위기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실리를 추구하지요. 이게 광해군의 생각이었습니다만 대다수 보수층 지배세력은 반발했어요. 그래서 드디어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권력을 잡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생각했느냐? 공자 맹자의 성리학 사상은 중국에서는 사라졌지만 이제 그것을 우리나라가 온전히 지키고 있다. 이것을 소중화(小中華)의식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그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며 명분을 강조했지요. 그래서 청나라의 변화되는 모습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애써 외면하면서 오랑캐라고 무시하다가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묘호란, 병자호란, 오랑캐의 침입을 맞게 되었지요.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나아가서 3번 엎드려 절하고 9번이나 머리를 땅에 대면서 청나라 황제에게 절하는 수모를 겪었던 것이지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에요. 결국은 그 지배층은 개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100년 전에 일본에게 나라를 다 빼앗긴 것이지요. 그리고 그 결과로 분단이 온 거예요. 오늘까지 온 거예요. 역사의 기회를 놓치면 그저 내 자신만 안 되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300 400년 가는 거예요. 유대민족은 2천 년이나 갔던 거지요.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 에서 역사를 움직여 나가는 사람들은 소수이지만 소위 지배적 소수가 아니고 창조적 소수가 역사를 움직인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 상황 속에서 보면 제사장이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정통합니다. 규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리를 알고 있고 조직이 있고 건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내치시고 오늘 아무 것도 없지만 복음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그래서 생명이 끓어오르는 사람들을 구별해서 저들에게 내일을 맡기시는 거지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라고 하는 유명한 경영학자요 미래학자는  <Next Society> 라고 하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5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보인 나라는 한국이다. 그리고 앞으로 20년 동안 가장 무섭게 변할 나라 역시 한국이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지요.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지요. 하나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왜 그러냐? 지난 50년간 가장 놀라운 변화를 보인 나라가 한국이요. 앞으로 20년 동안 가장 놀라운 성장과 변화가 기대되는 나라가 한국인데, 고난과 환란의 역사 속에 이 반만 년 한민족 역사 속에 가장 새로운 시기에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마침 이 때 한국교회에 놀라운 부흥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어느 민족을 늘 쓰시는 게 아니에요. 이 민족을 쓰시고 그 다음 이 민족이 시원치 않으면 내버리시고 저 민족을 쓰시고 하는 거예요. 지금 하나님 손에 붙들려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또 이곳에 나와 살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정말 살만한 곳이에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서로의 삶에서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삶을 멋있게 살았다.’ 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이 부르시면 주저함 없이 갈 수 있는. 신앙생활을 멋있게 하고 싶어도 기회가 와야 돼요. 지금 북한에 살았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예배드리다가 끌려가서 총살당하지요. 물론 그것도 순교지요.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만 원래 하나님의 의도는 그런 거 아니에요. 우리에게 주신 삶에 하루 하루 문을 열 때마다 감동이 있고, 감사가 있고, 그리고 나누고 베풀며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주저함 없이 가는 것. 그것입니다.

그게 바로 제자예요. 이 제자들은 복음을 아는 사람들이지요. 오늘 보니까 복음을 아는 자들이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권세에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주인이시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요, 왕이라 이렇게 고백하는 거예요. 왕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에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느 날 잠을 자려다가 갑자기 내가 만약 오늘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전 아무런 준비가 없었거든요. 갑자기 얼마나 무서운 생각이 들었는지 몰라요. 굉장히 무서웠던 그 밤을 기억합니다.

한 예순 살 된 기업을 3개나 운영하시던 남자분이 어느 날 친구가 운영하는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다가 뜻밖에 간암말기라는 판정을 받았어요. 의사 친구가 생각할 때, 이 사람은 아주 냉철하고 똑똑하고 사리분별을 잘하고 기업을 잘 운영하던 사람이니까 이 친구에게는 사실을 얘기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자네의 건강상태가 이러이러하고 의학적으로는 이제 석 달밖에 못산다 라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충격을 받아가지고 말을 못하고 몸이 굳어져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거예요. ‘아차, 내가 너무 심한 이야기를 했구나,’ 그리고 치료를 하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아요.

그래서 호스피스를 급히 부른 거에요. 이 분이 병실에 들어가 보니 누워 있는데 무릎을 약간 올리고 무언가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를 막 부딪치면서 떨고 있어요. 이 분이 물었어요. ‘왜 이렇게 떨고 있어요?’ 아주 죽어가는 작은 소리로 뭐라고 말합니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이렇게 말합니다. ‘지옥에 갈까 봐 무섭다.’

이 호스피스 분이 참 지혜로운 분이에요. ‘그럼, 지옥에 가지 않는 방법을 알려 드릴까요?’ 그래서 그분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렇게 연약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서 죽으셨어요. 그래서 그 아들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죽어도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세요.’ 그가 받아들였어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굳어졌던 몸이 풀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되었어요.

