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십자가 도! (고전 1;18)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7. 31. 06:31

십자가 도! (고전 1;18)

 

지난 5월 우리 교회에 드나든 외부인이 1만명 가량 됩니다. 결혼식, 성막, 민족 복음화, 감리교 복지 센터가 우리 교회 주 기관입니다. 그들에게 보여줄 것이 없을가 생각하던 중에 십자가를 모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 동안 200여점 십자가를 모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십자가가 단순한 것같지만 모양이 다르고, 재료가 다르고, 색깔이 다르고, 의미가 다르고 아이디어가 다른 것을 보고 더욱 신비하게 생각되었습니다.

2000 점을 모으면 큰 관람거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진해졌습니다.

 

여러 해 동안 늙고 병들어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오랫 동안 그 여인을 정성껏 돌봐준 간호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간호하던 여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재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없고 먼 친척뿐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그 여인은 자기 재산을 먼 친척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간호원에게는 커다란 십자가 하나만 주었습니다.

간호원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였고 좀 서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간호원은 실망해서 그 십자가를 안 보이는 병원 한 구석에 치워놓았습니다. 그것은 별로 귀한 나무로 된 것도 아니었으므로 아무 데도 쓸데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습니다. 간호원을 십자가를 집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과거 돌보던 여인을 생각하며 십자가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 십자가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작은 구멍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 반짝이는 그 무엇을 보았습니다. 이상하여 파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 곳에 아주 비싼 각종 보석들이 수없이 들어 있었습니다.

십자가속에 보물이 들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속에는 보물이 들어 있습니다.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미국 샌디에고에 갔을 때 높은 산위에 큰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십자가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군에서 제대하는 장군이 퇴직금을 다 바쳐서 높은 산위에 큰 십자가를 세워 놓은 것입니다. 도시 어디에서 보아도 십자가가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 말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 혐오감을 가지게 됩니다. 기독교인들만 좋아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저 십자가를 철거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철거하지 않자 그들은 법원에 재판을 걸었습니다. 십자가를 철거하여 달라는 요청을 정식적으로 법원에 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반발하였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법원에 진정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저 십자가만 보면 마음에 평안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됩니다. 저 십자가를 철거하지 말아 주십시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가 되어 진정을 하였습니다. 판사는 드디어 기독교인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지금도 십자가는 높은 산위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일본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는 도(道)가 많습니다. 차를 마실 때는 차도(茶道)가 있습니다. 바둑을 둘 때에는 기도(旗道)가 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에는 식도(食道)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구원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어떤 능력인가요?

 

1. 죄을 알게 하는 능력.

죄를 알게 하는 것이 무슨 능력일까요? 이것은 대단한 능력입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너무 맑은 물이라 낮에는 고기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고기가 어부가 다가가면 다 도망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릴리 고기 잡이는 항상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날따라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 비극적이 밤이었습니다.

세상 사람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더럽게 재수없는 밤이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돌아갈 시간입니다. 베드로는 지치고 허기지고 쓸쓸한 마음으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다가 오셨습니다. 베드로의 배를 빌려 수없이 몰려 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바닷가가 강론장이었고, 배가 강대상이었습니다. 한 참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깊은 곳에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자 죄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어느 처녀가 호두 과자를 사가지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옆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그 여자와 가운에 놓여 있는 호두과자를 자꾸만 꺼내 먹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끝까지 같이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한 개가 남으니까 얼른 집어 반 잘라 자기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별 남자가 다 있다고 속으로 욕하고 집으로 와 보니 자기가 산 호두과자 봉지가 자기 빽속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전화도 걸 수 없고 혼자 어쩔 줄 몰라 하였습니다. 자기 잘못을 깨닫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는 내 설교를 듣고 상처받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다 은혜받는 줄만 알았습니다. 모두가 좋아 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기독교 TV 방송에서 레위기 강의를 37번 하였습니다. 전화 걸려 오는 것이 은혜받고 있다는 전화만 받았습니다. 신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13장 성경 강의를 방영하였습니다. 문둥병장입니다. 문둥병자의 불치병에 대하여 성경을 풀었습니다. 그 날 밤 잠자리에 들었는 데 TV 김 종철 국장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큰 일 났습니다. 경상도 어느 마을에서 문둥환자들이 방송국과 갈보리 선교교회를 때려 부수러 오겠다고 뻐스에 올라 타겠다는 것을 억지로 말렸습니다>

