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함께 보리라[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예수 권세많도다]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9. 25. 15:13

함께 보리라 ( 40:1-8)      설교집Ⅰ<아침마다 새로우니> 3 No.19

성경본문[개역개정]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요즘 주목 받고 있는 소설가 김영하의 작품 <검은 꽃> 은 멕시코에 이주했던 한인들의 서글픈 역사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올해로 멕시코 이민 100주년입니다. 1905 4월 제물포항을 떠나는 영국 상선 일포드호에는 남녀노소 1,033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버리기 위해 떠났습니다. 거기에는 농사꾼들, 전직 군인들, 몰락한 양반들 또 온갖 잡다한 삶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과거와 모든 것을 끊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그 배에 올랐던 것이죠. 그러나 그들이 멕시코 땅에 내려서 그들의 일터를 찾아갔을 때에 그들이 발견했던 것은 그들이 4년 동안 계약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고 그들의 임금은 형편없어서 그들이 받은 임금으로 그 농장 안에 있는 매점에서 자기 식구가 먹을 음식을 구하면 남는 돈이 없을 정도였어요. 사실상 사기 당한 세월을 보내야 했던 것이지요. 약속한 4년이 지난 이후에 그 사람들은 여기저기 흩어지게 됩니다. 더러는 다른 방도가 없어서 그 농장에 남기도 합니다. 마침 또 그 때는 멕시코가 내전에 접어들어서 아주 혼란한 때였습니다.

그 책을 읽다가 제게 가장 마음 아픈 장면은 이것이었습니다. 멕시코 아래에 과테말라라고 하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 역시 혼란한 내전 상태에 접어들었는데 반군들이 한국사람들을 용병으로 씁니다. 우리가 너희들에게 몇 백만 달러를 줄 테니까 우리와 함께 싸우자. 그래서 40여명의 사람들이 돈을 기대하면서 용병으로 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밀림으로 들어가서 전투를 하는데 그들에게 이런 꿈이 생깁니다. , 우리가 그 돈을 받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할까?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으로 돌아가긴 어떻게 돌아갑니까? 이미 세월이 흘러서 조선이라는 나라는 역사 속에 사라졌는데요. 이미 일본의 속국이 되었는데요. 우리가 돌아갈 나라는 아무 데도 없다. 그래. 그러면 지금 이 나라도 혼란하니 우리가 이 밀림에라도 우리의 나라를 세우자. 그래서 나라 이름을 정해요. <신대한>이라고. 자기들이 이름을 정하면서도 스스로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의 애절한 소원이었지만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이어진 전투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전투에서 쓰러지고 마지막 리더였던 사람마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 나라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참으로 슬픈 종말입니다.

그러기에 8.15는 감격이 아닐 수 없어요. 더구나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의 완벽한 준비로 얻어낸 광복이 아니고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놀라운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 주어진 광복이요 해방이었던 것이죠. 오늘 말씀에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살면서 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포기해야 했던 그들을, 그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었던 그 백성을 하나님이 역사를 바꾸셔서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페르시아를 일으키시므로 페르시아의 새로운 정치개혁에 의해 너희들 모두 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라 하여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오늘 해방 60주년을 맞습니다. 해방 이후 60년의 과정 역시 나라의 이름은 찾았지만 온전한 나라의 모습을 이루기까지 이념과 냉전과 전쟁과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런 고난의 과정이었지요. 40년 전 한국의 수준은 필리핀, 아르헨티나, 아프리카의 가나보다도 가난한 나라였어요. 60년대 초 장충체육관을 지으려고 했을 때, 우리 기술로는 그 돔 지붕을 도저히 지을 수가 없어서 필리핀에서 와서 그 경기장을 지어주었어요.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었어요. 그러나 40년 만에 그리고 광복 6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는 나라가 되었어요.

