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강》 죄의 삯은 사망이다! (롬 6:15-23)
사도 바울은 롬6장에서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죄의 원리요, 다른 하나는 의의 원리입니다. 죄의 원리는 죄가 왕이 되어, 죄가 통치하는 세계요, 의의 원리는 하나님의 의가 통치하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죄의 종과 의의 종 두 가지 종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습니다. 한 회사에 사장이 둘이 있어 서로 경영 방법이 다르다고 한다면 사원들은 어느 사장의 말을 들어야 할지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한 사람은 동쪽으로 가자고 명령하고 다른 사장은 서쪽으로 가자고 명령한다면 사원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인간은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죄의 종과 의의 종, 두 길이 있는데 인간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죄의 종과 의의 종은 근본적으로 대치적(극과 극)이며 아주 상반 관계에 있다고 합니다.
▶먼저 <종의 개념이 무엇인가?> 알아보겠습니다. 종이란 원어로 '둘로스'인데, '하인, 심부름꾼'이나 보통 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더 강한 뜻으로 '노예'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노예는 자신의 몸값이 지불되어 주인에게 팔리 운 몸입니다. 노예는 자신의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각까지도 없습니다. 인격, 행동, 인간존재, 자유까지도 속박 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의 종이란 죄에 얽매여 죄에게 복종하여 죄가 시키는 대로 죄를 생각하고, 죄를 계획하고, 죄를 행하고, 죄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오늘 ◀제목▶입니다.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고, 약1;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인간의 노력으로, 수단으로, 어떤 교육으로 인간이 수양함으로 이 죄를 벗어버릴 수 있는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아멘!/
내 죄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믿고, 고백하고, 의지할 때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요일1;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면 우리는 다시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14절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할/ 은혜 아래 있습니다.
▶15절 "그런즉 어찌 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럴 수 없느니라!" 2절에서도 이 말씀이 나왔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2절은 4절의 대답입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5;20절,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했으므로 그러면 은혜를 많게 하기 위해서 죄에 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자들에게 아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씀은 죄를 많이 지어야 은혜가 넘친다는 뜻이 아니라 죄를 많이 깨달은 자에게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은 무엇입니까? 1절과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가 이제 율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사람들에게 대답하는 형식입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단호한 대답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은혜를 베풀어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죄에서 자유케 하시려고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산 자가 되라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믿/
"죄를 지으리요?" 성도가 율법에서 해방되어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라는 뜻입니다. 우리 주의에는 율법주의자들이 혹 있습니다. 한번 구원받았으니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으니 이제는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하게 "그럴 수 없느니라" 바울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죄의 종에서 해방되었으니 '의의 종, 은혜의 종, 사랑의 종'이 된 것입니다. 더 더욱 의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죄는 무섭습니다. 죄는 인간을 파괴시킵니다. 인도는 요술쟁이들이 많습니다.
▶한 요술쟁이가 나무통에다가 물을 붓고 막대기로 물을 휘휘 저으며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면서 모여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그 통 안에 금전을 집어넣고는 "이 물통에서 금화가 나온다"고 자랑합니다. 사람들이 탄복을 합니다. 사람들이 금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러자 요술쟁이가 하는 말이 "내게는 이 물통과 막대기가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통에 물을 담고 주문만 외우면 금화가 쏟아진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적당한 가격을 주는 사람에게 팔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나에게 팔라고 합니다. 그래서 계약이 성립됩니다. 요술쟁이가 이 물건을 넘겨주면서 하는 말이 "주문을 외우면서 절대로 빨간 얼굴을 가진 원숭이를 생각하지 말라" 그러면 금화가 안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요술을 시작하려고 하면 빨간 원숭이가 떠올라 많은 돈을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죄라고 하는 것도 한번 지으면 지어지지 않습니다. 죄는 죄인을 따라 다닙니다. 그림자처럼, 형사처럼, 죄인을 따라다닙니다.
야곱의 열 형제들이 애굽의 국무총리 된 요셉을 후에 만나 왜 두려워했습니까? 요셉을 동생으로 형제로 생각하기보다 옛날 그를 애굽으로 팔아 넘긴 죄가 먼저 생각나 두려워한 것입니다. 죄가 그들을 찾아냈습니다. 죄는 현실세계에서도 죄인을 쫓아내어 형벌을 줍니다.
