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수 한 번 따져봅시다-문정일 장로 듣고 싶은 말씀 보고 싶은 그림
문정일교수의 『생활산책』 (18) 촌수 한 번 따져봅시다
새해 경자년(庚子年)에는 양력설과 음력설이 모두 1월 달에 들어있다. 설 명절이 되면 일가친척들이 모이는 기회가 많아지게 되고 피차간에, 그리고 자녀들에게 어른들을 소개하는 기회가 생기게 되면서 서로간의 촌수를 따지게 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 문화이다. "나는 구태여 한자용어로 된 칭호나 촌수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고집(?)을 부리는 젊은 부모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르신네들이 말씀하시는 촌수의 뜻을 알고 있어야 자녀들에게도 서로간의 관계를 설명해 줄 수가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촌수를 따지는 것이 필수불가결의 문화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분은 나의 '육촌 형'인가 '칠촌 형'이 되십니다."라고 말한다면 촌수에 관한 한, 그는 어르신들에게 무식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촌수를 따질 때, 홀수(3촌, 5촌, 7촌...)는 '숙질간'(叔姪間: 아저씨와 조카사이)이고, 짝수(4촌, 6촌, 8촌...)는 '형제간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리상으로 '38촌형(짝수)'은 존재할 수 있으나 '49촌형(홀수)'은 있을 수 없으며 '55촌(홀수) 아저씨'는 있을 수 있으나 '68촌(짝수) 아저씨'는 존재하지 않는다. 1960~70년대에 유행하던 은어(隱語) 가운데 '애인'을 가리켜 '오촌오빠'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오촌'이면 '숙질간'이 되어 '아저씨-조카 사이'의 촌수이므로 '오촌오빠'라고 하면 '오빠'치고는 매우 '이상한(?) 오빠'가 된다. 그러니까 사실은 '오빠'가 아니고 '애인'의 별칭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애교와 재치가 넘치는 은어가 아닐 수 없다. 촌수에 익숙지 않은 젊은 분들을 위해 '촌수'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 몇 가지만 언급하려 한다. '종(從)'자가 붙는 것은 '4촌'을 말하며 '당(堂)'자가 붙는 것은 '5촌'을 뜻한다. 따라서 '종형(從兄)'은 '4촌형'이요, '재종형(再從兄)'은 '6촌형'이며 '삼종형(三從兄)'은 '8촌형'이 되고 '외종형(外從兄)'은 '외사촌형'을 말한다. 그래서 '4촌 동생,' '6촌 동생,' '8촌 동생,'이 각각 ''종제(從弟),' '재종제,' '삼종제'가 되고 외사촌 동생'이 '외종제'가 됨은 말 할 나위도 없다. '당숙(堂叔)'은 '5촌 아저씨'이고 '재당숙(再堂叔)'은 '7촌 아저씨'를 뜻한다. 누님의 자녀는 나에게 '생질(甥姪)'이 되며 '생질'에게 나는 '외삼촌[외숙]'이 되고 나의 '5촌 아저씨'인 '당숙(堂叔)'에게 나는 '당질(堂姪: 5촌 조카)'이 된다. '칠촌 조카'는 '재당질'이 됨은 물론이다. 나의 '외삼촌의 아들'은 나에게 '외사촌'이 되고 나는 '외사촌'에게 '고종사촌(고모의 아들)'이 된다. 이때 '외사촌'과 '고종사촌'을 한데 묶어 "내외종간(內外從間)"이라고 말한다. 한 여인이 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면 신랑과 얽힌 사람들과의 호칭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남편의 형은 시숙(媤叔) 또는 아주버님이 되고 시숙의 아내는 큰동서 또는 형님으로 칭한다. 손위 시누이는 형님이 되며 손위 시누이 남편은 아주버님으로 부른다. 시동생의 아내는 동서이고 시동생은 결혼 전에는 도련님이지만 결혼하고 나면 서방님이 된다. 손아래 시누이는 아가씨이고 아가씨 남편도 서방님으로 칭한다. '부인(夫人)'이란 말은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므로 '자신의 아내'를 '제 부인'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말이다. 아내를 ‘와이프’라고 칭하는 것도 웃어른에게는 귀에 거슬리기 쉽다. ‘내자(內子)’라는 옛말이 있지만 ‘아내’나 ‘집사람’ 정도로 칭하는 게 좋다. '영부인(令夫人)'은 '대통령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지만 원래 '남의 아내'가 '영부인'이다. 예전 청첩장에 쓰던 '동영부인(同令夫人)'이란 말은 ‘부부동반’을 이르는 말이다. '남의 아들'은 영식(令息)'이나 '영윤(令胤)'으로 부르고 남의 딸은 '영애(令愛)' 또는 영양(令孃)이라 칭한다. 이런 용어가 요즈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지만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경우에는 젊은 사람들도 그 용어의 뜻을 알아들을 수는 있어야 한다. '촌수문화'를 강조하는 취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촌수를 제대로 공부하자면 삼당(三黨)인 부당(父黨=아버지 쪽 일가), 모당(母黨=어머니 쪽 일가), 그리고 처당(妻黨=처가 쪽 일가)을 세별(細別)해서 공부해야 하지만 우선 이상에서 언급한 정도만 알아도 촌수와 호칭에 관한 한, 무지의 극치수준은 모면할 수 있다고 본다.
대전 성지교회 장로, 목원대학 은퇴교수 2020년 1월 16일 김천일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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