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개학식 영상이 떴다, 교가를 시작하자 23개의 돌림노래가 됐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26. 04:10

개학식 영상이 떴다, 교가를 시작하자 23개의 돌림노래가 됐다

등록 :2020-04-25 09:14수정 :2020-04-25 09:16

 

[토요판] 커버스토리
코로나 시대의 학교

바이러스가 부른 미지의 세계 앞
휴업에 던져진 교사와 학생들은
어떻게 닥칠지 알 수 없는 개학
준비하느라 좌충우돌과 시행착오

3월2일부터 학급 대화방 만든 교사
한명씩 초대 이름·얼굴 익히며 소통
매일 정해진 시각 대화방 등교 연습
끝없이 이어지는 ‘기상과 지각’ 전쟁

“얘들아, 개학 또 연기됐다”
“헉, 언제까지요?”
잇따른 휴업 연장 속 아이들
“이렇게 학교 가고 싶은 건 처음”

 

4월16일 온라인 개학을 했으나 학생은 없는 대구 강림초 5학년 1반의 빈 교실에서 임성무 담임 교사가 ‘줌’(원격 화상회의 시스템)에 모인 학생들과 영상으로 수업하고 있다. 오른쪽은 온라인 개학 일주일 전 ‘줌’ 접속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학급 대화방에 올린 아우성. 대구/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사상 최초의 온라인 개학이 끝났다. 지난 9일 고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3학년, 16일 초등학교 4~6학년과 중·고등학교 1~2학년, 20일 초등학교 1~3학년이 순차적으로 개학을 마무리했다. 그때마다 학생·교사·학부모는 온라인 수업 플랫폼의 과부하와 접속장애로 혼란을 겪었다. 그 기술적 혼란 뒤에서 ‘지구적 재난’은 이 세계가 감춰온 틈들과 유예해온 질문들을 가차 없이 들춰냈다. ‘학생 한명 없는 학교’를 충격적으로 연출해낸 바이러스는 우리 교육을 피해 갈 수 없는 질문 앞으로 데려갔다. 코로나19의 중심도시였던 대구의 한 초등학교 5학년 학급의 좌충우돌 속에도 그 질문은 압축돼 있었다. 대책 없이 던져진 휴업을 헤치며 35년차 교사와 23명의 학생이 건너온 45일(3월2일~4월16일)을 재구성했다. 그들이 겪은 시행착오와 고민 어린 장면들 마디마디마다 ‘그래서 너의 미래는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 끌려 나온 학교의 당황한 얼굴이 있었다.

