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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8. 26. 월요일 /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대한 그냥 나의 생각 정리 (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8. 28. 06:20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8. 26. 월요일 /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대한 그냥 나의 생각 정리 (3)|김동호목사의 매일칼럼

스티그마 | 조회 36 |추천 0 |2019.08.26. 06:38 http://cafe.daum.net/stigma50/Dhpk/2625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8. 26. 월요일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대한 그냥 나의 생각 정리 (3)

1.
현재를 알려면
그 현재와 연관된 과거를 알아야 한다.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 역사를 배제하고 현재를 읽고 판단하면
그 판단에 의한 결론과 그 결론에 의한 정확한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총칼 없는 전쟁 상황'을 이해하고 다루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2.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는 오래고 깊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식민통치한 36년의 역사만큼 중요한 역사는 없다.
그 역사를 빼놓고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일어 날 이야기를 정확하게 할 수 없다.

우리나라를 자신의 속국이 되게 하고
한 나라의 국모를 자객들을 보내 욕보이고 살해하고
있는 수단 없는 수단 다 동원하여 수탈하고
(언어)를 말살하고
성씨를 말살하고(창씨개명)
강제징용을 통하여 우리국민을 노예화하고
조선의 딸들을 위안부로 만들어 짓밟았놓았다.

3.
세계사를 보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지를 삼아 통치한 것이 일본 뿐만은 아니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그 전의 중국
몽골
그리고
미국도 아프리카 사람들을 동물 사냥하듯 사냥하여
노예로 삼고 저들을 짐승처럼 부리며 살지 않았는가?
그리고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도 마찬가지고....

4.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에게 받았다고 느끼고 생각하는 피해의식과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가했다고 생각하는 가해의식에는 차이가 있다.

많다.
많아도 아주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그 차이와 간격은 다른 어느 나라들보다 더 심하고 강하다.
다른 나라들도 다 있는 차이와 간격이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더 심하고, 제일 심하다.

독일과 이스라엘만 해도 그렇다.
이스라엘에는 우리나라 자동차가 독일 차보다 많이 운행된단다.
명차 취급을 받는 독일 차들은 거의 잘 보이질 않는단다.
그것은 독일 히틀러 나치들로 부터 당했던 과거의 뼈아픈 과거의 흔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이스라엘의 요즘 사이와 관계는
분명
우리나라와 일본과는 다르다.

독일과 이스라엘은 물론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덮고 잘 지내는 모양새인데
우리나라와 일본은 서로 덮고 지내야 한다는 것은 서로 다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덮지 못하고
오히려 요즘 와서는 전쟁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왜 그럴까?

5.
세계2차 대전 때
독일 나치들 만만치 않았다.
점령한 모든 나라에 대하여 그랬겠지만
특히 유대인들에게 그랬다.
600
만 명을 착취한 정도가 아니라 학살하였다.
그것도 아주 비참한 방법으로.
아주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그런데 이스라엘은 독일을 용서하고 덮어 주었다.
'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는다'는 역사의 명언을 남기며 말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스라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결단하고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벌써 그런 정신으로 독일을 덮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만 못해서 일본을 덮어주지 못하고 끈질기게 일본을 물고(?) 놓지 않고 있는 것인가?

6.
그렇지 않다.

용서는
진정한 회개와 사과가 있을 때에 작동한다.
그건 사람만이 아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죄로 말미암아 범죄하고
그로 인하여 죽게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 주시려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은 강력한 능력이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용서 받고 구원을 얻는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나 다 용서받고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용서에도 분명한 조건과 단서가 붙어있다.
믿음이다.
그 믿음에는 회개가 포함되어 있다.
믿지 않으면 구원 없다.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는 작동될 수 없다.

그로인하여
우리 민족이 당한 고난과 고통은
역사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피와 뼈에 기록되어 지금까지 유전되어 오고 있다.

3.
언젠가는 지워져야 할 역사이다.
그것은 일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우려면 꼭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가해자의 진정어린 사과다.
일본이 우리에게 가한 피해는 진정어린 사과를 한다고 다 풀릴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설령 자신들은 진정으로 사과 했다고 생각이 들어도 우리가 용서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 누구도. 일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일본도 독일처럼 생각하고 독일처럼 행동하여야 한다.

같은 전범국이었던 독일은
피해국들에게 끊임없이 사과하여 피해국들이 용서해 줄 때까지 용서를 빈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일본은 거리가 멀어도 아주 멀다.

4.
이스라엘과 독일의 관계와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가 서로 다른 것은
피해자인 우리와 이스라엘의 다른 점도 물론 있는지 모르겠으나
더 분명한 것은
가해자인 일본과 독일의 피해국들에 대한 태도와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은 자신들의 죄와 잘못을
덮으려 하지 않고
핑계하려 하지 않고
축소하려 하지 않고
인정하였다.

그리고 사과하였다.
자기들은 충분하였다라고 생각할만큼 하려고 하지 않고
피해국들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저들이 충분하다고 받아 줄 때까지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않았고
핑계하고
축소하고
덮으려고만 하였지
진정한 사죄가 없었다.
지금 아베 정권에 와서 그것은 더 노골적이 되었다.

5.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이 심각한 문제를
이해하려면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있었던
그 최악의 역사와
해방 이후 그 역사를 이해하고 풀려고 했던 역사를 이해해야만
나름
객관적이고
종합적이고
정확한 판단과 결론에 이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