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神 없는 神 앞에-중편소설 1973년 [오승재]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5. 6. 04:33

神 없는 神 앞에-중편소설 1973년

은혜 추천 0 조회 90 20.01.17 10:18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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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본문내용

없는 앞에

오승재

 

1

 

전등을 확 켜자 잠결에도 눈이 부셨는지 왼편으로 돌아누우며 이 양은 오른발로 이불을 휘감아 안았다. 핑크빛 파자마 사이로 희멀건 허벅지가 탐스럽게 드러났다. 얄밉게도 흰 살결에 오뚝한 콧날, 우묵한 눈자위가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퍽 요염하게 비쳤다. 탐욕스럽게 그녀를 쳐다보는 손님들은 그녀를 이 양이라고 부르는 대신 마 양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꼭 서양 마네킹처럼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미국 GI와 한국 여인 사이에 태어난 가련한 고아라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아마 공부를 시키고 기능만 길렀더라면 그녀는 다방에만 묻혀있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정혜란은 그녀의 궁둥이를 철석 갈겼다. 그리고 부스스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 양아, 오늘은 네가 밥 좀 해. 식모(가사도우미)가 집에 가고 없지 않니?”

그리고는 또 계속했다.

그리고 말이야, 나 오늘 피곤해서 새벽기도가 끝나면 곧장 다방으로 갈 테니 밥 좀 가져다줄래? 알았지?”

그녀는 일어서 나가려다 말고 천장을 쳐다보며 머리를 뒤로 넘기는 이 양을 내려다보았다. 충만한 유방이 파자마의 앞 단추를 벌어지게 하고 있었다.

파자마 바람으로 덤벙거리지 말고 단정히 옷을 입고 밥해.”

혜란은 길거리로 나왔다. 먼 곳에서 불어온 찬 바람이 자고 나서도 아직 씻겨지지 않은 어제 하루의 미진한 생각들을 말끔히 앗아 먼 곳으로 달아났다. 그녀는 언제나 느끼는 너무나 공허해진 심정으로 걷고 있었다. 모세는 양 무리를 치다가 가시떨기 불꽃 사이에서 하나님을 만났으며 예수는 새벽 미명에 골고다에서 기도했다는 성구를 생각하며 이 공허한 마음의 상태야말로 하나님을 만나기에 알맞은 맑고 깨끗한 상태일 거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생선 장수 아저씨, 청소부 아저씨, 신문팔이 소년들과 스치는 동안 그녀는 공허한 마음에 새로운 생각들을 담기 시작했다. 교회에 대해 날로 도전적인 남편, 그림을 그리겠다고 백호 캔버스를 펴놓고 삼 개월간 그 앞에 앉아있기만 하고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는 남편의 고뇌, 매월 빚만 늘어가는 다방영업, 어린애라도 갖고 가정에 안주해버리고 싶은 견딜 수 없는 갈등, 왜 이 해결 없는 상황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야 하나 하는 근원적인 문제…….

교회가 가까워지자 찬송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발걸음을 재촉해서 교회로 들어서 찬송 소리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격렬한 이 찬송이 엉뚱하고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졌었다. 그러나 몇 장이고 몇 절이고 준비 찬송을 부르고 있는 동안 모든 인간적인 괴로움은 사라지고 빨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움트는 것이었다. 이날 설교는 키가 작은 박 장로의 신앙 간증이었다. 그는 교회에 미쳤다고 할 만치 신앙이 좋은 사람이었다. 장로장립 당시 교회에 헌납할 돈이 없었다. 그래 이 일을 위해 울부짖으며 백일기도를 시작했는데 어떤 분이 꼭 백 일째에 무명으로, 그것도 꼭 기도했던 액수만큼의 수표를 보내준 일이 생겼었다. 그는 장립식 때 말했었다.

저는 모든 것이 부족한 사람이올시다. 부족하다 못해 이 키까지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부족한 자를 들어 쓰시기 위해 제 백일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누구인지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자로 쓰셔서 기도에 응답해주셨으니 이제는 몸으로 이 교회를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박 장로가 장립식 때 이 이야기를 한 뒤로 새벽기도를 하는 신도의 수는 갑자기 늘고 교인도 붇기 시작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눈에 보이게 교인이 늘고 헌금이 늘자 신자들은 집안에 재산이 붇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은 기쁨으로 더욱 열심을 내는 것이었다.

저는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교회 재정의 2/10를 십일조로 내겠다고 서원하고 내기 시작했는데 그 회사가 점차 잘되기 시작해서 일 년도 되기 전에 십 배가 넘는 수익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사업에 바치는 돈은 몇 배로 해서 언제든지 갚아주십니다. 여러분! 세상의 썩어질 것을 위해 재물을 쌓지 말고 하늘나라를 위해 쌓읍시다. 우리는 맨손으로 왔다가 맨손으로 갑니다. 그리고 먹고 입는 것을 위해 걱정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교인이 넘쳐 예배를 볼 수 없게까지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반갑고 기쁜 일입니까? 이제 교회를 확장하고 하나님 나라를 지상에 건설하는 데 우리를 손발로 써주시라고 우리는 기도할밖에 없습니다.”

박 장로는 하나님 사업을 하고자 열심이 넘치는 이 교회 교인들에게 물질로도 축복해주고, 하는 바 사업이 다 번창해서 하늘나라에 많은 재물을 쌓고 천국에서 큰 상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로 그의 간증을 마쳤다. 이윽고 교인 전체의 통성기도가 시작되었다. 처음에 조심스럽게 조용조용히 시작된 기도는 점차 열도를 더하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마룻장을 치는 통곡이 시작되었다. 교회 건물은 좌우로 흔들리고 온 세상의 괴로움과 슬픔, 한스러움과 목마름이 한곳에 모여 큰 파도를 이루고 바위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져 나가는 동요가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필경 그의 살과 피를 먹이고 마시게 한 뒤 이 세상에 남겨둔 이 제자들의 고뇌를 들으실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 만나기를 갈구하던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라고 말씀하던 그 음성을 들려줄 것이었다.

혜란은 이때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환상을 보고 있었다. 마드리드의 투우장에서나 볼 수 있는 것 같은 시꺼먼 맹우(猛牛)가 고개를 숙이고 침을 흘리며 맹렬히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남편의 옆구리를 쳐 받고 멀리 쓰러뜨렸다. 놀란 그녀는 남편 곁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건 또 웬 조화인가 남편의 몸이 멀겋게 유리처럼 변하며 앙상한 뼈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주여어!”

하는 간드러진 여인의 음성이 귀를 찢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신호의 벨 소리와 함께 회중의 기도 소리는 점점 잦아 들어갔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이것은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다는 계시가 아닌가? 그녀는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기 시작한 후로 늘 교통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고 조마조마하게 생각해왔다. 그리고 뼈만 앙상하게 드러났다는 것은 죽는다는 말이 아닐까?

그녀는 가슴이 속에서부터 떨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그가 교통사고로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것 같았다. 그녀는 새벽기도를 어떻게 마쳤는지 알 수 없는 창황 속에 다방 쪽이 아닌 집을 향했다. 생각해보면 어젯밤 그의 행동은 평소와 같지 않았다. 화실에 처박히면 으레 두시나 세 시쯤 들어와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그녀는 언제 그가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잘 때가 많았었다. 그러나 어젯밤은 예외였다. 그녀가 퇴근하기 전부터 누워있었다. 그리고 정말 예외로 그녀에게 치근덕거렸다.

그녀는 왜 어젯밤 자기가 그렇게 매섭게 쏘아붙이고 돌아누워 버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졌다. 정말 그녀는 원하고 있었다. 또 그때가 어린애를 얻기 위한 적기라고 그녀는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녀는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다. 언제나 매월 그맘때가 되면 그녀는 이유 없이 어린애가 예뻐지고 등에 업고 오는 장사꾼의 어린애만 보아도 빼앗아 업고 어디론지 도망가 버리고 싶은 충동까지도 느끼곤 했었다. 결혼 뒤 삼 년까지는 피임하느라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그 뒤 어린애를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애를 갖기 위한 노력은 고역이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아무 결함이 없는 것을 병원에서 확인했다. 오 년째 되던 해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같이 종합 진찰을 받아보면 어떻겠어요.”