누구도 겪어본 적 없는 세계가 교실에 들이닥쳤다.“이런 개학은 처음”4월16일 아침 8시30분이 되자 대구 강림초등학교(달성군 옥포읍) 5학년 1반 담임 교사 임성무(57)는 전화를 돌렸다.“지후야, 일어났나? 빨리 등교해라.”“민경아, 철사 옷걸이로 휴대폰 거치대 잘 만들었나?”“○○이 엄마, ○○이가 아직 등교를 안 했네예.”“자, 그럼 이름 한번 불러보자. 경민씨?” “네.” “지안씨?” “네.” “우진씨?” “네.” “청준씨?” “선생님, 빨리 수업하고 싶어요.” “청준이 니 웬일이고?”출석(8시40분께 100%)을 다 부른 선생님이 교실에서 두 팔을 번쩍 들고 외쳤다. “야 개학이다~.”그의 ‘액션’을 지켜보던 아이들도 하나둘 선생님을 따라 했다.“다시, 온 동네가 시끄럽도록 한꺼번에 소리 질러보자. 시~작.”선생님과 23명의 학생이 “신나는 개학”을 합창했다. 합창이었으나 24개의 목소리는 24개 장소에서 외따로 터졌다. 목청 좋은 선생님의 고함이 교실을 뚫고 나와 고요한 학교를 깨울 때 학생들의 외침은 각자의 집에서 잠이 덜 깬 채 하품을 했다. 자기 방에 앉아 온라인 화상회의 시스템(Zoom·줌)에 접속한 아이들은 몸은 집에 두고 얼굴 영상과 목소리로 학교에 나왔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교실 벽에 설치된 티브이 화면에서 만나 마침내 한 반이 됐다. 아이들을 한명 한명 확인하며 선생님이 말했다.“야, 교사 생활 35년 만에 이런 개학은 처음인데, 너희들은 겨우 5년 만에 해본다. 대단하다. 그렇제?”느닷없이 현실로 끌려 나온 ‘미래 교육’의 낯선 얼굴이 학생 한명 없는 교실 책상에 당황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바이러스가 불러낸 미지의 세계 앞에서 대책 없이 휴업에 던져진 교사와 학생들은 언제 어떻게 닥칠지 알 수 없는 개학을 준비하느라 3월2일부터 좌충우돌했다.3월2일 “20강림51동무들 톡방 만드는 중.”선생님이 카카오톡에 학급 대화방을 열었다. 매년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던 날이 ‘개학하지 못한 날’(2월23일 정부가 3월9일로 1차 연기)이 될 줄 아무도 몰랐다. 전날 대구에서만 514명이 코로나19 확진자 수(대구 누적 2569명)에 더해졌다. 개학 연기는 불가피했지만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처할 뾰족한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하루라도 빨리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고 그는 판단했다. 반에 배정된 아이들의 연락처를 학교에서 받아 이름과 함께 휴대전화에 입력했다. 한명씩 화상통화를 하며 대화방으로 초대했다. 방에 첫인사를 썼다.“오늘 만나야 하는데 코로나19로 20일 뒤(이틀 전 대구교육청은 개학을 3월23일로 2차 연기)에나 얼굴을 보게 되는 희한한 일이 일어났지요? 기후위기에다가 바이러스 위기까지 우리의 미래가 예측이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어. 어떤 미래를 만날 것인지,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지도 미래의 주인들인 어린이 청소년 여러분들에겐 참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 올 한해 5학년 열두살은 미래를 준비하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아이들의 “네”가 비 오듯 주르륵 달렸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셀카로 얼굴 사진을 찍어 프로필로 올려달라”고 했다. “내가 사진을 보고 너희 얼굴을 익힐게.”3월3일 선생님과 아이들이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대화방에서 만나는 연습을 시작했다.“현재 출석체크 안 한 사람은 엄○○, 유○○, 최○○…. 미주야, ○○이 죽었나 살아났나 전화해봐라.”학생들의 동시접속으로 학교 누리집이 마비돼버렸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학습활동을 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부터 확보해야 했다.“얘들아, 학교 홈페이지가 막혀서 (네이버에) 밴드를 만들었으니 가입하고 부모님들도 초대해라.”코로나19를 주제로 한 글쓰기가 첫 과제로 주어졌다. 선생님은 접속이 어려운 학급 게시판 대신 밴드에 댓글로 제출하도록 했다.“(전국 확진자 수가) 4천명이 넘었다. 사망자도 늘어났다. 닭살이 돋았다. 안심이 안 된다. 집에만 있으면 좋을 줄 알았는데 집에만 있으면 몸이 힘들고 안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빨리 학교에 가고 싶은 건 처음이다.”(신현)“요즘 마스크 사기 판매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마스크 사는 게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다고 뉴스에까지 나왔다. 그런 것을 다 알면서 나쁜 사람들은 왜 사기를 칠까? 우리 아파트에도 확진자가 나와서 동 앞마다 마스크를 나눠 줬다.”(소현)

