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解雇)-소설, 1960년
은혜 추천 0 조회 30 20.01.14 10: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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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본문내용
해고(解雇) 오승재
나(태호)는 정수의 곁에 바싹 다가서서 엉거주춤 허리를 굽히고 밭두렁 밑을 기었다. 새벽 1시 40분이다. 목적지까지 몇 시면 닿을 수 있을까? 한길까지 15분, 그럼 55분이다. 수월히 인주(人柱)를 넘는다고 해도 목적지까지 적어도 30분은 더 걸릴 거다. 2시 25분. 너무 늦다. 계획보다 30분이 늦은 셈이다. 2시에는 치고 빼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제1 변전소의 전등이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저쪽 농원에서도…. 거기는 경찰들의 경비가 삼엄할 것이다. 그 중간에 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무사히 통과하면 된다. 아, 무사히 꿰뚫어 갈 수만 있다면…. 전주 하나 사이만큼 모닥불이 까물거린다. 인주들이 거기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 것이다. ‘이버언 사고 없다고 전다알.’ 이런 따위의 처량한 목소리는 수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사이를 꿰뚫고 넘어서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시간쯤 놈들은 졸음을 참아내기 힘들 것이다. (하얀 한길 저 건너, 저 건너만 가면 된다.) 다음 문제는 다음에 생각할 수밖에는 없다. 언제 다음 문제를 생각해 본 일이 있던가? 2시에 뺄 수 없을 땐 ‘임무 수행’을 못한 것에 대해 ‘자가비판’을 해야 한다. 이제 어쩔 수도 없는 것이다. 단 30분 늦는다고 돌아서 버리기엔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벌써 여기서부터는 시내라고 할 수 있다. 오후 7시부터 산줄기를 타고 내려온 걸 생각해 보라. 정말이다. 많은 시간을 걸어버렸다. 그런데 다리가 아프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다. 짚신을 신고 있는 발은 움직이고만 있다. 내 다리 같질 않다. 머리는 생각하고 있다. 다리는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어깨는? 배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살아 있는 것은 머리와 다리뿐인가 보다. 아니다. 모든 것이 잠들어 버렸다. 머리도, 어깨도, 배도, 발도…. 다만 머리와 다리는 꿈속에서 기계처럼 일하며 떠다니고 있다. 꿈나라에 잠겨버린 많은 마을과 초목 사이를 지나온 것처럼. 뒤를 돌아봤다. 거무스레한 두 개의 그림자가 엉거주춤 멈추어 섰다. 멀리 대밭에 둘려 산마루에 주저앉아 버렸을 마을은 죽은 듯이 고요한 채 어둠과 한 색깔이었다. 옆구리를 꾹 찔려 나는 깜짝 놀라 주저앉았다. 등에 멘 총부리를 힘 있게 잡아 누른 정수는 무서운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따라 걸었다. 자식이 노여워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분명 미소라고 생각해 두어야 한다. 비밀을 간직한 사람끼리는 서로 미소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소하기에는 너무나 무서운 것을 지녀버린 것이다. 정수는 사람 같질 않다. 마치 내 앞장을 서가는 죽음의 그림자 같다. 지옥에서 온 사자가 내 앞장을 서가는 것처럼. 깜박거리는 모닥불과 전등, 어둠에 묻혀버린 마을, 이들이 바닷속에 잠겨버린 것 같은 대자연이 너무나 신기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수는 인간이다. 그도 나처럼 야릇한 그림자를 느끼며 어쩔 수 없이 끌려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식 미소하지 않은 것이 매력적이다. 모닥불이 좀 더 가까이서 보이기 시작했다. 길목은 유난히 하얗다. 누가 이 삼엄한 경계 속에 이 길목을 건너리라고 생각이나 하랴. 그저 불쌍한 녀석들이 명령이니까 밤잠을 못 자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거다. 녀석들은 우리를 무척 저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에 약탈하며, 무엇 때문에 이곳저곳에 총질해 가며 밤잠도 못 자게 하느냐고…. 그건 나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도 산에 있고 싶어서 그 고생을 하며 눌어붙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못살게 구는 너희들이 끝없이 귀찮다. 수입이 많은 직장이 있고 평화롭게 살 수만 있다면 어떤 바보가 산에서 떨며 이 고생을 하겠는가? 자수하라고 떠들어 대지만 수월히 그럴 수는 없다. 적어도 동지들을 팔아야 하는 비굴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병력과 장비가 풍부히 있다. 그걸 사용해서 우릴 마음대로 잡아가라. 우리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럴 수밖에 없다. 실컷 잡아가라. 우리 부대는 몇 사람 남아 있지 않다. 다른 곳에는 또 얼마나 병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모두가 개별적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압력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우리의 단결은 굳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지면 죽는 것이다.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우리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 도로에서 T자형으로 뻗어 나온 작전로에서 잠깐 머뭇거렸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런 감시도 없었다. 