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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우수성] 문화문자로서의 한글 [김병익 칼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12. 13. 16:29

[김병익 칼럼] 문화문자로서의 한글

등록 :2019-10-17 14:14수정 :2019-10-18 13:08


 

한자를 버리고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로 간 문화적 변혁은 거시 권력을 해체하며 진행된 민주화와 이념적 금기를 극복한 정치적 자유와 관련하여 문학사회학자 뤼시앵 골드만의 ‘상동관계’를 연상시킨다. 우리 문자문화와 정치문화의 관계도 이런 시각으로 다시 볼 수 있으리라.
김병익
문학평론가

내키는 대로 읽은 근래의 책들 가운데 내가 참 훌륭한 저작으로 꼽고 싶은 것이 고세훈의 <조지 오웰>과 전치형·홍성욱 공저의 <미래는 오지 않는다>이다.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란 부제가 달린 <조지 오웰>은 내가 <1984년>과 <동물농장>을 번역하고 <오웰과 1984년>을 편역했으면서도 정작 그의 에세이를 읽지 않아, 사회주의자이면서도 반공주의자였던 오웰의 정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한 내 무지를 크게 깨우쳐주었다. ‘과학기술은 어떻게 미래를 독점하는가’라는 질문을 제목에 붙인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미국 과학기술 미래학자들의 환상적인 전망과 유럽 학자들의 비관적 회의 사이에서 혼란에 젖는 내 독학자다운 인식을 잘 정리해주었다. 그런데 이 두 책을 읽으며 다시 받은 느낌은 우리 연구자나 출판 편집자들의 수준이 매우 높아져 우리 저서들이 외국 번역서들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새삼스러운 평가였다.

내가 출판계에서 일하던 30년 전만 해도 전문 연구와 대중 독자를 연결해줄 중간 필자가 드물었고 과학 분야 저자가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어느 사이 내 선입감을 지워줄 좋은 책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 반가운 소감에 이어 시월의 다채로운 한글날 행사들을 보며 다시 떠올린 것이지만, 깊은 전공 연구든 희귀한 주제 소개든 이 책들이 모두 한글 전용으로 표기되고 있다는 묵은 사실들의 새삼스러운 발견이다. 내가 감탄한 앞의 책들을 포함해 오늘의 우리 도서들은 그 주제든 수준이든 가림 없이 한자 혼용은 고사하고 괄호 속 한자 병용도 없이 한글 전용으로 표기되고 있다. 한글은 이미 한 세대 앞서 식자층이 인정하기 두려워한 문화문자 단계에 벌써 올랐고, 깊은 형이상학적 사유나 까다로운 과학적 용어도 한글로 충분히 소통하고 있었다. 고등문자로서의 한글의 위상을 나는 확인한 것이다.


문자로서의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국제적인 공인을 받았다. 내게 온 한 카카오톡 메시지에 따르면 일본 문자가 표기할 수 있는 음이 400개, 한자가 표기할 수 있는 것이 500개인 데 비해 한글이 적을 수 있는 소리가 무려 1만2천개가 된다고 한다. 일본의 디자인 연구자 노마 히데키는 <한글의 탄생>을 통해 한글 자형의 과학적 조형성을 극찬하며 세계적인 ‘보물’이라고 찬탄한 바 있다. 많은 사람이 한글을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기 전에 이미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한글은 소리와 글자 모양의 연상 관계를 뛰어나게 구현했다. 조선조 시대의 서민과 아녀자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않고도 언문을 쓰고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었을 것이다.

내가 세종대왕을 뛰어난 통치자임을 넘어 천재적 인물로 존경하는 것은 이 표음문자에 대한 착상 때문이다. 비록 ‘훈민정음’이라 하여 무지한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한 글자라고 했지만, 한자란 표의문자가 세상을 다스리는 중화문화 세계에서 어떻게 표음문자로 기록과 사용 방법을 만들 착상을 할 수 있었는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표음문자를 개발하기 위해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이 중국을 들락거리며 서역 문자까지 연구하고 그 성과들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지만, 15세기의 통치자가 20세기의 기호학자 소쉬르가 제시한 ‘기표’와 ‘기의’의 분간을 통해 표의문자 시대에 표음문자 제작을 지휘한 것은 천재적인 발상이었다.