초등학교 4~6학년의 온라인 개학이 이뤄진 4월16일 대구 강림초 5학년 1반의 텅 빈 교실에서 임성무 담임 교사가 태블릿을 이용해 학생들과 ‘줌’(온라인 원격회의 시스템)으로 화상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3월4일 난리였다.“아무래도 개학하면 진도 나가기가 바쁘겠지? 그래서 방금 이(e)학습터에 강좌방을 개설했으니 가입하거라.”개학 연기로 수업시수 감축이 발생해도 학습량은 줄지 않을 것이었다. 휴업 기간 동안 시간을 벌어둘 필요가 있었다. 선생님이 대화방에 “가입 시작”이라고 쓰자마자 아이들의 아우성이 쏟아져 내렸다.“선생님,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도요.” “쌤, 저도 안 돼요.” “이때까지 봤던 게 다 날아가버렸어요.” “방이 뜨지도 않아요.”아이들이 한마디씩 “안 돼요”를 던질 때마다 선생님은 따라 읽기도 힘든 속도로 쌓이는 ‘해결 요청’에 당황했다. 임성무는 35년차 교사였다. 강림초에선 최연장자였고 교장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1991~1994년) 시절을 거쳐 평생 평교사로 대구 교육운동의 일선을 지켜왔다. 웬만한 격변의 현장엔 모두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가 부른 개학 연기 사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세계사적 격변”이었다. 그는 “체험교육주의자”였고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했다. 각종 플랫폼과 웹캠의 용어조차 생소했던 그가 아이들의 독촉 앞에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려면 자신부터 ‘디지털 학생’이 돼야 했다.그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연계 활동이 가능한 플랫폼들을 골라 아이들과 사용해봤다. 소통은 카카오톡, 과제·시간표 제시와 제출은 네이버 밴드, 온라인 강의는 이학습터(시·도교육청이 운영하는 온라인 학습 서비스)와 <교육방송>(EBS) 온라인 클래스를 오갔다. 어차피 주어진 정답은 없으니 5학년 1반에 맞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새 친구 ○○이를 초대했어요.”선생님이 대화방에 전학생을 가입시켰다. 평소에도 전학생은 새 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데 관계 맺기가 제약된 지금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부모도 선생님도 걱정이었다.코로나를 이기는 놀이 과제 3월9일 연기(1차)된 개학 예정일이었으나 개학은 일찌감치 23일로 재연기돼 있었다. 대구에선 교직원(이날 기준 42명)과 학생(90명) 확진자 수도 계속 늘고 있었다. 코로나19의 한가운데인 대구였으므로 학교를 둘러싼 긴장도 매우 높았다. “우리 단지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며 주의를 당부하는 이웃 아파트의 안내 방송이 강림초 교실에서도 들렸다. 선생님이 대화방에서 ○○을 불렀다.“○○야.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밥 먹고 놀기만 하는 이유가 있나?”오전에 시간표 그리기 과제를 내줬는데 ○○가 “너무 솔직한 시간표”를 그려 밴드에 올렸다.“아침 8시30분 일어나기, 9시 아침 먹기, 12시 점심, 오후 1~8시 자유시간, 9시 잘 준비, 10시 잠자기.” 3월10일 “선생님, 점심 맛있게 드세요.”오전 일과를 마쳤을 때 ○○이 문자로 인사했다. 선생님이 “고맙다”며 물었다.“○○은 혼자 밥 먹어야 하지?” “네.”○○은 낮에 혼자 집에 있었다. 엄마, 아빠는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도 매일 출근을 멈출 수 없었다. △△도 동생을 돌보며 집을 지켰다. 아이는 선생님과 화상수업(4월 이후)을 하다가도 잠깐씩 자리를 비우고 동생을 보고 왔다. “가지 마~.” 형을 부르는 동생의 목소리가 영상 저편에서 들리기도 했다. △△은 가끔 옆자리에 동생을 앉혀 같이 공부했다.나흘 전 선생님은 밴드에 학교의 ‘긴급돌봄 신청 안내’를 올렸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5학년 1반에도 있었지만 돌봄 신청(4~6학년이 온라인 개학을 한 4월16일 전국 초등학생 8만5천여명이 긴급돌봄 참여)은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혼자 지낼 만큼 컸다’며 돌봄교실에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3월11일 “개학이 가능한 최적 상태는 어떤 조건이어야 할까요?”선생님이 이틀 동안 교사·학부모 커뮤니티에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해봤다. 모두 243명이 응답했다. ① 확진자가 줄어드는 추세가 이어지면 예정대로 3월23일 개학(42명·17.2%) ② 추가 확진자가 0이 돼야(12명·4.9%) ③ 추가 확진자가 0인 상태가 며칠 지속돼야(179명·73.6%) ④ 기타(10명·4.1%). 학급 밴드에도 질문을 올렸다. 아이들의 답변도 ③이 가장 많았다. “아이들이 어려도 무엇이 옳은진 알고 있다”고 선생님은 해석했다

