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기간 동안만 사는 제한적 존재들이다. 누구는 조금 짧게 살고 누구는 조금 길게 살 뿐이지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 안에서 유한한 생을 사는 존재들인 것이다.
과학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46억년 전에 우주 폭발로 지구가 태어났고, 35억년 전에 지구에 처음으로 생명체가 생겨났고, 4억전에 지구에 동물이 살기 시작했고, 230만년 전에 인류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사 이래로 수많은 왕이 있었고 부귀영화를 누렸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 사람들 중에 100년을 넘겨 산 사람이 어디 한 사람이라도 있었던가. 왕이 되었든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이 되었든 인류 역사 230만년에 비하면 조그만 먼지 같은 존재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짧은 세월을 살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며칠 전에 친구 한 명이 찾아와서 요즘 돈 때문에 많은 고민이 많다면서 죽겠다며 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누구보다도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친구인데 돈 때문에 고민하고 돈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물었다.
“돈이 얼마나 더 필요한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은데…”
“그럼 네가 돌산에 사둔 땅을 팔면 되겠네?”
“그것은 안 돼!”
“왜?”
“그 땅은 앞으로 2년만 더 갖고 있으면 지금보다 배는 더 받을 수 있으니까.”
사람 욕심이란 것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재산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 명예나 지위도 마찬가지다. 지금 권세를 누리고 있는 사람을 붙잡고 “지금 정도의 권세면 만족하냐?”고 물어보면 그 사람들 대부분도 “조금만 더!”를 외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지금 내 위치나 처지에 관계없이 늘 조금 더 필요하다는 갈망을 갖고 산다. 그러나 그 ‘조금만 더!’ 하는 생각이 집착으로 변질 될 때, 우리는 그 순간부터 가난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고 아무리 직위가 높아도 내 마음 안에 ‘조금만 더’라는 생각이 강해지면 우리는 늘 그것에 매여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사는 것이다.
얼마 전에 공사장에서 날일을 하는 친구가 이에 대한 가르침을 내게 주었다. 이 친구만 날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친구의 아내도 공사장에서 날일을 한다. 친구는 공사장에서 짐통을 메고, 아내는 공사장의 청소 일을 한다.
그러면서 이 부부는 일터에서 마주치면 서로를 보며 웃는다고 했다. 아내는 열심히 사는 남편이 고마워서 웃고, 남편은 고생하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웃는다고 했다. 자식들을 모두 잘 키웠고 부부가 몸이 건강하니 자신들은 부족함 없이 행복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