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칼럼; 설교원고모음

[스크랩] 대림절 네번째 주일 설교-예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가?(히10:5-10)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12. 24. 05:07

예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가?

히브리서 10:5-10

 

오늘은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대림절 마지막 네 번째 주일입니다.

내일 모레면 기쁘고 즐거운 2018년 성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번 성탄절은 정말 세상중심으로가 아니라 주님중심으로 교회중심으로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위해서 우리는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만 히브리서 기자의 관점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철저하게 구약의 제사제도와 연관시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히브리서 기자는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시편 406절 이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오심자체가 그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된 말씀을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약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는 말씀이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시는 것뿐만 아니라 오시는 동네까지도 베들레헴 에브라다로 정확하게 적시하고 있습니다.

처녀의 몸을 입고 오시다는 말씀도 예언되어 있고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

특별히 십자가에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난을 당하신다는 사실까지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약에 예언된 대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아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합니다.

그러기에 그 분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이고 그 분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메시아입니다.

오늘날 자기가 구세주라고 사람들을 속이고 미혹하는 많은 이단들이 있습니다만 여러분 절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절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언하신 메시야 구세주가 아닙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만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은 이렇게 구약에서 예언되고 언급된 분이 예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7절 하 반절에 보면,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왔나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주님이 이 땅에 오셨고 그 주님의 오심을 기념하는 날이 바로 성탄절인 줄 압니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예언되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물론 성경에서는 여기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은 세상이 자기들의 죄로 인하여 멸망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시키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세상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 말미암아 불화의 관계에 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이 뜻을 이루기위해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예수님의 오심을 구약의 제사를 통하여 색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설명하는 메시아 예수가 오신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첫째 것을 폐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9절 말씀을 보면,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말하는 첫째 것은 구약의 제사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폐하기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주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을 헐라는 것은 당시에 매우 위험한 말입니다.

예수님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죄목으로 제시된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을 헌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종교를 부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그 안에서 시행되었던 제사 제도를 부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종교제도를 완전히 부인하는 아주 위험천만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성전이 헐어져야하고 제사제도가 없어져야 한다고 믿었기에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전이 헐어져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죄를 없애기 위해 제사를 드리는데 이 짐승의 제사를 통해서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위하여 드리는데 죄를 없게 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없어져야 합니다.

성전이 헐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이 성전을 헐어버리기 위해서입니다.

 

또 하나는, 둘째 것을 세우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9절 말씀을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첫째 것을 성전이라고 말씀을 드렸고 성전 안에서 드리는 짐승의 제사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으로는 죄를 없앨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폐하러 오셨는데 무조건 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것을 세우시고 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둘째 것을 세우셨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둘째 것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이 둘째 것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12절을 보시면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4절을 보시면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 주님은 한 번의 제사를 드렸다고 하고 그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제물삼아 죽으신 대속의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죄에서 온전하게 사할 수 없고 구원할 수 없는 짐승의 제사 대신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심으로 인간을 온전하게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만난 간수에게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16:31)

로마서에서는 이 구원의 진리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2-23)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 십자가의 대속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신 후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한 번의 믿음으로 영원히 온전하게 되는 구원의 진리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이 둘째 것이 완성되었으니 이제 첫째 것은 폐해져야 합니다. 없어져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아직도 성전이 헐어지지 않고 그 안에서 예전의 제사로 죄를 없애겠다고 하면 그것은 정말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제는 제사장이 주도하여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없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그 부족한 것을 없애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직도 구약의 제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폐하신 첫 번째 것을 가지고 구원을 받으려고 합니다.

아직도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를 모르고 자신의 공로로 자신의 노력으로 정성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참으로 많습니다.

다 잘못된 것인 줄 압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어지는 줄 믿습니다.

첫 번째 것은 폐하여졌고 두 번째 것이 온전한 구원의 방법으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고든 맥도날드 목사는 미국 유명 병원의 의사인 나이지리아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여성은 나이지리아어로 매우 긴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특이해서 맥도날드 목사는 이름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의 뜻이 분노를 사라지게 한 아이라고 말하며 그 이름을 얻게 된 사연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서로 사랑했는데 조부모가 결혼을 극구 반대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사랑했기에 부모의 의견을 무시하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몇 년 동안 가족사회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 후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는 낳게 되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녀인 자신을 안으면서 부모를 용서했습니다.

부모와 조부모 사이에 있었던 분노와 적대감이 사라지자 부모는 그녀에게 분노를 사라지게 한 아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맥도날드 목사는 여의사의 이름이 예수께서 오신 목적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분노를 사라지게 하는 아기로 오셨던 것입니다.

 

인간은 원죄와 자범죄로 인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며 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죄 가운데 살아가면서 인간은 사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죄를 사함받기 위해 성전에서 짐승의 피로 매년 제사를 드렸지만 그것으로는 죄를 사함 받을 수 없었습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죄의 문제를 짐승의 제사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목의 관계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아무런 죄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을 제물삼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은 전적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기에 이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게 되고 우리는 의로운 존재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마음껏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화와 분노의 관계가 사라지고 구원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첫째 것을 페하시고 둘째 것을 세우셨다는 히브리서 기자의 구원관이며 예수님이 이루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이 땅에 오셨고 그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다 행하셨기에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뜻을 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한 남자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가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의 눈을 잃어버렸습니다.

안구이식 말고는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남자는 병실로 옮겨지고 그곳에서 소녀를 만납니다.

소녀는 다가와 눈에 붕대를 감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건넵니다.

아저씨 눈이 미이라 같다. 아저씨 말 못해?’

그러나 모르는 사람과 말을 주고받을 만큼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그는 그때마다 눈을 감싸고 울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아저씨 엄마가 그러는데 자꾸 울면 병이 안 낫는데.’

그날 이후 남자는 소녀와 함께 산책을 하고 이야기도 주고받았습니다.

아저씨 나 아저씨랑 결혼 할래’ ‘그래 좋아

시간이 흘러 남자가 퇴원을 하게 되었고 남자는 소녀가 퇴원하는 날 예쁜 꽃을 사가지고 오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몇 주후 병원에서 안구기증자가 나타났다고 연락이 왔고 남자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잃었던 빛을 찾았습니다.

병원은 기증자가 보낸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편지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씌어있었습니다.

아저씨 나 아무래도 아저씨랑 결혼 못할 것 같애. 그래서 아저씨 눈 할래

일곱 살 소녀가 하늘나라에 가면서 그에게 준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밝은 눈이었습니다.

성탄절에 이 땅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가 우리에게 준 것은 사랑입니다. 생명입니다. 구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대림절 네 번째 주일을 지나면 이제 곧 성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성탄절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의미 있게 올바르게 성탄절을 맞이해야 할 줄 압니다.

성탄절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이제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으로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성탄절이 되고 성도 여러분의 남은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barnabak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