학생 한명 없는 대구 강림초 5학년 1반 교실에서 임성무 교사가 태블릿을 이용해 학생들과 화상으로 국어 수업을 하고 있다. 대구/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3월13일 선생님이 ‘코로나를 이기는 놀이 과제’를 냈다. ‘숫자 1에 담긴 의미 상상하기’였다. 선생님이 답변의 예를 적었다. “대구시민 ‘하나’ 되어 코로나를 극복하자.”아이들이 밴드에 자신의 상상을 댓글로 달았다. “마스크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기자.”(신현) 마스크로 삼행시를 지은 아이도 있었다. “마~ 마스크는, 스~ 스마일 웃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크~ 크크크.”(경민)3월17일 선생님이 대화방에 추가 개학 연기(4월6일) 사실을 알렸다. 거듭된 휴업 연장으로 수업시수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법이 정한 시수(190일)와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학습량을 어떻게 할 것인지 방침이 나와야” 했다. “학습량을 그대로 두면 학생들과 교사에겐 무리가 따르고 결국 학습의 질이 확보되지 않을 것”이었다. 개학이 계속 미뤄지면서 교사들이 준비해온 교육과정도 뒤죽박죽되고 있었다. 봄은 왔으나 <봄>(초등학교 1~2학년 사계절 교과서 중 하나)은 펴보지도 못하고 있었다.3월18일 “모든 사람들이 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한 아이 엄마가 학급 밴드에 댓글을 달았다. 전날 개학 연기 발표를 두고 선생님이 “코로나바이러스는 하느님보다 세다”는 글을 올린 뒤였다. 아이들의 몸이 집에 묶이면서 부모들이 감내해야 할 무게도 가중되고 있었다. 엄마는 “마음을 잘 다스리자”고 아이들과 선생님을 격려했다. 선생님도 아이들을 북돋웠다.“힘냅시다. 이제 누가 더 공부를 잘하는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함께 돕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한 가치이고 공부를 하는 목표가 되었습니다.”드디어 23명 모두 <교육방송> 온라인 클래스에 가입했다. 가입시키는 데만 보름이 걸렸다. 3월19일 “모두 폰에 ‘줌’ 앱을 깔고 인사해볼까? 잘되면 선생님이 (화상으로) 수업을 할 수도 있어. 어때요?”아직은 선생님도 ‘줌 초보’였다. 전날 밤 대학원에 다니는 아들에게 줌 사용법을 배웠다. 대학원은 이미 줌으로 원격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아들과 아내에게 학생 역할을 맡기고 그들의 휴대전화와 자신의 컴퓨터를 줌으로 연결해 실습했다. 이튿날 아침 선생님이 대화방에 줌 초청 링크를 보냈다.“전화 통화하는 건가요?” “마이크 쓰나요?” “뭘 눌러야 해요?”시행착오를 되풀이하다 몇명이 접속에 성공했다.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서툴렀지만 5학년 1반이 된 뒤 처음으로 한데 모여 얼굴을 보며 대화했다. 그날 선생님은 일기에 썼다.“아이들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확 좋아진다. 한꺼번에 조잘조잘거리니 마치 쉬는 시간처럼 시끄럽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어설프다. 아이들에게 물어서 내가 배운다.”3월24일 “(교육방송) 온라인 클래스 학습을 얼마를 했나 봤더니 심각한 학생이 많다. 어제까지 3강까지는 들어야 했고, 오늘은 4강까지 들어야 하는데 미루면 어떻게 따라잡지?”(임성무)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마다 진도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온라인만으로는 아이들 각자가 얼마나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교실에서 면 대 면 수업을 할 때처럼 교사가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살피며 채워주기도 쉽지 않았다. 온라인에만 의존한 학습 환경이 장기화되면 아이들 간의 격차가 심화될 우려도 있었다. “빠른 아이들과 더딘 아이들의 속도를 조율해 개학 때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과제”가 교사들에게 떨어졌다.35년차 교사에 닥친 “세계사적 격변” 준비해온 교육과정 뒤죽박죽 상황에 쏟아지는 아이들의 해결 요청과 불안정한 시스템에 접속 장애 빈번온라인 학습이 심화시킬 격차 우려 “빠른 아이들과 더딘 아이들의 속도 조율해 같은 출발선에 서도록 해야” 교사들에게 떨어진 수많은 과제들 코로나가 우리 교육에 던진 숙제들 학교란 무엇인가, 관계란 무엇인가 멈춰야만 고칠 수 있단 감염병 경고 멈출 생각 없는 경쟁교육이 돌파할까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돼 집에서 휴업 중인 학생들이 담임 선생님이 내준 ‘코로나를 이기는 놀이 과제’(꼬끼오목)를 하고 있다. 강림초 5학년 1반 제공

