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편견 지닌 반미주의자 퀴어
HIV 감염인의 연애 등
유머와 페이소스 버무린 퀴어 서사
HIV 감염인의 연애 등
유머와 페이소스 버무린 퀴어 서사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창비·1만4000원
2016년에 등단한 박상영은 지난해 9월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냈고, 중편 ‘우럭 한점 우주의 맛’으로 올해 제10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았다. 첫 소설집으로부터 채 1년이 되기 전에 나온 두 번째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에는 수상작을 포함한 중단편 넷이 묶였다.
박상영은, 역시 지난해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낸 김봉곤과 함께, 한국 퀴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지금 가장 뜨거운 이름이기도 하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출간되자마자 2쇄를 찍었으며,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를 통해 영국 출판사 틸티드 액시스 프레스와 번역 출간 계약을 맺었다. 누군가 “농담하는 퀴어라는 신인류의 등장”이라 요약한 대로, 유머와 페이소스를 버무린 퀴어 서사의 매력이 그런 열기의 배경일 터이다.
두번째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을 낸 작가 박상영. “내 삶을,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단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오롯이 나로서 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말기 암 환자인 엄마를 간병하는 청년 ‘영’이 5년 전 뜨겁게 사랑했던 형의 연락을 받고 지난 일을 떠올리는 얼개를 지녔다. “그 여름, 나는 완전히 미쳐 있었다. 돌았고, 사로잡혔다”고 영은 쓰는데, 그토록 절대적이었던 사랑의 몰락이 운동권 출신 띠동갑 형의 이념과 편견 때문이라는 아이러니에 이 작품의 묘미가 있다. 성조기가 그려진 티셔츠는 입을 수 없고, 핼러윈은 미제 명절이라 반대하며, “미국의, 미제(美帝)의 모든 것들이 불편하다”는 형. 동성애를 두고 “미제의 악습”이라 표현한 것은 우연히 마주친 형의 운동권 선배들 농담이었다지만, 동성애라는 “질병” 또는 “징후”에 관한 기사들을 따로 챙겨 놓은 형의 자기분열이 결국 둘의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자기분열적인 형과 함께, 아들의 성정체성을 사갈시하고 억눌러 온 기독교도 엄마 역시 이 소설을 쌍끌이로 끌어 가는 문제적 인물이다. 고교 1학년 때 상급생 형과 키스를 한 아들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던 엄마한테서 “진심으로 사과를 받고 싶”다는 영의 바람은 소설이 끝나도록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직 상황이 괜찮았을 때 그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인 엄마와 운동권 형을 서로 인사 시킬 계획도 세웠거니와, 그 계획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은 그가 넘어야 할 현실의 장벽이 만만치 않다는 방증일 수 있겠다.
‘재희’는 영이 학과 동급생 재희와 원룸에서 동거한 3년의 이야기이다. 재희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는 현재 시점에서 지난 세월을 돌이키는 구성인데, 피차 “정조 관념이 희박”했으며 동급생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두 남녀가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 주는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뭉클한 독후감을 남긴다.
‘대도시의 사랑법’과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규호라는 파트너와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연작이다. 표제작에서는 “띠동갑의 늙은 운동권 아재를 만나 미국산 옷을 입는다고 혼난 적이 있고”라든가 “대학 동기 재희가 연줄을 동원해 만들어준 꿀 알바 자리”처럼 앞선 두 작품 ‘우럭 한점…’과 ‘재희’와 연결되는 대목도 눈에 뜨이는데, 규호 이야기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영이 지닌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존재다.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이 바이러스를 그는 ‘카일리’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내가 나이며 동시에 카일리”라거나 “카일리. 이것은 온전히 내 몫”이라며 자신과 동일시한다. 규호의 반응이 중요하겠거니와,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라는 말로 ‘카일리’를 지닌 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규호야말로 그가 꿈꾸어 온 이상적인 연인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상황의 전개에 따라 둘의 사랑은 결국 종말에 이르고, 이제 홀로 남은 영은 “사랑의 동의어”이기도 한 규호의 기억을 글로나마 온전히 남기고자 한다. 그러나 “애쓰면 애쓸수록 규호라는 존재와 그때의 내 감정과는 점점 더 멀어져버리고야 만다.” 실체적 진실과 글쓰기 사이의 이런 간극은 실망을 넘어 절망적이기까지 하지만, 거꾸로 그런 간극과 절망이야말로 끊임없는 글쓰기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임을 이 책 <대도시의 사랑법>은 증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