말라빠진 잡초들이 눌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바른편으로 제1 변전소의 전등불과 희미한 모닥불들이 보였다. 조심스레 작전로를 가로질러 비스듬히 본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보들보들한 보리의 감촉이 신기했다. 아직도 눈이 내릴 수 있는 계절이었다. 그러나 달도 없는 밤하늘은 반짝이는 별마저 보이지 않게 찌푸리고 있었다. 꼭 습격하기에는 알맞은 날씨였다. (눈이라도 내린다면 큰일이다.) 오늘내일 새에는 눈이 내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섣불리 발자국을 남겨 놓고 싶지는 않다. 어떻든 이곳은 한결 따뜻해서 좋다. 얼어붙은 손과 발이 지금은 추위를 모를 만치 되어버렸지만…. 미경이와 함께 보리밭 둑에 앉아 이야기하던 때가 먼 옛날인 것 같다. 나는 그때 너무 어렸었다. 그저 즐겁기만 해서 지갑에 들어 있는 사진들을 꺼내어 그때보다 더 옛날의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다가 그만 지갑을 그곳에 놔 버렸던 것이 생각난다. 그녀는 지금쯤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자고 있겠지. 사진은 그때 잃어버리기를 잘했다. 지금 내가 그걸 간직하고 있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나 도무지 그녀가 잊히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녀와 같이 앉았을 때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보였었다. 아마 이 보리밭도 그녀와 함께라면 또 달리 뵐 거다. 그러나 오늘 밤은 견딜 수 없는 적막을 담고 질펀하기만 하다. 사람의 눈이란 참 야릇한 것이다. 나는 지난날 낮에 몇 번이고 이 도로를 버스로 달리면서 이 보리밭에 대해선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밤에는 얼어서 부풀어 오른 흙 사이에 간신히 붙어 있는 보리의 뿌리까지도 샅샅이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몇 년이고 지난 뒤 다시 이 근처에 와 본다면 나는 또 다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제1 변전소와 농원과 저 한길과 다리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보리가 누렇게 익을 무렵이면 이렇게 샅샅이 보고 기어간 내 위치마저 분간하지 못하게 되고 말 게다. 봄에 산골짜기에 숨겨 놓은 물건은 다음 해 그맘때가 아니면 찾아낼 수 없다는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형이 변한다고 자연의 조화를 말한다. 그러나 변한 것은 지형도 눈도 아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사진이 변할 뿐일 게다. 지금은 그런 것까지 생각하며 기어갈 때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지금 당장 생각해야 할 것은 경비 섰을 경찰들과 쭈그리고 앉아 있을 인주들뿐이다. 우리는 발견되면 죽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업을 수행하지 않으면 또 죽는 것이다. 우리가 갈 길은 딱 하나밖에 없다. 발견되지 않고 제2 변전소를 습격하고 돌아가는 것뿐이다. 도로변을 비스듬히 다가가다가 다시 4, 5m의 간격을 두고 두렁 밑 낮은 지역만을 찾아 나란히 길을 타고 올라갔다. 바로 나비 2m가량의 콘크리트 다리가 그곳에 보였다. 우리는 멈추었다. 인주는 길 저편에 앉아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모닥불이 벌겋게 비치는 위치로 보아 한 사람은 다릿목에 앉아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가만히 허리를 펴 보았다. 그러나 모닥불밖에 다리 옆에 앉아 있을 인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반대편 제1 변전소 쪽으로 전주 하나 사이만큼 떨어져 앉아 있는 인주는 어쩌면 이쪽 편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발돋움을 하고 다리 쪽을 보려는데 정수가 뒤에서 성급히 낚아챘다. 뒤미처 따라온 형식과 영남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이내 쭈그려 앉더니 정수의 바른 손을 들어 도로와 평행으로 놓게 하고 “이게 다리야.” 하고 나직한 소리로 손등을 두들기며 정수의 새끼손가락을 가리켰다. “인주는 여기 앉아 있어.” 네 사람은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그 새끼” 정수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오버언 사고 없다고 전다알.” 농원 쪽에서 갑자기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건 참, 이 정적에는 엉뚱해서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다. “육버언 사고 없다고 전다알.” 이번에는 바로 다리 위에서였다. “칠버언 사고 없다고 전다알.” .................... 형식과 영남은 각각 헤어져서 5, 6번의 인주로 배를 깔고 기어갔다. 나는 우선 뒤로 물러나 양 인주가 보일만 한 둔덕까지 올라가 그들의 모습을 살폈다. 5번 인주는 농원 다릿목에 쭈그리고 앉아 45도만큼 몸을 돌리고 저쪽 산마루를 바라보고 웅숭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쪽은 잔설이 있고 좀 비탈져 올라간 곳이 언덕 같은 산줄기의 끝이라는 것을 곧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모닥불에 인주의 모습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인주가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곳은 그들이 기어 올라가야 할 언덕마루 같았다. 농원 쪽은 질펀한 평야로 더욱 위험한 곳이었다. 나는 맥이 풀렸다. 그러나 가볼 도리밖에 없다. 녀석들 왜 졸지 않는 것일까? 두시면 누구나 졸음이 오는 때다. 하긴 녀석들이 졸음이 오니까 괜히 불쑥 번호를 불러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음, 여태 아무 소리 없다가 그렇게 불쑥 중간에서 번호를 부르고 대들 턱이 없다. 