그런데 그는 버럭 화를 냈었다.

나는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했단 말이야. 그런데 왜 병신이 남을 의심하는 거야?”

그때부터 그들의 부부생활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간호부(간호사)로 있으면서 모은 돈으로 다방을 개업하고 그는 그림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어젯밤 그녀는 그의 욕구를 거절한 뒤 한순간 너무 심했다는 생각을 하였다. 새벽부터 온종일 너무 피곤했었다. 한편 화가 치밀어 올라 병신, 병신, 하고 마구 소리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인공수태를 해봤으면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와 그런 걸 상의할 분위기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그녀는 그녀대로 파멸로 달려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어젯밤도 그녀는 인공수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생각은 그녀를 흥분에 떨게 하였다. 딴 남자의 정충을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그녀를 그렇게 흥분시키는 것이었다. 누구의 것이 되었든 최후의 한 방울까지 빨아들일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바보 같은 애를 낳으면 어쩔까 하고 또다시 몸이 오싹해졌다. 기왕이면 아는 사람 것을 지목해서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 것인지 알게 되면 그녀는 그를 사모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육체적인 교섭을 갖게 된 것이나 무엇이 다르랴. 그렇다면 병원이란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이러다가 그녀는 피곤하여 잠들어버렸다.

 

혜란은 새벽기도 때의 환상 때문에 걱정이 되어 허겁지겁 집에 들렀다. 집 입구의 작은 문이 방긋이 열려있어 이 양이 쓰레기를 버리면서 잊은 것일 거로 생각하고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루 문을 열고 곧장 침실 문을 열었을 때였다. 그녀는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풍경에 아연했다. 남편과 이 양은 최절정이어서 한순간 사람이 들어온 것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 남편은 교통사고가 난 것이 아니었다. 혜란은 제정신을 잃고 어설프게 일어서는 이양의 머리채를 끌고 그녀 방에 처넣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화냥년.”

그리고 가슴이고 어깨고 허리고 되는대로 꼬집었다.

빨리 짐 싸서 못 나가?”

그래요, 나가겠어요. 다 망해가는 다방인데 뭐. 그러잖아도 오늘은 나갈 셈이었어요.”

당하고 있는 이 양이 아니었다.

뭣이 어쩌고 어째? 보기도 싫어, 빨리빨리 나가지 못하겠어? 무식한 걸 불쌍해서 데리고 있었더니 못할 말이 없어, 요망한 것이.”

혜란은 옷장을 열고 되는대로 그녀의 옷을 머리 위에 팽개쳤다.

그래 무식해서 그랬어요. 무식하면 그것도 못 하나요?”

아니 이 벼락 맞을 년 좀 봐. 남의 남편을 넘보고선.”

그리고는 할 말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그러나 이양은 그녀대로 동댕이친 옷을 걷어 가방에 넣으며 대드는 것이었다.

언니도 사람이면서 너무해요. 개도 ×할 때는 못 본 체한다는데 도대체 뭐예요 그게.”

아유, 요걸 그냥.”

혜란은 발을 동동 구르며 남편 방과 그녀 방을 왔다 갔다 하며 어쩔 바를 몰랐다. 하긴 이렇게 죄의식도 없는 무식한, 이 양만을 탓할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 방으로 뛰어갔다. 그는 벌써 출근할 준비를 하고 마루로 나오고 있었다.

뻔뻔스럽게 이래놓고, 출근이오?”

그녀는 소매를 꽉 붙들었다.

. 왜 이리 사람이 일시에 추잡해지지?”

그는 소매를 휙 뿌리쳤다. 도대체 누가 할 말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가 정신이 나간 채 서 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2

 

우울한 날이었다. 우울한 날씨였다. 하늘은 눈도 내리지 않고 찌푸리고만 있었다. 혜란은 병원을 향해 걷고 있었다.

일 년 전 다방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녀는 즐거웠다. 물오른 나무처럼 싱싱한 젊은이들이 종달새처럼 지껄여대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사업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신기했으며 직장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조용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기쁨이었다. 교회는 그녀가 찾은 작은 보람을 더욱 뜻있게 뒷받침해주고, 다시 다음 한 주일을 용기와 소망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었었다. 그러나 그것도 육칠 개월의 일이었다. 다방은 결코 명랑한 젊은이와 열심히 살려는 사업가와 고단한 직업인들의 안식처는 아니었다. 젊은이들은 다방을 수라장으로 만들고, 사업가와 직업인은 다방을 멸망 직전의 소돔과 고모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다방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의 태반은 빌딩주인이 가져가고 나머지는 세금과 인건비로 빨려가고 자기는 정신없이 허깨비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솜처럼 지쳐 빠진 몸으로는 부부생활마저도 의무감에서 행하는 게 달갑지 않은 봉사에 불과했다. 그녀가 스스로 기꺼이 바치는 것은 교회의 헌금뿐이었다.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그녀가 멍하게 다방의 홀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열두어 살 되는 껌팔이 소녀가 다방에 들어섰다가 손님이 없는 것으로 보고 약간 망설이더니 그녀 곁으로 왔다.

아주머니, 잠깐 제가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러더니 작은 책자 하나를 꺼냈다.

아주머니는 사영리에 대하여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이렇게 자기에게 전도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작은 책자 하나를 넘겨 가면서 설명하는 말은 너무 조리가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머니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인격적인 영접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를 위하여 마련하신 하나님의 아주머니를 위한 계획과 아주머니를 위한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너는 아니?”

그녀는 너무 신기해서 어려운 질문인 줄 알면서 다시 물었다. 그러나 소녀는 당황하지 않고 그 책자에 있는 두 개의 둥근 원을 보여주었다. 둘 다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었는데 왼편 것은 나 중심의 것이었고 혼란한 상태였으며 바른편 것은 하나님 중심의 것이었고 질서정연한 상태였다. 그녀는 바른편을 지적하며 신자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게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머니, 주님을 영접하면 됩니다. 그럼 주께서 아주머니의 삶을 살아주십니다.”

소녀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내 죄를 모두 용서해주심을 감사합니다. 내 몸을 드립니다. 내 안에 들어와 내 인생을 살아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녀는 십여 년 동안 교회에 다녔어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심오한 설교를 한 껌팔이 소녀에게서 들은 것이었다.

그녀는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하고 참으로 예수를 인격적으로 영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교회에 대한 열심과는 반대로 남편의 교회에 대한 열심은 점차 식어가기 시작했다. ·고등부 학생들을 가르치던 열심과 교회 장식을 위한 열심을 다 팽개치고 그는 화실에 틀어박히었다. 참 예수님을 그려보고 싶다는 것이 그의 집념이었다. 그러나 대문짝만한 백호 캔버스를 앞에 놓고 그는 삼 개월간 하나도 붓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그의 화실에는 성경과 신학 서적과 철학 서적, 교재용 성서 그림 등이 무질서하게 널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오직 새벽기도에서만 그녀의 삶의 보람을 찾고 있었다. 하루 생활을 울며 통회(痛悔) 자복하고 나면 허탈해진 마음에 소녀야, 오늘 구원이 너희 집에 이르렀다하는 따뜻한 예수의 손길이 뻗쳐오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녀는 껌팔이 소녀가 시도했던 사영리(四靈理)를 손님들에게 시도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옆에서 계속 그녀의 손과 발을 집적거리며 허튼수작이었다.

허허, 이거 마담이 완전히 돌았구먼. 삶이란 원래 목적이 없는 거야. 목적 전에 생명이 세상에 던져진 거지. 예수쟁이들이 공연히 목적이 있다고 조잡하게 이론을 뜯어 맞추는 거라구.” 하든가 아니면

마담, 오늘 밤 나하고 엔조이할까? 그 맛을 알게 되면 이까짓 복잡한 생각들은 아침이슬처럼 사라질걸.”

