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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천 칼럼] 코로나 위기, 거대한 전환과 한국의 기회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25. 04:02

[이병천 칼럼] 코로나 위기, 거대한 전환과 한국의 기회

등록 :2020-04-23 18:22수정 :2020-04-24 14:28

 

재벌과 밀월 행각을 벌인, 규율 고삐 잃은 연성민주정부 아래 기재부가 경제위기 대응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코로나 위기 이전의 안이한 정책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질본 모델’을 더 확장해 참여적 조정시장과 복지연대를 결합함으로써 경제위기 대응과 방역 두 전선 모두에서 정의로운 회복을 실현해야 한다.

 

위기는 우리가 어떻게 비정상적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깨닫게 해준다. 코로나 위기는 성찰과 전환의 계기다. 코로나 위기 이전은 잊어야 한다. 코로나 4중 복합위기(의료보건·경제·세계화·생태 위기)가 묻고 있다. 한 사회, 전세계의 근원적 회복력과 발전의 의미에 대해. 어떻게 해야 강력한 회복력을 가지면서 정의로운 사회·경제·생태적 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까? 이미 초세계화·초연결체제는 무너졌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고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국제공조가 절실하다. 하지만 이제 초세계화는 겸손을 배워야 한다. 더 얕아져야 한다. 자유시장주의를 글로벌 표준인 양 올려세운 독단도, 그 맹목적 추종도 끝장을 내야 한다. 세계화와 국민국가적 조정은 새 균형을 찾아야 한다.

 

같은 위기라 해도 해당 사회가 처한 조건과 맥락에 따라 위기 대응 방식은 다르다. 어떤 사회는 새로운 사회적, 생태적 혁신의 높은 길을 선도적으로 창조할 수 있다. 또 어떤 사회는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대처로 위기 늪에 빠져 허우적댈 수 있다. 그 사이에 여러 중간적 길이 열려 있다. 코로나 위기라는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새로운 위기 극복 역량은 자연스레 나오지 않는다. 민주적, 생태적 대항 역량이 미약하면 기성의 지배적 관성력이나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적 돌출력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은 코로나 위기 속 이중운동(폴라니)의 다양한 양상으로 향한다.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퍼진 지 수개월이 된 지금 상황은 초기와는 다소 다르다. 유럽의 상당수 나라에서 확산세가 둔화되어 코로나 곡선이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봉쇄 조치도 서서히 완화하고 있다. 초기 방역에 실패했으나 선도적 회복 역량을 보여주는 나라는 메르켈의 독일이다. 독일에서 치사율이 낮은 이유는 과잉투자라 할 만큼 많은 병원 수와 병상 수 때문이라 한다. ‘과잉병상’이 높은 회복력의 밑바탕이었음이 판명되었다. 이로써 독일은 감염병 방역과 경제위기 대응의 두 전선 모두에서 높은 길로 가는 선진 민주적 책임 국가로 선두에 섰다.

 

반면에 트럼프의 미국과 아베의 일본은 나쁜 성적 1, 2위를 다투는 무책임 국가, 코로나 재난 최악 국가로 추락했다. 미국의 실패가 시장주의 무책임에 극우포퓰리즘 무책임이 포개진 경우라면, 일본의 실패는 도쿄올림픽 강행에 올인한 ‘국가 없는 국가주의’의 무대책에 국민적 순응주의가 겹친 탓이다. 미국은 한달 사이에 2200만의 실업 쓰나미를 맞았고 일본은 의료체계가 붕괴됐다고 한다.

 

동아시아 국가군은 코로나 위기에 남달리 선방했는데 이들은 역사적으로 권위주의적 경성국가 능력이 높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중국은 우한 사태 이후 고강도 권위주의 통제력으로 빠르게 코로나 위기 차단에 성공했다. 대만, 싱가포르는 사스 때의 경험에서 배워 중국발 입국을 금지하고 동선의 추적과 공개 등으로 초기 봉쇄에 성공했다. 경제적 타격도 훨씬 덜하다. 하지만 최근 싱가포르의 사태 악화는 방심은 금물임을 일깨워준다.

