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32)낮은 목소리 3부작
감독 변영주(1995·1997·2000년)
32)낮은 목소리 3부작
감독 변영주(1995·1997·2000년)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하며 이들의 투쟁과 잔잔한 일상을 담아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말을 한번 하고 싶소.”
변영주 감독의 1995년 작품 <낮은 목소리 1>에서 인권운동가 김학순은 이렇게 말한다. 영화가 나오기 4년 전인 1991년 김학순의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국제사회에 알려졌다. 역사적 비주체로 간주되었던 ‘할머니들’의 기억과 증언을 기록한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3부작은 그간 국가가 지워온 역사의 한 장을 공론화하며 스스로 쓰는 여성사를 만들어낸 놀라운 작업이었다. 이 영화는 여성 영화인들의 다큐멘터리 집단에서 만들어낸 여성주의 영화였으며, 독립다큐멘터리 최초로 극장 개봉을 이뤄냈다. ‘100피트 회원모집’을 내걸고, 독립영화의 제작 단계부터 관객 참여를 독려해 배급까지 이어지는 마케팅을 시도한 모범 사례라는 성과도 냈다.
카메라의 앞과 뒤에서 변영주 감독은 인권운동가 ‘할머니들’과 수평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일상과 활동을 보여준다. 1편은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한 지 100회를 맞은 1993년의 겨울, 수요시위로 시작한다. 2편은 경기도 광주로 이사한 ‘나눔의 집’을 중심으로 1편 이후 ‘할머니들’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다. 3편에는 전편의 등장인물들이 재배치되면서 그들이 서로에게 묻고 답한다. 카메라는 오랫동안 침묵당한 ‘할머니들’의 낮은 목소리가 발화되어 의미를 지니는 순간을 포착해, 목소리 속 ‘할머니들’의 기억이 관객에게 스며들게 만든다. 잔잔하지만 확고하게, <낮은 목소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민족·젠더·계급을 세 축으로 한 국제적 맥락에 있다는 점을 피력한다.
그 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지속적으로 가시화됐다. 다큐멘터리부터 <귀향>(조정래·2016), <눈길>(이나정·2017),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2017), 그리고 <허스토리>(민규동·2018) 등의 극영화에 이르면, 일본군 ‘위안부’의 스크린 재현은 소녀-할머니의 역사적 주체화, 세대 간 연대의 드라마로 옮겨간다. 역사를 기억하고 오늘을 쇄신하려는 시민들의 시대정신과 밀착해 있는 것이다. 그 시작점, 꼭 기억해야 할 한국영화가 바로 <낮은 목소리>다.
심혜경/영화연구자·중앙대 전임연구원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하며 이들의 투쟁과 잔잔한 일상을 담아냈다.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하며 이들의 투쟁과 잔잔한 일상을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