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변하는 것들이 있다. 먹거리에 대한 취향도 그중 하나이다. 특히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음식에 자연스럽게 젓가락이 가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콩을 싫어했던 터라 콩이 주된 재료인 음식은 늘 별로였고, 이 습관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특유의 냄새까지 있어 질색이던 청국장에 대한 선호는 나이가 들면서 시나브로 바뀌었다. 그 결과 이제는 식당에 가서도 청국장을 심심치 않게 주문하곤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음식 취향이 극적으로 변한 사례는 뭐니 뭐니 해도 누리대에 대한 입맛 변화가 압권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을까 ‘누리대’는 강원 지역 사투리로 표준말로는 ‘누룩치’라고 한다는데, 주로 강원도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산나물의 일종이다.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것의 향과 맛은 약간 비릿하면서 쌉싸름하다. 굳이 비유하자면 요즘 야채샐러드의 재료로 많이 쓰이는 셀러리(celery)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향과 맛의 강도는 그보다 강하다. 이런 까닭에 어렸을 때부터 이 나물이 밥상에 올라와도 특유의 역한 향과 맛 때문에 절대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조화인지 근래 들어 이 누리대에 대한 생각을 머리에 떠올리면 입안에 슬그머니 침이 고인다.
몇 가지 설명이 가능할 듯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혹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입맛이 변했다든가, 좋아했든 싫어했든 자식들은 어렸을 때의 어머니 음식맛으로 언젠가는 회귀하게 되어 있다는 식의 해석이 그런 것들이다. 말을 만들자면, 마더텅(Mother tongue: 모국어)에 버금가는 ‘마더테이스트(Mother taste: 어머니의 손맛)’의 강고함인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설명하든 불변의 사실이 하나 있다. 이 변화는 누리대가 아니라 내가 변한 결과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뜬금없는 철학적 질문을 하나 던질 수 있을 법도 하다. 누리대를 싫어하던 예전의 나와 그것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는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같다면 그것은 또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하룻밤에도 기와집 열두 채를 지었다 허물었다 하는 것이 ‘생각’이라는 놈의 속성이니 거기서 일관성을 찾기도 그렇고, 우리 ‘몸’이라는 것 또한 구성 세포가 짧게는 14일 길게는 6개월이면 전혀 새로운 것으로 교체된다고 하니 여기서 나의 불변함을 찾는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기는 마찬가지일 듯하다. 내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것이 나다 며칠 전 우리시대의 낭만가객 최백호의 콘서트를 다녀왔다. 여전히 명불허전인 노래도 노래였지만 사이사이 간주처럼 풀어놓는 이야기도 그에 못지않게 여운을 안겼다. 올해 칠십이 된 것을 자축하며 ‘7 seven’이라는 타이틀로 순회공연 중인 그는, 사주를 보니 구십여덟까지 산다고 하더라면서 구십까지 노래를 할 것이라 말했다. 그런데 그 말에서 너스레보다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가수 인생에서 나름 변곡점을 이룬 곡으로 데뷔곡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와 중흥기를 가져다준 〈낭만에 대하여〉 두 곡을 꼽았다. 그러면서 〈낭만에 대하여〉는 마흔다섯에 만들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서른다섯 때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노래였다고 했다. 그러니 팔십에는 팔십에 가야 나올 수 있는 노래가 있을 것이고 구십에는 또 그 나이에 도달해야 나올 수 있는 노래가 있을 터이니, 구십까지 노래하는 것이 뭐 어려울 게 있겠느냐는 이야기였다.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누리대 무침에 슬며시 젓가락이 가리라고는 나 역시 오십 줄까지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최백호’라는 변치않는 개성이 있어 이십대에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작곡하고 사십대에 또 〈낭만에 대하여〉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노래들이 이십대의 ‘최백호’와 사십대의 ‘최백호’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성싶다. ‘내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것이 나’라는 오래된 가르침이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고정되어 있는 ‘세상’은 없어 언제부턴가 청춘들이 너무 쉽게 삶을 버린다. 특히 또래에게 영향력이 큰 젊은 연예계 스타들의 극단적 선택들이 잊힐 만하면 뉴스를 탄다. 해가 바뀌는 세밑이 되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한 해를 반추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올해에는 이 때문에 그 돌아봄의 결이 많이 다르다. 우리사회의 청춘들이 스스로 삶을 저버리는 일들이 그냥 혀 한 번 차고 말던 예전과 다르게 마음에 체기(滯氣)를 이루는 경우가 잦아서이다.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있고, 내 아이들이 비슷한 연배를 살고 있어 남의 일 같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그들이 그런 선택을 방관해온 ‘꼰대’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비록 싸구려 감정팔이일망정 미안한 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나 때는 말이야’라는 식의 잔소리로 들릴지라도, 그들에게 이런 말은 꼭 하고 싶다. 자신을 상수(常數)로 여기지 말라고. 상수인 삶은 없다. 삶은 언제나 변수(變數)일 뿐이다. 〈낭만에 대하여〉를 작곡해낼 수 있는 감성이 사십 이전의 ‘최백호’에게는 결코 깃들 수 없었던 것처럼.
세상은 바뀌지 않을지 몰라도 그 세상을 보는 삶들이 바뀌고, 그러면 마술처럼 요지부동일 듯싶던 세상도 종내는 바뀐다. 그러니까 부디 지금의 상황을 고정시켜 절대시하고 조급해하거나 낙담하지 말기를 권한다. 비록 ‘세상’은 꿈쩍없더라도 이십대에는 이십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삼십대에는 삼십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오십대는 오십대, 칠십대는 칠십대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오리-토끼 그림’에 정답이 없듯이, 누구에게나 모든 세대에게나 똑같이 보이는 세상이란 없다. 그나저나 해 하나 바뀌는 걸 가지고 이렇게 상념이 많아지는 걸 보니 나이가 들어가기는 가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새해에는 부디, 모두 적어도 한 뼘만큼은 변하고 그래서 또 그만큼 더 행복해지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