나는 놀라서 <무엇 때문인가요?> 라고 물었습니다. 문둥병자는 말을 TV에서 공개적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어서 사용한 것이라고 하니까 아무리 성경에 있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한센씨 병이라고 쓰기로 하였으니 한센씨 병이라고 그래야지 문둥병자라고 하는 것은 문둥병자를 무시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레위기 14장도 문둥병자장입니다. 그래서 14장이 내일 아침 6시 15분에 방영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것을 내보냈다가는 정말 난리가 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것입니다. 밤 11시가 넘었으니 그 시간에 다시 녹화하려면 녹화 종사원 7명을 불러 내야 하는 데 다 모이면 밤 1시가 되고, 그 때부터 녹화하려면 3시경이어야 하니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것입니다. 나도 어떻게 하여야 할 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김 국장도 해결책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도저히 문둥병자라고 말한 내 테이프를 방영할 수가 없어서 전에 테이프로 재방송을 하였습니다.

아침에 전화에 불이 났습니다. 왜 성의없이 본 것을 또 내보냈냐는 것입니다. 방송국이 이런 실수를 하면 되냐는 것입니다. 나는 아침에 모든 약속을 다 포기하고 방송국을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녹화를 하였습니다.

내가 문둥병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우리나라 엄청난 문둥환자들에게 아픔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죄를 깨닫고 잘못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를 알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몇 년전이었습니다.

우리 기도원에서 180기 성막 쎄미나를 하였습니다. 장님 목사님들 27명이 등록하여 공부하셨습니다. 5자는 고통의 수라는 것을 풀었습니다.

<솔로몬 행각에는 기둥이 5개 있었습니다. 5자가 나오면 그 주변은 다 고통스럽습니다. 5개 기둥이 있는 그 곳에서 소경, 절뚝발이, 병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이 끝나고 장님 목사님 사모님이 내게 다가 오더니 귓속말로 말했습니다.

<목사님! 소경이라는 말 하지 마세요. 너무 아파해요. 시각 장애인이라고 하셔야 해요.>

우리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이 상대방에 상당한 아픔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잘못을 깨닫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 다녀 왔습니다.

국제 결혼한 여이들이 많은 곳입니다. 어느 여인은 한국 남자를 오빠라고 하고 미국 남자와 한국 남자 두 남자를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돌아 와서 나는 우리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설교를 인터넷으로 한국에 있는 이가 들었습니다. 그는 미국에 있는 친구 바로 그 여자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항의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국제 결혼 한 여자들을 도매끔으로 그렇게 매도하지 마십시오. 예수믿는 여자들 빼놓고 국제 결혼한 여자들이 다 방탕한 것 아니예요. 우리는 그런 설교 들으면 아파요>

정말 무심코 한 말 한 마디가 그렇게 상대방에 아픔을 주는 지는 몰랐습니다. 깨닫는 것은 능력입니다.

 

너무나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 생일이었습니다. 남편이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 생일인 데 무슨 선물을 하여 줄가?>

<아무 것도 말고 두 시간 동안 내가 무슨 이야기 하던지 대꾸하지 말고 들어만 주는 선물을 주세요. 들으면서 맞아, 옳아, 그렇지 이렇게 세 마디로만 대꾸하여 주세요>

<여보. 그 건 그 것이고 선물을 말해 봐.>

<아니예요. 무슨 이야기하든지 두 시간만 들어 주세요.>

<그렇게 하지.>

남편이 약속하였습니다. 무슨 이야기 하든지 두 시간만은 맞아, 옳아, 그렇지 세 마디만 하기로 하였습니다. 두 시간만 그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처음에 기차에서 만났지요?>