 

끝없는 기상·출석 전쟁3월30일 “친한 지각생들에게 전화 좀 해라.”(오전 9시43분 임성무) “게임 하느라 늦었어요.”(오전 10시28분 ○○) “사촌 동생들과 노느라 출석을 깜빡했어요.”(오전 10시38분 ○○) 한달 동안 ‘8시30분 대화방에 들어와 아침 인사 하기’를 계속했지만 기상·출석 전쟁은 끝이 없었다. 매번 늦는 아이들이 5명쯤 됐다. 선생님이 전화해도 통화가 안 될 땐 부모와 연락해 아이를 깨웠다. 선생님이 휴대전화로 ‘줌’을 켜고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텅 빈 교실과 교무실, 교장실, 운동장과 학교 뜰을 돌며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다.“이비에스 라이브 특강과 선생님 (화상) 수업 중 뭐가 좋아?” “이비에스.”아이들이 헤헤거리며 답했다. 아이들 앞에서 하하 웃은 선생님은 ‘뒤끝 있는’ 일기를 썼다.“요놈들. 곧 내 수업이 더 좋다는 것을 알게 해줄 테다.”3월31일 정부가 ‘온라인 개학’ 방침을 발표했다. “현시점에서 등교 개학은 어렵다고 판단했으나 학습 공백을 해소하고 코로나19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교육부는 설명했다.“개학이 (4월6일에서) 또 연기됐다.”(임성무) “헉, 언제까지요?”(경민) “4월16일(초등학교 4~6학년과 중학교 1~2학년의 경우). 일단 온라인 학습이 의무화돼 늦잠, 지각 안 된다.”(임성무)선생님이 언제 사용할지 알 수 없는 아이들 책상을 ‘코로나 대형’으로 맞췄다. 둘씩 붙어 있던 책상을 하나씩 떨어뜨렸지만 학생 수가 많아 1m 간격도 나오지 않았다.4월1일 만우절이었다. 선생님이 아침 인사로 “착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하얀 거짓말을 하나씩 해보자”며 시범을 보였다. “얘들아, 온라인 학습 하라고 (통신사들이) 모든 학생들의 휴대폰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풀어준대.”(임성무)아이들은 대부분 ‘코로나 탈출’의 바람을 담았다. “코로나19는 없어지라고 하면 없어진대요.”(채윤) “다음주에는 코로나19가 없어져서 개학을 할 수 있대요.”(우진) “마스크를 집마다 20개씩 준대요.”(신현)4월2일 개학 두주를 앞두고 강림초 교사들이 첫 공식 출근을 했다. 임성무는 “늙은 나도 이만큼 하는데 젊은 후배들은 더 잘할 수 있다”며 교장·교감·교육과정부장에게 자신의 시행착오와 경험들을 설명했다. 교사들이 시청각실에 모여 자체 연수를 했다. 5학년 담임끼리는 따로 학년 밴드를 만들어 소통 창구로 삼았다.4월7일 “동생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왔어요.”(아침 8시51분) “그래, 혜영아 잘했다.”(임성무)대화방으로 하던 출석 연습을 처음 줌으로 해봤다. 8시30~40분 사이 18명(78%)이 입장했다. 온라인 개학 열흘 전에 “이만하면 성공”이었다. 줌으로 조회를 한 소감을 아이들이 밴드에 남겼다.“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버릇이 있었는데 친구들과 아침 인사 하며 잠도 깨고 재미있었어요.”(민경) “진짜로 학교 가는 느낌이어서 좋았어요.”(미주)<교육방송> 라이브 특강을 들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궁금한 내용을 밴드에 질문하게 했다.