죄지은 사람은 우선 양심을 채찍을 맞습니다. 가롯 유다가 은30에 예수님을 팔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목을 매어 자살했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불안, 열등감, 공포, 정신적인 히스테리, 노이로제 온갖 정신 분열증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다가 자살로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단종애사'에 보면 새로 수양대군이 자신의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아 자기가 왕좌에 앉기는 앉았지만 마음이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번뇌로 가득했습니다. 밤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꿈자리가 사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몸이 약해져서 몇 해 못살고 죽었습니다. 죄가 우리 속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죄는 내세에서도 그 값을 분명히 지불해야 합니다. 주님은 죄 값대로 심판하십니다. 죄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런데 주의 보혈로 죄를 용서받고 의인 된 우리가 왜 또 죄를 짓습니까? 왜 죄와 짝을 해야만 합니까? 죄를 끊어야 합니다. 잘라야 합니다. 막아야합니다. 바울은 절대로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절대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는데 어찌 다시 죄를 지어 죄 가운데서 더 살겠다는 것인가? "그럴 수 없느니라!" /믿/아멘!/
▶16절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여기서 보면 사람들에게는 누군가가 그를 다스리는 주인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느 사람이라도 그 인격의 주인이 반드시 있습니다. 즉, 무엇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재물을 섬기고, 어떤 이는 명예를 섬기고, 자존심을 섬기고 등등 주인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무엇을 섬기고 사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섬기고 누구에게 순종하는가에 따라서 결국은 나를 순종하게 하는 그것의 종이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즉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 쉽게 표현하면 내가 돈을 섬겼다면 돈이 내 주인이고 나는 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돈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도 처음에 무엇을 섬기느냐에 따라 그가 내 주인이 되고 그것이 나를 매이게 됩니다. 매기게 되면 자유는 없어지고 그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쉬운 예로 술을 들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인심 좋은 것 중 가장 좋은 인심이 술 인심입니다. 모든 인심이 술 인심만 같다면 세상은 무척 살기가 좋을 것입니다. 비싼 술을 마시면서도 서로 한잔만 더하라고 권합니다. 현금을 달라고 하면 안 줍니다. 그러나 술은 줍니다.
술은 처음에 한잔만 하라는 권유를 이기지 못하고 한잔, 한잔 받아먹다가 어느새 한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석 잔으로 바뀌어 술이 술을 먹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술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 되어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호하게 죄를 벗어버리고 의의 종이 되어 의에 이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
▶몇 해 전인가 TV에서 <뿌리>가 화제작으로 방영된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미국에 노예로 팔이여 와 그를 통해 태어난 무고한 자손들이 태어날 때부터 노예가 되어 팔려 나갑니다.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이 자신을 값없이 마귀에게 팔았습니다. 아담은 종으로 팔렸으니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섬겨야했습니다.
우리는 조상 아담 안에서 죄에게 팔려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가 가라고 하면 가고, 먹으라면 먹고, 방탕 하라면 방탕했습니다. <뿌리>의 하이라이트는 어느 날 노예 해방령이 내려 노예들이 해방된 것입니다.
그들은 옛 주인에게서 풀려 나와 이제 스스로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의사대로 모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도 과거에 죄를 주인으로 섬겼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명을 얻어 의의 주인이신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를 섬겨야 합니다.
마6:24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한 주인을 섬기고, 한 남편을 섬기듯이 죄와 마귀를 섬기든지, 아니면 하나님과 의를 섬기든지 해야 합니다. 주님은 요8:34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우리 모두는 죄에서 자유 함을 얻어 의에 이르는 귀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오직 의의 길을 달려가십시다. /할/
▶17-18절에서는 어떻게 우리가 의의 종이 되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서 우리의 신분이 바뀌어졌습니까? 우리가 잘나서입니까? 우리에게 어떤 공로가 있어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일단 종으로 팔려 가면 자기 자신의 힘으론 풀려 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사람들이 와서 값을 주고 사서 풀어줘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죄의 종이였는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 보혈로 우리 죄를 청산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값 주고 사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도리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이 구원의 은혜가 아직도 내 마음 속에 감동을 일으키지 못하면 그것은 믿음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구원의 감격을 깨닫게 하옵소서!" /할/
▶계시록에 보면 귀한 장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 가운데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의 주위에는 24명의 장로들이 앉아 있는데,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자기의 머리에 있는 면류관을 다 벗어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큰 소리로 외치기를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오직 하나님께서만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들에게는 아무 공로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주님 앞에 설 때, 주님은 우리의 머리에 빛난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때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어떻게 해서 죄의 종에서 순종의 종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전해준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 믿는 것은 순종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 믿겠습니다. 이 태도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을 때, 벌써 기본적인 순종을 한 셈입니다. 순종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고 될까? 웃기네!" 이런 태도는 불순종의 태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18절에서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죄의 종에서 이제는 의의 종으로 완전히 우리의 신분이 바뀌어졌습니다. 우리의 주인은 사탄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 이상 사탄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다스리려고 할 때마다 사탄을 향해서 호통 치시기 바랍니다.