그가 고백하기를 자기 의사 친구에게 3개월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자기가 생각해보니까 , 내가 곧 죽게 되었구나.’ 그런데 자기의 이제까지의 인생을 순식간에 파노라마같이 생각해보니 나는 이 날까지 한 게 아무 것도 없구나. 죽는다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에 갑자기 지옥의 공포가 그에게 덮쳐와서 그를 사로잡은 거지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묶임에 묶이게 된 거지요. 그런데 호스피스가 와서 그 말을 하고 예수님을 그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부터 몸이 풀리기 시작하고 평안해졌어요. 결국 그분은 의사가 진단한 대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인의 부인이 장례식을 치르고 호스피스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남편이 숨을 거두기 전에 감사의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왕의 권세예요. 지옥을 깨뜨리는 왕의 권세예요. 이 분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부르십니다. 삶의 막바지에 예수를 믿고 구원 얻은 것도 놀라운 사건입니다. 혹시, 여러분 여기서 착각하지 마십시오. 나도 그럼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마지막 순간에 고백해야 되겠구나 라고. 그것도 평소에 훈련하지 않으면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예수 믿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거에요. 소극적 구원이지요. 오늘 예수를 앎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려야 되는 것이지요. ? 그것 때문에 이 땅에 살고 있는 것이니까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세례라는 게 뭡니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그 신비, 그리고 그 안에 담겨있는 은혜를 아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는 너희가 나가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라 하는 모든 것을 열심히 가르쳐라. 한마디로 뭡니까? 제일가는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한자어로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이지요. 이것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거예요. 그저 밥 한 그릇 먹자고 기도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어느 목사님이 재미있는 비유를 하셨어요. 기도란 마치 전쟁터에서 전투를 하면서 쓰는 워키토키와 같다. 그런데 오늘의 교인들은 이 워키토키를 가지고 자장면 배달을 하는데 쓰고 있다. 용도가 틀린 거지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있는 거지요.

모든 족속에게 나아가서 가르치라. 모든 족속들은 모두 문화가 달라요.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제 그제 우리가 말씀 사경회로 모였는데 두 교회가 같이 모여서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여러분이 눈치껏 아주 잘 하셨어요. 제가 뭘 믿었느냐 하면 어떤 집사님이 예전에 저에게 그랬거든요. ‘목사님, 저희들은 전천후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오시든 눈치껏 다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여러분 굉장히 눈치가 빠르십니다. 박수치자면 박수치고 기도하자면 기도하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가 이 교회 와서 처음으로 회중석에 앉아서 예배를 기다렸는데 가만히 앉아서 오르간 연주를 듣는데 너무 은혜가 되었어요. 그리고 꽃 한 송이를 보면서도 참으로 은혜가 됐어요.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십자가를 보면서 묵상하고 예배준비를 해야 하는데 어떤 분들은 그 시간에 뭔가 자꾸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모르셔서 그렇습니다. 박수치는 것도 다 나름대로 교회마다의 문화입니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닌 거지요.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유대인에게는 율법을 가지고,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에게는 저들의 문화를 가지고 복음을 전합니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그러나 그 안에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불붙는 신앙고백이 있는 것이지요. ‘세련되다라고 하는 것은 옷을 멋있게 입었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멋있게 입은 그 안에 담겨 있는 마음의 깊은 생각, 배려, 이게 바로 세련된 거지요.

여러분,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밥 얻어먹는 건 거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 집에서 날마다 음식을 먹으면서 가끔 식당에 가서 먹으면 별미거든요. 아마 지난 말씀 사경회는 우리에게 별미였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주의 말씀을 좇아가려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임마누엘의 약속이지요.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지요. 그러나 제자는 간단해요. 예수를 바라보는 자예요. 예수님이 좋아지는 사람이에요. 예수님이 정말 귀한 분으로 그렇게 생각되고 그분을 가까이하기를 힘쓰는 거예요. 그리고 그분을 갈망하는 거예요.

제가 전도사 시절에 서울 이촌동 충신교회에서 3년을 섬겼는데요. 어떤 분이 그러더라구요. 제가 한번 설교하고 내려왔더니 아휴, 전도사님은 어쩌면 그렇게 박종순 담임 목사님과 생김새도 비슷하고 설교투도 비슷합니까?’ 너무 당연한 거지요. 3년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닮아가게 되지요. 제가 몇 년 전에 미국 L.A.에서 곽선희 목사님이 어느 교회에서 설교를 하시는데 마침 저도 그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예배를 다 마치고 일어나는데 제 뒤에 조금 나이가 드신 부부가 계시더라구요. 근데 여자 분이 자기 남편에게 뭐라고 말씀을 하는데 제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이 분이 곽 목사님 아드님 이예요.’ 뭐 아신다고 얘기를 했는데 잘못 알고 계셨던 거지요. 그러나 그건 굉장히 의미있는 말이었습니다. ? 그럴 수밖에요. 제가 4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듣고 말씀을 나누고 마음을 열고 제자가 되었는데, 그건 어떻게 보면 착각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말한 거예요.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제자를 낳게 되어 있어요. 그게 생명의 이치지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기도

하나님,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에게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비밀을 펼쳐 보이시고, 이것을 우리의 좁은 생각에 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문을 열고, 마음을 열고, 참으로 연약하고 부족하건만 이토록 놀라운 부르심과 은총과 사명을 주시고, 교회를 섬기게 하시고, 나와 가정과 일터와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힘쓰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가 되는 복을 주셨사오니 오늘도 새로운 마음으로 제자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