하는 게 고작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왜 생각이라는 것을 안 하고 사는 것일까? 인간이 영과 육을 공유한 것이 불행의 시초다. 영은 영원을 사모하고 육은 죄악의 산실이다. ·육을 공유한 이간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그칠 줄 모르는 육신의 탐욕에서 벗어나게 될까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질을 더 높이기 위해서다. 탐욕을 벗어나는 것은 괴로움을 수반한다. 누가 그러고 싶겠는가? 그러나 육신의 욕망만큼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영적인 갈망도 못지않게 크다. 그래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마담, 하나님을 만나려면 말이야, 술을 마셔야 해. 진탕 취해서 세상을 말끔히 잊어버리면 그 최상의 기분 상태에서 한순간 하나님이 보인단 말이야. 어때 오늘 밤 만나러 가볼까?”

 

그녀는 너무 많이 걸어서 엉뚱한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병원은 그쪽이 아니었다. 그녀는 되돌아 걸었다. 처음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 그녀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었다. 조금도 가슴이 떨리지 않았다.

어느 정돕니까?”

왼쪽 팔이 골절되고 안면에 약간의 상처가 있을 뿐이고 교통사고로는 가벼운 편입니다. 안심하십시오.”

그녀는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하고 약간 망설였다. 어느 정도 아침에 한 죄를 반성하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내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자기들은 무엇인가 어긋나있다고 생각했고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로운 길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병실에는 얼굴에 붕대를 감고 왼팔에 부목을 댄 남편, 박 선생이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혜란은 말없이 의자에 앉았다. 갑자기 미운 생각이 치밀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때, 시원하지?”

그는 빈정대는 말을 했다.

벌 받은 거예요.”

그녀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벌 받아? 하나님이, 네끼 이놈하고 나에게 벌을 주었단 말이지.” 그는 계속했다.

만일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그렇게 한가하게 혜란의 손발이 되어 벌주고, 상주고, 하시지는 않아. 하나님은 우리의 손발이 아니고 위에서 보고 계시는 분이야. 오늘 아침에 벌써 이런 일이 일어날 심리적인 요인이 움터있었던 것을 알고 계셨고 그 일이 일어났으니 이제 어떻게 하나 우리의 행위를 보고 계시는 것뿐이야.”

그는 일 년 전부터 당신이란 말을 쓰지 않고 혜란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건 심리적인 별거의 통고였다.

그래, 어떻게 할 것인데요?”

그녀는 죄를 회개하는 빛이 없는 남편에게 다시금 수그러진 노여움이 복받쳤다.

기도해 봐.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분명 대답해 주실 거야. 그 대답이 당신 뜻에 꼭 맞는 것이면 그 하나님은 당신 손발로 쓰기 위해 만들어 놓은 하나님이야.”

그럼 하나님께서 이른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라 그러실 것 같아요?”

기회를 주었잖아. 어젯밤부터 나에게 욕구불만이 되게 하고 새벽 기도 갈 때는 집에 오지 않고 직접 다방으로 가겠다고 말했고, 또 이 양이 어떤 애라는 건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잖아?”

듣기도 싫어요, 새벽기도는 어제오늘 다닌 게 아니잖아요?”

그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낼 건 없어. 혜란은 이때를 기다렸지? 내가 그렇게 될 때를.”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일어섰다.

당신 미쳤어요? 이제는 자기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우려는군요.”

둘 중 하나는 미쳤지. 아니 둘이 다 미쳤는지도 몰라. 그러나 이 말은 해둬야 해. 혜란은 줄곧 음모를 꾸며온 거야. 그래서 그 음모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뭔가 구실이 있어야 했어.”

교묘한 방법으로 자기의 죄를 합리화하는군요. 그래 내가 불의한 음모를 꾸민 증거를 대봐요. 대보라니까요.”

증거는 댈 수 없지. 그러나 인간에게는 보지 못한 것을 느낄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이 있단 말이야. 마치 하나님의 무한 차원에 있는 어떤 것이 인간의 유한 자원에 떨어뜨리는 이성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그림자 같은 것 말이야.”

그걸로 날 때려잡겠다는 거예요? 난 그런 당신을 보러온 것이 아녜요.”

그녀는 문을 열고 나오려 했다.

혜란, 잠깐만. 이제 우리 문제에 종지부를 찍을 순간이 왔어. 만일 내일 새벽 다시 새벽기도에 나가거든 혜란이 믿는 하나님께 우리 문제를 물어봐. 지금이라도 다방을 집어치우면 앞으로 살아갈 돈은 남을 거야. 그 돈이라도 남겨서 다시 병신인 내 품 안으로 오든지 아니면 혼자 살든지 혹은 평소에 그리던 임 곁으로 가든지 그렇게 해.”

말조심해요, 평소에 그리던 임이 어디 있어요?”

그는 능글능글 웃고 있었다.

많지 않아? 임 박사, 김 교수, 송 대리, 또 요즘 몇 사람쯤 더 생겼을지 모르지.”

혜란은 문을 땅, 닫고 밖으로 나갔다.

 

3

 

병원에서 준 아침을 마치고 박 선생은 천장을 바라보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하얀 병실의 천장이 백호 화판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가 삼 개월간 헤매었지만, 예수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자신이 하나님인데 마리아의 태를 의존해서 인간으로 태어났다. 왜 그런 일을 해야 했는가? 목적이 무엇인가? 자기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려고 왔다고 한다. 그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하고 떠났다. 어떻게, 무엇을 다 이루었는가? 예수가 피 흘려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그가 지상에 온 사명을 다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다 했는지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글이다. 성경을 보고 있으면 거기 하나님이 보여야 한다. 그런데 자기는 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라고 했는데 자기는 자기중심으로 성경을 읽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성경은 하나님이 죄로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 예수를 인간으로 지상에 보내셨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은 인간을 죄에서 해방하여 하나님과 화해시켰다는 뜻일 것이었다. 예수 사명의 절정은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다. 그는 겟세마네서의 기도에서 왜 이 잔을 자기에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을까? 어쩌면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갈등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지상에 남아 있을 인간에게 보인 기독교인의 모범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말했다. 결국,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옷 입으라는 뜻일 수도 있다.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자기의 사명은 다한 것이었을까? 아니다. 그는 죽음에서 부활하여 자기가 주장한 대로 하나님인 것을 입증한 뒤 이제는 그를 믿는 자들의 육체를 의지하여 직접 영으로 오시어 함께 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기로 하신 것이다. 하나님과 화해해서 사는 천국 시민의 공동체를 지상에 실현하기로 한 것이다. 지상에 예수를 믿는 공동체인 교회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지상에 추방된 죄인을 지기가 그들 대신에 죄가 되어 장사 되므로 구원하여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천국 백성으로 살게 하시는 예수님은 지금은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계시는가?

 

노크 소리가 나서 박 선생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들은 목사와 전도사, 그리고 몇몇 여집사들이었다. 문병의 상례적인 말들이 오간 뒤 목사는 교통사고에서 생명을 구해준 하나님 은혜에 감사한 뒤 병이 낫게 해달라는 간구와 혜란이 하는 다방 사업도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는 갖가지 세상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에 관한 이야기들을 한 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사님, 제 신앙문제에 대해 목사님과 단둘이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틈을 내주시겠습니까?”

목사는 순순히 응하고 다른 사람들을 내보낸 뒤 자리에 앉았다.

목사님, 이제 곧 병 낫게 해달라는 것과 사업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들어주실까요?”

박 선생은 대뜸 이렇게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오? 그래 박 선생은 목사의 기도를 의심합니까? 의심하는 자의 병은 예수님도 고치지 못하셨습니다.”

목사님, 제 병은 단순한 골절이고 목사님의 기도가 아니더라도 곧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방 사업은 현재의 운영방법을 계속하는 한 기도를 하셔도 가망이 없습니다.”

박 선생, 이거 완전히 사탄의 시험에 드셨구먼. 아무리 나을 수 있는 병일지라도 하나님이 내일 박 선생의 생명을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또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안 되는 사업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번창할 수가 있어요.”

