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예술가
예술가
“인생 망쳤네.” 언니가 고등학교를 그만두었을 때, 아빠의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나에겐 고등학교에 꼭 가라고 하면서. 나는 의아했다. 그들의 염려와 다르게 학교를 그만둔 언니는 집에서 영화 보고 잠자고, 검정고시 시험을 앞두고도 태연했다. 그들이 말하는 인생이라는 말은 직접 살아내는 오늘과 별개로 보였다. 이런 풍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당연히 고등학교는 가야 한다는 규칙을 의심했던 것 같다. 그들의 염려에 “나는 고등학교 갈 거예요. 걱정 마세요”라고 단언하던 나는 1년 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미쳤다 망쳤다고 하는 것들이 사실은 제일 달콤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나뿐 아니라 언니가 학교를 안 간 뒤 또래의 친척도 고등학교에 안 갔다. 친척들은 학교를 이탈하는 전염병 같은 걸 언니가 퍼뜨렸다며 장난 섞인 원망을 비쳤다. 우리의 인생이 끝났다고 걱정하는 시선과 다르게 언니와 내 일상은 그다지 비극적이거나 타락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상처럼 달콤한 학교 밖 생활이었다. 늦은 오전에 일어나면 민방위 훈련을 하는 것처럼 사람 없는 거리가 보였다. 거대한 조류에서 이탈한 물고기처럼 우리의 위치에 함께 불안하고 벅찼다. 우리는 ‘오늘 집에 안 들어간다’는 아빠의 전화를 받으면 참았던 환호성을 질렀다. 새벽 두시에 자우림 노래를 들으며 가자미를 튀기고, 아빠가 있을 때 숨죽여 봐야 했던 야하고 잔인한 영화도 보고, 밤새 채팅을 하거나 게임을 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왜 ‘어떻게 하고 싶은 거만 하면서 사느냐’는 말에 복종해야 하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우리는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을 견뎌야 하지. 왜 우리는 학교를, 세상을 인내해야 하는 거지. 이런 의심이 들었던 것 같다.
언니는 내게 조언해주었다. ‘걱정 말고 잠자라’고. 자신도 어디까지 잘 수 있나 실험해 봤는데 4일까지 잘 수 있었다고, 그 이상은 어차피 힘드니까 한번 해보라고 했다. 그 말에 힘을 받아 꿀 같은 잠만 잤다. 그렇게 3일은 잠만 자고, 일주일 동안 보고 싶은 영화를 모조리 보거나 며칠은 아무것도 안 하고 나무늘보처럼 지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 없이 말이다. 인생이 이렇게 안 피곤할 수 있는 건지 처음 알았다.
열아홉살 때까지 고등학교가 아닌 바깥에 있는 내게 사람들은 왜 학교를 안 갔는지, 어떤 사연과 문제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대단하다.” “무슨 문제가 있었나?” ‘그냥’이라고 대답하면 맞아, 이런 케이스도 있지 하면서 문제적인 학교 밖 청소년의 예외사례로 분류했다. 이런 분류와 지레짐작에 지칠 때쯤 스무살이 되었고 분류는 끝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는 이런 대사가 자주 나온다.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제 인생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인생은 계속된다. 망하지도 번창하지도 않고. 나도 여전하고 오늘도 여전하고 세상도 여전하다.
재밌게도 지금 언니와 나의 주변엔 학교 밖에서 있던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학교를 나온 사람들을 신기해하며 묻는다. “어떻게 참았어요? 어떻게 고등학교를 끝까지 다닐 수 있지? 진짜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