졸음이 제일 많이 밀려오는 것은 번호를 부르기 시작한 4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곳은 농원 쪽에 너무 가깝다. 다가온 정수가 그를 끌어 내리더니 말없이 다리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갈대로 가보자. 만일 발견되면 미리 지키고 있을 형식과 영남이 양 인주는 해치울 것이다. 그럼 그때는 그만이다. 결국, 발견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리 밑에 도달했다. 얼지 않은 물이 얕게 웅숭그리고 반짝 빛났다. 인주의 기침 소리가 들려 왔다. 우리는 잠깐 망설였다. 그러다가 가만히 물속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싸늘한 것이 오싹 어깨 위까지 치달았다. 물은 깊지 않고 발목이 닿을 정도였다. 그러나 발을 옮길 때마다 물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서 한 발을 떼 놓기가 힘들었다. 손으로 더듬어 가며 다리 중간에 이르렀을 때였다. 위에서 우지직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깜짝 놀라 멈추어 섰다. 이내 조용해져 버렸다. 다리 저편에서는 노란 불길이 너풀거리다간 지표에 빨려 들어가 버리곤 했다. 모닥불을 더 지피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노란 불꽃은 더 빈번히 너풀거렸다. 정수가 위를 쳐다보더니 힘없이 다리에 기댄 체 엉거주춤 쭈그려 앉아버렸다. “인주 사이의 도로를 넘자” 나는 정수의 손을 끌었다. 실망해서는 안 된다. 투지를 잃어서도 안 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언제나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것이다. 그냥 한 발을 내딛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2시 5분을 넘어선 시곗바늘을 보고 태연할 수가 없었다. 5, 6번 인주의 중간쯤 되는 길 언덕에 이르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내밀었다. 5번 인주의 모닥불은 기세 좋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 불빛에 무릎을 세워 끌어안고 그 팔 위에 턱을 고인 채 우뚝하니 산마루 쪽을 보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인주의 모습이 환히 드러났다. 6번 인주도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듯 새까맣게 웅숭그린 자세에 빨간 점이 드러났다가는 시들어지곤 했다. 이러다간 언제 이 지점을 넘어설지 알 수 없다. 4시면 모든 사람이 서서히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다. 그때까지 이 지점을 되돌아와서 넘어설 것은 상상도 못 하겠다. 나는 고개를 움츠렸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먼저 넘고 보자. 철수할 것은 지금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걸. 걱정한다면 이 도로는 필경 못 넘고 말 거다. 정수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길 언덕에 웅숭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자주 내다보다간 오줌이 찔끔찔끔 나올 만치 오금이 저리고 초조해서 견딜 수 없어져 버린다. 5번 인주는 저편 언덕마루를, 그리고 6번 인주는 변함없이 똑바로 자기 앞을 보고 쭈그려 앉아 있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는 수밖에 어쩔 수 없다. 그들은 번호만 안 부르고 있으면 마침내 또 꼬박 졸 때가 오고야 만다. 빌어먹을! 왜 하필 이 길을 택하라고 명령했는지 알 수가 없다. 노대실 골목을 넘어왔다면 지금쯤 후퇴도 충분히 하고 빨랐을 게 아닌가? 그 근처라면 어렸을 때 수없이 다녀본 길목이라 너무 잘 알고 있다. 명령하려면 그런 곳을 가라고 명령을 해야 한다. 어렸을 때 도토리나 솔방울로 전쟁놀이를 하던 솔밭도 지났을 게 아닌가? 나무둥치 뒤에 숨었다가 나타나면서 솔방울을 던져서 맞으면 그자는 ‘아!’하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빳빳이 하고 넘어졌었다. 그럼 그것이 좋아서 코를 씩씩 불며 마구 산허리를 달려 올라갔었다. 지금 실총을 메고 그 수박등을 넘어 본다면 기분이 엄청나게 야릇할 것이다. 그때는 ‘살아서 죽는’ 아찔한 기분을 맛보았지만 이젠 완전히 죽는 것이다.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넘어질 때의 기분은 어떨까? 적어도 죽는 사람에겐 쾌감이 없을 게다. 마음속으론 절실한 실감 속에 죽어보면서 결국 나는 정말 죽는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 그런 쾌감 말이다. 사람이란 마음속으로는 몇십 번을 죽어 봐도 실제로는 안 죽어야 할 것만 같다.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다시 도로변을 살폈다. 두 인주는 그전 자세 그대로였다. 그대로 잠이나 들었으면 좋겠다. 아니 졸고 있는지 어쩐지 확인이라도 해 봤으면 좋겠다. 졸음이 올 때면 걸으면서도 자는 법이다. 저렇게 앉아 있으니 자고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이러다가 날이 새 버릴 것만 같다. 갑자기 인주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사정을 호소하고 싶어진다. 여기서 날을 새게 되면 우리는 죽는다. 제발 좀 넘겨주면 어떻겠니? 너도 죽고 싶지 않을 게다. 우리도 죽고 싶지는 않다. 정수는 주먹으로 땅을 후비기 시작했다. 그는 더는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가만히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정수가 덥석 손을 잡아 쥐었다. 그렇게 추운데도 손은 촉촉이 땀에 젖어 있다. 알 수 없는 힘이 뭉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 그렇다.’