<아니지. 뻐스에서 만났지.>

<여보 두 시간만 맞아, 옳아, 그렇지 하기로 했잖아요.>

<당신 먼저 내게 프로포즈 했지요?>

<아니 당신 먼저 결혼하자고 편지 보냈잖아?> <여보 두 시간만 맞아, 옳아, 그렇지 하기로 했잖아요.>

남편은 울화가 치밀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무 말도 않고 두 시간만 들어 주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아내가 그 동안 이야기를 죽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않고 들어 주던 남편은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내가 그 때 농담으로 한 말 가지고 그렇게 몇 일 씩 잠을 못 잤나?. 그 때 그런 일 가지고 그렇게 결혼을 후회하였나? 그렇게 내가 무심코 한 말이 그토록 가슴을 아프게 하였나?>

남편은 아내의 손을 붙들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죄를 깨닫게 되는 것은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아들이 너무 방탕하였습니다. 친구들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친구와 관계를 끊으면 되리라 생각하고 아들을 잘 되게 하여 보고자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미국에 가자 아들은 얌전하여졌습니다. 그러나 말을 하게 되고, 친구들을 사귀자 또 방탕을 시작하였습니다. 술을 먹고 죄를 범하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어두운 방에서 아버지 펑펑 울면서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방 밖에서 아버지의 눈물로 뒤범벅이 된 기도를 들으면서 아들은 자기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철저히 회개하고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죄를 볼 줄 알게 하는 것은 능력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는 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제일 잘 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사울이라고 붙였습니다. 가장 큰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이들을 잡아 죽이러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복음을 만났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온 현상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말했습니다.

<나는 죄인중에 괴수입니다.>

<나는 만삭되지 못 하여 난 사람입니다.>

죄를 볼 줄아는 것은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2. 죄사함의 능력

십자가는 죄를 알게 할 뿐 아니라 죄를 사하여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워.>

 

이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 줍니다. 죄사함을 깨닫게 하고 확신을 주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미국에서 제일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빌 하이빌 목사님이 은혜를 이렇게 비유하였습니다.

성적표를 나쁘게 받은 자녀가 어머니에게 와서 성적표를 보여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타날 것입니다.

첫 반응은 <기가 막힌다. 밥 먹고 무엇 했니? 이것도 성적이라고 받아 왔니?>

호통하는 반응입니다. 자녀는 인과보응이다. 심는 대로 거둔다라고 생각하고 잠잠할 것입니다.

두 번째 반응은 어머니가 한숨을 들이 쉬고 내 쉬며 <다음에 잘 해라>라고 한 마디 하였습니다. 이것은 백골난망입니다. 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세 번째 반응은 어머니가 목을 끌어 안고 <너 무엇을 먹고 싶니? 수고했다. 다음에 잘 하면 된다. 그럴 수도 있지 않니? 미래는 네 것이다> 라고 사랑하여 줍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것은 은혜입니다. 이것이 깨달아지는 능력은 십자가를 통하여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중국에서 나병 환자촌에서 선교하고 있는 김 요석 목사님 간증 테이프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북에서 생긴 일입니다.

어느 마을에 몰래 예수를 믿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아들은 국민학교에 다니면서 공산 사상에 짙게 염색되어 있을 때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당에 고발하였습니다. 온 동네에서 아들이 친 아버지를 고발한 사건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공산당은 온 마을 주민을 교육을 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공개재판하기로 하였습니다. 사형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를 벙거지를 씌우고 손을 뒤로 하여 꽁꽁 묶어 무릎을 꿇겨 올려 놓았습니다. 그 앞에서 아들이 고발장을 큰 소리를 읽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이들은 공산당을 배반하고 아침마다 미신같은 신에게 기도한 배반자입니다>

사람들은 억지로 끌려 나와 공개재판을 구경하면서 숙연하여졌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여 죽이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는 심정이 얼굴에 역역히 나타났습니다. 공산당들은 이 아이를 영웅으로 치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상을 주고 대단히 환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았습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끌려 갔습니다. 그리고 영영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었는 지 아무도 모릅니다.