“왜 다보탑과 석가탑은 불국사 앞에 있나요?”(섬결)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대조’와 ‘비교’의 개념을 배우는 국어 특강 뒤 나온 질문이었다. ‘교사가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 보며 가르치는 게 왜 중요한지’ 선생님은 실감했다. 일방향 온라인 수업은 아이들의 이해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혼자 달려갔다. “불국사에 가본 적도, 다보탑과 석가탑을 본 적도 없는 아이들에게 대조와 비교를 가르치는 일은 주입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라이브 특강 뒤 다시 줌으로 아이들을 불러 질문에 답해주며 공백을 줄였다. 교사들을 ‘에듀테크’에 입문하게 만든 바이러스는 결국 ‘그 기술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란 물음 앞으로 교사들을 데려갔다.4월9일 고3과 중3이 먼저 온라인으로 개학했다. 온라인 클래스가 과부하로 한때 다운됐다.4월14일 “왜 다들 안 들어오노? 수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입장 안 하는 사람 누고?”쉬는 시간 뒤 줌 재입장이 늦어지자 선생님이 재촉했다. 세욱이가 선생님에게 ‘팩트 폭격’을 했다.“근데 솔직히 아직까진 방학인데요. 여름방학 미리 당겨서 쉬고 있는 건데.”선생님이 ‘똑똑한’ 세욱이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맞다. 선생님이 (온라인 개학 대비해) 여러분과 연습하는 거다.”이튿날 총선을 주제로 수업이 진행됐다. “우리나라에선 몇살 때부터 투표할 수 있지?”(임성무) “18살.”(민경) “오~ 그렇제. 외국에선 16살 때부터 하는 나라도 있대.”(임성무) “와, 부럽다.”(민경)카메라를 칠판에 맞춘 선생님이 “지역투표”와 “정당투표” 등을 쓰며 설명했다. 화상수업 연습을 시작한 뒤로 칠판 필기는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흑판보다 화이트보드 글자가 잘 보인다고 했다.“부모님께 내일 꼭 투표하시라고 말씀드려라. 우리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는 사람 뽑아달라고. 그게 숙제다. 알겠제?”개학 전 마지막 예행연습이기도 했다. 겨울방학까지 합쳐 석달 가까운 “전대미문의 휴업”을 지나 “전대미문의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있었다. 3월2일부터 아이들과 불안한 시간을 헤쳐온 선생님은 “90%는 준비됐다”며 스스로를 달랬다.4월15일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8시에 일어나서 아침 먹고, 공책 2권, 폰 거치대(철사 옷걸이로 만들더라도) 준비해두어라. 아침에 늦어도 8시50분까지 줌으로 등교해라.”선생님이 대화방에 개학 시간표를 공지했다. 그는 전날 학부모방에도 쪽지를 남겼다.“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꼭 투표해주세요. 아직 (아이들에겐) 투표권이 없지만 나라의 주인인 아이들을 잘 대접해주세요.”