"사탄아 썩 물러가라! 나는 더 이상 너와 상관이 없다. 나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 나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마귀야 썩 물러가라." /할/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를 믿으십니까? 주님의 부활과 재림을 믿으십니까? 성경 66권의 진리를 믿습니까? 우리는 죄의 종이 아닙니다. 의의 사람입니다. 로마서의 가장 큰 교리의 주제는 죄인이 의인 된 축복을 전하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기복신앙의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로마서의 복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을 뿐 아니라 의인으로 인정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크게 권하기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할/
그런데 믿음으로 살아야 할 성도가 패잔병같이 되어 믿음이 약할 때가 가끔 찾아옵니다. 이때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딤전6:12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할/
▶19절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무슨 말인가? 바울은 우리의 주인이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 주인은 사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입니다. 과거에는 사탄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인 되었던 사탄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결한 삶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바라보면서 더욱더 거룩한 자리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복음이 로마 성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이 로마 사람들은 본시 이방인이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질 때에 그 말씀에 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아직은 영적 수준이 높지 못합니다. 영적인 수준이 낮습니다. 거기다가 육신이 연약합니다. 죄에 대한 유혹에 쉽게 빠질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알아듣기 쉽게 하나의 예를 들어서 설명을 했습니다.
노예 시장에서 노예가 팔렸습니다. 그러면 이 노예에게는 두 가지가 달라집니다. 첫째는, 주인이 바뀌게 됩니다. 두 번째로, 주인에 따라서 종의 삶 자체가 달라집니다. 주인이 농사를 짓는 사람이면 종도 당연히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주인이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종도 주인을 따라서 장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에게는 절대적인 순종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원리를 우리의 영적인 삶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여러분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여러분의 주인은 사탄이었습니다. 사탄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열심히 죄를 지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피 값으로 사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우리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가 우리의 새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죄 짓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의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더 깊은 거룩함이 자리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전에 너희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 그때는 어떠했습니까?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정이라고 하는 것은 내적인 죄, 마음으로 짓는 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외적인 죄, 겉으로 드러나는 죄를 의미합니다. 그때는 우리가 사탄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탄이 이끄는 대로 사탄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마음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또 겉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열심히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우리의 주인이 되었던 사탄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더욱더 깊은 불법의 자리, 죄악 된 자리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을 모시고 사는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새 주인이 되신 예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의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의를 위해서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거룩함에 이르라"고 했습니다. 우리 삶의 목표가 이제는 거룩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죄의 종이 되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육신은 의의 병기가 되어 거룩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존재,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룩해 질 수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으나 거룩의 영이신 주의 성령이 우리를 주관하시면 우리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할/
▶20절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우리 집에 머슴으로 일하다가 남의 집 머슴으로 가 버리면 우리 집의 명령은 안 듣습니다. 남의 집 머슴으로 갔는데 나무 좀 해 오라고 하면 "저 양반 정신 있나 없나?" 비웃습니다. 그 머슴은 우리 집에서 자유 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저쪽 집에서 일하던 머슴이 우리 집으로 계약하고 왔다면 얼마든지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그때는 "예" 고분고분 말을 잘 듣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노예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열심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주인이었던 사탄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착한 일을 많이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에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처했던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난 뒤에 과거의 자기의 모습을 생각할 때에 뭐라고 했습니까?
냄새나는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과거에 착한 일을 많이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가 아닙니다.
예수 믿기 전에 죄에 대하여 별로 가책을 모릅니다. 왜?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의의 대하여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 앞에는 종이요 죄에 대하여는 자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순종해 나가면 죄에 대하여 자유 합니다.
