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수백명의 10대 고등학생들이 학생회 깃발 아래 ‘젠더 평등’ 집회를 열었다. 영어 단어 ‘젠더(gender)’는 사회·정치적 의미의 ‘성(性)’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생물학적 성별인 ‘섹스(sex)’와 구별된다. 학생들은 젊은이들의 정치 집회에서 흔히 불리는 ‘페론의 병사들’을 합창했다. 20세기 후반 대통령을 지낸 후안 페론과 ‘에비타’로 불리는 그의 두번째 부인 에바 페론을 기리는 노래다. 그런데 노랫말이 뭔가 어색했다. 명사는 물론 관사와 형용사까지도 성별이 엄격히 구별되는 국어(스페인어) 문법을 파괴한 신조어로 바꿔 불렀기 때문이다.
스페인어에서 ‘병사’는 남성 명사다. 노랫말의 일부이자 원제는 그 앞에 남성 복수형 정관사를 붙인 ‘로스 솔다도스 데 페론’(Los soldados de Peron)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레스 솔다데스’(Les soldades)라고 바꿔 불렀다. 여성형 관사 ‘라스’(Las)도 아닌 ‘성별 불명’의 낱말을 만든 것이다. 앞서 지난해 아르헨티나의 한 출판사는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를 젠더 중립적 문법 파괴로 바꾼 책을 출판해 화제가 됐다. 남성형 명사로 쓰인 원제 ‘엘 프린시피토’(El Principito)와 여성형 명사 ‘라 프린세사’(La Princesa)를 뒤섞어 <라 프린시페사>(La Principesa)라는 제목을 붙였다. 전 세계 5억7700만명이 쓰는 스페인어 사전에 없는 낱말들이다. 지난해 스페인 왕립 학술원은 ‘젠더 중립적’ 문법 파괴가 “부적절하고 작위적”이라며 회의적인 의견을 냈다.
지난해 아르헨티나의 한 출판사가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스페인어 번역본 제목을 젠더 중립적 문법 파괴로 바꿔 출판한 책(왼쪽)이 원서 번역본과 나란히 놓여 있다. 젠더 중립적 ‘어린 왕자’는 남성형 명사로 쓰인 원제 ‘엘 프린시피토(El Principito)’와 여성형 명사 ‘라 프린세사(La princesa)를 뒤섞은 ‘라 프린시페사(La Principesa)’라는 신조어로 탄생했다.
그러나 유럽 언어 중에선 상대적으로 성 구별이 엄격하지 않은 영어권에서도 남/녀를 차별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은 뚜렷하다. 맨카인드(인류)→휴먼카인드, 체어맨(의장)→체어퍼슨, 맨파워(인력)→스태프 등이 일부 사례다. 지난 9월 미국의 영어사전 ‘메리엄 웹스터’는 3인칭 복수 대명사 ‘데이’(they, 그들)에 “성 정체성이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개인”이라는 새로운 뜻을 보탰다. 그(he) 또는 그녀(she)에 속하지 않는 개인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인정한 것이다.
미국 일간 <워싱턴 포스트>는 최근 ‘모두를 위한 언어’라는 기사에서 이런 사실들을 소개하며, 젠더 중립 언어는 그 탄생지였던 여성운동 안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짚었다. 비양성애자까지 포용하는 언어라는 긍정론, 페미니즘 언어 사용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강조하자는 주장, 굳이 언어 파괴를 한다고 달라질 게 있느냐는 회의론 등이다.
그러나 기존 문법의 파괴를 어느정도 감수하면서까지 젠더 중립적 용어를 쓰려는 노력은 서구 정치권과 학술계에서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12월, 유럽의회는 유럽연합(EU) 법률 제정과 발언 때 되도록 성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자고 촉구하는 가이드북을 만들어 의원들과 관리들에게 배포했다. 프랑스에선 각급 학교 교과서와 정부의 공식 문서에 젠더 중립적 용어를 사용하도록 권장한다. 올해 초에는 프랑스어 사전을 편찬하는 학술단체인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기존의 보수적 태도를 바꿔 “모든 직업 명칭에 여성형을 쓰는 데 원칙적으로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천명했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여배우 엠마 왓슨이 2014년 9월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에서 유엔여성기구 친선대사 자격으로 양성평등을 위한 캠페인 ‘히포쉬(HeForShe)’의 시작을 알리는 연설을 하고 있다.
우리말은 단어 자체에 성별을 부여하진 않는다. 그러나 여성을 가리키는 상당수 낱말들은 남성을 가리키는 상응어와 견줘 더 낮춰보거나 비하하는 말로 오염됐다. 왜곡된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놈-년’, ‘남편-여편네’, ‘사내-계집’,, ‘시댁-처가’ 등이 그렇다. 여류 작가, 여의사, 여비서, 여선생, 여직원 등 직업 앞에 굳이 ‘여성’을 붙이는 것도 많은 경우 꼭 필요한 경우는 드물며, 때론 불편하다.
언어는 ‘사유의 도구’이자 ‘세계의 반영’이다. 새로운 사물·현상의 등장이나 사회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생멸하고 진화하며 언중과 상호작용하기 마련이다. 젠더 중립은 성을 거세하는 중성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성의 구별에서 오는 차별을 없애고 평등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그 언어적 표현이 남/녀 이분법으로는 정의되지 않는 성소수자(LGBTQ)까지 아우르는 ‘포용적 언어(including language)’로 불리는 이유다. 젠더중립적 언어가 작위적 실험이나 말장난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바람직한 ‘창조적 파괴’가 되기를 바란다.
조일준 국제뉴스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