무식한 백성과 아녀자들을 위한 문자가 오늘의 문명문자로 발전하기까지 600년이 걸렸다는 데 안타까움이 서리지만, 그 긴 과정을 우리의 무거운 역사가 내리누르고 있어왔다는 점에 우리 문자의 정치사적 의미는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훈민정음 반포에 대한 최만리의 즉각적인 반대는 단순히 정음의 부정일 뿐 아니라 우리가 젖어온 중화체제의 억압이었고 한문만을 문명으로 간주한 지식(양반권력) 사회의 통제였다.

그럼에도 궁중과 양반의 귀부인들과 서민들의 언문 사용은 표음문자로서의 우리글이 지닌 표기력과 소통력을 증명한다. 19세기 서구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성서를 우리 언문으로 옮기고 서민들의 ‘육전소설’이 유통된 것은 우리 현대문학이 한글로 성장할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독닙신문>의 한글판 지면을 만들고 ‘언문’에 ‘한글’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준 주시경 선생은 세종대왕 이후의 우리글 중시조가 될 것이다.(그런데 그의 전기는 60년 전 김윤경의 짧은 기록밖에 안 보인다.) 그의 제자들이 식민 통치에 저항하며 한글 보존이 우리 민족 정체성 확보라는 믿음 속에서 우리 말과 글의 문법 구성, 표준어 사정, 사전 편찬 작업에 진력했고 일본은 민족의 말살을 위해 우리말 사용과 한글 교육을 금지했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한글학자들을 투옥했다. 문자의 기원에 한글처럼 분명한 역사를 가진 경우도 드물고 정치적 문화적 억압을 숱해 받으면서도 버텨내 오히려 당당한 문화문자로 성장한 일은 아마 유일할 것이다.

해방 후 남북의 정부는 아주 자연스럽게 한글을 공영문자로 선택했다. 그러나 북한은 즉각 한글 전용을 시행한 데 반해 남은 교과서 외의 도서 잡지 신문은 한글·한자 혼용을 택해왔다. 한글이 형이상학이나 현대 문명을 서술하는 데 미숙하고 문장·어휘 파악에 비효율적이란 기존의 관념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한글 세대가 등장하고 기성 사회로 편입된 1970년대 이후 한자 사용을 자제하고 가로쓰기를 한 계간지, 전공 논문과 저술에서 학술 용어를 한글로 옮겨 표기한 사학자 손보기, 철학자 이규호, 특히 표기뿐 아니라 어휘 자체까지 한글화를 유도하며 잡지 문장을 우리 말과 체로 쓴 한창기의 월간 <뿌리 깊은 나무>가 준 영향이 컸다. 이즈음부터 한글 전용은 일반 도서에 급격하게 퍼지고 마침내 이 추세에 완강하게 맞서던 신문마저 한글 홀로쓰기와 가로쓰기의 혁명적인 문자체제 변혁을 받아들인다.

한 세대 동안 이루어진 이 거대한 문화적 변혁은 한글 상용에 따라 한자는 서구어에서의 라틴어처럼 저절로 어원의 자리로 후퇴하고 글 소리에 말뜻이 따르도록 해서, 한글을 관계사에서 실사로 높였다. 또 가령 ‘생’ 대신 ‘삶’으로 개념어를 우리말로 바꾸고 동사 형용사를 ‘-기’ ‘-ㅁ’으로 명사화하고 ‘혼밥’의 ‘혼’처럼 표음의 표의화 효과가 일구어졌다. 가로쓰기와 한글의 특성인 자모 합성이 컴퓨터 프로토콜에 희한하게 어울려 문명문자로 더욱 비약하게 된다. 한자를 버리고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로 간 문화적 변혁은 거시 권력을 해체하며 진행된 민주화와 이념적 금기를 극복한 정치적 자유와 관련하여 문학사회학자 뤼시앵 골드만의 ‘상동관계’를 연상시킨다. 우리 문자문화와 정치문화의 관계도 이런 시각으로 다시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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