 

코로나 위기와 마주한 거대한 전환의 시대에 한국은 글로벌 방역 모범국으로 올라섰다. 위기를 기민하게 전화위복의 기회로 반전시킨 대표적 나라가 되었다. 대만, 싱가포르 등과 달리 봉쇄 조치도 국경폐쇄 조치도 없이 개방적 자유민주주의 위에서 방역에 성공한 것이 세계인의 박수를 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안전 미개국으로 전락했던 박근혜 시기와 천양지차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위기 방역에 성공한 민주적 책임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독일도 한국에서 한수 배웠다. 이제 우리에게 “국가는 있다”. 방역에 관한 한 한국은 독일과 함께, 센의 기준(민주적 책임성 및 정보 투명성)과 폴라니의 기준(의료보건 위기의 사회보호력)을 모두 통과했다.

 

빠른 추격자에서 혁신적 선도자로 진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았지만 뜻밖에 코로나 방역 모델에서 이 바람이 실현되었다. 강한 제조업 기반도 방역에 큰 역할을 했다. 나는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을 김대중 이래 자유복지주의(시장 자유화와 복지 확대 조합)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는데, 코로나 방역 성공은 그 왼쪽 날개인 복지주의 성공의 도달점을 찍었다. 이제 한국은 외래 모델 추격에만 급급하지 말고 자신의 고유한 발전 경험, 학습 경험―실패를 포함해―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하지만 자만은 금물이다. 착각은 더욱 금물이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코로나 위기 대응에서 불균형이 매우 심하다는 데 있다. 자유복지주의의 오른쪽 날개인 시장 자유화의 폐해는 코로나 위기 시에도 여전하다. 질병관리본부가 이끄는 감염병 방역과 기획재정부가 이끄는 경제위기 대응은 판이하게 가고 있다. 기재부가 제작한 코로나 한국 모델 책자(Tackling Covid-19)는 이 불균형을 은폐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왜곡이 있다.

 

두 사령탑의 성격과 지향은 근본부터 다르다. 질본은 사스, 세월호 참사, 메르스에서 체험학습한 기억과 민주적 관·민·학 협력의 대응력, 생명먼저·사람먼저의 가치를 갖고 있으며 김대중 정부 때 정비된 국가보험체계, 높은 시민의식이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기재부에는 신자유주의 및 개발주의 시기에 체험학습한 기억과 닫힌 관료주의 성향이 새겨져 있고 재벌 대기업 중심 성장주의와 재정건전성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재정건전성 수호를 위해 복지 확대는 곤란해도 기업 퍼주기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부채를 늘리고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길 수도 있다는 것이 한국 ‘기재부 경제학’이다.

 

재벌과 밀월 행각을 벌인, 규율 고삐 잃은 연성민주정부 아래 기재부가 경제위기 대응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코로나 위기 이전의 안이한 정책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대대적 정부지출이 요구됨에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1%에 불과한 것, 네차례나 비상경제회의가 진행된 시점까지도 방대한 사회안전망 사각지대(경제활동인구의 절반)를 정조준하는 정책이 미비한 것, 일자리 안전을 보장하며 실업대란을 막는 기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길 우려가 농후함에도 공정한 기업 구제 원칙을 시행하지 못하는 것, 대중소·하청기업 상생협력을 유도·강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긴급재난지원금 사안이 헛돌고 있는 것 등 이 모든 일이 주로 여기에 기인한다. 그린 뉴딜과 농업 보호를 통해 녹색전환을 이루고 기후악당국가 오명을 벗는 일 또한 기재부 주도권 아래서는 난망이다.

 

우리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한국은 ‘질본 모델’을 더 확장해 참여적 조정시장과 복지연대를 결합함으로써 경제위기 대응과 방역 두 전선 모두에서 정의로운 회복을 실현해야 한다. 모종의 한국판 코로나 뉴딜을 실행해야 할 때다. 아직 기회가 있다. 중앙정부가 못 하니 지방정부가 나선다. 전주가 해고 없는 도시를 선언했다. 전주가 포스트 코로나의 미래다.

이병천 ㅣ 강원대 명예교수·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

이슈코로나19 세계 대유행

연재이병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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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1778.html#csidx1d17875159069f3b2a524497ea34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