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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부자들 상담소] n번방, 언제까지 가해자 이야기만? / 윤희우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17. 06:06

[뇌부자들 상담소] n번방, 언제까지 가해자 이야기만? / 윤희우

등록 :2020-04-15 16:39수정 :2020-04-16 13:10

 

윤희우 ㅣ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디지털 성범죄 박사방 사건의 피의자 조주빈의 신상이 공개되고 악랄한 범죄 수법이 드러나면서 “사이코패스다” “(그렇지 않고) 돈을 노린 범죄자일 뿐이다” 같은 성향 분석 이야기도 들린다. 범죄를 저지른 통로인 텔레그램의 박사방 가입자 수가 최대 1만명이 넘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입자도 모두 공개하고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는 정치권 인사가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소문과 비방이 떠돌면서 사람들의 이목이 가해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수십명이나 되는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치료비와 생활비 등을 지원해준다는 발표에 ‘왜 국가 세금으로 지원을 해줘야 하나’라는 주장도 있고, 오히려 피해자를 모욕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해서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입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지금 누구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피해자들일 텐데 그들에 대한 관심과 도움이 너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성범죄 피해자들이 겪을 수 있는 큰 후유증 중 하나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사고나 폭력, 또는 성폭행 같은 극심한 정신적 외상을 경험한 뒤 발생하는 다양한 심리적 반응을 포함한다. 그런 외상이 지나갔는데도 계속해서 사건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는 재경험 증상, 외상을 겪은 장소나 외상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을 멀리하는 회피 증상, 자신과 타인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지 감정 증상, 심한 외상 이후에 항상 위험에 처한 것처럼 조마조마하고 경계를 하는 과각성 증상이 특징이다. 이런 증상들이 사건 이후 1개월 이상 지속될 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할 수 있다.

 

“직장에서 또 일이 있었어요. 회의 도중에 한 사람이 회의 자료를 남겨야 된다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겠다고 하는 거예요. 당연한 일인 것뿐인데 갑자기 그 뒤로 긴장이 되어서 숨이 탁 차고 식은땀이 나면서 도저히 회의에 집중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요?” 벌써 1년도 더 전에 호감을 갖고 만나던 남자가 촬영한 동영상으로 자신을 협박하고 돈을 요구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당한 ㅇ씨의 이야기다. ㅇ씨는 신고하면 영상을 퍼뜨린다는 위협에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서 신고를 했고, 다행히 가해자를 빨리 잡아 파일을 모두 삭제할 수 있었고 더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혹시나 파일이 남아 있으면 어쩌지, 연락처도 사는 곳도 아는데 보복을 당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 때문에 한참을 두려움에 떨었고, 아직도 완전한 안전이 보장된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카메라만 보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가 받을 처벌에 비해 피해자가 입을 수 있는 상처가 너무나도 큰 디지털 성범죄. 이번 사건에서도 아직 가해자들이 모두 잡히지 않았기에 피해자들이 겪고 있을 두려움, 불안이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피해자가 74명이나 된다고 알려졌지만 아직까지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는 20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 수십명의 피해자 중 보복이나 2차 피해가 두려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제법 될 것이다. 그들을 보호하고 돕기 위해 연관 기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해자들을 모두 체포하고 자료를 삭제하는 것은 당연하고, 엄중한 처벌을 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 어떤 이유로 범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식의 서사 대상으로 삼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신체적, 정신적 치료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단지 피해자의 치료와 생계를 위해 얼마의 액수만큼 지원한다는 약속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안전 보장과 치료 시설로 연계될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 아직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안심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연재n번방 성착취 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