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3663호 / 소금 언약(Covenant of Salt)은 은혜입니다.
창골산 메일은 카페 가입 하신분 중 수신에 동의 하신분 에게만 보내드리는 메일로 누구나 받아 볼수 있으며 일시에 매일 발송 됩니다. 수신을 원치 않으시면 카페 내정보에서 받지 않음으로수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 |||||||
홍종찬 목사 성경에 “소금 언약”(Covenant of Salt)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을 가리키는 것으로 다음 두 구절에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민18:19),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대하13:5) 그리고 레위기서에는 “언약의 소금”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2:13) 이런 구절들은 소금의 특성을 전제로 하나님의 언약의 불변성을 가리킵니다.
“소금”(ח���� 마라흐)은 음식을 조리할 때 사용하는 조미료로서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내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맛을 지속시키는 데 절대 필요한 생활필수품입니다. 즉 “방부제”, “불변성”, “영원함”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소금은 고대로부터 계약을 체결하고 그 체결한 계약을 확증할 때 계약 당사자들이 그것을 먹음으로써 계약의 지속성과 변개치 않을 것임을 표시했던 우정과 친교, 그리고 불변성의 상징물이었습니다.
“언약”(ית���� 베리트)이란 “자르다”라는 기본적인 뜻으로, “계약”, “연합”, “동맹”이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쪼갠 고기 조각들 사이로 함께 지나감으로 맺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할례”(מוּל 물)라는 단어도 “(표피를) 자르다”, “할례하다”, “파괴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증표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선택하다”, “깨끗하게 하다”, “명백히 하다”, “먹다(먹이다)”라는 뜻의 “바라”(ה����)라는 단어 역시 “언약”과 연결되었습니다. 이는 계약을 체결하는 자들은 누구든 간에 그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고기조각들처럼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언약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기쁘신 뜻대로 선택하여 깨끗하게 하시고 먹이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에, 하나님께서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이 진실되고 불변할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언약이 불변하다는 것은 그 언약의 체결자이면서 지킬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그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무한 책임을 지는 것으로 사망을 통고(通告)하는 것에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6:13-1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 언약을 지킬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심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자기 백성들이 그 언약을 믿고 바라되 감사와 기쁨 가운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소금 언약을 지키기 위해 제물에 소용되는 소금과 제단에 불을 지필 장작(長斫)을 공동 부담해서 성전 뜰 소금의 방에 항상 비치해 두었습니다. 에스라 시대에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궁중창고에서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스7:22)고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변치 않는 언약을 가리켜 “소금 언약”(민 18:19; 대하 13:5)이라 하신 까닭은 언약을 소금이 갖는 속성에 반영시켜 그 백성들에게 확증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제물에 소금을 치는 인간의 행위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언약에 대해 믿음과 감사를 나타내는 신앙 고백적 행위였습니다. 후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9:50)고 하심도, 이러한 “소금의 원리”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을 삼으신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4:6) 고 했습니다. 이는 소금이 끝까지 변치 않게 하는 방부제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매끼의 식사에 꼭 필요한 양념임을 가리킵니다. 소금은 음식을 조리할 때 재료들이 서로 어우러져 맛을 한층 더 고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둘 사이를 강하게 맺어주는 결속력, 또는 유대감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자기가 속한 교회공동체에서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
창골산 원고보내주실곳
글을 읽으신후 댓글은 사랑의 표현 입니다 | |||||||
'창골산☆칼럼; 설교원고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6049. 마음이 조급한 자 (0) | 2018.04.17 |
---|---|
[스크랩] 6053. 권위를 잘 못 사용하는 자 (0) | 2018.04.17 |
[스크랩] 창골산 칼럼 제3659호: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위에 세워졌습니다. / 홍종찬 목사 (0) | 2018.04.15 |
[스크랩] 창골산 칼럼 제3653호: 종려주일 단상(斷想) / 홍종찬 목사 (0) | 2018.04.15 |
[스크랩] 창골산 칼럼 제3647호: 경고등은 바로 수리하라는 메시지입니다. / 홍종찬 목사 (0) | 2018.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