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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Facebook. 2019. 8. 23. 금요일 /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대한 그냥 나의 생각 정리.(1)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8. 28. 05:58

김동호 Facebook. 2019. 8. 23. 금요일 /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대한 그냥 나의 생각 정리.(1)|김동호목사의 매일칼럼

스티그마 | 조회 37 |추천 0 |2019.08.23. 06:29 http://cafe.daum.net/stigma50/Dhpk/2623 


김동호 Facebook. 2019. 8. 23. 금요일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대한 그냥 나의 생각 정리.(1)

1.
일본과의 전쟁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위치(스탠스)

1)
우리 아버지의 바로 윗 형님이신 나의 큰 아버지는 독립군이셨다. 동남아시아를 다니는 무역선을 가지고 계실만큼 부자셨는데 독립자금만 보내는 애국사업가로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독립군이 되어 마직막엔 종로 경찰서를 습격하다 체포되어 사형선고 받으시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옥 살이를 하시다가 해방 될 때 풀려 나시어 돌아가실 때 까지 금호동 산동네 단칸방에서 가난했던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삶을 사셨다.

당신이 왜정시대 때 하셨던 일들을 정부에 보고하면 훈장도 받고 그에 따른 생활지원도 있는거 아셨지만 하지 않으셨고 그 이유를 묻는 가족들에게 하신 말씀은 단 하나였다. '훈장 받으려고 한 거 아니야'

독립군의 자녀로 고생 고생 하며 혼자의 힘으로 간호원(그 땐 간호원이라고 불렀다)이 되었던 내 사촌 누나가 독일로 가면서 아버지 굶어 죽으실까봐 정부에 아버지를 신고(?)하였고, 결국 어느 3. 1절날 훈장을 받으시고 덕분에 돌아가실 때까지 정부가 배려해 준 자그마한 아파트에서 매달 주시는 지원금을 받으시다가 돌아가시어 지금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에 안장되어 계신다.

2)
우리 아버지는 그런 형과 같은 피를 받아서였는지 독립군이 되어 일선에 나서지는 않으셨지만(아버지의 이야기로는 할머니 할아버지 보살피려고) 일본과 한국에 와 있는 일본인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으로 일본인만 보면 때려주고 괴롭히는 '장군의 아들(영화)'이 되었다.

당시 국민학교 4학년 때 일본도를 차고 수업에 들어와 조선 아이들을 일본식민으로 만들려는 꼴을 못봐주고 소주병으로 일본인 교사 뒷통수를 갈겨(?)주고 그날로 스스로 학교 졸업(자퇴)하여 아버지의 최종학력은 국민학교 4년 중퇴가 되었다.

16
살에 아버지 고향 평북 선천에서 일본 깡패 오야붕을 때려 주고 그 오양붕으로부터 '너 같은 놈 셋 만 있으면 조선독립하겠다'는 말을 들으셨단다. 마치 장군의 아들과 같은 스토리였지만 우리 아버지가 다른 것은 그냥 혼자 그러고 다니셨다는 것이다.

선천 경찰 서장(당연히 일본사람)을 패주고 몽골로 도망하시고, 그곳에서 또 일본 깡패 오야붕을 때려주고, 그 복수를 해 주려고 왔던 일본군 헌병 대위도 때려주고, 우습게 여기던 조선 사람에게 맞은 일본군 헌병 대위가 군도를 들고 다시 집으로 찾아와 목 내놓으라고 소리 칠 때 도망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목을 내 놓으며 치라고 오히려 호통을 치셨는데 그 때 신혼이었던 우리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너희 천황이 이런데 쓰라고 군도를 주었냐?'하셨단다.

무슨 영화 같은데 그 말에 헌병 대위가 감동(?)을 받아 그 날로 아버지와 친구가 되어 오히려 몽골에서 잘 지내셨단다.(이렇게 이야기하면 우리 아버지 친일파로 몰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일본에 대하여 그런 가정배경상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타심 혹은 적개심이 오히려 우리 한국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만큼도 없다. 정말로 없다.

그 이유는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DNA도 당연히 일본, 일본사람하면 물을 것도 없이
따질 것도 없이 'NO, JAPAN'이지만, 난 정말 하나님이 그토록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일본과 일본사람들도 사랑하신다는 그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내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NO, JAPAN'을 버렸다.

일본 여행도 많이 갔고,
몇 년 전에는 친구들이 부부동반에서 대마도 여행도 갔었고,
우리 집에 'MADE IN JAPAN'도 많고
미국 안식년 중 사서 타고 나니다가 한국 들어 올 때 가지고 들어와 타고 있는 자동차도
2007
년에 구입한 토요다 자동차이다.

이번 전쟁 중에는 나도 당연히 'NO, JAPAN' 불매 운동에 참여할 것이지만
이 전쟁만 끝나면
나는 다시 옛날로 돌아갈 것이다.

4)
그러나 나는 한국인이다. 우리 한국이 일본과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는 우리 나라 대한민국의 군인이 되어 우리 나라의 승리를 위하여 일본과 싸울 것이다. 70 다 된 늙은이지만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동원해 우리나라가 일본에 다시 패하지 않고, 저들에게 점령당하지 않고, 지배 당하지 않기 위하여 싸울 것이다.

그 싸움의 일환으로 그 동안 잠잠했던 내 페이스 북에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대한 글을 몇 번에 걸쳐 연재하려고 한다.

이번 전쟁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싸워야 하는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그냥 70년 가까이를 예수 믿으면서 살아 온 삶의 경험을 총 동원하여 그 중요한 질문에 대한 정리를
현장에서 싸우는 이들에게 제공하여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말이다.

내 생각과 주장이 다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생각없이 무조건 감정에만 휩싸여 전쟁을 하면
안 되겠기에 바른 생각과 판단을 위한 참고가 될 수 있다면 또 다시 나와 생각이 다른 분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오해도 받을 수도 있고 그 때문에 한 동안 잠잠하고 조용하고 은혜스럽기만 하던(?) 내 페이스 북이 전쟁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도전하려고 한다.

오늘은 그냥 서론격의 글을 올리는 것으로 끝내려고 한다.
어제 4차 항암 주사를 맞았고 거의 한 두 주간 동안은 체력바닥을 또 체험해야 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연일 연재할 수는 없겠지만, 날마다 기막힌 새벽 방송 하나도 좀 벅차지만, 그래도 있는 힘껏 써 보려고 한다.

그냥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인 것처럼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