롬8;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할/
▶21-22절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예수 밖에 있을 때에 아까 말씀한 것처럼 육체의 열매를 얻었습니다.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 아니하나니" 죄의 종노릇 한 것은 하나님 앞에는 부끄럽고, 자신의 양심에도 부끄럽고, 사람들 앞에서도 부끄러운 것입니다. 왜? 좋은 열매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요, 마지막에 사망음부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22절에서 우리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를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이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②"하나님께 종이 되어" 과거에 우리의 주인은 사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③"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과거에는 우리가 부끄러운 열매를 얻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가 주어졌습니다. /할/ ④"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이제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는 그 날, 우리는 영화로운 천국에서 주님과 더불어서 영원토록 왕 노릇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절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전과 이후가 극과 극입니다. 사망과 생명이요, 죄와 의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종이 아닙니다. 죄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은혜 아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언어의 순화가 일어납니다. 마음도 거룩하고 자세도 거룩해집니다. 빛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엡5:9절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거룩함의 열매의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영생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악한 열매에서 의의 열매, 사망의 열매에서 영생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성령의 마지막 단계는 영생입니다.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생이요, 영생이 없이는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종과 의의 종의 두 생애에 대해 절정을 이루는 결론이요, 6장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이 가장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 있는데 그게 무엇입니까? 없는 것, 못 배운 것, 약한 것, 못 생긴 것, 이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죄가 있다면 그것은 큰 부끄러움이요 수치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해도 마음속에 죄가 있다면 모든 것은 헛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우리를 비방하고, 노략하며, 찌르는 가시처럼 괴로움을 줍니다. 이 죄는 우리의 육신 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영원한 파멸의 구덩이로 끌고 갑니다.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기에 세례요한과 우리 주님이 한결같이 외치신 복음의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할/
누구든지 죄를 말하면 듣기 싫어합니다. 인간은 죄가 있으면서도 선천적으로 깨끗한 척합니다. 우리는 마음 속 깊은 곳까지도 말씀으로 깨끗이 씻어 정돈해야 합니다. 죄는 원어로는 '히말티어'로, '탈선'이라는 뜻입니다. '화살이 과녁을 맞히지 못함을 의미함'이요, 기차가 레일에서 탈선하면 전복하고 맙니다.
신, 구약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정도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제 멋대로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을 걷는 사람을 가리켜 탈선한 사람, 즉 죄 속에 사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죄의 표준은 무엇입니까?
①법률입니다. 법으로 정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이 죄요, 하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그것도 죄가 되는 것입니다.
②도덕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해야 함은 법으로는 없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불효하면 죄가 됩니다.
③양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판소입니다.
④종교적인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죄의 성질을 알아보겠습니다.
①죄는 전염병과 같습니다.
②죄는 자랍니다. 심지도 않은 가라지는 곡식보다 더 잘 자랍니다. <속담에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했습니다.
③죄는 무거운 짐과 같습니다. 시38;4절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④죄는 빚(채무)과 같습니다. 남의 돈은 밤만 지나면 이자가 붙듯이 죄는 죄를 낳는 속성이 있습니다.
⑤죄는 쇠사슬과 같습니다. 아무리 힘센 사람이라도 쇠사슬에 묶어 놓으면 꼼짝하지 못합니다(삼손을 기억하십니까?).
⑥죄는 자유와 기쁨과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그렇다면 왜 죄를 짓습니까? 그 이유는?
①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16:6절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요셉의 신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시며,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②죄 값을 단 번에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8:11절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즉시 형벌이 없다고 마음을 놓습니다. 노아의 홍수의 때를 보세요! 지금 당장 벌이 없음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요, 그러나 공의의 심판은 틀림이 없습니다.
▶죄의 결과를 보겠습니다.
①하나님의 은혜가 죽고, 기도와 찬양의 문이 닫힙니다.
②양심의 고통, 영혼의 고통이 따라옵니다.
③가장 무서운 것은 본문에서 말하는 멸망입니다.
▶사망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사람이 왜 죽느냐에 대하여 여러 가지 과학적인 설명이 있지만은 성경이 말하는 죽음의 원인은 죄 값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는 영생입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저서에서 "인간은 양자의 선택에서 시달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갈파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논리는 성경에 의존하여 "모든 인간은 사망과 영생이라는 양자택일의 문제 앞에 놓여있다"고_말하였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 여기서 말하는 사망은 단순한 육체적인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사망을 말합니다.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심히 사탄을 위해서 섬겼으면 사탄과 그 졸개들을 위해서 예비된 지옥 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유황이 타는 곳입니다. 영원히 불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에 최대의 고통이 무엇입니까? 지옥의 최대의 고통은 그 고통이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고통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일정 기간만 계속 된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옥의 고통은 영원합니다. 밤낮 없이 세세토록 그 고통을 당해야 한다고 할 때 얼마나 두렵고 떨립니까?
사망을 택한 사람은 죄에 종이 되어 죄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생을 택한 사람은 하나님의 의의 종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 육신을 의의 병기로 드리며 힘차게 천국을 향해 전진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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