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글쓰기 관한 글쓰기 ⑩
다독 안 했지만 베스트셀러 작가 된 나
이명박 정부 시절 제품 설명서 쓰는 밥벌이도 해
죽기 살기로 잘 쓰는 법 연구
다독과 관련 없이 잘 쓰는 10가지 법 터득
음미·메모 작성·반론·모방·결말 상상 등
“시비 걸며 읽어야 생각 만들어져”
다독 안 했지만 베스트셀러 작가 된 나
이명박 정부 시절 제품 설명서 쓰는 밥벌이도 해
죽기 살기로 잘 쓰는 법 연구
다독과 관련 없이 잘 쓰는 10가지 법 터득
음미·메모 작성·반론·모방·결말 상상 등
“시비 걸며 읽어야 생각 만들어져”
게티이미지뱅크.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자랑하는 것 아니다. 부끄럽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민망하고 창피하다. 많이 읽고도 베스트셀러를 쓰지 못하는 분들께 송구하다. 그렇다고 수치스럽진 않다. 안 읽은 건 죄가 아니다. 독서가 내게 주어진 의무도 아니다.
물론 독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유익을 준다. 무엇보다, 어떤 책 읽었다고 잘난 체할 수 있다. 또한, 한 해 동안 읽은 독서 목록을 들여다보면 뭔가를 이룬 것 같아 뿌듯하다. 한 분야 책을 집중적으로 읽으면 전문가 행세를 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면 어휘나 문장에 익숙해진다. 나아가 좋은 문장을 많이 마주하면서 잘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와 함께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분간할 수 있게 된다. 글에 관한 안목이 생긴다.
그렇다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영어 공부 많이 했다고 외국인과 ‘컨버세이션’이나 ‘다이얼로그’를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많이 읽은 사람이 쉬운 걸 어렵게 쓰는 걸 자주 봤다. 많이 읽어서 많이 아는 것이, 그것을 알기 쉽게 쓰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 청와대를 나와 취직이 어려웠던 이명박 정부 시절, 고향 후배가 나를 거둬줬다. ‘테크니컬 라이팅’(TW) 하는 자리였다. 제품 설명서를 만드는 일이다. 이 일은 그 제품을 몰라도 쓸 수 없지만, 너무 잘 알아도 쓸 수 없다. 소비자에게 무엇을 알려줘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친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
독서를 많이 하지 않은 나도 글은 써야 했다. 그게 밥벌이였으니까. 그래서 죽기 살기로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방법을 찾았다.
첫째, 문체를 모방하는 읽기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모방할 대상을 찾는 일이다. 나는 청와대에 들어간 2000년, 전북대 강준만 교수를 벤치마킹 모델로 삼았다. 그의 칼럼을 서른 편 뽑아서 세 번씩 읽었다. 그것만 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그의 글을 흉내 내게 됐다. 모방할 대상이 칼럼니스트이면 나처럼 반복해 읽으면 되고, 소설가면 그의 소설을 찾아 모두 읽는 게 좋고, 시인이면 그의 시를 암송해보라. 수필은 필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김훈 선생을 본받으려면 일정 기간 그의 소설에 파묻혀, 그의 소설만 읽어야 한다. 작가 중에는 문체가 좋은 사람, 내용이 좋은 사람이 있는데,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
둘째, 목차 읽기다. 책의 정수는 차례에 담겨 있다. 목차 읽기를 즐겨 해보라. 일거삼득의 효과가 있다. △목차 한 줄이 내 글의 제목이나 주제가 된다. △목차는 모호하게 잡혀 있어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워준다. △목차를 통해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능력, 글의 개요 짜는 역량을 높일 수 있다.
셋째, 요약하며 읽기다. 쓰기는 요약의 역순이다. 요약은 줄이는 행위이고, 쓰기는 늘리기다. 요약을 잘하면 잘 쓸 수 있다. 한 꼭지 글을 읽으면 다음 꼭지로 넘어가기 전에 3초만 생각해보라. 방금 읽은 내용이 무엇인지. 그런 떠올림이 요약이다. 한 권 다 읽고 요약하려고 하지 말고 수시로 요약하자. 그래야 요약 훈련이 된다. 한 문장 발췌든, 요점 정리든, 주제 파악이든 상관없다. 방금 읽은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라.
넷째, 챙기며 읽기다. 천 권을 읽어도 내 것이 만들어지지 않는 독서는 의미 없다. 단 한 문장, 한 꼭지 글을 읽어도 그것을 음미해본 후 내 것을 챙겨라. 이 글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끼고, 배우고, 알게 됐고, 깨달았는지. 그런 게 하나도 없으면 찾을 때까지 그다음 읽기를 멈추자. 시간 들여 읽었으면 본전은 찾아야지.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우리 모두는 남의 것을 읽으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남의 글에 감동하고, 설득당하려고 이 세상에 오지 않았다. 글로써 남에게 영향을 미치고 도움을 주고 역할 하기 위해 왔다. 읽는 이유는 쓰기 위해서다.
