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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 칼럼 제4083호 /칼빈주의와 청교도 정신 [홍종찬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11. 13. 04:13

창골산 칼럼 제4083호 /칼빈주의와 청교도 정신 |전멜………창골산☆칼럼

봉서방* | 조회 111 |추천 3 |2019.11.04. 06:32 http://cafe.daum.net/cgsbong/1SQR/4403 

창골산 칼럼 제4083호 /칼빈주의와 청교도 정신


제4083호





 

 

 

 

 

  칼빈주의와 청교도 정신

 

 


 

 

 



홍종찬 목사


칼빈주의(Calvinism)는 종교 개혁가 존 칼빈이 주창한 기독교의 사상(성경적 신학사상)으로서 종교 개혁을 통해 체계화되어 개신교의 주요 신학으로 자리잡은 사상적 흐름을 가리킵니다. “칼빈주의”란 칼빈 개인의 사상보다는 후대에 그 사상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발전해 온 데에 있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말합니다. 칼빈주의가 개신교 주류 신학으로 자리 잡아가면서 유럽 각지에 개혁교회(Reformed Church)가 발생되었는데, 이들 개혁교회가 경제, 정치, 문화, 교육, 복지를 포함한 근대 사회를 형성하는데 뿌리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따라서 “칼빈주의”를 개혁주의(改革主義, Reformed tradition, Reformed Protestantism)라고도 표현합니다. 한편 츠빙글리는 말씀을,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례를, 재세례파는 성령의 직접적인 조명을 강조하지만 칼빈주의는 말씀과 성령을 함께(cum verbo)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칭찬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퓨리탄(청교도)이라는 말 역시 비웃고 왕따하며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저것들은 퓨리탄이여!”라는 말은 자기들 끼리 거룩한(성경적) 기독교도를 손가락질하며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청교도는 하나님의 법(말씀)을 따라 살 수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그 대가가 어떤 것이든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웃음 정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중심적 사상을 가진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절대 기준으로 믿고 따랐습니다. 
 

프랑스에서 가톨릭이 위그노(청교도)를 핍박하자 영국, 스코틀란드, 독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지식이었으며 엔지니어들로서 가는 곳에서 많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영국엔 양이 많아 양모가 다량 생산되었지만 방적기계(紡績機械)가 없었습니다. 위그노들은 그들에게 방적기계를 만들어 산업사회를 이끌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최고의 시계를 만들어 냈으며 네덜란드나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이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었던 데에는 최고의 지식인이었으며 최상의 엔지니어들이었기 가능했습니다. 기독교인은 자기가 맡은 각 분야에서 최고의 지식과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청교도는 세 가지 중요한 행동 양식이 있었습니다.
첫째, 청교도는 최고의 기술과 학문을 습득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 최고의 기술과 학문을 습득하여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노동을 통해 현장을 혁신해 나아갔습니다.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노동이 아니라 일생 동안 쌓은 지식과 기술을 축적하여 그 기술을 전수시켰습니다. 그들이 자기 직업에 충실하여 최고의 기술(실력)을 습득하고 최고의 위치에 오르려 한 것은 하나님께 영광돌리고자 함이었습니다.


둘째, 청교도는 부(富)를 축적해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인생의 최고 가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청교도는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더 많은 생산으로 부(富)를 축적해 나갔습니다. 부는 하나님이 주신 이 땅에서의 분복(分福)이기에 빈곤과 결핍은 오히려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욕되게 할 뿐이었습니다. 부(富) 자체보다 부의 축적을 통해 하나님 나라 건설에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인 마요렘 데이 글로리암 in majorem Dei gioriam) 재산을 축적해 갔습니다. 음악의 아버지로 일컫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는 그의 작품들 중에 “농민 칸타타”나 “커피 칸타타”와 같은 세속음악에도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라고 적어 작품을 창작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드러냈습니다.


셋째, 청교도는 덕을 위해 근면 검소한 삶을 살았습니다. 부지런하고 사치하지 않는 근면 검소한 삶을 통해 덕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많은 재산을 축적했지만 여전히 검소한 삶을 살면서 어려운 이웃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돕는가 하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연보했습니다. 이것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섭리적인” 활동이었습니다. 기독교도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개혁교회는 명상을 통해 세계로부터 도피하고자 했던 파스칼이나 내면으로 파고들어 하나님을 체험하고자 했던 루터교적 신앙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파스칼이나 루터교적 방식을 추구하는 교회는 개혁교회가 아닙니다. 이정훈 교수는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이 그들 안에서 ‘작용’(take place)하고 그들이 이것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과 교통한다.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 믿음에서 생겨났음을 안다. 독실한 자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능력을 담은 그릇 또는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라고 느끼고 있는 한 자신이 구원받은 자이고 은혜 안에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리차드 백스터는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고 했으며, 주님은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 25:26)고 책망하셨습니다. 죄성을 지닌 자연인이 덕망 있는 삶을 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이는 마치 작은 그릇이 큰 그릇을 품을 수 없고 유한이 무한을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착한 행실로 예정된 구원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지속적으로 착한 행실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 속에 사는 자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고 그 어떤 착한 일을 행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자는 자신의 삶을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적용하되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기 위해 적체(積滯)되어 있는 믿음의 숙제를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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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자


홍종찬목사(사랑에빚진자)

서울 은평구 갈현2동

아름다운교회

(창골산 칼럼니스트)

jcinjes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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