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3월입니다.
어제는 때 이른 봄비가 하루 종일 내렸습니다. 촉촉이 봄비도 내렸으니 이제는 여수 돌산도 끝에 있는 금오도에서부터 반가운 꽃소식이 큰 걸음으로 달려올 것입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내린 봄비 덕분에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놓고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이 빗소리를 듣고 깨어나는 것들이 아주 많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도 땅 속에서 어제 내린 봄비 소리를 들으며 다시 시작될 자신의 생을 위해 새로운 다짐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봄비에 깨어나는 것이 어디 개구리뿐이겠습니까. 메마른 나무 가지에도 연두색 싹이 돋기 시작했고 식당 앞에 있는 150년 수령의 동백나무에도 동백꽃이 붉은 속살을 내비치며 조심스럽게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저는 여수에 있는 날보다 외지에 있는 날이 더 많습니다.
서울로 경기도로 부산으로 바람처럼 구름처럼 다니고 있습니다. 세상일이란 것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정체되지만 움직이면 움직인 것만큼 배울 것이 많은 것이 우리네 세상인 것 같습니다.
날마다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차창 밖을 자주 보게 됩니다. 어제는 차창 밖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지금 스쳐지나가는 풍경처럼 바람 같은 존재일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지금 낑낑대는 내 삶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도, 지금 내가 애지중지하고 있는 것도,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지위도, 명예도, 재물도 모두가 나에게 잠시 머물다 사라져가는 바람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 지금 우리 곁에 아무도 없듯이 영원히 내 것인 권력도 없고, 영원히 내 것인 재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내 손아귀에 오래 쥐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만 더 아파지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소유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세상을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소유의 절제가 필요한 까닭이고, 과한 욕심이 생기거든 그 즉시 내려놓기가 필요한 까닭이고, 모든 해악의 근원인 욕망의 정화도 필요한 까닭인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은 부(富)는 있으나 지각이 없는 사람 천지입니다. 권력과 지위는 있으나 헤아림이 부족한 사람들 천지입니다. 그리고 똑똑한 사람은 많으나 따뜻한 사람은 찾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이든지 간에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직위가 높은 사람은 많은 사람 중에 왜 자신에게 이렇게 높은 지위가 주어졌는지를. 그리고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자신이 이렇게 많은 재물을 갖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 나에게 이러한 재능이 주어졌는지를. 그것은 하늘이 내게 떵떵거리며 잘 살라고 준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게 잘 사용하라고 잠시 맡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내가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