라고 무조건 정수가 말없이 내맡겨 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긍정하고 싶어졌다. 제1 변전소의 전등불이 견딜 수 없는 유혹을 발했다. 제길 저기나 때려 버리라 했으면 좋을 게 아닌가? 묵직하게 등에 메고 있는 72발의 탄환을 어디든 쏟아 버렸으면 시원하겠다. 도대체 제2 변전소는 왜 습격하라는 걸까? 골탕 먹는 것은 애매한 시민들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명령이다. 우리는 명령에 복종함으로써만 살 수 있다. 작고개에서 농장 형무소의 뒷마을을 지나 사범학교 뒤 공동묘지를 돌아라. 공동묘지에는 잠복하고 있는 경찰들이 많다. 거기서 농대 뒤로, 다시 태봉산으로 물러나 쌍촌으로, 쌍촌은 시내에서 십 리는 더 떨어져 있다. 거기서 이 제1 변전소의 한길을 건너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명령이다. 그러나 이 명령을 복종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내, 외각 경비선의 맹점을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고 꿰뚫을 수가 있었을 것인가? 2시 전후에 사격 총소리가 나지 않으면 사령부는 아지트를 옮기고 우리는 고립된다. 이제 우리는 벌써 돌아갈 곳이 없이 고립되는 것이다. 늦어버렸다. 모든 것이 늦어버렸다. 그러나 죽는 자리로 여기는 마땅치 않다. 건너가야 한다. 어떻게든지 건너가야 한다. 그러나 전신주 하나 사이의 하얀 길목을 총을 들쳐 메고 어떻게 건너갈 수 있다는 말인가? 정수가 고개를 내밀다가 기겁을 하며 내려앉았다. 그 바람에 자그마한 돌이 딱 때 굴 굴러떨어졌다. “육버언 교대시간 몇 분 남았냐고 전다알.” “칠버언 교대시간 몇 분 남았느냐고 전다알.” 그들은 자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러다가 교대 자가 오게 되면 영 건너기는 글러버리는 것이다. “팔버언 교대시간……” 차츰 인주들의 목소리는 가늘어졌다. 그 목소리가 또 되돌아올 것이다. 아, 너무 늦었다. 오늘 밤에는 어디서 위장을 하고 숨어 있어야 할 것인가?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봤다. 소금에 절인 쇠가죽 말린 것이 몇 개 손에 잡혔다. 이것 가지고 내일 낮을 지내야 한다. 총을 땅에 묻고 온몸에 그 근처의 흙을 바른 채 꼼짝 않고 한낮을 떨며 누워 있어야 할 것이다. 인주로 서 있는 녀석들은 그래도 편한 놈들이다. 교대시간이 되면 집에 돌아가 아늑한 가정에서 돈 버는 꿈이나 꾸며 뜨뜻이 잘 수 있을 게 아닌가? 산에는 돈이 궤짝으로 수십 개가 넘어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 급하면 밥 끓이는 데도 쓰고 내동댕이치고 도망하는 수도 많다. 참 돈이 탈 때 연기가 안 나는 것은 신통한 일이다. 집에서는 돈을 태워 본 일이 없다. 차마 아까워서 어떻게 태우고 있을 것인가? 아마 그만한 돈이 있었으면 아예 입산 따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민초 출신 농민들인데 산에서 돈을 태워 밥을 짓는 꼴을 보면 장관이다. 아예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짓이었을 게다. 아무 말 없이 한숨을 쉬어가며 돈을 태우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돈보다도 생명이다. 아, 나도 빨리 당원이나 되어버렸으면 좋겠다. 이곳저곳 파견을 나갈 때마다 대우를 받는다. 그들은 지방 조직의 실태를 보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가 나쁠 때는 보고만 해버리면 된다. 그들은 특수 유격대로 생명을 걸고 다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존재들이다. 그러나 산에서 일생 파묻혀 권리를 휘두르면 무엇 할 것인가? 그 직책이 얼마나 계속될 것이라고. 나는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것이 좋다. 산보다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개 짖는 소리까지 조심하며 걸어야 할지라도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돌아다니고 싶다. 인주를 서야 하는 자식들, 너희들도 고생이다. 우리야 고생하는 것이 당연하지마는 고된 몸을 눕히고 평화롭게 살 꿈이나 꿀 너희들이 밤잠을 못 자고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하니 말이다. 그게 무슨 짓이냐? 그러나 너희들은 짖어대는 개보다도 덜 무서운 존재들이다. 그저 애매하게 두들겨 맞기 위해서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때문에 이렇게 쭈그려 앉아 있다고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예 원망 같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무한히 많은 원망을 어떻게 하고 있을 것인가? 나도 나를 원망하려면 나를 명령하는 지하 공작대들을 원망해야 한다. 그들을 원망하려면 평양에 있는 공산주의의 우두머리들을, 그리고 소련 크레물린 궁전에 모인 대가리들을, 그럴라치면 공산주의를 낳은 마르크스나 레닌을, 아니 그들을 낳은 아버지들을, 그다음은? 나도 모른다. 어쩌면 지구상의 모든 것을 저주하고 다음으로는 달나라 그리고 모든 태양계가 끝나면 우주로 이렇게 저주는 번져 나갈 것이다. 이러다가 우리는 원망할 대상을 놓치고 만다. 결국,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아무런 구속이 없고 자유롭기를 바란다. 결국, 모두가 자유롭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속해 달라고 스스로 내맡긴 것이다. 불평등하게 돈을 벌 수 없게 법을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잘살기 위해서다. 지금은 불평등하다. 그래서 있는 놈들을 쳐부숴야 한다. “칠버언 아직 멀었다고 전달.” “육버언….” “오버언….” 메아리처럼 처량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자 이젠 나도 태연히 있을 때가 아니다. 기회만 있으면 넘어설 궁리를 해야 한다. 2시 25분. 우리는 이미 늦어버렸다. 산으로 되돌아가기는 글렀다. 번호 따위는 잊어버리고 빨리 졸기나 해라. 