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상의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이렇게 나를 찾아왔을까 싶었다. 자신의 일이라면 죽어도 찾아오지 않을 여인인데 아이들의 문제라 이렇게 나를 찾아왔을 것이다. 더구나 큰 아이라 그만큼 고민도 컸을 것이다.
그렇게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친구가 떠난 지 올해 몇 년이나 되었어요?” 하고 물었다. “올해가 11년째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나는 10년인 줄 알았는데 벌써 11년의 세월이라니.
“그래도 살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요.”
내 입에서 친구 얘기가 나오니 친구 아내는 내 앞에서 활칵 눈물부터 쏟는다. 참 강한 여인인데. 하긴, 먼저 간 남편이 끔찍이도 챙겼던 친구가 나였기에 나를 보고 있으면 남편 생각이 어찌 나지 않겠는가.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운 게 세월이라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얻기 어렵고 그보다 더 잃기 쉬운 게 친구라 했다. 친구의 분신 같은 아이들은 친구를 닮아서 지금 착하게 잘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의 아내는 지금껏 재혼도 하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친구 아내를 맞이하면서 잠깐이지만 같이 웃고 같이 울고 했다. 마치 두 부부가 함께 얘기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벌써 11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마치 엊그제의 일처럼.
오늘따라 그 녀석이 몹시도 그립다. 그 녀석이 살아 있다면 그 녀석과 하고 싶은 일과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다. 내 살 같은 친구였고 내가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친구였다.
친구의 아내에게는 최선을 다해서 알아보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려보냈다. 그동안 남편 생각이 날까봐 일부러 나를 찾지 않았다는 그녀. 그러면서도 내 앞에서는 일부러 씩씩한 척 하는 그 모습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나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버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낸 처지다. 그 삶이 어떤 삶인지는 안 당해본 사람은 잘 모른다. 많이 슬프고 많이 힘들고 이렇게 표현하는 것의 백 배가 넘는 무게다.
몇 년 전에 해리포터의 저자 J. K. 롤링이 미국 하버드대에서 졸업생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롤링은 해리포터를 저술하여 돈 방석에 앉기 전까지 정부의 연금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며 생활했던 여인이었다.
커피 한잔 사 먹을 돈이 없을 때가 많았고 왼손으로 유모차 끌고 오른 손으로 글을 썼던 그녀였다. 지금은 한 해 소득은 약 4천억 원에 이른다고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그녀가 하버드 졸업생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
“여러분들은 곧 성공한 사람이 될 거예요. 그러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인간의 힘을 기초로 세상을 바꾸어 주세요.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 주세요.
그리고 힘없는 사람들과 여러분 자신을 동일시하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처럼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마음속에 간직해 주세요. 그렇게 세상을 위하고 싶다면 여러분이 반드시 힘을 가지세요.”
롤링이 하버드 졸업생에게 한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린다. 친구의 아내는 얼마 전이 친구의 11주년 기일이었다고 했다. 온 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냈지만 올해는 누구도 울지 않았다고 했다.
조만간 이 친구의 무덤에 가서 소주나 한 잔 따라주고 와야겠다.
by 괜찮은 사람들 박완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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