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봉서방(제11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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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지원교회
글을 읽으신후 댓글은 사랑의 표현 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 우리가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김홍진 목사는 다음과 같이 강설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밷전5:7)말씀대로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보살펴 주십니다. 자식으로 친히 돌아보사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시고, 기르시고,위험한 데가 있으면 당신의 품애 품어 주시고, 가기 어려운 곳이 있을 때에 나를 안고 가시고,내 걸음이 피곤할 때에는 힘 주셔서 피곤치 않게 하시고 또한 그 품 안에 평안히 쉬게 하시고 내가 혹은 잘못 가운데 빠져서 마음이 괴롭고 암담할 때에는 나에게 빛을 주시고 위로를 주시며 그 가운데서 건져 내시고,교훈을 또한 받고 깨달아 알게 하시고 우리가 큰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떼때로 마음에 두려움을 주시고경고를 하시며 빛을 비춰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보호하는 목적은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플라벨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습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천사들에게까지 우리들의 몸을 보호허고 섬기라는 임무를 맡기셨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을 위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롬12:1) 하나님은 현세에서 우리에개 많은 은혜를 베푸시고 (시35:10) 내세의 영광과 행복에 참여하게 하신다.(빌3:21)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우리를 기꺼이 바치는 것 외에 다른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그토록 정성스레 우리의 몸을 보호하실 이유가 무엇이 겠는가?/자료ⓒ창골산 봉서방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없애 주겠다고 약속하시지 않는다. 문제를 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꿔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사도 바울이 열거한 쓰레기자루를 보라. 환난,곤고, 핍박,기근,적신,위험,칼, 정말 우리가 비켜가기 원하는 문제의 덤프트럭들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문제의 가치를 인정한다. "이 보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37) 우리라면 "이 모든 일에"대신 "이 모든 일 없이"를 더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일에"라고 말한다. 해답은 문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꾸는 대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시력을 교정해 주실 수 있다. 그분은 물으신다. "누가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엿느뇨?"그리고 답하신다. "나 여호와가 아니뇨" 하나님은 발람으로 천사를 보게 하셨고,앨리사로 군대를 보게 하셨고, 야곱으로 사다리를 보게 하셨고, 사울로 구주를 보게 하셨다. "선생님이여,보기를 원하나이다"(마10:51) 많은 사람이 소경의 간구를 올렸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분명한 시력을 얻어 돌아갔다. 하나님이 당신에게도 똑같은 일을 해주시지 않으리라고 누가 말할 수 있갰는가?/자료ⓒ창골산 봉서방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치 아니하리라. (왕상 6:13)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주님이 가까이 계시기에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일부가 아니라 모든 것!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실직 앞에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부부관계의 균열 앞에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빚더미 앞에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주님이 우리와 함깨 계신다.
마음에 깊이 새기라.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가족이 다 등을 돌려도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신다. 친구들이 다 배신해도 하나님은 한결같으시다. 광야에 홀로 서 있자니 외로움이 사무쳐오는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주님이 함께 계신다./자료ⓒ창골산 봉서방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
그분은 그저 그런 메시아가 아니다. 그분의 이야기는 실로 범상치 않다. 그분은 스스로 신이라고 하셨지만 최저 임금이나 받는 로마 병사가 자신의 손목에 못을 박도록 허락하셨다. 그분은 순결을 요구하셨지만 회개하는 창녀의 편에 서셨다. 그분은 행진하라 하셨지만 자신을 왕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셨다. 그분은 사람들을 세상 만방으로 보내셨지만 그저 겸손히 꿇은 무릎과 부활한 목수의 기억으로만 그들을 무장시키셨다. 그분을 뵌지 한참 지났는가? 기도가 시들시들하다면 그런 것이다. 믿음이 흐들린다면 그분을 보는 눈이 흐려진 탓이다. 문제를 뚫고 나갈 힘이 솟지 않으면 어서 그분을 만나라는 신호다. 조심하라.만왕의 왕을 직접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분을 살짝 쳐다보기만 해도 그분을 더 보고 싶고 그분을 만방으로 전하고픈 갈망으로 가슴이 쯔거워진다.
