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3694호 / 네 부모를 공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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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찬 목사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이 말씀은 십계명 가운데 제5계명으로서 대인(對人) 계명 중 가장 으뜸이 되는 “약속 있는 첫 계명”(엡 6:2)입니다. 성경에 부모 공경에 대한 교훈들이 많이 나오지만 모두 이 말씀을 근거로 확대되고 재생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공경하라”는 말은 히브리어 “카베드”(דבּכּ)로서 기본 뜻은 “무겁다”로, “존경하다”, “영광되게 하다”란 뜻인 “카바드(ד����)”의 명령형입니다. 곧 부모님(상대방)을 무게 있게 대우하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습니다(잠3:9). 따라서 이 말씀은 부모를 공경하되 마치 하나님을 경외하듯 섬겨야 됨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Luther)는 본절에 언급된 “부모”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이해했습니다. 이는 부모에 의해 자녀의 육체가 조성되어 하나님의 생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부모”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성경은 종종 웃어른이나 스승을 “아버지”로 호칭하고 있습니다(왕하2:12;13:14). 그렇다면 “부모”라는 말은 단순히 친 부모만이 아닌, 웃어른이나 스승들까지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네게 준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신 언약의 땅, “가나안”을 가리킵니다(창12:7).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다”에 해당하는 “나탄”(ן����)은 현재 진행형으로, 하나님께서 “지금(只今)”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준(주다)”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을 이미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전제(前提)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필히 그 언약을 이루실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아직 시내 산 앞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이미 그 땅을 차지한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서 장수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 또한 대대로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신5:16절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복을 누리리라”가 중요합니다. 이미 약속된 장수(長壽)의 복뿐만 아니라 유복(有福)한 삶, 즉 생업의 복까지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장수의 복을 받았을지라도 그 삶이 늘 궁핍하고 병들어 골골하며 산다면 오히려 장수 자체가 저주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주어진 이 약속, 생업의 복은 매우 적절하고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복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장차 하늘나라에서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복을 물질적인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신자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잠언 기자는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용된 용어나 표현 등을 미루어볼 때 부모 공경(경외)을 가르치는 제 5계명에 관한 교훈임에 틀림없습니다(출20:12). 여기에서 “즐겁게 하며 기쁘게 하라”는 말씀을 좀 더 살펴보면, “즐겁게”(ח���� 싸마흐)라는 말의 기본 의미는 “쾌활하게 하다”로서, “기쁘게 하다”, “즐겁게 하다”, “유쾌하게 하다”이며, “기쁘게”(יל�� 길)라는 말의 기본 의미는 “맴돌다”로서,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굽실거리며) 두려워하다”입니다. 그러면 부모를 즐겁고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 주변을 굽실거리며 맴도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 드리고 안부(安否), 즉 편안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늘 챙겨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말할 것도 없고 고대 근동에서 부모 공경은 가장 중요한 의무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의 자식에 대한 자부심은 오늘날보다 훨씬 컸는데 그 까닭은 한 사람의 생명은 그 자녀의 생명을 통해 지속된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에 대한 공경의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 교훈과 지혜, 통찰력을 구비하는 일입니다.
신자는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3:20)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순종하라”와 “주 안에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먼저 “순종하라”(ὑπακούω 휘파쿠오)는 말은 “아래에서 듣다”, “주의 깊게 듣다”, 명령이나 권위에 “유의하다”, “따르다”는 의미로서, 웃어른들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듣고 따른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ἐν κύριος in the Lord)는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할 때 주께 순종하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함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부모는 이교도 부모가 아니라 그리스도인 부모를 전제합니다. 그리고 원문에는 “이것이 옳으니라”는 말 앞에 “왜냐하면”(γάρ 가르)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왜냐하면”은 이유와 원인을 나타내는 접속사로서 자녀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그 일이 “옳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순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륜(人倫)으로 받아들여지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순종은 그리스도인 자녀에게 있어서 마땅한 일입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순종치 않는 자를 엄히 정죄합니다. 잠언 기자는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잠30:11)고 했는데, 직역하면 “그들의 아비를 저주하고 그들의 어미를 축복하지 않는 세대이니라”가 됩니다. 이는 그 당시 세태가 부모를 경솔히 대하고, 존경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모욕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어떻게 하시는가?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를 경멸한 자식이 맞을 운명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경멸은 먼저 눈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그 눈이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까마귀”나 “독수리”를 통해 불효하는 자식은 아무도 없는 황량한 곳에서 무덤도 없이 죽고 말 것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신27:16)라고 했습니다. “경홀히 여기는”(ה���� 칼라)이란 말의 원뜻은 “가볍다”로서, 여기에서 “업신여기다”, “경멸하다”, “모욕하다”, “낮게 평가하다”, “가볍게 보다”, “천하게 보다”라는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이는 상대방을 업신여기거나 비천하게 여기고(잠 12:9), 평가절하(平價切下)하거나 모독을 주며(사 16:14), 지독히 경멸하는 것 따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부모를 이처럼 가볍게 생각하여 업신여기는 것은 자신의 근본(根本)을 망각한 행동일 뿐 아니라, 급기야는 부모를 통해 그 생명을 부여하신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입니다(21:18). 그리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רוּאר아루르)는 기본형은 “아라르”(ר��אָ)로서 “버림을 받다”란 뜻입니다. 칼빈(Calvin)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다면, 버림을 받는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자신임을 잘 증거해 준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은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15:6)고 했습니다. 여기서 “공경할 것”이란 “티마오”(τιμάω)로서 “높이 평가하다”, “가치를 두다”, “존경하다”, “공경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폐하는도다”(ἠκυρώσατε 에퀴로사테)는 말은 “무효로 하다”, “취소하다”, 나아가 “권리를 빼앗다”라는 의미의 법률 용어로서 어떤 명령이나 유언을 취소 또는 무효화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마15:3절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에서 “범하느냐”(παραβαίνω 파라바이노 - 반대하다, 명령을 거스르다, 범죄하다)라는 말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강렬한 범죄를 일컫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조상의 유전을 절대시하는 것은 소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나는 일이며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원뜻을 말살시키는 악행이 됩니다.
롬 1:30절은 “부모를 거역하는 자”를 언급했으며, 딤후3:2절은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는 자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감사”는 모든 덕의 기초입니다(눅 6:35). 그런데 문제는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부모에게 감사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감사하지 않고(롬1:21), 의도적으로 거역하며 대적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부모를 거역한다”는 것은 애정과 의리(義理)를 기본으로 하는 가정윤리가 땅에 떨어졌음을 가리킵니다. 바울 사도는 신의(信義)를 져버리는 자를 “부모를 거역하는 자”라고 표현하여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불효자는 재판을 받게 하고 돌로 쳐 죽이도록 했습니다(신 21:18-21).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고 정의함으로써 신약시대에도 불효가 여전히 큰 죄악인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고 권면했습니다. 특히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은 남편에게 “복종하라”(골3:18)는 말과 다릅니다. “복종하라”는 말은 통솔(統率)에 종속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순종하라”는 말은 교훈에 청종(聽從)함을 가리킵니다. 바울 사도는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는 말씀을 통해 효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 안에서”라는 말씀입니다. 신자들의 도덕 표준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일은 “주 안에서” 해야 합니다. 따라서 “주 안에서”를 “주님에게”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기독신자는 세상 안목(眼目)에 맞춰 사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부합하도록 행해야 합니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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