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와 호송차에 오르기 전 교도관과 눈인사를 하며 미소짓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의 5일 항소심 판결의 가장 큰 논리적 허점은 재판부가 정경유착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이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정경유착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부정을 고리로 결탁해 서로 부당한 이익을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정경유착은 재벌경제 체제의 고질적인 병폐로, 부정부패의 근원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치권력과의 뒷거래를 배경으로 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 거액의 불법·부당 대출, 국민 혈세로 조성된 공적자금 투입 등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모습을 이 사건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열거한 사례들은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정경유착 행태다. 경영권이 창업주에서 2, 3세로 넘어가고 있는 지금, 한국 재벌의 최대 관심사는 ‘세금 없는 후계 승계’다.
이 부회장이 정상적으로 경영권을 물려받으려면 수조원대의 세금을 내야 한다. 삼성은 이를 피하려고 그동안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등 온갖 불법·편법을 동원했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의식불명으로 쓰러진 뒤 진행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이 부회장의 후계 승계를 위한 ‘결정판’이었다. 이 부회장은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됐고 삼성물산은 그룹의 양축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지배하게 됐다. 이 부회장에게 이보다 더 큰 이익이 어디 있겠는가. ‘뇌물 제공과 후계 승계’야말로 재판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경유착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뇌물 제공의 대가로 취득한 현실적 이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을 풀어주기 위해 정경유착을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했고, 그 결과 사법부가 정경유착을 합리화해준 꼴이 됐다.
재판부가 승계 작업 자체를 부인한 것도 납득할 수 없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를 받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부터 합병 찬성 지침을 전달받고 국민연금공단에 ‘삼성 합병 찬성’ 압력을 넣은 혐의로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청와대와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관여해 합병에 따른 주식 처분 물량을 대폭 줄여준 사실도 드러났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의 수첩 등 관련 자료와 진술을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승계 작업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지배력 확보에 직간접적으로 유리한 효과가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후계 승계를 하려면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 부회장을 풀어주려고 논리를 억지로 짜맞추다 보니 재판부 스스로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정경유착이다. 촛불집회에서 많은 국민들이 ‘적폐 청산’의 과제로 정경유착 근절과 재벌 개혁을 외친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법을 고치고 제도를 개선해도 재벌 총수의 비리에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면 재벌 개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사법부의 일대 각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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