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 책과 생각; 건강

미국 현대소설의 아이콘 필립 로스 별세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5. 25. 17:24

미국 현대소설의 아이콘 필립 로스 별세

등록 :2018-05-23 14:25수정 :2018-05-24 11:35

 

향년 85…당대 4대 미국 작가로 꼽혀
1959년 데뷔 퓰리처 등 문학상 휩쓸어
‘미국의 목가’ 등 3부작 시리즈 찬사


22일 별세한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필립 로스.  한겨레 자료사진
22일 별세한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필립 로스. 한겨레 자료사진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필립 로스, <에브리맨>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필립 로스가 22일(현지시각) 세상을 떴다. 향년 85.

필립 로스는 미국 작가 가운데 가장 상을 많이 받은 이로 꼽힌다. 1959년 등단작인 단편집 <굿바이, 콜럼버스>로 이듬해 전미도서상을 받은 그는 1998년 대표작 <미국의 목가>로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2002년에는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 최고 권위 상인 골드메달도 거머쥐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로스는 전미도서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을 각각 두번, 펜/포크너상을 유일하게 세번 수상했으며, 펜/나보코프상, 펜/솔 벨로상 등 미국 내 문학상을 휩쓸었다. 2001년 제정된 프란츠 카프카상의 첫회 수상자도 그였고 2011년에는 한강의 수상으로 잘 알려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생존 작가 중에서는 최초로 미국 문학의 고전을 펴내는 비영리 출판사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에서 완전 결정판(전9권)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저명한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 코맥 매카시와 함께 로스를 현존하는 4대 미국 소설가로 꼽은 바 있다.

이렇듯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필립 로스지만, 노벨문학상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토니 모리슨(1993년) 이후 미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그 후보는 필립 로스가 되리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었지만, 엉뚱하게도(?)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2016년 수상자가 됨으로써 미국 문단을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다.

필립 로스는 1933년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로스의 소설 대부분은 뉴어크를 배경으로 삼으며 자전적 요소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초기 소설에서는 미국 유대인 사회의 전통과 관습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욕망을 추구하는 젊은이의 투쟁을 즐겨 다루었으며, 중기 이후에는 네이선 주커먼이라는 소설가를 등장시켜 미국 현대사가 개인의 삶에 투영된 양상을 파고들었다.

1969년작인 <포트노이의 불평>은 그를 단숨에 미국 문단과 사회의 앙팡 테리블(악동) 자리에 올려놓았다. 서른 중반 엘리트 변호사가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의 불행한 삶을 토로하는 얼개로, 주인공 소년은 엄격한 유대교 규율과 결벽증에 가까운 청결이 지배하는 집안 분위기에 반항하고자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소녀들을 쫓아다니는가 하면 자위행위에 지나치게 빠져든 나머지 결국 정신과 상담을 받는 처지가 된다. 사춘기 소년의 자위행위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비속어 때문에 이 책은 일부 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어빙 하우 같은 저명 비평가의 신랄한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97년작인 <미국의 목가>는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 <휴먼 스테인>(2000)으로 이어지는 ‘미국 3부작’의 출발작으로 1960년대 말 미국 사회의 혼돈상을 그린다. 아버지의 장갑 공장을 물려받은 유대계 미국인 스위드 레보브는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고 꿈에 그리던 전원주택을 마련하는 등 ‘아메리칸 드림’을 완성한 듯 보였지만, 딸 메리가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며 폭탄 테러를 일으키는 바람에 꿈은 산산조각이 나며 그의 삶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 몰락한 거구의 주인공 아이라 린골드를 등장시킨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정치적 올바름과 르윈스키 스캔들로 떠들썩했던 1990년대를 배경 삼아 “공공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형성하고 망가뜨리는지 보여주는”(<뉴욕타임스>) <휴먼 스테인> 등에서 로스는 개인 삶과 미국 현대사의 결합 양상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그 이후로도 <에브리맨> <전락> <네메시스> 등을 꾸준히 내던 로스는 2012년 인터뷰에서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로스는 2009년에 한 인터뷰에서 문학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앞으로 25년 뒤에는 소설 읽기가 “컬트적” 행위가 될 것이며 종이책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는 전자책 역시 영화나 텔레비전, 컴퓨터 스크린과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주로 전문 번역가 정영목의 번역으로 로스의 주요작 상당수가 번역출간되어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845853.html?_fr=dable#csidx9f69ab37671d2c68947d19e0a02fcc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