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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1. 20. 주일 / 욕심과 죄와 사망(약1:15)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1. 23. 08:32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1. 20. 주일


오늘은 치앙마이에서 맞는 첫 주일입니다. 출석하는 교회 담임목사가 한국에서 온 단기선교팀을 섬기느라 몇 주간을 정신 없이 보낸 모양입니다. 제게 설교 부탁을 하시기에 빚 갚는 심정으로(사역지에 놀러 온) 맡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설교는 누구보다 저에게 하는 설교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은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복된 주일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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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과 죄와 사망
1:15


1.
저는 지난 월요일 밤에 치앙마이로 들어왔습니다. 두 달 정도 있다가 돌아가려고 합니다. 작년엔 비행기표까지 다 끊어 놨다가 갑자기 필리핀에 일이 생기는 바람에 마닐라에서 두 달을 지냈습니다. 한 해 걸러 와보니 치앙마이가 더 정겹습니다.


저는 음식의 폭이 좁아 제가 평소 먹던 것 외에는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인데 점점 태국 음식이 입에 맞기 시작했습니다. 똠냥꿍이 입에 맞기 시작하더니 그제는 드디어 똠냥꿍 속에 들어 있는 고수의 맛이 그리 싫지 않았습니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치앙마이로 들어오는 날 한국은 미세먼지 최악이었습니다. 해를 맨 눈으로 달 보듯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는 마스크로 막지 못하고 방독면을 써야 한다는 농담같은 말이 방송에 나올 정도였습니다. 보통 심각한게 아닙니다.


미세먼지는 공해입니다.
심각한 공해입니다.
공해가 어디 미세먼지 뿐이겠습니까?
땅도 오염되고
공기도 오염되고
물도 오염되고
바다도 오염되어가고 있습니다.
가고 있는게 아니라 이미 심각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막지 못한다면
인류는 공해 때문에 멸망하게 되고 말겁니다.


3.
여러분
공해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근본적인 원인 말입니다.


'욕심'입니다.
'
지난친 욕심입니다.'
그리고 욕심으로 말미암은 어리석음입니다.
욕심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입니다.
한 쪽만 보고
그만큼 중요한 다른 한 쪽(싸이드 이팩트)를 보지 못합니다.


욕심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양산해 냅니다.
필요 이상의 것들이 결국은 공해가 되는 겁니다.
광야에서 필요 이상의 만나가 썩었듯이
필요 이상의 물질과 물건들이 썩어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욕심은
보다 더 심각한 공해를 만들어 냅니다.
보이지 않는 공해를 만들어냅니다.
욕심은 세상은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세상으로 만드는 주범입니다.
동물의 세계에도 강자와 약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 외의 동물은 아무리 강자라고 하여도 필요 이상의 먹이를 사냥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있는 원죄적인 욕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아무리 사자와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있어도 세상은 균형을 유지하며 건강성을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욕심 때문에 힘만 있으면
한도 끝도 없이 사냥합니다.
다 먹지도 못할 것을
다 쓰지도 못할 것을 사냥합니다.
때문에
약한 자들은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하여도 먹을 수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평화를 깨트립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순순히 죽지 않습니다.
공격합니다.
파괴합니다.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사람들은
파괴하고
약탈하는 사람만을 정죄하지만
그 책임이 저들에게만 있는게 아닙니다.
보다 근원적인 이유와 책임은 사자보다 무섭고 어리석은 강자들의 욕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다가

빨갱이 소리 듣는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5.
욕심은 자연스럽게
죄로 발전합니다.
욕심이 없다면
사람은 절대로 죄를 짓지 않게 될 겁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백퍼센트 동의합니다.
이 세상을 그대로 놔두고
그냥 죄만 세상에서 걷어 낼 수 있다면
세상은 그날 그 자리에서 천국이 될 겁니다.


그런데
그 치명적인 죄의 원인이 욕심입니다.


6.
욕심의 문제는 거기에만 있는게 아닙니다.
보다 치명적인 문제는
욕심을 채워도
욕심을 다 채울 수도 없지만
혹시 다 채운다고 하여도
사람은 그 때문에 절대로 행복해지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사랑하면 사랑받는 대상이 존귀해 집니다.
천하보다 귀해지고
자신의 생명보다 귀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보다 귀하게
천하보다 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를 천하보다 크고 귀하게 창조하셨음으로
천하를 다 얻는다고 하여도
그것으로 우리의 삶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만족은
우리의 행복은
천하에 없습니다.