정치경제학 박사 프란시스 후꾸야마(Francis Fukuyama)라는 사람의 <State Building> (국가 건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강한 국가의 조건> 이라는 이름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아시아 아프리카에 있는 수많은 나라의 국가재건을 많이 도왔지만 그래서 민주정치체제를 도입하고 그 바탕 위에 국가를 세우려고 노력했는데 그 나라 중에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룬 유일한 나라는 한국이다 라는 겁니다. 거기에는 한국만이 갖고 있는 남다른 노력이 있었습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악바리 근성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 결과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달라진 모습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누구는 그러더라구요. 2002년 월드컵의 그 감동은 100년 만에 한번 겪을까 말까 한 것이라고. TV 화면으로 시청 앞에 구름 떼 같이 붉은 옷을 입고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 우리가 정말 저러했던가?’ 하는 생각이 날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물론 아직 문제는 너무 많습니다. 누구는 그럽니다. 이제까지 경제건설의 산업화 세력, 그리고 개인의 소중한 인권을 확보하려 했던 민주화 세력의 갈등을 이야기해 왔는데 이제는 그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하나가 되어서 이 21세기를 헤쳐 나아가야 할 것이다라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다른 한국교회의 부흥입니다. 아시아, 아프리카에 교회가 들어가고 기독교가 전파될 때 서양 제국주의가 더불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서양 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은 국가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배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의 지배를 받고 반대로 기독교는 이 고난의 역사 속에 민족과 아픔을 함께 한 그러한 경험을 가지고 왔기에 광복 60년 동안에 교회는 세계 역사 속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흥을 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 선교사 파송 제1위의 국가는 미국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급속히 선교사들이 노령화되어서 은퇴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대신할 나라가 없어요. 유일하게 한국이, 그 자그마한 한국이 세계 제2위의 선교사 파송 국가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13,000명의 선교사를 세계 방방곡곡에 파송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교회는 4,300개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의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는 두려워 말라, 나는 너를 구속한 자, 너를 구원한 거룩한 자 여호와니라.’ 흙만 먹고 땅만 쳐다보고 땅 속에서 사는 지렁이 같은 우리들에게, 누구보다도 악바리 같이 돈을 벌기 위해 살아온 우리들에게, 알고 보니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고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었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죽기 전에 언제 한번 반듯하게 바르게 살겠습니까? 그것이 아니에요. 야곱이에요. 그 본성과 성질은 죽을 때까지 버릴 수 없는 야곱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 야곱을 부르셔서 이제부터는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라. ‘하나님을 이긴 자라 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신다.’ 라고 하는 놀라운 은총을 주신 것이지요.

저는 이 시대에 한국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교회가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서 한민족을 통하여 온 세계 방방곡곡에 새로운 일들을 일으키시는 이 역사의 현장, 눈을 뜨고 제대로 보면 월드컵의 감동보다 더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이 이루시는 이 자리에 우리를 부르셨기에. 그런데다가 더 감사한 것은 한국사람으로 제일 살기 좋다는 곳인 이 곳,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자기 생각에 매여서 왔지만 와서 정신차려 보니 하나님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여기 인도네시아 한인교회 역사가 30여 년 정도되었습니다. 한 세대가 흘러가고 있어요. 새로운 세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에요. 생각이 먼저 열려야 돼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의 자화상은 어떠합니까? 최근에 100인 이상인 기업의 CEO들에게 설문조사 한 결과에 의하면 당신은 그 일에 만족합니까?’ 라는 물음에 97.3%만족한다.’ 라고 했습니다. , CEO가 되어서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업이 망할 일이지요. 그렇다면 만족하는 이유는 무엇이야? 나에게 맡겨진 이 기업을 내가 잘 경영함으로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으로 만족한다.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10명 중 9명이 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언제입니까?’ “목표했던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부진할 때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또는 애쓰고 일하다가 건강을 잃었을 때, 그리고 함께 일해야 할 사람들과 불화가 생겼을 때 너무 힘들었다.’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이 있습니까?’ 84%가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스트레스 때문에 신체적인 증상이 있습니까?’ ‘뒷목이 뻣뻣하고 깊은 잠을 잘 수가 없고 기억력이 감퇴되고 먹어도 소화가 잘 안 되고 쉽게 피로를 느낀다.’ 라고 답했습니다.

오늘날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너나없이 경쟁하는 이 사회에 그 피라미드의 정점에 선 CEO들의 근심입니다. 그들의 소원이 뭔지 아세요? ‘소원이 뭡니까?’ 라고 물었더니, ‘가족들과 오붓하게 밥 한 그릇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제 은퇴하면 그러고 싶다.’ 라고 대답했어요. 참 똑똑한 것 같은데 미련해요. 당신들이 은퇴하면 그 집에 설 자리는 없는 거예요. 은퇴하고 나면 이미 그 아내와 자식들은 아버지 없는 구조에 익숙해져서 웬 남자가 끼어들어하며 귀찮아해요. 퇴직한 남편들, 부인들이 밥은 해 주지만 귀찮은 거예요. 그리고 자녀들도 귀찮아해요. 지금 해야 되는 거예요. 지금 가정을 돌보아야 하는 거예요. 그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간 후에 가정을 돌보겠다. 그러면 너무 늦은 거에요.

지난 주 목요일에 문화탐방이라는 이름으로 뿐짝엘 갔었는데요. 멀림바(Melimba) 가든 이라는 데가 있어요. 한번 가 보세요. 오후 4시쯤 갔었는데. 비가 올 듯 말 듯하고 안개가 낀 흐린 날씨에 그 정원에 들어가니까 천국이 따로 없더라구요. 너무 멋있었어요. 전문가가 말합니다. CEO들의 문제는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 속에서 내적으로 터져 나오는 행복감이 있을 때에만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고.