나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제2 변전소를 습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시각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을 게다. 그러나 내가 갈 길은 빤히 한 가닥 밖에는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은 편하고도 괴로운 길이다. 나는 변전소를 습격함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생각할 수도 없거니와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것이 본부의 커다란 계획에 유익하다는 것뿐이다. 이런 짓을 하지 않고도 편히 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바라는 것과 현실은 언제나 저만큼 거리가 있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할 것은 없다. 그런 괴로움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안고 나온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인간이 되고 싶다거나 되기 싫다거나 하는 선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인간으로 이 세상에 던져진 것뿐이다. 이제 사는 이유는 지금부터 생각할 문제다. 나는 빨치산이 되고 싶다거나 되기 싫다거나 해서 된 것은 아니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이다. 남아 있으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형이 둘이나 공산주의자고 또 나처럼 싸우다 죽었으니까 성분이 좋다고 인정을 받고 나도 이렇게 싸우는 사람이 되었다. 다 내 책임이다. 모르긴 해도 형도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공산주의가 좋다는 많은 이유를 발견해 냈다. 나도 앞으로 그런 이유를 발견해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외우는 것에는 별 흥미가 없다. 아침이면 애국가를 부르고 수요일 금요일에는 팸플릿을 받아 외우고 ‘소규모의 무력으로 민심 영향의 주도권을 장악하자!’라고 구호를 외치는 등 이런 것에 무슨 중요한 뜻이 있을 것인가? 열에 뜬 환자들이 죽음을 앞에 두고도 어쩌면 약방을 털어서 가져온 얼마 안 되는 대마초를 서로 나누어 피우는 정경, 이런 것이 삶에 더 깊은 뜻을 가져온다.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본능이다. 정말이다. 인주 너희들도 나 같은 입장에서 이렇게 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 약점투성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말이다. 나도 다리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면 빨리 빨갱이가 이 지구상에서 없어져서 전쟁하지 않고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다. 바라는 것은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다만 너는 평화스럽게 산다는 것을 그런 말로밖에는 표현할 줄 모르고 나는 그것을 표현하는데 ‘조국해방’이란 말밖에는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서 즐겁게 산다거나 조국해방이 된다는 것이 우리 같은 민초들의 힘으로 이루어지리라고는 엄두도 못 한다. 그것은 우리보다 훨씬 윗사람들이 할 일들이다. 다만 이 순간에는 너와 나의 악의 없는 대결이 있을 뿐이다. 빨리 졸기만 해라. 나는 이 길만 넘어서면 너와 싸워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는 너무 오래 한곳에 엎디어 있어서 이제는 팔과 다리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 의심스러워졌다. 팔과 다리와 궁둥이는 어둠 속에 녹아버려서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앞으로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인지 그것마저 의심스럽다. 그러나 그는 손을 들어 자기 다리를 더듬어보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진 것을 깨우고 싶지 않다. 나는 너무나 팔과 다리를 혹사해버렸다. 순종밖에 모르는 것을 제멋대로 부려먹는다는 것은 죄악이다. 자 나는 쉬지 않더라도, 너나 실컷 쉬어라. 앞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이 닥쳐올지 모를 일이다. 인주도 너처럼 잠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어쩌면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번호를 부른 뒤로도 한 시간은 지난 것 같다. 건너려면 또 번호를 부르기 전에 지금 건너야 한다. 누가 궁둥이를 좀 들이차 주었으면 좋겠다. 도무지 나는 너를 깨우고 싶지 않다. 전쟁놀이라면 모든 것을 이 정도에서 끝내버리련만……. “어쩔까?” 머리를 내밀고 인주들을 살피고 난 정수가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2시 40분이었다. 나는 보도로 고개를 내밀었다. 모닥불은 훨씬 시들해져 있었다. 그러나 인주는 석고처럼 꼼짝하지 않고 이전 그 자세로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정수가 슬슬 보도를 기기 시작했다. 나도 가만히 한길 위에 배를 눕혔다. 이제 넘는 거다. 똑바로 앞만 보고 있는 6번 인주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5번 인주도 염두에는 없었다. 나는 건너간다. 볼 테면 봐라. 죽고 싶으면 악을 써라. 너도 마지막이고 나도 마지막이다. 그는 팔뚝으로 땅을 짚고 배를 가만히 들어 벌레처럼 한길을 기었다. 제발 보지만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불쑥 내민 따발총을 어깨에 잡아 묶고 하얀 한길을 건너는데 눈을 돌리면 안 보일 턱이 없었다. 옆에서 M1을 들고 기던 정수가 바스락 소리를 냈다. 그는 눈을 감고 손을 위로 뻗은 채 엎드려 버렸다. 