목사님, 제 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 병은 곧 회복될 것이지만 아무튼 목사님 기도 때문이었다고 해 둡시다. 그러나 혜란의 다방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혜란은 목사님이 그렇게 기도하시기 때문에 사업이 잘될 것으로 믿고 믿습니다.’ 하고 계속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부담스러운 기도를 안 하시고 그냥 두면 스스로 매달려 기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텐데 목사님이 그사이를 가로막고 혜란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게 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아니, 목사가 병자 낫게 해달라는 기도와 교인 사업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기도란 목사님이 처방해 주는 만병통치의 약이 아니지 않습니까? 병들고, 상처받고, 진로가 막혔을 때 스스로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얻고 일어서도록 산파 역할을 해 주어야 신자 개개인이 사는 게 아닐까요? 저는 목사님이 이들을 위해 대신 기도해 주심으로 교인들은 점점 생각하는 힘을 잃은 가금의 무리가 되어간다고 생각을 합니다.”

박 선생. 선생은 지금 제사장을 모욕하는 거요? 기도를 받기 싫으면 안 받으면 될 것 아니요? ”

목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안절부절못하였다.

그 제사장 말인데요, 유대인들은 성전을 잘 지어놓고 제사장이 구세주가 오기를 기다리며 율법을 지켜 왔습니다. 구세주인 예수님이 오셨어도, 믿지 않고 오직 율법만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목사님이 지금도 제사장이라고 주장하고 새로운 율법을 강요하시면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못 사시고 떠나버리실 것입니다. 그래 지금 신도는 예수님 없는 우상 앞에서 예배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가시교인, 채점관 교인이 많다고 들었지만, 당신 같은 교인은 처음이요. 난 바쁜 몸이요.”

죄송합니다. 실은 제가 이번 일을 계기로 교회 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교회에 대해 여쭈어보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고 안 나오는 것은 박 선생의 문제고 내 문제가 아니오.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건 안 계시다고 하건 당신의 자유요.”

목사는 벌떡 일어났다.

목사님, 예수님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얼마나 애쓰셨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앉아서 제 고뇌와 결정에 도움을 주시지요.”

그는 방안을 왔다 갔다 하다간 다시 의자에 앉았다. 박 선생은 바싹 마른 입술로 또 묻기 시작했다.

우리 교인은 이 세상에 살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그럼 목사님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을 사는 이율배반적인 어떤 갈등과 고뇌를 느끼신 적은 없으십니까?”

그 고뇌란 세속적인 것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예수님을 참 구주로 영접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오.”

그럼 참 기독교인은 고뇌가 있을 수 없다는 말씀인데 참으로 이것은 당돌한 말씀이겠지만 목사님이 섬기고 있는 분은 하나님이 아닌 것 같습니다.”

뭐라구요? 박 선생 미쳤소? 아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는데.”

목사는 다시 얼굴이 새빨개지며 벌떡 일어났다.

듣고 싶은 말만 들려주는 분이 어떻게 참 하나님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고도 하십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고뇌가 없었을까요? 살기등등한 인공치하에서 너는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신도들은 고뇌가 없었을까요? 이 고뇌를 이기고 사는 모습이 세상을 천국으로 바꾸는 누룩인데 고뇌가 없다니 죽은 누룩에 생명이 있을 수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 고뇌가 누룩이라고 쓰여 있습데까? 원 세상을 살다 보니 별 교인을 다 보는구먼.”

목사님, 잠깐만 앉아서 제가 어떻게 길 잃은 양이 되었나를 들어주시지요. 목자가 하라는 대로 따라오다 보니 이렇게 절벽에 왔습니다.”

내가 박 선생을 절벽으로 끌고 왔단 말이오?”

그는 또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목사님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나는 목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신도와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사탄·마귀여, 물러날지어다.”

목사는 버럭 화를 내며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4

 

정혜란은 눈을 감고 홀 안의 의자에 앉아있었다. 손님이라곤 한 사람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목욕하고 느지막이 나타난 박 양은 하품만 하고 앉아있더니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었다. 주방장은 주방 안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그러나 정물화와 같은 이 다방 안도 노란 하나의 세계였다. 난로는 기름을 태우고, 파이렉스 병 안에 끓는 커피는 향기를 날리며, 스피커는 장엄한 음악으로 외계의 소음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속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혜란의 가슴 속이었다. 그녀는 헨델의 메시아를 듣고 있는 동안 걷잡을 수 없이 흥분되어가는 자신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할렐루야 코러스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청중들이 일어서는 모습이 선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리말 가사를 붙여 속으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왕의 왕, 또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지휘자의 지휘봉이 딱 멎었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 . . .

 

청중의 박수가 터져 나오자 그녀의 흥분은 절정에 달했다. 얼마나 황홀한 밤이었던가? 그녀는 십 년이 가까워지는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비록 아마추어들이긴 했으나 교회의 성가대원 백삼 십여 명이 연합하여 가진 자선음악회는 일생 그녀가 잊지 못하는 황홀한 순간이었다. 그날 밤 임 교수와 한 호텔 방에서 지냈다. 처녀가 결혼하기 전 한 남자를 알게 된다는 것은 성경에서 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에 흠모하던 그와 함께 지낸다는 것에 대해 그녀는 조금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애무로써 끝내고 자제하려는 괴로움을 그녀는 용납하지 않았다. 그녀는 더 깊고 깊은 관계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천국을 소유했다. 할렐루야를 부르던 때의 그 황홀과 임 교수를 소유하는 이 황홀은 참으로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먼 것이었지만 하나였다. 그녀는 그 순간 그런 모순을 조금도 죄로 의식하지 않은 채 천국을 소유했던 것이다. 다음날은 새로운 날이었다. 그와 공유했던 하나의 비밀이 세상을 뒤바꾸어놓았다. 삶에 목적이 생기고 혼돈의 세계에 질서가 보이며, 나타나지 아니한 미래에 소망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행복이 그녀의 행복이었으며 그의 아픔이 그녀의 아픔이었다. 그의 곁을 지나칠 때면 아무리 참으려 해도 눈웃음이 절로 나오고 몸이 비비 꼬이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내의를 세탁해주고 싶고 하다못해 양말이라도 세탁해주고 싶어 몸이 탔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다른 간호부가 눈치챌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러더니 육 개월 후에 그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몇 해 뒤 체념하고 지금의 박 선생과 중매결혼을 했으며 임 교수는 도미한 지 오 년 뒤 박사학위를 받고 새 부인과 함께 귀국했다. 그리고 메시아전집 앨범과 함께 훌륭한 전축 하나를 혜란에게 선사했다.

박 선생님 결혼할 때는 와보지도 못해서……

하고 남편에게 자기소개하던 임 박사를 보았을 때 당황하면서 참으로 뻔뻔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죄인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임 박사를 보았을 때는 옛날 천진스럽고 수줍어하던 임 교수의 모습이 떠올라 오히려 측은해지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황홀했던 하룻밤이 죄가 되었다면 그 죄는 자기에게 있는 것이었다. 합창 발표 후 이대로 병원으로 가고 싶지 않다고 드라이브를 제안한 것도 자기였고 밤새워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유혹한 것도 자기였기 때문이다.

임 박사는 옛날 교회로 다시 돌아가고 얼마 전에는 장로가 되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두 손으로 얼굴을 싸안았다. 복잡한 과거도 다 잊어버리고 복잡한 현실도 다 털어버리고 주님 뜻대로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임 교수가 떠나간 뒤부터 세상은 다시 혼돈이었다. 미래의 소망은 허깨비 같은 것이 되고 인생은 목적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귀찮은 살덩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삼 개월 전 새벽기도를 나간 때 다시 마음이 뜨거워지는 희열의 순간을 맛보았다. 외치고 울부짖으며 통성기도를 한 후 공허해진 한순간에 사랑하는 내 딸아 너에게 구원이 이르렀다하는 사랑에 넘치는 예수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불끈 눈물이 치솟으며 차마 고백하지 못했던 과거의 모든 죄를 단숨에 통틀어 고하는 방언이 튀어나오고 다음 순간 용서의 은총이 온몸에 느른히 퍼지는 행복감이 왔던 것이다.