다섯째, 메모하며 읽기다. 자기 것을 챙겼으면 그것을 메모하라. 책의 여백도 좋고 메모장도 좋다. 메모한 것만 남는다. 나머지는 모두 잊힌다. 무엇보다, 메모하는 행위 자체가 글쓰기 연습이다. 글과 친해지고 글쓰기가 익숙해지는 시간이다. 인간은 익숙한 것을 잘하고, 친숙한 걸 하고 싶어 한다.
여섯째, 메모한 건 말해본다. 백날 메모해봐야 잘 쓸 수 없다. 메모와 쓰기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말하기다. 말로 써먹어 봐야 한다. 그래야 쓸 수 있다. 말해본 것, 말할 수 있는 것만 쓸 수 있다. 그러면 기억도 잘 난다. 또한 말로 써먹어 봐야 읽고 싶다. 써먹지도 않을 것을 왜 읽겠는가. 말로 써먹을 때만 메모가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일곱째, 동시에 여러 권을 읽는다. 나는 책과 책이 통하고 연결되고 합해질 때 훨씬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일종의 섞어 읽기다. 내 경험으로는 국, 영, 수를 한 시간씩 세 시간 공부하는 것보다는 20분씩 국·영·수, 국·영·수, 국·영·수 세 바퀴 도는 게 낫다. 이런 융합과 통섭이 창의력 발달에 기여한다. 내가 글쓰기 전에 관련 칼럼과 동영상 강의를 몇 개 읽고 듣는 연유이고, 여러 글을 동시에 이것 조금, 저것 조금씩 쓰는 이유다.
여덟째, 궁금증을 좇아 읽는다. 목차를 보고 궁금한 데서부터 읽는다. 읽다가 앞이 궁금하면 앞을 찾아 읽고, 뒤가 궁금하면 뒤를 이어 읽는다. 책을 읽다가 궁금증이 생기면 관련 책을 찾아 읽는다. 책에서 소개한 어떤 책이 궁금하면 그 책을 읽는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 호기심을 좇아 읽다 보면 자신의 관심사를 알게 된다. 내가 알고 싶고 좋아하는 주제, 즉 나의 테마를 찾게 된다. 그 테마는 글쓰기 인생의 기둥이 된다. 글을 낳는 모체가 되고 글이 와서 붙는 요체가 된다. 글을 지속적으로 쓰려면 그런 단단한 중심이 하나 있어야 한다. 내겐 ‘글쓰기’란 주제가 그것이다.
아홉째, 빠져 읽기다.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결말이 어떻게 될지 예상하며 읽는다. 추정하고 추측하고 추리한다. 또한 주인공이 되어 읽는다. 작중인물에 몰입하고 동화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글쓰기에 필요한 추론 능력과 공감 능력을 키운다.
열째, 비딱하게 읽자. 글쓰기는 발산의 영역이다. 이전에 두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1단계,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2단계다. 1단계로 이해, 분석했으면, 2단계로 ‘그 말 맞아? 왜 내가 당신 말을 믿어야 하지?’ 반문하고, 시비 걸며 읽어야 한다. 그래야 내 생각이 만들어진다. 반론, 반박이 있어야 글이 박진감 있다. 싸움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더 나은 대안, 창의적 해법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동조하지 않으면, 묻어가지 않으면 모난 돌이 된다. 정 맞는다. “당신 왜 그렇게 매사에 부정적이야?” 문제의식이 있을 필요 없다. 문제를 진단만 하면 된다. 입바른 소리 하는 사람치고 출세하는 걸 별로 못 봤다. 입에 발린 소리를 잘해야 성공한다. 토론이 될 리 만무하다. 반론을 제기하면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내 편 아니었구나. 내 말에 토를 달아? 남들 앞에서 망신을 줘? 알았어. 두고 보자.’ 관계가 틀어진다. 내 편 아니면 적이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과 공존의 기반이 없다. 배제와 혐오, 타도의 대상이 있을 뿐이다. 받아들이기만 하는 읽기는 내 것을 만들지 못한다. 글쓰기에 필요한 비판적 사고력이 생기지 않는다.
이 밖에도 나만의 기술이 있다. △글을 읽으며 구성을 유심히 본다. 시작을 어떻게 해서 어떻게 전개하고 마무리는 어찌했는지. 책은 글로 구성돼 있다. 책의 전체 구성도 중요하지만, 글 하나하나의 구성을 따져봐야 한다. △내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단어나 표현이 있으면 눈여겨 본다. 메모해뒀다가 내 글에 써먹는다. 문장 패러디는 좋은 글쓰기 공부법이다. △나와 연관 지으며 읽으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내 것을 써야 하니까.
처음에 고백했듯 나는 많이 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잘 쓴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을 참고할 때, 독서가 글을 잘 쓰는 충분조건이 된다. 공부 열심히 한다고 시험 잘 보는 것 아니다. 읽기가 공부라면, 쓰기는 시험이다.
가끔 내가 신기하다. 독서를 안 하고도 왜 이렇게 글이 술술 써질까.
강원국(<대통령의 글쓰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