마치 꿈속에서 몸이 공중으로 둥둥 떠올라 안 보이게 되는 것을 바라기나 하는 것처럼. 눈을 뜨자 정수는 한길을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손에 잡히는 풀을 붙들고 멍청해진 정신으로 몸을 당기며 정수를 따랐다. 길을 넘어 한참이나 엎디어 동정을 살폈다. 인주는 분명히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 없다. 그들은 도로 가의 물을 건넜다. 그리고 어떻게 포복했는지도 모르고 언덕마루에 가 엎디었다. 일시에 맥이 풀리며 넘어온 것이 아무래도 꿈만 같아 얼마 동안 그렇게 엎디어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 넘어올 형식과 영남을 생각하고 그들은 서로 헤어져 정수는 6번, 그는 5번 인주로 다가갔다. 그러나 미처 다가가기도 전에 형식과 형남이 한길을 넘어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5번 인주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무릎을 세워 껴안은 팔 위에 턱을 괴고 잠들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싱거운 자식들.” 나는 잘 있으라 하고 어깨를 두들겨 주고 싶은 환희가 심장에서 발끝과 손끝으로 빛발처럼 뻗어 나가는 것을 의식했다. 목표지인 제2 변전소에 가까운 무덤 앞에 이른 것은 3시 10분이 다 되어서였다. 그들은 무덤이 허물어지지 않게 물이 흘러내리도록 파놓은 곳에 엎드렸다. 싸늘하게 떨며 반짝이고 있는 전등이 눈물겹도록 반가웠다. 총을 내리자 어깨는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그들은 새까만 변압기를 조준했다. 백 야드 아마 그 정도다. 정말 반갑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어려운 고비를 넘었는지 모른다. 달려가서 얼싸안고 싶다. 내가 가진 무엇이든 주고 싶다. 그러나 내가 지금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탄환뿐이다. 그들은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총소리가 유난히 크게 밤공기를 울렸다. 아무런 반항이 없었다. 거기는 경비가 없는 모양이었다. M1이 둘, 따발이 하나 경기가 하나. 따발은 변압기를 꿰뚫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없이 쏘아댔다. 탄창 속이 조금씩, 조금씩 비어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건 무거운 살덩이가 한 점씩, 한 점씩 떨어져 나가 몸뚱이가 공중으로 뜨는 것처럼 가뜬하게도 느껴졌다. 전기가 언제 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사격이 끝나고 나서 온몸이 노곤하다는 것을 느끼며 한참 동안 말없이 멍청하게 그 자세로 누워 있었다. 그저 끝없이 허무한 심정이었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애오라지 느른해진 육체뿐이었다. “어떻게 할까?” 정수가 흥분한 채 말했다. “이제 돌아가긴 너무 늦었어.” 영남의 목소리였다. “우리 집 방공호가 어떨까? 일단 후퇴하는 거야.” 나는 갑자기 우리 집 뒤 방공호를 생각했다. “뭐? 입산을 포기하지는 말이야? 그럼, 여기서 고스란히 죽자는 말이나 마찬가지지.” 반장인 정수의 말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급속도로 물속에 처박혀버리는 다이빙은 짜릿짜릿한 쾌감이 있다. 그러나 다시 물 위에 솟아오를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더욱 쾌감이 짙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런 다이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불안과 공포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여기서도 죽고 나가도 죽는다. 기왕에 죽을 바엔 나가면서 죽어야 할 게 아냐? 죽음을 기다리는 미친 자식들이 어딨어.” 정수는 M1의 탄창을 뺐다가는 다시 꽂았다. “잔소리는 말고 오늘 밤엔 뜨는 거야. 놈들도 꼬박 이틀 동안 수색을 했으면 지쳤을 거야.” 정수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수색에 지치기는. 수색망이 더 좁혀졌을 뿐이겠지.” 내 대답에 정수가 벌떡 일어섰다. “너 사상이 변한 건 아니겠지?” 나도 얼결에 일어섰다. “이 새끼 너 말이라고 하나?” 나는 주먹으로 정수를 호되게 갈겼다. 형식과 영남이 황급히 말렸다. “좋다, 좋아 자식아.” 정수가 침통한 표정으로 쭈그려 앉아 손으로 턱을 고였다. 나는 웬일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 가야 한다. 어머니나 형수가 아무리 무지개 같은 정보를 갖다 줄지라도 우리는 방공호 속이 아니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한다. 가다가 죽어야 한다. “정수가 잘 못 했어. 사상을 운운한 것은 말이야.” 영남이 말했다. “아니야 내가 잘 못 했어.”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영남이 나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만날 생각을 하니 신경이 날카로워진 거야.” 나는 그 손을 밀어냈다. “그것이 아냐. 그것이 아냐.” “미안하다. 실은 나도 잠깐 돌아가신 어머님의 꿈을 꾸어 마음이 언짢아.” 정수는 내 곁으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른 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내미는 손을 뿌리쳐 버렸다. “싫다. 너는 지휘자로는 너무 약하단 말이야. 왜 곧 ‘떠나자’라고 하지 않고 늘 의견을 묻느냐 말이야. 너는 나가기가 무서운 거지? 아니 죽기가 싫은 거지?” “뭐라고? 우리에게는 ‘지휘’가 없어. 모두가 평등하단 말이야.” “그럼 명령계통이란 뭐야.” “그건 직책상 하는 거지.” “나는 그런 이론은 싫다. 아무튼, 지금 우리에게 명령할 사람은 누구야? 누가 명령하느냐 말야?”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한순간 나는 죽을 바엔 여기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는 팔과 다리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 그러나 가라면 간다. 