그녀는 발작적으로 일어서며 말했다.

주방장 뭘 해. 찬송가를 틀어, 찬송가를.”

언제 들어왔는지 임 박사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혜란이 왜 이러시지?” 그는 측은해진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으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뭔가 잘못된 게 아니오?”

그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전 잘못된 게 없어요.”

그녀는 팔짱을 끼고 외면한 채 말했다.

그러나 다방에서 찬송가란 정상이 아니잖소. 다방은 경건과는 거리가 먼 곳이요. 스트레스를 풀러 온 사람들에게 찬송가가 어울리기나 합니까?”

전 세상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취미를 따라다니지 않기로 했어요. 따라서 교회음악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에요. 얼마 동안 나는 손님을 잃을 거예요. 그러나 반드시 이곳은 교회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소문이 나고 이곳을 찾아들 사람이 많아질 거예요.”

혜란. 이곳은 천국에서의 장사가 아니고 이 세상에서의 장사요. 고객이 왜 다방을 찾는가 하는 심리를 연구해야 하고 동업자와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단 말이오.”

그럼 다방이 어떡하면 더욱 퇴폐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줄 수 있는가에 대해 연구하란 말인가요? 전 못하겠어요. 또 그렇게 해서 돈을 벌어도 난 괴로울 거예요. 저는 온 세상을 복음화하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따를 결심이에요. 굶어 죽어도 전 그게 보람이고 소망이에요.”

다방이 꼭 퇴폐적이라야 한다는 이유도 없지 않아요? 그러지 않아도 잘 되는 다방이 얼마든지 있지 않소?”

정도 문제예요. 하나님도, 세상 사람도 다 만족할 수 없는 그런 미지근한 상태에 저는 더 머물러있을 수 없어요.”

혜란, 이런 말은 참으로 불쾌하게 들리겠지만 당분간만 이렇게 생활하면 어떻겠소. 신앙생활은 교회 안으로만 한정하고 밖에서는 철저하게 세상 사람으로 살면 말이오. 그럼 모든 괴로움은 없어지고 장사는 잘될 것이고 교회 생활은 그대로 또 즐거울 것인데.”

그녀는 멍하게 임 박사 아니, 임 장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임 장로님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셨나요? 하나님도 기쁘시게 하고 세상도 기쁘게 해 주는 그런 삶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습니다. 성형외과라는 내 직업 자체가 죄스러운 것이니까요. 하나님의 피조물을 마음대로 뜯어고치다니 말이 됩니까? 저는 환락과 경건의 쌍두마차를 타고 인생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강해져도 제 인생은 절름발이가 되는 거지요.”

참으로 편리한 인생이군요. 그래서 기독교인은 위선의 탈을 벗지 못하는 거예요.”

혜란은 철저한 기독교인 상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목수의 아들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지요.”

그리고 그런 참 기독교인은 지금까지 이 세상에 한 분밖에 없었지요.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 사이의 갈등과 고뇌를 남겨두고 간 것입니다.”

임 장로님은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갑니까? 환락과 경건 사이의 지뢰밭을 곡예를 하며 지나가기 위해서입니까?”

말에 가시가 있네요. 사실 인간은 도덕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경건의 말을 쏘아버릴 수가 없어서 번뇌를 이겨낼 만한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갑니다.”

무엇 때문에요?”

경건한 말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

왜 살려두나요?”

기적은 언제나 그쪽을 통해서 나타나거든요.”

해괴한 궤변이군요.”

궤변이 아닙니다. 저는 이제 신학의 초점이 종말론이나 기독론이나 교회론에 있지 않고 인간론에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을 통해서만 신의 세계는 현현되는 것이니까요. 동과 서는 정반대로 멀지만, 그것이 만나는 이상점이 있습니다.”

저는 교회가 온갖 우상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악의 소굴이라는 생각을 할 때 치가 떨려요.” 그녀는 몸부림을 치며 말을 이었다.

임 장로님은 그래서 죄의식이 없군요.”

혜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저는 평생 고뇌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게 아니오? 그게 내가 혜란을 어떻게든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구 말이요. 또 누구를 위해서든 선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도 하고.”

그래서 우리 교회, 박 장로 장립 시는 수표를 무명으로 보냈나요? 그건 장난이에요. 순진한 교인을 농락하는 장난이란 말이에요.”

그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혜란, 끝없는 토론은 그만둡시다. 그것보다도 혜란은 지금 허약해졌어요. 이 다방을 제가 인수하겠습니다. 당분간만, 정말 당분간만, 쉬지 않겠습니까?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돌려드리지요.”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제발 제 생활을 그만 간섭해주세요. 제가 하는 일은 선생님의 모습을 말살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다 죽는 일이에요. 돈을 벌고 못 버는 게 무슨 상관입니까? 나가주세요. 제발 나가주세요.”

그녀는 발작하듯이 소리를 지르더니 얼굴을 싸안고 주저앉아버렸다.

 

5

 

임 장로는 저녁을 마치자 우울한 기분이 되어 밤거리로 나왔다. 술이라도 한잔 들이켜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는 언제나 혜란을 만나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맥주라도 마시고 싶은 갈증을 느끼는 것이었다. 장로가 음주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편의상의 계율에 개의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어울릴 때마다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성구를 머릿속에 하나쯤 아예 담아두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마태복음 1511절의 구절 같은 것이었다. 그는 사실 종교를 하나의 색안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독교라는 색안경을 낀 사람과 불교라는 색안경을 낀 사람은 똑같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있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기독교라는 색안경이 반드시 다른 색안경보다 우월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 1926년 가을 캐나다의 선교사 서고도(William Scott)씨가 유급 교역자 강습회를 갖고 공자와 석가, 예수를 비교하라.”라고 요구하자 수강하고 있던 한 한국인 목사는 모기 새끼와 학, 두루미를 어떻게 감히 비교하며 범과 생쥐를 어떻게 감히 비교한단 말인가? 양은 신선한 샘물과 꼴만 먹고자 한다. 그대들이 주는 뜨물은 도야지나 먹을 것이 아닌가?”하고 일갈 후 주먹을 들어 강대상을 쳐 두 조각을 내고 이를 부드득 갈며 서 선교사를 향하니 모두 박수 갈채했다는 선교 비화를 읽었을 때 색안경도 짙은 색안경을 꼈다고 그는 코웃음을 쳤었다.

임 장로는 자기 자신이 왜 기독교인이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자기 나름의 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자신이 기독교인이 된 것은 기독병원에 근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고 교회도 나가보고, 권유에 못 이겨 찬양 대원도 되어보고 하던 것이 모르는 사이에 기독교인으로 굳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모호한 답변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세일즈맨이 이 색안경 한번 써보라고 권고했기 때문에 쓴 색안경을 평생 벗지 못하는 병신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안경원에 가서 어떤 색안경을 살까 하고 망설이다가 기독교라는 색안경을 고르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가치 기준이 모든 종교보다 우월한 척도가 되고 그런 상황에서 기독교를 신봉하는 신자가 되었다는 것도 우스웠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말인가? 그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것이었다. 고아가 어떤 사람을 아버지로 삼을까 하고 망설이다가 친아버지가 나타나는 순간 숙명적으로 그를 맞아들인 것처럼 이 색안경은 그에게 숙명적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다른 색안경으로는 갈아 끼울 수도 없고 또 벗어버릴 수도 없는 숙명적인 색안경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모호한 꿈을 꾸고 후에 합리적인 해몽을 하는 것과 비슷한 논법이었다. 어떻든 그는 기독교인의 시발점을 자기의 노력이나 판단이 아니고 신이 가져다준 은총에 두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과정은 말끔히 잊어버리고 그 시발점으로부터 세상을 새로 보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이 안경을 쓰게 되면 음주흡연을 해서는 안 되며, 무슨 책을 읽어서는 안 되며, 악한 세상을 바라봐서는 안 되며……하는 따위의 세일즈맨의 선전은 엉터리고 또 그들의 상술에 속아 그 안경을 쓰면 세상 사람이 상상도 못 하는 신기한 것을 보게 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이 세상을 직시하는 대신 하늘을 쳐다보고 누워서 그 신비한 환상이 나타나도록 지키라는 규칙과 형식만 따르고 있는 신도도 엉터리이고 사이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다.

