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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번역 ‘그리스인 조르바’ 만나보실래요?”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6. 1. 16:25

원전 번역 ‘그리스인 조르바’ 만나보실래요?”

등록 :2018-05-31 19:47수정 :2018-05-31 20:07

 

유재원 교수, 72년만에 그리스어 번역
“이윤기 형이 번역하지 말라고 했지만…”
지금은 최초의 그리스어사전 작업중


<그리스인 조르바> 원작 출간 72년 만에 처음으로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 출간한 유재원 한국외대 명예교수. “번역과는 담 쌓고 살려 했는데, 원본이 궁금하다는 이들의 성화 때문에 번역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그리스인 조르바> 원작 출간 72년 만에 처음으로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 출간한 유재원 한국외대 명예교수. “번역과는 담 쌓고 살려 했는데, 원본이 궁금하다는 이들의 성화 때문에 번역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음, 유재원 옮김/문학과지성사·1만3000원


“<그리스인 조르바>는 교과서에도 많이 실릴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또 작가 카잔자키스의 어휘력이 뛰어나서 소설 무대인 크레타 방언을 비롯해 사전에서도 찾기 힘든 말들이 즐비합니다. 그리스 언어학을 전공한 저조차도 뜻을 확정하는 데 애를 먹을 정도이지요. 영어를 거친 중역으로는 원문의 맛을 제대로 살리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명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의 첫 그리스어 원전 번역을 내놓은 유재원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지난 29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46년 그리스어로 발표된 <그리스인 조르바>는 1975년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1981년 이윤기 번역본이 가장 널리 읽혔다. 그러나 이 책들은 영역본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었고, 저본에 해당하는 영역본은 다시 프랑스어 번역본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1980년대 초 이윤기 형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제게 준 명함에 ‘<희랍인 조르바> 번역가’라고 되어 있더군요. 이 책 번역에 대한 자부심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죠. 1999년에는 크레타 섬의 카잔자키스 무덤을 함께 참배했습니다. 저한테, ‘<그리스인 조르바> 번역하면 절대 안 돼!’라고 농담 삼아 말하기도 했지요. 이윤기 형 번역본은 말맛이 있어서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윤기 역 <그리스인 조르바>는 2000년 열린책들로 출판사를 옮겨 낸 개정판만도 40만부가 팔렸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과 함께 번역가 이윤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유 교수가 새롭게 번역하기로 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윤기 형의 번역을 통해 이 소설이 널리 알려진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이제는 정확하게 알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영역본에서는 조르바와 ‘나’가 처음 만날 때 ‘나’가 ‘셀비어 술’을 마시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세이지 차’를 마신 것입니다. 이성적이어서 술에 취하는 걸 피하는 ‘나’와 초면에 대뜸 럼주를 시키는 조르바의 성격 차이가 드러나지 않게 된 것이죠.”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소설 도입부의 이런 치명적인 결함을 비롯해 기존 영역본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2014년에 새 영역본을 내놓은 피터 빈은 “어떤 경우 몇 문장씩 누락이 되어 있는가 하면 분명한 오역도 눈에 많이 띄고, 그리스어 원작에는 있지도 않은 내용들이 버젓이 나타나곤 한다”고 기존 영역본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윤기의 한국어 번역본이 그 문제를 피해 가기는 불가능했다.

피터 빈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아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가 번역한 <그리스인 조르바>가 지난 2월 민음사에서 출간된 것도 흥미롭다. 열성 독자라면 두 책을 비교해가며 읽어보아도 좋겠다. 유재원 번역본에서 ‘프롤로그’라는 이름으로 맨 앞에 배치된 장이 김욱동 본에서는 ‘작가의 말’로서 말미에 놓인 차이가 우선 눈에 뜨인다.

이윤기 본은 물론 김욱동 본 역시 작가 이름을 ‘카잔차키스’로 표기한 데 비해 유재원 교수는 그것이 “명백한 잘못”이라며 ‘카잔자키스’로 바로잡았다. 그는 카잔자키스의 또 다른 대표작 <영혼의 자서전> 한국어판 역시 “원본을 못 살렸다”는 판단에 따라 직접 번역하기로 했다. 그리스어 전문가인데다 카잔자키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정교회 신자이고 그리스 전역의 카잔자키스 발자취를 두루 답사한 경험 등이 두 책 번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자부한다.

그러나 <영혼의 자서전> 번역은 좀 더 시급한 다른 일에 밀려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그는 지금 한 인터넷 포털의 의뢰로 첫 그리스어-한국어 사전 편찬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안에 기초 어휘 4~5천 정도의 표제어를 정리하고, 내년까지 표제어를 1만5천개로 늘리며, 최종적으로는 15만개 어휘를 올린다는 계획이다. “한 낱말에 많게는 180개 뜻풀이가 달리기도 해서 전체 뜻 갈래는 50만개 정도가 될 것”이라고 유 교수는 밝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47214.html?_fr=mt0#csidxddf2dd4962fa782a7241b020325806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