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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공소장 살펴보니…청와대,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 정황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2. 8. 03:37

‘비공개’ 공소장 살펴보니…청와대,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 정황

등록 :2020-02-07 17:29수정 :2020-02-07 17:48

 

‘청와대 선거개입·하명수사’ 사건 71쪽 공소장 보니
송철호, 황운하 울산청장에 ‘김기현 수사해달라’
백원우, 첩보문건 전달하면서 ‘경찰이 밍기적거려’
청와대, 지방선거 전까지 수사상황 18차례 보고받아
‘산재모 병원’ 예타 결과 발표, 송철호 부탁으로 늦춰져
한병도, 임동호에 ‘출마 말고 공기업 사장 등으로 가라’
청와대. <한겨레> 자료사진
청와대. <한겨레> 자료사진

“2018년 6월13일 실시 예정이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즈음하여, 현 정부와 여권에서는 지방 권력을 교체함으로써 국정수행의 동력을 확보하고자 하였고,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전직 대통령의 탄핵 등으로 촉발된 적폐청산 기조를 지방까지 확산시키고자 하였다.”

7일 <동아일보>가 공개한 ‘청와대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에 대한 경찰수사와 송철호 당시 후보와 청와대의 교류가 ‘선거개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는 검찰의 시각이 분명히 드러난다. 71쪽 분량에 이르는 공소장에서 검찰은 ‘지방선거 승리의 바로미터’였던 경합지 울산에서 송철호 당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의 각 기능들이 전방위로 움직였다며, 그 정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30일 오후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검찰의 불구속 기소 결정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송철호 울산시장이 30일 오후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검찰의 불구속 기소 결정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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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 황운하에 “김기현 수사해달라”…송병기는 청와대에 ‘김기현 첩보’ 전달

검찰은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 사건의 시작점을 송병기 경제부시장 등이 송철호 울산시장을 지원하기 위해 ‘공업탑 기획위원회’를 구성한 2017년 8월로 잡았다. 검찰은 송 시장과 송 부시장이 이때부터 ‘토착비리에 대한 적폐청산’이라는 ‘네거티브 선거전략’을 수립하고,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과 관련 비위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공소장의 내용을 보면, 송 시장은 2017년 9월20일 울산의 한 식당에서 황운하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을 만나 ‘김기현 관련 수사를 적극적으로 해달라’는 취지로 ‘수사청탁’을 했다고 한다.

같은 달 하순께, 송병기 부시장은 문해주 당시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에게 먼저 전화해 ‘김기현 울산시장 측근 비리에 대한 경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다’고 했고, 문 행정관은 ‘김 시장과 주변인물들의 비리를 문서로 정리해달라’는 취지로 답하였다고 한다. 이에 송 부시장은 비위 의혹 등을 정리해 ‘울산광역시장 비리개요’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해 문 행정관에게 전자우편을 통해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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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우, 박형철에게 “경찰이 (김기현 측근 수사) 밍기적 거린다. 엄정 수사하게 해달라”

문 행정관은 송 부시장으로부터 받은 문건을 ‘첩보문건’으로 재가공했다. 지난해 12월 청와대가 “첩보문건에 추가한 비위 사실은 없다”고 해명한 것과 달리, 검찰은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첨삭’이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검찰에 따르면, 문 행정관은 송 부시장에게 수차례 연락해 문건에 기재된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고, 수사에 들어갈 경우 먼저 접촉해야할 인물이나 수사 방법 등을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골프를 쳤다’는 본래 제보문건 내용이 ‘골프접대를 받고 금품을 수수했다’는 단정적인 톤으로 바뀌었고, 반대로 경찰 수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제보 내용들은 삭제되었다. 또 문건에는 ‘레미콘업체 대표, ㄱ아파트 공사현장 소장을 통하면 의혹 확인 가능’하다가거나 ‘울산청 지수대가 고소인 반발로 최근에야 수사에 적극성을 보인다’는 등 수사의 방향을 제시하는 듯한 내용도 추가되었다.

이렇게 재가공을 거친 ‘지방자치단체장(울산광역시장 김기현) 비리의혹’ 문건은 ‘이광철 선임행정관(현재 민정비서관)->백원우 민정비서관->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을 거쳐 경찰로 이첩되었다. 특히 검찰은 백 비서관이 박 비서관에게 이 첩보문건을 직접 건네면서 ‘첩보서 내용이 울산지역에서 파다한 이야기인데, 경찰이 밍기적거리는 것 같다. 이것 좀 엄정하게 수사 좀 받게 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설명했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 수사관의 빈소 조문을 마친 후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 수사관의 빈소 조문을 마친 후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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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지방선거 직전까지 수사상황 18차례 보고받아

