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택하셨을까?
중동 선교사 수련회 중에 김풍운목사님 (벅스카운티장로교회)이 마 21:1-5을 본문으로 ‘왜 우리를 택하셨나?’ 하는 내용의 설교를 하셨습니다.
우리를
택하여 종을 삼으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하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무엇을 보시고 택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일부러 나귀를 타셨습니다.
우리가 바로 주님이 타시려고 택한 나귀와 같습니다.
첫째는 작아서 택하셨습니다.
나귀는 말 보다 작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자신이 크다고 다투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이런 퍼포먼스를 행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네가 커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작아서 선택한 것이다”
때때로 ‘주님은 왜 나를 크게 쓰시지 않는가?’ 답답한 마음이 들 때, 작은 자를 택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시고 있는 주님이 크시다고 자기도 크다고 착각하게 될 때, 종에겐 위기입니다.
종 취급을 받을 때, 화가 난다면 아직 섬기는 종이 아닙니다.
둘째는 볼품이 없기에 택하셨습니다.
나귀는 말에 비하면 볼품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비천하고 방종하고 더러운 사람을 향하여 ‘이
나귀같은 자식들아!’라고 욕을 합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멸시하고 따돌리던 이들, 장애인과 창녀, 세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까이 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이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충성되게 여겨주셔서 직분을 맡기신 것이지 우리가 충성스런 자는 아닌 것입니다. (딤전 1:12)
세째는 약하여 택하셨습니다.
주님은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나귀는 강인한 동물이지만 새끼는 약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택하신 제자들이 다 약하고 또 약한 자였습니다.
주님이 택하심의 조건은 약한 것이었습니다. (고전
1:27)
이것을 알았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고후 12:9)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고 기도하면서 “주님, 왜 나를 택하셨나요?” 질문하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짐과 두려움과 부대낌이 다 씻어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작고 보잘 것 없고 약해서만 주의 종으로 쓰임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태우지 않은 나귀는 그저 나귀일 뿐입니다.
항상 주님을 바라보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여야 주의 종입니다.
그 때 우리가 작고 보잘 것 없고 약하다는 것이 오히려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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