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에 예수님을 묵상한다.-칼럼 소설, 콩트, 에세이, 칼럼
대림절에 예수님의 오심을 묵상한다. 주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처음 선포한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말씀이었다. 그분은 육신을 입고 지상에 오셨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속하지 않고 천국에 속한 분이었다. 첫째 그분은 많은 천국 복음을 전했지만, 말씀을 전할 일정한 집이 없었다. 지금처럼 교회가 없었다. 신앙 좋은 교인들을 모아 놓고 음악 목사가 예비 찬양과 기도로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게 받을 마음 준비를 시킨 뒤 설교자가 나타나면 강대상을 맡긴다.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그보다 최상의 여건을 갖춘 장소가 어디 있겠는가? 그는 지금처럼 교인들을 전도해서 교회로 데려오라 하지 않았다. 어부들을 불러 제자 삼고, 둘씩 둘씩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며 세상에 내보냈다. 제자들은 나가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를 고쳤다. 불러드리지 않고 내보냈다. 둘째 그는 호화로운 목사관이 없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말씀했다. 스스로 사마리아 우물가의 죄 많은 여인에게 찾아가 쉬운 대화로 여인에게 자기가 선지자가 아니고 메시아인 것을 깨닫게 했다. 예수를 보고 싶어 뽕나무에 오른 삭개오를 부르시고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겠다.”라고 말하며 그 가정에 유하며 가족을 구원했다. 셋째 그는 지상에서 천국에 속한 삶을 사는 육체를 입은 인간의 본을 보이셨다. 경전을 지식으로 그렇게 잘 알고 율법을 지키며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이라고 담대히 꾸중했다. 그러나 그들은 죄에서 돌아서지 않고 예언한 대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주님은 돌아가시면서도 저들의 죄를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은 것이다. 1970년 초 나는 미국에 유학생으로 가면서 그 지역에서 이민 교회를 맡은 송 목사를 찾았다. 그분은 내가 봉직하고 있던 고등학교의 교목이었다. 그는 연락이 오면 공항에 가서 손님을 데려오고, 오갈 데 없는 유학생에게는 임시 숙소를 제공했다. 영어가 서툰 사람이 차 사고를 내면 좇아가 도와주곤… 하느라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어린애 둘을 교인 집에서 놀라고 말하고 심방을 가면 늦게까지 귀가하지 못해 애들은 집 앞에 쭈그려 앉아 기다리기 일쑤였다. 교인들은 애들이 가련해 크리스마스 때나 명절에 쇼핑하러 가면 자기 애들 옷과 함께 꼭 그들의 옷과 장난감도 사주곤 했다. 그는 너무 과로해 병원에 입원해 간암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는 오하이오주에서 부흥회를 하고 돌아와 정기 당회를 주관했다. 장로 장립이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로 장립식이 시작되는 오후 3시 진통제를 맞고 장립식을 끝낸 뒤 오후 6시에 입원했다. 간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알려져 큰 병원으로 옮겼으나 간암으로 얼마 못 가 세상을 떠나셨다. 부흥회 사례비는 봉투도 뜯지 못하고 그대로 있는 체였다. 후에 이 돈은 프린스턴 신학대학에 한인 목회자 후원기금으로 보내졌다. 그분은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다 돌아가신 분이다. 예수님은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라고 하셨다. 그리고 오순절에 모인 자들에게 성령을 주셨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본향으로 천국의 시민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자기를 죽이라고까지 하는 모든 모욕을 이기고 소망의 인내로 재림을 기다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세대에는 성경을 풀어 잘 가르쳐 주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사는 본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대림절에 지상의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천국 시민으로 살지 못하는 나를 생각한다.
|
'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윈스턴 처칠의 유머 하나 (0) | 2019.12.25 |
---|---|
송용필 목사를 찾아온 플로리다 가족들-크리스찬연합신문(2019.10.25.) (0) | 2019.12.24 |
독자가 없는 기독교문학-기독교 문학의 방향 (0) | 2019.12.13 |
나의 발자국-오영재(1990) (0) | 2019.11.15 |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 -나의 문학, 나의 신앙 (0) | 2019.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