머리에는 이토록 질서정연한 논리가 들어있었지만, 이 논리를 세차게 뒤흔들어놓는 강박관념은 자기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위선자라는 생각이었다. 재산과 생명을 초개같이 던지는 신자들 앞에선 이런 논리는 아침 이슬처럼 무력하고 오히려 타산(打算)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그는 자신이 그런 맹신자가 되어 재산과 명예를 다 잃을까 봐 늘 겁먹고 견제해오는 처지였다. 신에게 종속적인 나를 언제나 주장하면서 그는 내가 없이 어떻게 신을 생각할 수 있었단 말인가 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돌아오곤 했다. 가끔 그는 신 없는 세계를 더 향락하였다. 사실 몇 가지 의식만 행하면 모든 사람 앞에서 신을 잘 섬기는 게 되는 교회 생활을 그는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 신이 없는 교회 생활이었다. 그러다가 한순간 이것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면 곧 오뚝이처럼 자기의 위치를 되찾고 갈등 속에서 번민하는 것이었다. 그는 환락과 경건 사이에서 곡예를 했다.

 

그는 술집 문을 열고 성큼 들어섰다. 하얀 제복에 보타이를 맨 녀석이 기세 좋게 어서 오라는 말을 하며 서양 사람의 흉내를 내고 허리를 굽실거렸다. 실내는 어두컴컴하고, 왁자지껄했다.

어머, 임 박사님 웬일이세요?”

한 여인이 성큼 앞으로 나서며 팔을 끼고 아양을 떨었다.

이 양 아니야. 이거 어떻게 됐어?”

임 장로는 눈이 휘둥그레져 바라보았다. 혜란의 아담다방에 있던 이 양이었다.

저 얼마 전부터 여기서 일하게 됐어요.”

그녀는 물씬한 유방을 비벼대며 그를 마구 밀고 가서 의자에 앉혔다.

아이 재밌어.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그녀는 마구 손뼉을 쳐댔다.

아니 너 돌았니?”

웨이터가 물수건을 가져와서 정중히 서 있었다.

여기 맥주 좀.”

그리고 푸짐한 안주두요.”

그녀가 덧붙였다.

너 술집에서 그런 노래 부르면 벌 받는다.”

누구헌테요? 예수님헌테 말이에요? 그럼 이렇게 딱 껴안고 입 맞춰드리죠.”

그러면서 그녀는 임 장로를 껴안고 입을 갖다 댔다.

왜 이래.”

그는 멀찍이 그녀를 밀어냈다.

, 술이나 들자.”

, 사람 팔자 시간문제예요. 혼자 잘난 체하지 마세요. 돈만 있으면 제일인가요? 공부만 많이 했음, 제일인가요? 저 같은 사람은 천당에도 갈 수 없나요?”

이 양, 그럴 리가 있나. 너무 장난기가 심하다는 것뿐이지.”

그녀는 술잔을 거뜬히 비우고 안주를 뜯기 시작했다.

며칠 굶었어?”

그래요. 좀 먹여줄래요?”

아무렴 너 하나 못 먹이겠니?”

이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요. 오늘 밤 신나게 좀 먹여줘야 해요.”

임 장로는 웃었다.

아무리 허기지기로 되는대로 주워 먹으면 몸 버려.”

쓰레기 같은 몸인데 버리고 말고 할 게 있나요?”

그녀는 안주를 뜯으며 씽긋 웃었다.

이양, 자포자기하지 말고 새롭게 살고 싶은 생각 없나?”

시시해요.”

그녀는 다시 술을 꿀꺽 들이마셨다.

빈 병이 점차 붇기 시작했다.

이러다 취하겠는데.”

취하고 싶어 마시는 걸요 뭐.”

그는 멍하게 주기가 오른 이 양을 건너보았다. 그가 맥줏집을 드나드는 것은 취하고 싶어서였다. 취하면 한 번쯤 색안경을 벗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분수를 지키고 한 번도 취하지를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그를 견딜 수가 없게 했다. 친구들도 그래서 그를 소심하다고 말했고 한 번도 성인이 되어보지 못한 어린애라고 희롱했었다. 그는 취한 사람이 부러웠다. 종교가 되었든 돈벌이가 되었든 여자 문제가 되었든 광적으로 한 번쯤 취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혜란과 결혼하지 못한 것도 그렇게 취할 수 없는 말짱한 정신의 타산 때문이었다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선생님, 나 오늘 실컷 먹여준다고 했지요?”

그녀는 좀 취한 음성으로 그의 허리를 끼어 안고 가슴을 비벼댔다.

임 장로는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이 양, 어린애 갖고 싶어?”

그래요. 꽃씨 좀 심어줄래요?”

몇이나?”

열은 낳을래요.”

열은 너무 많고 넷만 낳는다고 생각해봐.”

왜요?”

아니 그래서 말이야, 삼십 년 뒤 그놈들이 다시 넷씩을 낳고……

왜 그렇게 자꾸 낳기만 해요.”

그렇게 되면 삼십 년에 인구가 배씩 불어난단 말이야.”

인구가 무슨 상관이에요?”

이 맹추야. 그렇게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 땅은 한정되어서 얼마 안 가면 한 사람당 자기가 죽어 묻힐 땅도 못 갖게 돼.”

박사님, 지금 무슨 꿈을 꾸고 계세요? 우리가 죽은 뒤의 일인데. 그리고 미래가 사람 생각대로 되나요?”

임 장로는 갑자기 껄껄 웃어댔다.

, 나도 취했어, 취했다니까.”

그러면서 다시 술을 따랐다.

, 건배하자. 아주 기분이 좋은데.”

그는 술을 들이켜고 일어났다.

길거리에 나서니 좀 어지러운 것 같았다. 마지막 한잔이 취하게 한 모양이었다. 그는 이양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라지지 않고 걸어 나왔다.

임 박사님, 저 오늘 드라이브시켜주세요.”

그러면서 그녀는 택시를 잡고 뛰어들었다.

 

6

 

정혜란은 밤늦게까지 텅 빈 다방을 지키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남편의 교통사고와 자기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 인생에 변화를 가져올 큰 계기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했다. 도대체 다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방은 천국에서의 장사가 아니라는 임 박사의 말은 옳았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또 지금처럼 한산하게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자기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이처럼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자신에게 타이르고 있었다. 지금 자기 마음 가운데 사는 것은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이라고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하나님이 사는 성전인데 다방이 망하면 어쩌랴, 또 길거리의 거지가 되면 어쩌랴?

그러나 자꾸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정말 하나님이 자기를 위한 놀라운 계획으로 다방경영을 계획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이었다. 다방개업과 함께 가정의 파탄은 싹트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보다 먼저 파탄의 실마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린애를 가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절망상태였고 다방영업으로 보람을 찾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소명의식이 생기기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다방에 나와서도 어린애를 갖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인공수정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번은 온천에 목욕하러 갔다가 불현듯 임 박사와 처녀 시절에 함께 지냈던 호텔 생각이 나서 그 방을 빌려 투숙하고 목욕한 일이 있었다. 당시는 그 고을에서 일류호텔이었는데 관광호텔이 들어서자 모습도 초라해지고 보잘것없는 곳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 온천물이 진짜라고 목욕하러 들어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녀는 목욕하다가 임 박사의 씨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순간하고 소스라치게 놀랬다. 그것은 분명 죄악이었다. 그런 뒤로 그녀는 남편에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상냥하게 대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사이는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 화실에 갇혀있기가 일쑤였다.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하자 그는 머리끝까지 화를 냈다.

혜란의 하나님은 죽어버렸어. 무엇 때문에 뻔질나게 쫓아다니느냐 말이야.”

뭐라구요?”

죽었어. 죽었다니까. 대부분의 목사가 모시는 하나님도 다 생명이 없는 우상이야.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셔야 해.”

그녀는 그가 정신이 돈 게 아닌가 하고 멍하게 쳐다보았다.

