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논설위원
논설위원
“오늘 자고 나면 내일은 다른 날이 오지 않을까 여겼죠. 그렇게 10년, 20년이 지나니…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29년 세월을 시설에서 보내는 건 어떤 심정일까, 조심스러운 물음에 그가 답했다. 김진석(52)씨는 20살 때 중증장애인시설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업고 등하교시켜줬던 어머니도 성인이 된 그를 감당 못했던 것이다. 뇌병변장애 1급인 그에게 시설은 ‘주민들이 싫어한다’며 외출을 좀체 허락하지 않았다. 가족들 집에 가본 건 7년 전 한번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쇳가루 날리는 보호작업장에서 자물쇠 광내는 일을 하고 같은 건물 숙소에서 잤다. 한방에서 10명씩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씻기 싫을 때도 누군가에 의해 씻겨져야 하는 똑같은 나날이 계속됐다.
29년 동안 살던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김진석씨. 사진작가 정택용 제공
‘포기’라는 그의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신체의 자유가 통제된 삶이 반복되면 점차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생각조차 잃게 된다. 누가 그를 ‘포기하게’ 만든 건가. 김씨는 천천히 대답한다. 한참을 생각하고 곤란할 땐 커다란 얼굴에 쑥스러운 듯 웃음도 찬찬히 번진다. 비장애인들에겐 답답하고 알아듣기에 좀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속도가 나보다 느리다고, 그의 삶의 무게도 나보다 가벼워야 하는 법은 없다.
2015년 시설에서 나와 서울시가 7년까지 제공하는 자립주택에서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연금으로 살아가는 그의 통장엔 작은 액수지만 시민단체들에 보내는 후원금도 찍혀 있다. 지하철을 타고 마음대로 다니고 원하는 때 집에 갈 수 있는 건 큰 기쁨이다. ‘오늘과 다른 내일’도 상상 못하던 그에겐 꿈이 생겼다. 검정고시에 합격해 방송통신고에 들어간 그는 “수학·영어가 재밌는데 어렵다”면서도 수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새로 찍은 장애인단체 비상근 활동가 명함이 뿌듯한 듯 몇장씩이나 쥐여주며 “과거는 필요 없다. 미래만 남았다. 현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얼마 전엔 그를 포함한 탈시설 장애인 11명의 구술을 담은 책 <나, 함께 산다>도 나왔다. “대통령님이 꼭 읽어 화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김씨는 소망했다.
문재인 정부는 내년 7월 장애등급제 대신 종합판정 체계를 도입하며 ‘커뮤니티 케어’ 아래 탈시설화를 단계적으로 펴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막상 구체적 논의에 들어서자 등급을 점수로만 바꾸고 시설을 존치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사람을 1~6등급으로 나누거나 한적한 산골의 대규모 시설에 가둬놓고 일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요구에 맞는 지원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 시설 거주 장애인은 3만명으로 추산된다. 시설에서만 살던 이들이 사회관계가 제대로 있을 리 없으니, 바깥에 나와 외롭게 방치되면 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폭력이나 인권침해 없는 ‘좋은 시설’이면 되지 않냐고, 이 험한 사회에 장애인들이 혼자 살 수 있겠냐고. 하지만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부딪치고 실패하고 넘어지면서, 누군가에게 조금씩 의존해가며 살아간다. 혹시 ‘최선의 보호’라고 믿었던 게 사실은 장애인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놓고 ‘먹고 자는 것’ 외엔 아무것도 바랄 수 없도록 만들어온 건 아닌가. 정부의 의지와 예산의 전폭적인 확대만큼이나, 우리 사회가 이 불편한 질문을 외면 않는 준비가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인 동생 혜정씨를 18년 만에 시설에서 데려나와 함께 살아가는 장혜영씨는 <어른이 되면>에서 “연약한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언젠가 내가 연약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 적었다. 우리 모두가 인간답게 살려면,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