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성장과 성숙의 목적(5)
다섯째로, 찬송과 감사를 받기 위함이다.
이사야서 43:21 말씀을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에베소서에서도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고 하나님이 우리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 목적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목적을 밝히고 있다.
시편을 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할렐루야!
그러면 어떤 이들은 꼭 영적으로 성숙하여야만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그렇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이는, 그리고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온전히 감사하고 찬양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감사와 찬양이 대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들로 인해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 주어졌을 때는 감사하고 찬양하나, 반대로 자신의 삶에 고난이 있으면 불평하고 원망을 일삼게 된다.
사실 불평과 원망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범죄인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고통받게 된 대개의 이유가 바로 불평과 원망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투덜거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요, 하나님이 선하시지 않다는 항의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성장을 이루면 자신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에 다만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할까 하고 묻는 자가 되고, 오히려 자신을 위하여 구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불평이 멈추고 감사와 찬양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영적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선하심 속에서, 그의 뜻 안에서 문제와 사건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게 되기 때문에 불평과 원망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 그도 몇 가지 하나님을 향한 불평에 가득 찬 질문을 하였으나,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을 발견하고 그 뜻을 깨닫게 되자 오직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할 수 있지 않았는가.
종종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지 못하고 그 삶을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그들은 오직 만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야 하며, 그것만이 인생에게 가장 유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가지고 여전히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녀들을 양육할 때에 일생을 다루지 결코 현재를 다루지 않는 것처럼(어떤 부모들은 당장 눈 앞의 현실만 다루다가 아이를 바르게 양육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즉, 지금 당장 일등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지금 당장 사랑하는 일에만 분주하여 아이를 잘못 양육하는 경우들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영원 속에서 양육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의 경륜을, 사랑을, 선하심을 발견하지 못하고서는 결코 범사에 감사할 수도 없고 찬양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고 말씀하였다. 얼마나 중한 말씀인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가 하시는 일에 기뻐하지 못하고, 범사에 감사하지 못함으로써 찬송 생활에 실패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육신에 있고, 예수 안에 있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계속해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고 기도하였다. 사랑하는 이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성장하기를 힘쓰지 않겠는가.
여섯째로,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게 하기 위함이다.
성경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3~15)고 말씀하였다.
우리는 어떠한 존재가 되지아니하면 그 어떠한 일을 할 수가 없음을 알아야한다. 즉,어린아이는 어린아이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린아이의 일을 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고전 13:11).
그리스도인이 성숙하지 않고서 자기의 몸의 행실을 고치려고 해도 그것은 고작 그의 영적인 분량 안에서만 가능하다. 성숙해야 비로소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몸의 행실을, 즉 외모를 고치려고 하기 보다 내적인 변화를 소원하여 날마다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고자 하는 것이다.
특별히 영의 혼돈이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거짓 영에게 속아서 이리 저리 흔들리며 헛된 풍조에 밀려다니고 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사탄은 오늘도 교회 속에 숨어 들어와 마치 믿음의 목적이 세상과 세상의 것들에 있는 것처럼 현혹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진리 안에 있지 않고 기적과 이적에 있는 것처럼 속여서 언제까지 그리스도인들을 어린 아이의 자리에 머무르게 해서 하나님 앞에 무익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고 진리를 행치 못하게 만들고 있다(살후 2:8~12).
이처럼 분별하지 못하고 기적과 이적을 추구하고, 받을 복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없다. 군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의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믿은 연수가 오래 되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통해서 얻는 자신의 유익에나 관심이 있지 주의 고난에 참예하여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도 사탄은 기적과 이적을 통해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보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그에게 쓰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일에는 관심을 버린 사람들이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행복과 기쁨을 하나님을 위하여 반납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성숙하여, 보이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보이지 않은 것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이며, 이생에서 받을 보상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상급을 목적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는 어린아이의 일에 빠져들지 않기 위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허상에 목숨을 건다. 소꿉놀이는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그것은 아무리 열중해도 결국 해가 지면 손을 털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소꿉놀이가 마치 삶인 것처럼 그것에 몰두하여 해가 지는 지도 모르고 빠져든다.
그처럼 결국 육신의 날들은 허상인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은 이것을 인생으로 알고 육신에 몰두한다. 오호... 해가 지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에 허상임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그러므로 다시금 말하거니와 어서 속히 그리스도의 장성함에 이르러 다시는 어린아이가 받는 유혹에 빠져들지 않도록 영적인 성숙에 힘쓸 일이다.
할렐루야!