맥스 루케이도 글 '감사'에서/자료ⓒ창골산 봉서방
예수님은 현재 시제
(히13:8)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요10:3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11:25) "내가 곧 길이요 생명이니"(요 14:6) "나는 참 포도나무요"(요15:1) 예수님은 현재 시제다.그분의 사전에 "__ 였다"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__였다"다.우리는 빨랐고 예뻤다. 우리는 늘 과거로 돌아가 추억에 잠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흔들리지 않는 힘의 근원이신 그분께는 "__였다"라는 단어가 필요 없다. 예수님은 폭풍우 한거운데서 흔들리지 않고 현재 시제로 외치신다. "나다"거대한 세계무역샌터의 붕괴 속에서도 당당하게, 가릴리 바다의 파도를 맞으면서도 대담하게,격리된 치료실이나,전쟁터, 이사회 회의실,감옥,분만실 등 그 어떤 폭풍이 당신에게 몰려와도 그분은 늘 한결같이 당신 옆에 계신다.
맥스 루케리도 지음 ,감사,에서/자료ⓒ창골산 봉서방
다른 모든 종교는 중대한 질문에 대힌 대답이 '여기'있다고 말하지만, 기독교는 '예수'가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말한다.
모든 종교는 그 종교만의 독특한 주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주장은 특별히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 주장이 진리인 경우 우리는 그에게 무릎을 꿇는 것 외에 도무지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필 수치와 명예 중심의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미혼의 십대 소녀의 아이로 이 세상에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기? 꼭 그렇세까지 하실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름의 방식이 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세상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오히려 완전히 반대다. 나의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해진다. 나의 구원자 겸 왕자는 왕궁의 요람이 어니라 마구간의 구유에서, 권세 있고 유명한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초라하고 볼품 없는 촌 사람들에게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아것은 모든 패턴의 일부분이다. 예수는 약함 고난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구원할 것아기 때문이다. 그는 희생적인 섬김을 통해 힘과 영향력을 획득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예수를 네 삶 안에 모시면, 대충 같은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구원은 이렇게 아루어진다. 고난은 영광으로 인도하고,죽음은 부활로 인도하니까. 그러니 두려워하시 말라. 예수 그리스도를 너의 삶에 받아들여라. 내가 너의 영광이 돨 것이다. 세상이 뭐라고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티머시 켈러 지음 '예수를 만나다'에서/자료ⓒ창골산 봉서방
기도의 삶에의 부름은 곧 상처와 필요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면서 이 세상 한복판에 살라는 부름이다. '기도'라는 말은 폭력과 전쟁을 낳는 조건젹 의존의 악순환을 과감히 끊는다는 뜻이요,전혀 새로운 거처로 들어선다는 뜻이다. 가도하면 대화방식과 공존방식과 학습방식이 달라진다. 그렇다. 기도란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기도에 수반되는 이런 근본적 변화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많은 이들에게 '기도'라는 말이 경건한 행위,하나님께 말하는 것,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아침과 저녁의 습관,주일 예배,식사기도,성경구절, 기타 많은 것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기도와 상관이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기도는.......무엇보다 펑화를 미워하는 자들의 거처를 떠나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다. 기도야말로 꼭 필요한 것 한 가지다.(눅10:42) 기도란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다.
'헨리 나우웬'의 글 '기도의 삶'에서/자료ⓒ창골산 봉서방
하나님께 구하면 된다. 그러면 그분이 우리의 섬김을 필요로 하는 곳을 보여 주신다. 그런 곳은 사방에 널려 있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달리 말해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가끔씩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매일같이 하는 일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이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기 부인을 통해 온 세상 속으로 그분의 나라를 확장시키신다. 이것은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이다. 한 차레의 죽음으로는 부족하다. 부분적인 죽음도 안된다. 매일같이 완전히 죽어야 한다. 그렇게 나의 끝에 이를 때 마다 내가 내내 갈망해 마지않던 것,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되고도 풍성한 삶을 찾게 된다. 나의 끝, 예수의 시작 ('카일 아이들먼' 지믐)에서/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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