4월10일 텅 빈 학교를 둘러보던 임성무 교사가 보도블록 틈새에 싹을 틔운 ‘아기 단풍’을 찍어 학급 밴드에 올렸다. “만약 우리가 학교에 왔으면 다 밟혀서 죽었을지도 몰라. 개학하면 어디 옮겨주자.” 강림초 5학년 1반 제공

 

“개학하니 짜릿하고 너무 좋아요”4월16일 2020학년도 공식 학사일정이 시작됐다.“다 일어났나?”아침 8시17분 선생님이 물었을 때 이미 19명이 아침 인사를 마친 뒤였다. 한 아이는 “설레서 잠을 못 잤다”고 했다. 9시가 되자 선생님이 밴드에 올려둔 인터넷 주소를 아이들이 클릭했다. 학교에서 제작해둔 개학식 영상이 떴다. 교가를 부르자 23개의 돌림노래가 됐다. 아이들의 영상 접속 시점이 모두 달라 교가를 시작하고 마치는 시점도 모두 달랐다.“오늘은 아주 슬픈 날입니다. 인천에서 세월호라는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250명 넘는 고등학생들이….”2교시엔 세월호 6주기 수업을 했다. 선생님이 아침에 써서 학급 밴드에 올린 글을 읽어줬다.갑자기 닥친 ‘재택 개학’ 앞에서 다수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각 기관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강의를 듣게 했다. 보름 가까이 ‘줌 수업’을 연습해온 강림초 5학년 1반은 개학과 동시에 ‘담임 직접 수업’을 시작했다. 접속 폭주에 따른 온라인 강의 과부하(이날 400만명이 참여하면서 ‘위두랑’(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원격교육 플랫폼) 서비스 일시 중단 등)도 이 반에선 목격되지 않았다.선생님의 세월호 글을 읽고 첨부된 추모 영상을 본 아이들이 댓글을 달았다.“해경이 한명도 구조를 못 한 게 이상하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선장이 넘 나빠요.”(민성)“우리 반 친구들 공감 능력이 훌륭하구나. 선장의 책임도 있지만 더 큰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진 다음 시간에 토론해보자.”(임성무)줌 영상이 끊기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음이 끼어들어 수업을 방해하는 일은 그들도 피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한숨을 쉬거나 답답해하거나 산만해졌다. 선생님은 스피커를 껐다 다시 켜거나 줌에서 나간 뒤 재입장하도록 했다. 응급처방은 통하기도 했고 소용없기도 했다. 아이들이 소리쳤다.“선생님 목소리가 안 들려요.” 잡음을 줄이기 위해 선생님이 스피커 음량을 낮춰놨을 때였다. “앗, 실수.” 선생님의 말을 세욱이가 잡아챘다. “실력일걸요.” “그래, 실력이다. 이 녀석아.” 선생님이 껄껄거렸다.첫날 수업(4교시 단축수업)을 마치며 선생님은 ‘온라인 개학 소감 쓰기’를 숙제로 내줬다. “개학하니 짜리타고(짜릿하고) 너무 좋아요. 빨리 코로나 끝나서 친구들, 선생님 만나 놀고 싶어요.”(청준) “집에서 하는 개학이 너무 심(신)박하다.”(서준) “개학을 해도 기분이 안 좋아요. 선생님을 (학교에서) 만나고 십(싶)습니다.”(태희) “개학을 해서 좋았지만 (영상이) 끊겨서 힘들었어요.”(서현)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아이들이 해결하는 동안 코로나19가 우리 교육에 내준 숙제는 풀이법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구적 재난’은 이 세계가 감춰온 틈들과 유예해온 질문들을 가차 없이 들춰내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세계’가 ‘코로나 이후 교육’을 어떤 모습으로 바꿔놓을지 자신 있게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당장 등교 개학이 언제 이뤄질지도 불투명했고, 개학이 높일 집단감염의 위험을 학교가 얼마나 감당해낼 수 있을지도 예측 불가였다. 혼자 온라인 수업을 하기 힘든 장애 학생들의 피해를 어떻게 줄일지, 학교를 온라인으로 처음 경험하는 초등학교 입학생들에게 학교란 과연 무엇일지, 사회적 관계 맺기가 시작되는 학교에서 ‘대면 관계’가 사라졌을 때 교육적 관계란 무엇일지, ‘멈춰야만 고칠 수 있다’는 감염병의 경고를 멈출 생각 없는 경쟁·서열교육이 돌파할 수 있을지, 누구도 답을 내놓지 못하는 질문들 앞에 학교는 소환돼 있었다.“이 난리를 겪고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도 된다고 가르칠 순 없다”고 교사 임성무는 생각했다. 알 수 없는 세계가 달려오고 있었지만 회피할 수 있는 세계는 아니었다.4월17일 아침 7시도 안 된 시각에 대화방이 울렸다.“선생님 오늘 시간표가 뭔가요?”(6시52분 ^@yun@^)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4월16일 초등학교 4~6학년 학생들이 온라인 개학을 했지만 강림초 운동장엔 아무도 없었다.

대구/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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