<오래 살려면 게으름을 피워라> 라는 책이 있습니다. 독일 건강과학 저널리스트인 잉에 호프만 씨 책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몸은 자기에게 맞는 일을 스스로 좋아서 할 때 최고의 능률을 발휘하게 되어있다. 건망증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아요. 건망증이란 아주 건강한 몸의 신호예요. 3초 주기로만 새로운 정보를 수용할 수 있다고 하는 뇌의 자기방어 기능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에요. 한꺼번에 막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것을 깨우쳐주는 것이에요. 여러분, 치매와 건망증의 차이를 아십니까?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볼 때 볼일을 다 본 후 지퍼를 안 올리고 나오면 그것은 건망증이에요. 그러데 지퍼도 안 내리고 볼일을 보면 그것은 치매이지요. 생각 없이 본능을 따라 행하면 그것은 치매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하루를 이렇게 말합니다. 아침에는 운동하고 명상하고 기도하라. 점심에는 긴장을 풀기 위해서 산책을 하고 수다도 떨고 낮잠도 자라. 저녁에는 좋아하는 사람과 유쾌한 식사를 해라. 그리고 하루의 마무리는 혼자 멍한 시간을 가져라. 그 멍한 시간은 무엇이겠어요?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오늘 내가 왜 사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며 또 여러 가지 생각의 나래를 펴며 꿈을 꾸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행복은 영광을 체험할 때 옵니다. 그러나 그 영광이 영광되기 위해 고난이 있습니다. 이 평범한 가정의 일상이 얼마나 귀한 순간인가 하는 것은 병들어 본 사람은 잘 압니다. 29살의 남자와 23살의 여자가 있어요.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 5, 3살의 아이가 있어요. 그런데 이 여자는 말기 암 환자예요.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어요. 이제 8개월째 살고 있어요.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이에요. 그들의 하루가 어떻겠습니까? 이제 곧 떠날 아내를 위하여, 이제 곧 못 볼 그 가족을 위하여 말 한마디가 서로를 덮어주고 용서하고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원은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신다면 건강을 회복해서 평범한 일상을 단 하루라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오늘 우리가 이렇게 평범하게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 시간, 이 자리, 이 기회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에요. 꼭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시겠어요? 영광이 영광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고난을 주셨어요. 바벨론 포로가 된 것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억압입니다. 그러나 헛된 자기 교만을 무너뜨리고 종교의 가면을 벗고 하나님을 냉정하게 솔직하게 만나는, 알고 보면 종교적인 해방사건이었습니다. 먼저 내 영이 하나님 앞에 엎드러져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사모한 이후에 하나님이 정치적인 문을 여셨어요. 경제적인 해방의 문을 여셨어요. 그래서 죄사함의 은총을 입은 그 영혼, 거기에 행복이 있는 거예요.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칼 바르트에게 당신이 발견한 최고의 진리는 무엇입니까?’ 물어보니,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찬송가 563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여기에 죄사함의 은총이 있습니다. 인생은 풀이요. 그 인생의 화려함은 한낮 꿈과 같고 이제 하나님이 입김을 불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 떨어집니다. 백 년을 못살아요. 잠깐이에요. 죽어도 그만이에요.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고 우리를 이끄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함께 보는 것입니다. 부부가 그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볼 때 그들은 서로 한 가족으로 묶여져서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이루는 거예요. 부모 자녀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볼 때 그 가정에 진정한 행복이 있는 거예요. 교회라고 하는 곳은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보는 곳이에요. 그러면서 놀라운 은혜를 회복하는 것이지요.

광복 60주년의 우리 미래는 어디에 있습니까? 더 잘 먹고 잘 사는 데에 있습니까? 아니면 인권회복에 있습니까?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온전한 인간 존재로서 하루를 살더라도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오늘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따라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여기에 우리를 살게 하신 뜻이 있습니다. 여기에 모여 예배하게 하신 뜻이 있어요.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함께 듣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뜻을 모을 때에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도록 하실 것입니다. 가정을 회복시키실 거예요. 한인사회를 변화시키실 거예요. 그리고 이 교회와 이 사회를 통해서 고국의 많은 교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광복 60주년에 우리 각 사람과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꿈이요,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지렁이 같은 우리를, 흙만 먹고 흙에 파묻혀 살았던 우리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시고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생각에 빛을 비춰주시고 우리들의 어그러진 마음을 그리스도 십자가의 그 보혈로 다시 한번 정결케 씻어내 주시옵소서. 하루를 살더라도 감격과 감동으로 살게 하시고 그 말씀과 음성에 응답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