***여기까지해서 "영적성장과 성숙의 목적" 을 마침니다.
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
다섯째로, 찬송과 감사를 받기 위함이다.
이사야서 43:21 말씀을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에베소서에서도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고 하나님이 우리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 목적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목적을 밝히고 있다.
시편을 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할렐루야!
그러면 어떤 이들은 꼭 영적으로 성숙하여야만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그렇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이는, 그리고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온전히 감사하고 찬양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감사와 찬양이 대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들로 인해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 주어졌을 때는 감사하고 찬양하나, 반대로 자신의 삶에 고난이 있으면 불평하고 원망을 일삼게 된다.
사실 불평과 원망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범죄인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고통받게 된 대개의 이유가 바로 불평과 원망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투덜거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요, 하나님이 선하시지 않다는 항의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성장을 이루면 자신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에 다만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할까 하고 묻는 자가 되고, 오히려 자신을 위하여 구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불평이 멈추고 감사와 찬양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영적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선하심 속에서, 그의 뜻 안에서 문제와 사건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게 되기 때문에 불평과 원망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 그도 몇 가지 하나님을 향한 불평에 가득 찬 질문을 하였으나,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을 발견하고 그 뜻을 깨닫게 되자 오직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할 수 있지 않았는가.
종종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지 못하고 그 삶을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그들은 오직 만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야 하며, 그것만이 인생에게 가장 유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가지고 여전히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녀들을 양육할 때에 일생을 다루지 결코 현재를 다루지 않는 것처럼(어떤 부모들은 당장 눈 앞의 현실만 다루다가 아이를 바르게 양육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즉, 지금 당장 일등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지금 당장 사랑하는 일에만 분주하여 아이를 잘못 양육하는 경우들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영원 속에서 양육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의 경륜을, 사랑을, 선하심을 발견하지 못하고서는 결코 범사에 감사할 수도 없고 찬양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고 말씀하였다. 얼마나 중한 말씀인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가 하시는 일에 기뻐하지 못하고, 범사에 감사하지 못함으로써 찬송 생활에 실패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육신에 있고, 예수 안에 있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계속해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고 기도하였다. 사랑하는 이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성장하기를 힘쓰지 않겠는가.
여섯째로,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게 하기 위함이다.
성경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3~15)고 말씀하였다.
우리는 어떠한 존재가 되지아니하면 그 어떠한 일을 할 수가 없음을 알아야한다. 즉,어린아이는 어린아이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린아이의 일을 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고전 13:11).
그리스도인이 성숙하지 않고서 자기의 몸의 행실을 고치려고 해도 그것은 고작 그의 영적인 분량 안에서만 가능하다. 성숙해야 비로소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몸의 행실을, 즉 외모를 고치려고 하기 보다 내적인 변화를 소원하여 날마다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고자 하는 것이다.
특별히 영의 혼돈이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거짓 영에게 속아서 이리 저리 흔들리며 헛된 풍조에 밀려다니고 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사탄은 오늘도 교회 속에 숨어 들어와 마치 믿음의 목적이 세상과 세상의 것들에 있는 것처럼 현혹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진리 안에 있지 않고 기적과 이적에 있는 것처럼 속여서 언제까지 그리스도인들을 어린 아이의 자리에 머무르게 해서 하나님 앞에 무익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고 진리를 행치 못하게 만들고 있다(살후 2:8~12).
이처럼 분별하지 못하고 기적과 이적을 추구하고, 받을 복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없다. 군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의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믿은 연수가 오래 되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통해서 얻는 자신의 유익에나 관심이 있지 주의 고난에 참예하여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도 사탄은 기적과 이적을 통해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보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그에게 쓰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일에는 관심을 버린 사람들이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행복과 기쁨을 하나님을 위하여 반납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성숙하여, 보이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보이지 않은 것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이며, 이생에서 받을 보상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상급을 목적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는 어린아이의 일에 빠져들지 않기 위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허상에 목숨을 건다. 소꿉놀이는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그것은 아무리 열중해도 결국 해가 지면 손을 털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소꿉놀이가 마치 삶인 것처럼 그것에 몰두하여 해가 지는 지도 모르고 빠져든다.
그처럼 결국 육신의 날들은 허상인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은 이것을 인생으로 알고 육신에 몰두한다. 오호... 해가 지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에 허상임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그러므로 다시금 말하거니와 어서 속히 그리스도의 장성함에 이르러 다시는 어린아이가 받는 유혹에 빠져들지 않도록 영적인 성숙에 힘쓸 일이다.
할렐루야!
***여기까지해서 "영적성장과 성숙의 목적" 을 마침니다.
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paul555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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