가고 싶은 것은 우리의 희망이고 갈 수 없는 것은 현실이다. 인간인 이상 죽기 전에 이런 상태를 모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에겐 누군가 명령하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절대적인 자유가 나에게 허용되어 있지 않을 바에는 말이다. 꾸중을 들어가면서도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던 국민학교(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이 역시 즐거웠다. 탈선할 때면 아슬아슬한 단애를 느껴서 더욱 좋았다. 총사의 명령에 복종하는 빨치산 생활, 그 속에서도 나는 이런 선택의 괴로움을 겪어보지 못했다. 나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나가야 좋을지 더 기다려야 할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방공호는 튼튼한 것이다. 뒤뜰 언덕에 비스듬히 밑으로 파 내려간 것으로 안쪽은 사람이 서서 걸어 다녀도 충분할 만치 높고 깊다. 그리고 뚜껑만 잘 닫아 놓으면 발견될 염려는 없다. 먹는 것도 충분하다. 어머니가 아껴 놓았다 준 감만 먹어도 살이 찔 것 같지 않았던가? 그러나 오늘 하루 사이에 발견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으랴. 이런 걸 생각하고 있다가는 결국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버릴 게다. 기다려 보자. 자연적이건 인위적이건 결국 나를 명령할 절대자가 나타나고야 말 것이다. 개인이라도 좋다. 다만 그것은 내가 꿈쩍할 수 없을 만치 강한 것이라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나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 무엇이라도 좋다. 나는 더는 이렇게 애매해지고 싶지는 않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그만 생각하자 나는 좀 더 명랑해져야 할 것 같다. 아무 괴로움 없던 옛날처럼 집 앞뜰을 한 번만이라도 조용히 걸어보고 싶다. 내가 심어 놓은 감나무를 떠나기 전에 좀 더 자세히 봐둘 걸 그랬다. 정신없이 빻아서 준 미숫가루를 들쳐 메고 떠날 때 어머니가 주신 감은, 곧 돌아올 것이라고 비웃으며 먹어보지도 않고 떠났었다. 그 감나무는 국민학교 사학년 되던 가을에 산에서 옮겨 심은 걸 이듬해 봄에 아버지가 접붙여 기른 것이다. 처음으로 감이 연 것은 중학교 이학년 때였다. 첫물 감은 다 따버려야 다음 해부터 감이 굵게 많이 열린다는 걸 내가 우겨 여섯 개를 남겨 놓았다. 우리 식구는 아버지, 어머니, 형과 형수 사범학교 졸업반이던 작은형 해서 도합 여섯 명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데서 보지 못한 만큼 굵은 감이었다. 익기 전에 하나는 벌레들이 먹어 떨어져 우리는 누구 몫이 떨어졌나 구지(추첨)를 뽑자고 웃어댔다. “올해는 내가 안 먹을란다.”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렇게 웃고 지나던 식구 중 남아 있는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 형수뿐이다. 채소밭을 일구어 아버지를 돕던 큰 형도 죽고 교편생활로 집안이 펴진 것 같은 인상을 주었던 작은 형도 죽었다. 모든 것이 꿈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감나무는 이렇게 추억만을 간직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해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무엇이라야 한다. 나는 꽃밭을 가꿀 걸 잘 못 했다. 댕강 밑동을 쳐서 놔도 겨울에 썩지 않게 짚으로 묶어 놓기만 하면 다음 해에는 내 키의 두 배는 자라는 파초로부터 화단 가에 눌어붙은 채송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화초를 가꾸며 즐길 수 있었을 게다. 돌의 위치나 키가 큰 파초, 해바라기 위치, 담으로 오르는 나팔꽃, 그밖에 맨드라미, 봉숭아, 분꽃, 코스모스, 국화, 함박꽃 등의 배열을 계획하고 또 어머니께 물었었다. 그러나 화단을 가꾸어 놓았다 해도 이제 쓸데없는 일이다. 어머니는 과거에만 파묻힐 뿐 그런 걸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이다. 방공호에서의 이틀이 지났다. 지금 4시다. 아직도 해가 지려면 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오늘은 어쩐지 시간이 더딘 것만 같다. 결국, 오늘 밤엔 떠나야 할 것이다. 누구나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 이틀 동안이나 이 방공호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저 용단을 못 내리고 있을 뿐이다. 빨리 자정이 닥쳤으면 좋겠다. 굴속에서는 시간의 경과를 느낄 수가 없다. 무엇인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어야만 시간의 경과는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밤 같은 이 토굴의 생활은 너무 지루하다. 이 순간에 외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을까 하는 것쯤 상상할 수는 있다. 거미줄처럼 뻗어 대기 상태에 있는 경비 전화의 통신망, 혈안이 되어 노대실, 금당산, 태봉산, 주변을 더듬고 있을 경찰, 이미 아지트를 옮겨버렸을 빨치산……. 여기서 일어날 여러 가지 사건들을 추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상상만으로는 시간이 지난다는 실감을 얻지 못한다. 그것보다는 배가 고프다든가 어머니가 하루분의 식사를 들고 호의 문을 열 때 우리는 그 순간 여덟 시 전후를 살고 있음을 더 절실히 느끼는 것이다. 도무지 시계를 보고 싶지 않다. 어떨 때는 너무 빨라 오히려 시계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정확한 것은 우리의 느낌이 아니고 시계다. 