7.
저는 1951 2월생입니다.
전쟁 중 피난처인 부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적 기억도 가끔 나곤하는데
덮고 잘 이불은 한 채 있었는데
깔고 잘 요가 없어서 가마니를 깔고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69
년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에 실패한 후
세운 상가 점원이 되었습니다. 그 때 제 첫 월급이 수습기간이라고 7,000원이었습니다
몇 달 후 정상적인 봉급을 받았는데 그게 10,000원이었습니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
생활환경조사서라는게 있었습니다.
질문이 생각해보면 웃겼습니다.


라디오 있냐?
선풍기 있냐?
텔레비젼 있냐?
전화 있냐?
등등등


그 당시 뭐가 있으면 부자였을까요?
아무거나 그 중에 하나만 있었으면 부자취급 받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뭐가 있으면 부자일까요?
우리는 그 질문에 선듯 대답할 수 없으리만큼 부자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빈국에서
수출입 세계 6위 권까지 당대에 발전한 나라가 어디있을까요?
경제적으로만 보면
우리 한국은 세계의 기적 중의 기적을 만들어낸 국가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한국 사람들은 다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천하보다 크고 귀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그 욕심을 다 채운다고 하여도
인간은
우리는 그 때문에 만족하거나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욕심의 가장 치명적인 면은
그 욕심이 참되지 못하고 헛되다는데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마셔도 마셔도 또 목마른 것을 길러 다닌다는데 있습니다.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고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한다는데 있습니다. (55:2)


그 헛된 것을 위하여
평생을 허비하며
남과 싸우며
죄 짓고 산다는데 있습니다.


8.
처음 치앙마이에 왔을 때
저는 저에게 이곳을 소개해 주신 장로님을 따라
홀리데이 인 호텔에서 지냈습니다.
아침 식사를 포함해 하루 50불이었습니다.
꽤 괜찮은 가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후배 선교사들이 어디 머무느냐고 물을 때마다
홀리데이 인에 머문다고 하였고
'
하루 50불 밖에 안해. 참 싸'라는 말까지 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 태국에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도 점점 태국화(?) 되어가면서
집 랜트를 줄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절반 쯤 되는 방 둘 짜리 콘도를 계약하다가 
올해는 드디어 방 한 칸짜리 원룸을 계약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치앙마이가 제 본 주거지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생활을 미니멀라이즈하고 있습니다.
소꿉 장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살만 합니다.


9.
치앙마이에 오면
삼중고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글 못 읽고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한국에 있으면 제법 똑똑한 영감인데
여기오면 완전 바보 영감이 됩니다.


그래도
겨울에 한국 추위 피해
이곳에 와서 몇 달씩 골프치며 사는 생활을 가난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떤 분들은 당장 욕하고 비난 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제가 치앙마이에 와서 생활하면서
나름 훈련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
덜어 냄'입니다.
'
조금 덜 욕심 부림'입니다.
'
조금 더 심플하게 사는 법'입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줄여보고 있는데
사는데 아무 문제 없습니다.
도리어 삶이 가벼워지고 단순해지고 자유로워지고 건강해 짐을 느낍니다.
제가 포기하고 버리는 만큼 세상도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10.
왜 사람들은 버리지 못하고
다 먹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할 것을 욕심부리며 쌓아 두려고만 할까요?
벌려고만 할까요? 모으려고만 할까요?


불안 때문입니다.
삶에 대한 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불안의 다른 이름은 불신입니다.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리고 건강하게 자유롭게 아름답게 사는 삶의 원동력은 믿음에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바울도 자족(욕심 부리지 않음)을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배고픔 때문입니다.
욕심부리는 것으로는 우리의 삶을 채울 수가 없는데
그것을 모르고 아직도 그것이 부족하고 없어서 배가 고픈 줄 알고
계속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겁니다.


삶의 배부름은 세상에 없습니다.
소유로
물질로
세상적인 명예와 권력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배부르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뿐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의 산상보훈 이야기입니다.


11.
우리 인간의 최대 어리석음은
믿음으로 배부르려하지 않고
욕심으로 배부르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죄까지 짓고 망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본시 하나님을 모르고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니
운명적으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우리들의 삶이 저들과 다르지 않다면
헛 믿은 겁니다.
헛 산 겁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주신
"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 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마음에 깊이 새기고
믿음이 주는 배부름으로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우리 몸과 삶에 붙어있는 욕심을
덜어내고 자유롭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메모 :  욕심과 죄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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