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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부자들 상담소] 서로에게 서로가 줄이 될 때 / 김지용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17. 06:23

[뇌부자들 상담소] 서로에게 서로가 줄이 될 때 / 김지용

등록 :2020-03-25 18:34수정 :2020-03-26 02:41

 

김지용 ㅣ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전세계에서 손꼽히게 높다. 이젠 국민 상식이 된 이 슬픈 사실은, 언제부터 그랬던 것일까? 정답은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때이다. 아이엠에프 직후 자살률 증가폭이 40%를 기록할 정도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렇게 한차례 폭발적으로 늘어난 자살률은 지금까지도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더 증가하여 결국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사회 또한 마치 한 사람처럼 환경의 변화나 사건에 의해 전반적 심리가 특정한 방향으로 흐른다. 위기를 겪고 난 뒤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 다르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전보다 더 튼튼한 마음을 갖게 되는 사람도 있지만, 너무 큰 상처에 기초까지 흔들린 나머지 예전이라면 견뎠을 위기에도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아이엠에프 이후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이전으로 돌아가기는커녕 계속해 증가해온 자살률을 보면, 아무래도 우리 사회는 후자 쪽에 가까운 상태인 것 같다.

 

지난 아이엠에프 사태를 언급한 것은, 최근 진료실에서 이때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에 전염병의 공포만 던져준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경제적 이유로 생존 자체의 걱정에 사로잡히며, 과거 아이엠에프 당시의 공포를 떠올리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짐에 따라 초창기의 주된 감정이었던 불안에 이어 점차 우울감이 사회 속에 번져가는 것이 느껴진다.

 

과거 경제 위기들 속에 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했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자살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무망감이다. 현재의 어려움뿐 아니라 앞으로도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이 우울한 기간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때, 정말 다른 길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

 

그리고 요즘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에서 무망감의 초기 흔적들이 보인다. “언제쯤 끝날까요? 지금이야 겨우 어떻게 버티고 있는데,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고 불안하네요.”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할 수 없음에 나 역시 답답하고 안타깝다. 요즘 뉴스들, 그리고 진료실에서 만나는 소상공인들의 말들은 정말 큰 걱정이 들게 만든다. 우리 사회가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 이겨내더라도 와중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진 않을까? 아이엠에프 때의 일들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자살률이 여기서 더 급증하게 된다면, 대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과거가 반복되는 것 같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분명히 보이는 건, 그래도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도 모두에게 생소했을 심리 방역에 대한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들리고, 뉴스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심리 방역엔 여러 내용이 있지만, 그중에서 오늘 글에 소개하고 싶은 것은 이럴 때일수록 남을 돕는 활동이 자신을 지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큰 활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들 마음에 여유가 없겠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을 조금 더 둘러보았으면 좋겠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에게 대화를 시도해봤으면 좋겠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에게 잘 지내는지, 힘들진 않은지, 그냥 생각나서 연락해봤다고 말 한마디 건네면 좋겠다. 괜찮은 얼굴로 웃고 있어도 속마음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대했으면 좋겠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이들과 대화를 할 때엔 꼭 묻는다. 어떻게 그 선을 넘어가지 않았냐고. 안 보이던 희망을 발견하고 돌아온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 마음속에서 이어진 끈 때문에 멈춰질 수 있었다. 그래도 날 걱정하고 생각해주는 누군가가 떠올라서 더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분명한 위기 상황이다. 여태껏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큰 위기일지도 모른다. 이 위기 속에 적지 않은 이들이 삶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떠내려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던지는 작은 위로의 말 한마디들이 보이지 않는 줄로 작용한다면, 그 줄의 수가 많고 강해진다면, 죽음으로 넘어가는 이들을 다시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지금보다 더 아낄 줄 아는 사회가 되기를. 그리하여 아이엠에프 때와는 다른 결말을 우리가 보게 되기를 기원한다.

 

연재뇌부자들 상담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34198.html#csidxe709543c56dc500b96c92ca06a0bb7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