앞으로 자정까지 여덟 시간 그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잠이나 잘 밖에. 지루하리만치 휴식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은 죽기 전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위는 놀란 그대로 그냥 두고 팔과 어깨와 다리만이라도 충분히 쉬게 하자. 누가 내 몸을 아껴 줄 것인가? 정말 미안한 것은 눈까풀이다. 인간의 신체 중 부분적으로 따져서 가장 들어 올리기 무거운 것은 눈까풀이라 한다. 내 눈까풀은 너무 오랫동안 휴식하지 못했다. 인주 사이를 넘어설 때만 해도 그렇다. 팔과 다리가 쉴 때마저 눈까풀은 줄곧 추어올린 채였다. 야간 팔십 리의 행군을 할 때도 눈은 뜬 채 잠을 잤다. 눈을 감아라. 그때가 가장 마음 놓고 편히 쉴 때다. 그런데 왜 모두 눈을 말똥거리고 뒹굴기만 하는 것일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섬뜩 놀라 눈을 뜨던 버릇, 까칠까칠한 눈까풀을 억지로 뜨고 있자면 눈알에 걸려 고정되어버린 것처럼 내려오지 않고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버릇. 이런 것이 눈을 감는 것마저 귀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쉿” 내가 돌아눕는데 곁에 누웠던 영남이 나의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비스듬히 일어났다. 모두가 꿈쩍하지 않은 자세로 귀를 모았다. 분명히 도란거리는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 왔다. 그것은 날카로운 어머니의 목소리도 같고 굵직한 아버지의 목소리도 같았다. 일제히 시계를 들여다봤다. 4시 10분이 조금 넘은 해가 많이 남은 때였다. 도란거리는 소리는 더욱 뚜렷해지며 말다툼 같은 거센 목소리가 들려 왔다. 모두 무의식중에 총을 붙들었다. 습격이 있는 바로 그날 경찰은 집에 찾아 왔더란다. 그러나 이런 습격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한번을 집을 찾아오는 것이 관례라 그렇게 의심하지 않고 갔다고 어머니는 말했었다. 그런데 또 찾아온 것일까? 어머니는 화가 나서 앞뒷문을 열어젖히고 여기저기를 약이 올라 설명하고 다닐 것이다. 그렇지만 무사히 이 호는 통과해다오. 내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방공호에 문이 활짝 열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야릇하게 심경이 전환되었다. 정수가 바싹 다가서며 M1의 안전장치를 돌렸다. 플래시를 비치기만 하면 쏘아버릴 작정으로 나는 따발총을 겨누었다. “무엇 때문에 방공호를 닫아 놓은 거요” 그 건 목소리뿐이었다. 네모나게 뚫린 방공호의 구멍 저편에서는 밝음이 밀려들지 못하고 가득 차서 남실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새까만 두 그림자가 밝음을 가로 막고 섰다. 나는 숨을 죽이고 노려보았다. “빨리 들어가 봐요. 그래도 이 속에 아무도 없단 말이요?” 나는 그 두 그림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것을 알았다. 쭈그려 앉은 두 어깨 사이로 가느다란 총신이 둔한 빛을 내면서 흔들거렸다. “손들고 나오라 목숨은 살려준다.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자식들 다행히도 플래시는 없나 보다. “자 들어가 봐요. 들어가요.” 아버지가 꼬꾸라지듯 들어서더니 뒤로 벌렁 넘어졌다. 찰나 경찰의 반신이 활짝 드러나더니 다시 어머니 뒤로 숨어버렸다. (아! 순간 피해 주지 않고.) “새끼 쏘아버리자. 응? 태호야 어쩔 테냐?” 정수가 귀에다 대고 다급한 소리로 뇌까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정수가 든 총신을 붙들었다. “안 나오면 쏜다.” 밖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다시 놓는 소리가 들려 왔다. 실탄이 공중에 뛰어올랐다가 땅에 구르는 것이 눈에 선했다. “오매 여보시오.” 어머니의 볼멘소리가 들려 왔다. “태호야, 태호야 부모보다는……” “기다려, 기다려.” 밖에 총신이 급격히 밑으로 굽더니 “탕”하고 총성이 울렸다. 나는 정신없이 정수의 총부리를 낚아챘다. “따다 땅.” “따따따따…….” 얼마 후에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일어서려 했으나 꿈쩍할 수가 없었다. 안개가 덮인 것처럼 아른거리는 안막에는 정수가 총부리를 입구로 향하고 깔아 놓은 가마니 위에 엎드려 얼굴을 파묻고 있는 것이 비쳤다. 어깨와 얼굴의 광대뼈에서는 거무스레한 액체를 땀처럼 흘리고 있었다. 형식과 영남은 간 곳이 없었다. 돌아보고 싶었으나 고개는 조금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힘없이 눈을 떨어뜨렸다. 깔린 왼팔에서도 피가 솟아 가마니를 거무스레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정수는 죽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도 죽어가는 것일까? 미숫가루를 메고 입산하던 때가 어제만 같다. 꿈같은 그러한 일들이 이제 모두 끝나는 것일까? 그러나 꿈보다는 짙은 무엇이 엄습해 온다. 팔과 다리와 몸……. 이들에게 안식을 이처럼 강요하며 달려드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세상에서 보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이 벙커 안에서도 보고 싶은 것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생각할 기능도 얼마 남아 있지 않다. 늦기 전에 너무나 혹사를 당한 내 몸에 진정 미안하다고 말해 두자. 그리고 내 영혼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누군가에게 내 욕망이 가져온 자의(恣意)를 용서받고 싶다. 이제 조마조마할 것 없이 눈까풀을 닫아라. 내가 바라는 길은 아닐지라도 이것은 죽기 전에 너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단 한가지 길이다. (1960년 현대문학 1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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