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님 다음으로 존경하는 광양의 모 사장님께서 누군가로부터 우리 피크닉 세트를 선물 받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철에 전 직원들에게 하나씩 선물해 주고 싶다며 1,000개를 한꺼번에 주문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밤늦게까지 포장해서 냉동 탑차 2대에 나눠싣고 광양에 다녀왔습니다. 냉동 트럭 한 대는 제가 직접 몰고 다녀왔습니다. 제가 트럭을 직접 몰고 가니 회사 관계자 분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도 낯선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원래 제가 트럭 운전을 아주 잘하는 편입니다. 20년 전에 GS칼텍스에 사표를 내고 시작한 첫 사업이 트럭을 몰고 장사를 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아침에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트럭에 싣고 도시와 시골 구석구석까지 다니며 물건을 파는 일이었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는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고 나름 편안한 생활을 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편안함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편하게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높은 연봉에 걱정도 없는 생활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불쑥 원래 내가 있던 광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생은 더 되더라도 더 나이 들기 전에 세상 속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사회에 나왔습니다.
가장 먼저 트럭 한 대를 샀습니다. 그리고 사업이란 것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사업이라기보다는 장사에 가까웠습니다. 모든 것을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트럭을 몰고 시장바닥을 돌아다니고 시골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습니다.
조금씩 손톱 밑에 검은 때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였습니다. 그것에 슬픈 생각이 들기보다는 이제 내가 제대로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차 안에서 까먹었습니다.
가급적이면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에 차를 세워놓고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많은 것이 고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 택한 길이었기에 조금도 후회가 없었습니다. 고마운 것은 그때의 고생이 지금 제 삶에 많은 자양분이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파봐야 아픈 사람의 속을 알고 고생을 해봐야 고생한 사람의 어려움을 알고 가난하게 살아봐야 가난한 사람의 애환을 안다고 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실제 겪어보는 것에는 차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는 긴장의 연속이었고 고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를 한 사업이었지만 막상 현장에 뛰어드니 현장의 상황은 제가 생각했떤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저에게는 큰 교훈으로 남아있습니다. 현장을 모르는 공부는 헛공부라는 사실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살이 쭉쭉 빠졌습니다. 80kg 가까이 나가던 몸무게가 60kg까지 빠졌습니다. 어느 날은 목으로 피까지 넘어왔습니다.
그럼에도 새벽 5시에 일어나 늦은 밤까지 하루 종일 일했습니다. 쉬는 날도 없었습니다. 새벽에 나갈 때 트럭에 가득 짐을 싣고 나가면 그 짐을 모두 팔고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치열하게 사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기를 쓰고 노력을 하다 보니 돈이 제법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돈 쓸 시간이 없으니 매달 버는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술도 많이 마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생활의 리듬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귀한 직장을 그만 둔 것이 아닌데…….
돈을 제법 모았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사업을 시작하고 딱 10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사업을 구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제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신문사 창간을 준비했습니다.
제가 바닥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에 대해 우리 사회와 우리 지역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 나이 겨우(?) 45살이었습니다. 펜의 힘으로 사회를 바꾸고 싶었고 지역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신문사를 창간하고 나서 트럭 운전대를 놨습니다. 그러다가 엊그제 처음으로 트럭 운전대를 다시 잡았습니다. 그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트럭 운전대를 잡으니 제 안에서 살아 꿈틀대는 그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