한편 이 아이는 영웅이 되었지만 고아가 되었습니다. 공산당은 이 아이가 공산사상이 투철하다는 이유로 공부를 시키고 길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결혼을 하였습니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국민학교를 들어 갔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싱긋이 웃는 데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사형당하신 아버지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서야 비로서 자기는 부모님에게 얼마나 죄를 지은 것인지를 알기 시작하였습니다.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자기가 아버지 고발할 때 나이가 들어서야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런 번민속에 김 요석 목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은 아버지 어미니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펑펑 울면서 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 할 죄도 용서하시나요?>

김 목사님은 무슨 의미인지 알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보다 더 한 죄도 용서하십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위의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자기도 아침마다 기도하고 있고 아들이 자기를 고발할가봐 조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덫붙였습니다.

내가 언젠가 기도원에서 집회할 때 한 분이 내게 조용히 간증을 하였습니다.

 

장마철에 한강에 물 구경을 하러 나갔습니다. 집도 떠내려 가고, 돼지도, 통나무도 온갖 것들이 다 떠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여자가 떠냐려 가면서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지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손가락에서 금반지들이 반짝 거리고 있었습니다. 손가락마다 금반지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다급하니까 금반지만 모조리 챙기었던 것같습니다. 그 남자는 여자에게로 생명을 걸고 수영을 하여 들어 갔습니다. 그 여자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금반지를 빼려고 하였습니다. 손이 물에 불어서 금반지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손가락의 반지는 잘 뺏는 데 어떤 손가락에 낀 반지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금반지 금 목걸이를 다 빼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날 밤부터 자리에 눕기만 하면 <으악> 하는 그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금반지 하나씩 팔아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밤 새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자다가 깨어 보니 술집이었습니다. 목마르기에 갈증으로 옆에 있는 그릇의 물을 마시고 보니 재떨이에 있는 물이었습니다. 담배 꽁초, 술 마시다가 딸아 놓은 술 찌꺼지, 침뱉은 것등의 혼합물을 마신 것이었습니다.

<내가 짐승이지 사람인가?>

터덜 터덜 공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 오고 있었습니다. 새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왠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나?> 하고 따라 들어가 보았습니다. 교회 새벽기도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앉아서 목사님 설교를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의 십자가만 붙들면 다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시면서 강도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강도짓을 하였어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사함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설교였습니다. 그는 이 곳이 바로 내가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부터 교회 다니기 시작하여 지금은 그 죄로부터 자유함을 받고 평안하게 살고 있다는 간증을 살며시 하여 주었습니다. 십자가는 죄사함의 능력입니다.

아무리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잘 하여도 죄는 닦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의사가 수술을 잘 하여도 죄를 도려 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페인트 칠을 잘 하여도 죄를 페인트 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학교에 가서 공부를 잘 하여도 죄를 없앨 수 없습니다. 죄사함을 주는 것은 오직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십자가만이 죄사함을 줄 수 있습니다.

 

3. 병고침의 능력

십자가의 도는 병고침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우리의 죄만 짊어지고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병까지 짊어지셨다고 마태복음 8장 17절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병고침의 능력이 있습니다.

프랑스 군인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에는 배낭에 책 두 권은 꼭 넣고 나간다고 합니다.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파스칼의 팡세입니다. 파스칼이 팡세를 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여동생이 불치병 안질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파스칼은 처음으로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타나더니 동생 눈을 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파스칼은 기도를 마치고 동생을 찾아가서 눈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동생이 말했습니다.

<오빠!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눈이 방금 나았어요>

이 때 파스칼은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철학자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노라>

파스칼이 죽은 후에 옷에서 이상한 가죽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옷깃마다 가죽에 이 말을 적어 놓고 그 것을 넣고 다녔음이 발견된 것입니다.

십자가는 신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12년 동안 혈루증을 고생하며 있던 것을 다 허비하고, 의사들을 다 만나 보았어도 더 심해만 가던 병자가 예수님의 옷 자락을 잡았을 때 고침받았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신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감명깊게 본 영화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영화중에 하나가 벤허(Benhur)입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을 때에 이야기입니다. 그는 적군 로마에게 붙들려 졸지에 노예가 됩니다.