믿음이 뭔지를 알고 믿어야 참 신을 섬기지, 마룻장만 때리면 기적이 나타나나?”

그녀는 그제야 피가 거꾸로 도는 것을 의식했다. 그녀가 생명까지라도 바쳐 헌신하고자 하는 삶의 소망인 하나님이 죽었다고 공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알량한 당신의 믿음은 어떤 것인지 말 해봐요.”

믿음이란 지식이 아니에요. 목사님이나 누가 가르쳐 주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란 말이오. 자신이 예수를 만나서 그의 말과 행함을 진실로 믿게 되는 것이 믿음이지요.”

누가 가르쳐 주지 않는데 어떻게 믿게 된단 말이오? 성경에도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라고 했잖아요?”

물론 들어야겠지요. 그러나 믿는 것은, 나 자신이 하는 겁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 예수님이 보이고 그분이 하는 말을 믿게 된다는 말이오. 전하는 사람은 그를 성경으로 인도하는 것뿐입니다. 성경은 곳곳에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 보이고 계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안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면 안 되지요. 그럼 그분의 말씀도 못 믿는 것이지요.”

나는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못 보지만 목사님이 가르쳐주는 하나님을 믿어요. 목사님이 거짓말하겠어요?”

하나님은 내 안에 보혜사로 와 살아계시며 나와 직접 말씀하시는 분이에요. 목사님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란 말이오. 너무 답답해.”

뭐라구요? 병신이 병신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 교회도 안 나가는 당신의 하나님은 화실 속에서 잘 살아계시나요?”

이거 봐. 교회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안 계신다니까. 교회, 교회, 하지만 새벽기도 잘 나가고, 주일 잘 지키고, 십일조 잘하고, 주의 종이라고 목사 말 잘 순종하고 그러고 나서 나는 완벽한 기독교인입네 하는 사람처럼 골 빈 사람은 없단 말이야. 교회는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어.”

혜란은 억울하고 울화통이 터지기만 했다. 교회도 잘 안 나가는 주제에 무슨 기독교인 운운하는가? 가뜩이나 하나님이 죽었다고 떠들고 믿음이 어쩌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런 불경한 자들은 모조리 비로 쓸어서 활활 타는 유황불에다 던져버렸으면 하는 분노가 순간순간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엉터리 같은 신자였지만 임 박사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교회에 헌신하는 신자를 보면 고개가 숙어진다고 말했었다. 교회는 그들에 의해 유지되며 그들을 빼버리면 교회는 사회단체의 모임처럼 되어버린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영 빗나가버린 사람이었다. 도대체 신학자도 목회자도 아닌 그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교회에 걸린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 말씀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그려보겠다니 웃기는 일이었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의 십자가상과 어떻게 다를 것인가? 결국, 교통사고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모독의 대가라고 봐야 옳으리라 생각했다.

 

출발이야 어쨌든 다방영업은 본전이 날아가기까지 밀고 갈 생각이었다. 도시 안의 다방이 교회음악을 싫어하면 산중 등산로에 다실을 만들어 산에서 자연 계시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 교회음악을 들려주며 등산길, 하산길에 쉼터를 제공하고 그들에게 영적 공허감을 채워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고 싶다. 가진 재산이 다 떨어지기까지 자기의 할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탐욕은 주어 모으는 것이고 사랑은 베푸는 것이다. 에수님이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주셨다면 생명이 있는 동안 자기도 뭔가를 세상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 혜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생각이고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지라고 요구하시는 십자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보다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당면한 문제였다. 이 양과의 불륜의 관계를 조금도 회개하지 않은 남편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성경은 죄를 범하고도 회개하면 이른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지 않았다. 또 성경은 죄를 범하면 단둘이 앉아 권고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두세 증인과 함께 권고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그녀는 내일이면 목사님께 함께 찾아가 권고해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취급하면 될 것이었다. 그녀는 한결 해결의 실마리가 잡혀 후련해졌다. 그러나 다시 마음이 어두워졌다.

이 바보야, 율법의 멍에를 왜 지려고 해. 예수님께서 우리 죄가 되셔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자유를 주셨는데 왜 다시 종의 멍에를 메려고 해.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지 왜 구세주 예수를 부정하는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하느냔 말이야.”

이런 남편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불신자 같으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그의 말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이 맹추야. 율법 안에는 기독교는 없어. 우리나라가 왜 망했는지 알아? 불교 유교를 들여와서 알맹이는 다 팽개치고 이제는 껍데기만 가지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하고 싸우다 망했단 말이야. 기독교도 남의 나라 풍속, 그것도 낡아빠진 이천 년 전의 풍속대로 살아야 천당 간다고 가르치는 법이 어디 있어?” 남편은 또 눈을 부라리고 이렇게 대들기도 했다.

정말 교화는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아들인 예수님은 아버지인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려고 지상에 내려와 인간의 죄에 대하여 죽고 아버지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한 뒤 천국으로 올라가셨다. 그러나 부활한 지 50일 만에 다시 내려와 성령으로 믿는 자 안에 와서 사시며 천국 시민으로 사는 본을 보이기로 하셨다. 그를 믿는 자마다 천국은 확장되고 이방인의 수가 다 차면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初臨)과 재림(再臨) 사이를 살고 있다. 그럼 믿는 나는 죄를 짓지 않는가? 그러나 육체를 가지고 있는 나는 죄성(罪性)이 너무 강해서 늘 죄를 짓는다. 우리가 육체를 떠나 하늘에 올리게 될 때까지 우리는 지상과 천국, 유한과 무한의 경계선에서 늘 괴로워하고 죄를 질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려면 나는 날마다 죽어야 한다. 남편의 범죄를 자기는 정죄할 수 있을까 하고 혜란은 생각한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코트를 걸쳤다. 그리고 다방의 난로 단속을 주방장에 당부하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는 것이 춥지 않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웬일인지 엉킨 실들이 수월하게 풀려나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임 박사와의 문제도 종지부를 찍으리라 생각했다. 어린애를 갖고 싶다는 것은 자기의 욕망이고 갖고 못 갖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불투명해서 늘 죄의식이 수반되는 임 박사와의 감정을 깨끗이 청산하리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내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 이제 나는 죄를 용서받은 새 생명이다.” 그녀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 촘촘히 얼어붙은 별들이 눈길을 타고 내려와 가슴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양계가 생겨난 지 사십오억 년. 거기에 엽록소를 가진 박테리아가 생겨난 지 삼억 년. 그리하여 대기권에 산소가 고이기 시작한 지 이억 오천 년, 그리고 대기권 성운이 오늘에 가까워진 것이 일억 년. 포유류가 생기고 원시인이 생긴 지 이백만 년. 그리하여 현재는 인간이 서식하기에 가장 알맞은 환경이 된 거야.”

정말 세상은 아름답다고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느꼈다. 달리는 차와 아베크 하는 남녀 쌍들이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그림처럼 예뻤다.

앞으로 산소는 희박해지고 지하자원은 고갈되어 지구는 식어 달처럼 되고 포유류의 전성기가 가면 인류는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거야.”

남편의 음성은 아무 악의 없이 낭랑하게 그의 귓가에 울려왔다.

과학의 발달이 인류 존속의 소망을 그래도 줄 것인가? 원자력의 개발은 대기의 오염을 가져와서 오히려 인류의 운명을 독촉하지 않을까? 화학약품의 사용과 대기의 오염은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고 지구를 보호하자는 외침이 날로 커지고 있단 말이야. 사회학자들은 탈공업, 탈도시문명의 사회건설을 부르짖고 인간의 비인간화로부터의 해방을 외치고 있단 말이야. 결국, 급진적으로 발전해가는 이 시대에 사는 인간은 바로 눈앞이 아니고 먼 미래의 이상세계를 응시하고 오늘을 살지 않으면 인류의 종말은 멀지 않단 이야기야.”

