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5일은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칼 마르크스가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818년에 태어나 66세였던 1883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금년은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135년이 되는 해입니다. 마르크스가 태어난 1818년은 다산 정약용이 18년째 강진에서 귀양살이 하던 해였고, 그해는 바로 다산의 대표적인 저서 『목민심서』가 탈고된 해이기도 합니다. 그해 다산은 57세의 중늙은이였고, 또 그해 가을에 다산은 18년의 귀양살이를 마치고 간절하게 그리워하던 고향으로 해배되어 가족들과 재결합이 이루어지던 해였습니다.
마르크스는 다산이 태어난 해보다 56년 뒤에 태어났고, 다산이 생을 마친 1836년보다 47년 뒤인 1883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르크스의 대표적인 저서인 『자본론』은 마르크스가 50세인 1867년에 그 첫 권이 탈고되었으니, 다산이 세상을 떠난 31년째에 해당됩니다. 다산과 마르크스의 소통은 불가능했습니다. 지역과 시대의 차이가 크고 사회적 여건이 다른 곳에서 살았지만, 두 사람 모두 큰 학자였고 저술가였음은 많은 닮은 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다산은 정치·경제·법률·철학·역사·지리·과학·의학·문학 등 다방면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방대한 저술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지만, 마르크스 또한 경제학·정치학·철학·사회학·역사 등 다방면에 엄청난 저술을 남긴 것 또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목민심서』의 저술 200주년에 마르크스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 두 학자들의 학문과 꿈이 오늘의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가를 살피는 일은 약간의 흥미로운 일일 것 같습니다. 주자(朱子)의 성리학(性理學) 이론인 관념론에서 벗어날 ‘민중적 경학’(정인보 주장)인 경학체계를 새롭게 설계하고 토지의 사유화를 반대하고 농민들의 공동경작과 공동분배를 주장했던 다산의 「전론(田論)」사상을 생각해 봅니다. 헤겔의 관념론에서 벗어날 사상체계를 수립하고, 사유재산제를 폐지하고 생산시설의 국유화를 목표로 저작된 『자본론』의 큰 줄거리를 생각해 봅니다.
다산의 「전론」은 실행하기 어려운 공상적 논리라는 비판을 받았고,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뜻으로 저작된 『자본론』도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결할 완벽한 처방전이 되지 못했다는 비판도 유효한 주장임에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고귀한 인민애와 인류구제의 절절한 마음까지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빈부의 양극화에 가슴 졸이고, 사회적 약자들의 슬픔과 비애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가난과 탄압의 굴레에서 그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뜨거운 그들의 눈물까지를 무조건 닦아버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무거운 노동에 시달려도 끝내는 세금으로 착취당해, 자신의 생식기를 잘라야 했던 농민의 아픔을 목민심서에 실려 있는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로 읊었던 다산의 마음, 노동만이 인류 발전의 근거라고 여기며 노동의 가치를 그렇게도 극대화했던 마르크스의 마음만은 우리 인류가 잊지 말아야 할 영원한 지혜가 아닐까요. 신자유주의 논리나 천민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나 다산이나 마르크스가 주장한 논리를 자본주의의 논리에 가미하여, 양극화도 막고, 사회적 약자들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목민심서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즈음한 필부의 애원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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