노예로 끌려 갈 때 갈증으로 죽게 되었을 때 한 사람이 물을 주어 마셨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었습니다. 그 후 사랑하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너무나 고민하고 분에 못 이겨 하다가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둥병자들만 모여 사는 곳을 추방당하였습니다. 가정이 쑥밭되고 말았습니다.

벤허는 노예로 끌려가 배속에서 노를 젖는 일을 합니다. 죽기까지 이 일을 하여야 합니다. 배를 젖다가 체력을 잃으면 죽여 버렸습니다. 이제 인생이 끝장인 것같았습니다. 그 때 배가 침몰하였습니다. 벤허는 로마 호민관의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그래서 호민관의 양아들이 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라는 청년이 사형당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벤허는 구경을 나갔습니다. 그 청년을 보고 놀랐습니다. 자기가 노예로 끌려 갈 때 갈증으로 죽게 되었을 때 물을 주어 살린 이였습니다.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였습니다. 미친 듯이 달려가 물을 떠 예수님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로마 병정이 채찍으로 치며 물 주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로마인에게 노예로 끌려 가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던 참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로마인을 향한 증오가 지글지글 타올랐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에 평화가 깃들었습니다. 로마 병정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순간에 벤허 마음은 왠지 모르는 기쁨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와 누이의 문둥병도 다 나았습니다. 십자가 그 순간 병도 다 나았고, 마음에 미움도 다 사라지고 가정도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뒷 이야기에 이런 사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벤허를 촬영한 영화 감독은 수 천명의 엑스트라 배우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는 순간을 촬영할 때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마시고 십자가만 약 10분 동안 응시하여 주십시오. 그 장면을 찍어야 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였습니다.

돈받고 하는 배우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수 천명의 눈에서는 자기들도 모르게 눈시울이 적셔 지면서 모두가 감격속에 주르르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두가 진실처럼 경건하여졌습니다. 그런 은혜의 순간은 없었다는 고백을 모두가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능력이었습니다.

 

4. 일의 능력

십자가의 도는 일에 능력을 줍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십자가의 도만 의지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능력을 주시면 못 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 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십자가의 도는 우리에게 능력을 줍니다.

 

십자가는 일하는 능력을 줍니다. 미국이 그렇게 강한 나라가 된 비결이 있습니다. 세계 10위 대학중에 7개가 미국에 있습니다. 그런데 7개 대학은 모두 기독교 학교입니다. 십자가를 걸어 놓고 십자가를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모두 성경을 가르치는 대학입니다.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부산에 사는 가난한 부부에게 큰 행운이 찾아 왔습니다. 3억원짜리 복권이 당첨되었습니다. 얼마나 기뻐하였는 지 춤을 다 추었습니다. 그런데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방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부부싸움지 잦아졌습니다. 결국 남편은 바람피우는 아내를 살해하려고 하다가 살인미수범이 되어 감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삶은 불행한 삶입니다.

 

십자가는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50대 여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 4가지가 있습니다.

1. 돈. 2. 딸, 3. 친구, 4. 찜질방

그런데 50대 남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4가지가 있습니다.

1. 아내, 2. 부인, 3. 처, 4. 마누라

그런데 50대 이상 남자, 여자에게 다 함께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답니다.

예수 십자가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능력입니다. 네 가지 능력입니다.

1. 죄를 보는 능력

2. 죄사함받는 능력

3. 신유 능력

4. 일하는 능력

 

다시 한번 외치고 싶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한 남자가 이른 아침부터 술에 잔뜩 취한 채 비틀거리면서 교회로 들어 왔습니다. 그는 교회의 문을 요란스럽게 흔들어대며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멀리서 보고 있던 사찰 집사 가 뛰어와서 물었습니다.

<아니. 이 양반이 이 아침에 이 모양으로 누구를 만나려고 이

그가 술취한 목소리로 거나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나 말이요, 하나님이란 분을 만나러 왔소.>

이 사내는 다시 교회 문을 흔들며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사찰 집사는 급하게 막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분은 없소!>

하나님이 없는 교회,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