남편의 목소리는 복잡한 인간관계를 초월한 제삼자의 목소리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택시를 타고 온천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격해졌을 남편의 음성이 덤덤히 들려왔다. 아니 병상에 누워있을 그가 오히려 측은히 생각되었다. 이 세상에는 신이 존재한다는 생각마저 가져보지 않은 채 아무 근심 없이 일생을 마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는 교회에서 죽었다고 생각하는 신을 두고 번민하는 것이 오히려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아니 신은 살아 있는데 죽은 신을 섬기고 있는 신도들이 안타까워 번민하는 것이 아닐까? 일단 그와 임 박사와 이 양과 다방과…… 이 모든 것과 인간적인 인연을 끊고 홀로 신의 계시만을 바라는 위치에 자기를 놓았을 때 이상하게도 아무도 미워지질 않았다. 오히려 모두를 용서하고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드라이브하다 말고 한때 죄의식도 없이 몸을 담갔던 낡은 여관을 들렸다.

투숙하시려구요?”

종업원이 물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히고 밖으로 나왔다. 불로 망해가는 환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와 다시 택시를 탔다. 남편을 한 번 더 만나보고 집으로 들어갈까 생각하다 그냥 두었다. 다시 무슨 심경의 변화가 올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는 모습만은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찾는 참 하나님의 모습이 자기가 사모하는 하나님과 얼마만 한 거리를 갖는 것인지가 두려울 뿐이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식모가 나왔다.

저 아저씨가 돌아오셨어요.”

언제.”

점심때쯤이요.”

그럼 왜 알리지 않았니?”

알리지 말랬어요.”

그녀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 주무시니?”

아니에요. 계속 화실에 계셨어요.”

 

화실은 대낮처럼 밝았다. 그녀는 급하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커다란 백호 캔버스에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 십자가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가 살아 있다고 주장하던 신의 모습은 안 보였다. 그 앞에 남편은 기도하는 자세로 고꾸라져 잠들어 있었다. 결국, 그는 살아 있는 신의 모습을 형상화할 수 없었던 것이다. 캔버스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예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이미 다른 화가들이 그려 놓은 종교화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그가 늘 말하던 홀만 헌트의 세상의 빛도 있었다. 평소에 그는 이 그림에 심취해 있었다. 왕관을 쓰고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는 왼손에 등불을 들고 오른손으로 똑똑 방문을 노크하고 있다. 담쟁이와 잡초가 우거져 뒤엉켜 있는 이 집은 오랫동안 아무도 방문하지 않은 모습이다. 때는 어둠이 새벽으로 바뀌는 시간, 안에서 문을 열어주면 예수는 들어가 온 방을 빛으로 채울 것이었다. 구원은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므로 자기는 문을 열 수 없다는 아집으로 어둠 속을 고집하고 있는 인간을 남편은 늘 한탄하고 있었다.

바보야, 예수님이 문을 두들길 때 응답하지 못하면 구원을 얻을 수가 없어. 구원은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것이지만 우리에겐 응답할 책임이 있어. 목사님은 나를 주님의 음성을 듣게 문 앞에까지 인도하는 초등 교사일 뿐이야. 깨닫고 변화되는 것은 내 책임이지 목사님이 할 일이 아니야.”

어떻게 하면 음성을 듣는데?”

성경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음성이거든. 읽고 기도하면 음성이 들리게 돼 있어.”

나는 성경 통독을 했는데 한 번도 음성을 못 들었는데?”

온 마음으로 주를 구하고, 찾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당신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어? 문을 열고 영접했어? 그런데 교회는 왜 안 나오는 거야?”

혜란은 빈정거렸었다.

나는 목사님만 쳐다보고 구원받겠다고 무조건 순종하고 있는 교인들이 너무 답답해. 정작 변화되어야 하는 사람은 자기인데 왜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지는 않고 목사님더러 무엇을 해 달라고 쳐다보고 있는 거야. 이렇게 모인 교회 공동체가 구원받은 사람들의 무리야?”

교회 공동체가 무언데.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구제하고, 목사님 영도 하에 서로 의지하며 살다 천국 가면 되는 것 아니에요?”

구원받은 각자가 마음 문을 열고 주를 영접했는가 하는 것이 문제지. 내가 죽고 예수가 내 안에 살지 않으면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지상에 살 수가 없어. 영과 육이 늘 싸우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겠어. 음행, 술수, 원수갚는 일, 분쟁과 시기, 방탕 등은 인간의 본성이야. 예수께서 내 안에 사시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다니까. 하늘과 땅의 경계선에서 기독교인은 날마다 예수처럼 어떻게 사는지 본을 보여야 해. 이런 삶이 천국을 미리 체험하는 삶이야. 그리고 이것이 예수 재림까지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라니까.”

그러려면 당신이 먼저 교회 안에 들어와 그 본을 보여야 하지 않아요?”

박 선생은 교회는 국민 소득이 오르고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또 하나의 작은 교황청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자정능력(自淨能力)을 잃어서 종교개혁 95개 항을 내걸면 모를까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도 했다. 문맹자도 없지만, 성경을 마음대로 토의하면 정통교리를 혼란하게 하며 이단에 빠지기 쉽다고 목사는 경고한다. 구역예배 때 절대 설교하지 말고 목사가 그 주일 설교한 내용을 다시 묵상하는 선에서 그치라고 한다. 교회의 일꾼인 장로나 권사는 반드시 성수주일하고 십일조를 내며 새벽기도에 잘 참석한 자 중에서 뽑아야 하며 그들이 맡는 분야는 성스러운 자리여서 예배성역, 찬양성역, 기도성역 등으로 명명하는데 이것은 구약의 성전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냐. 목사는 설교 준비, 설교, 심방, 교인 애경사 참석 등으로 너무 바쁘니 면담을 자제하고 전화도 삼갔으면 한다. 이것이 예수의 제자들이 할 짓이냐고 말한다.

그건 불신자들이 교회를 향한 부정적인 비아냥이 아니에요?”

그것이 사실이지 않아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교회가 세상보다 더 부패하고 있다는 말이요.”

이러던 그가 십자가 앞에 꼬꾸라져 기도하는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결국, 살아 있는 예수의 모습은 인간의 붓으로는 그릴 수 없다는 말인가? 그리고 인간이 그린 모든 예수와 교회에 계신다는 하나님은 다 말도 못 하고 생명을 줄 수도 없는 죽은 신이라는 말인가?

엎드려있는 그의 옆에 펴진 세계기도일의 책자에는 이런 내용에 밑줄이 박박 그어져 있었다.

이 주간에도 기적만을 바라고 군중이 모여 당신의 계시를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주여 저희가 깨어있어 말씀 안에서 주를 만나게 하소서

오늘에도 생의 쾌락이 우리를 자주 휩쓸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때라도

주여 저희가 깨어 주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이 시간에도 우리가 행동해야 하고 또 이미 우리가 말하고 행한 것이 주의 뜻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주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 순간에도 육신으로 말미암아 죄를 짓고 누가 그런 죄인을 건져 주실까 괴로워하며 당신께 기도할 때

오 주 하나님, 사랑의 성령의 법이 나를 붙들게 하소서.

혜란은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신은 죽었다고 외치며 살이 있는 신을 그리려고 몸부림친 남편이 한없이 가엽게 생각되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던 살아 있는 신은 십자가 앞에 보이지 않은 모습으로 항상 함께 있어 왔던 것이 아닐까?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은 그칠 줄 모르는 탐욕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이름 그대로 자기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예수는 문밖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교화가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을 대적하면 주님은 교회를 떠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믿는 자들의 모임과 함께 계시며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나를 붙들고 나를 굳세게 해 주실 것이다. 주님을 믿는 자들의 모임은 때로 실족할지라도 지상과 천상, 유한과 무한의 경계선에서 주를 힘입어 영원을 사모하며 고난을 극복하며 주를 닮은 삶의 본을 보이며 살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이 늘 말하던 천국이 아닐까? 내게 들어와 나와 함께 먹으며 사시는 하나님이 실은 남편이 그리려 했지만 그리지 못한, 보이지 않은 참 신이 아닐까?

그녀는 쓰러져 잠들어 있는 남편을 껴안았다.

 

 

 

이 글은 1973년 7월 현대문학 223호에 실린 글을 개작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