이후 청와대가 경찰의 ‘김기현 측근’ 수사 상황을 지속적으로 보고받았을 뿐 아니라, 민정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을 울산에 내려 보내 수사상황을 직접 챙기고,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이 청구하도록 독려까지 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민정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은 2018년 1월11일께 울산으로 직접 내려가 황운하 청장과 당시 울산청 수사과장을 만나 울산청의 각종 수사상황을 확인했다. 또 반부패비서관실 소속 연락관은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연락해 ‘청와대 하달 첩보에 대한 수사 상황을 파악해 보고해달라’고 지시했고, 이에 경찰은 반부패비서관실, 민정비서관실, 국정기획상황실 등에 2018년 2월부터 6월 지방선거 직전까지 수사상황을 18차례에 걸쳐 보고했다고 한다. 경찰의 보고 내용에는 수사진행 경과나 피조사자들의 진술, 영장 신청 일정 등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특히 공소장에는 백원우 민정비서관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을 통해 직접 수사상황에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백 비서관은 2018년 2월~3월 무렵 박 비서관에게 ‘울산 지역 경찰들이 검찰에서 영장을 무리하게 기각해서 수사를 진행하는데 불만이 많다’면서 ‘경찰 수사를 도와달라’는 취지를 울산지방검찰청 관계자에게 전해달라고 요청했고, 박 비서관은 실제로 울산지검 관계자에게 백 비서관의 말을 전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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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 청와대 행정관에 “공공병원 준비해야 하니 산재모 예타결과 발표 늦춰달라”

검찰은 김기현 울산시장의 주요 공약이었던 ‘산재모 병원’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발표가 늦춰진 배경에도 송철호 시장쪽의 ‘청탁’이 있었다고 보았다.

공소장에 따르면, 송철호 시장과 송병기 부시장은 2017년 10월11일께 청와대 인근 식당에서 장환석 당시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만나 산재모 병원의 예타 통과 가능성을 물었다. 이에 장 비서관은 ‘산재모 병원은 예타를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므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공공병원을 추진하는 게 더 낫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이에 송 시장은 장 행정관에게 ‘공공병원 공약이 구체적으로 수립될 때까지 산재모 병원에 대한 예타 결과 발표를 연기해달라’고 부탁했고, 장 행정관은 이를 수락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송 시장은 그 직후 청와대를 방문해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에게도 같은 취지의 부탁을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산재모 병원의 예타 탈락 결과는 2018년 6월 지방선거 직전에 5월에 발표되었다. 그 사이 송 시장은 장 행정관으로부터 제공받은 정보를 토대로 공공병원 공약을 수립했고, 같은해 4월 ‘산재모 병원이 아닌 울산형 공공병원 설립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임동호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전 최고위원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의혹 수사와 관련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 앞에서 외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임동호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전 최고위원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의혹 수사와 관련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 앞에서 외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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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도 정무수석, 송철호 경쟁자에게 “울산 출마하지 말고 다른 자리로” 권유

공소장에는 한병도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송철호 시장의 당내경선 경쟁자였던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게 선거 불출마를 대가로 ‘다른 자리’를 권한 정황도 자세히 담겼다.

공소장을 보면, 임 전 위원은 2017년 6월 더불어민주당 내 이른바 ‘86학번 모임’의 저녁 자리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에게 ‘최고위원이 끝나면 오사카 총영사 자리로 가면 좋겠다’고 했고, 같은해 10월에는 송철호 캠프 쪽에도 ‘오사카 총영사·과기부 차관·상위 10대 공공기관장 등을 원하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또 임 전 위원은 2018년 1월 하순께 청와대를 방문해 한병도 수석에게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문의했고, 한 수석은 ‘오사카 총영사는 외교부가 반발하니 고베 총영사나 공공기관장은 어떠냐’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임 전 위원이 울산시장 출마를 강행하자, 출마선언 기자회견 하루 전날인 2018년 2월12일 한 수석이 임 전 위원에게 전화해 ‘울산에서는 어차피 이기기 어려우니, 공기업 사장 등 4자리 중에 하나를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또 한 수석의 지시로 인사수석비서관실 선임행정관도 임 전 위원에게 ‘어느 자리로 가고 싶은지 알려달라’고 전화를 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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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대통령이나 보좌 공무원에게는 선거에서 특별히 정치적 중립성 요구돼” 적시

검찰은 공소장에서 별도의 분량을 할애해 ‘선거에 있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강조하고 ‘대통령’을 언급하기도 했다.

검찰은 “국가기관이나 공무원이 스스로를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세력과 동일시하거나 특정 정당이나 특정후보자의 편에서 선거에 유리하거나 불리하도록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검찰은 “특히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다른 공무원보다도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