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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바깥길] 코로나 시대의 어떤 하루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5. 14. 08:11

[이상헌, 바깥길] 코로나 시대의 어떤 하루

등록 :2020-05-12 18:49수정 :2020-05-13 22:54

 

2000년대 이후 메르스와 사스 같은 유행병을 살펴보니, 예외 없이 그 이후에 불평등이 늘었단다. 이번에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인데, 한숨이 먼저 나온다. 오늘도 거대한 상실의 하루였다.

누렇게 탈색된 휴대폰이 울린다. 금요일 아침이다. 어차피 재택근무. 서두를 것도 없는데, 몸을 일으켜 세운다. 둔하고 구리지만 연신 꿈틀대는 굼벵이 같다. 휴대폰 시계 알람만큼만 착실해지기로 한다.벌써 석 달째다. 유럽에서 나의 허접한 상상력을 간단히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졌다. 사실상 감금이다. 친구나 친지를 만나 밥 먹고 수다 떠는 것은 황망한 꿈이 되었고, 빵 한쪽을 사러 나가더라도 ‘허가증’을 지참해야 한다. 자식은 부모를 찾아보질 못해서, 문 앞에 음식을 남겨두고 창문 앞의 노부모에게 울먹이며 “사랑해”라며 외치고 노래도 부른다.

 

상황 자체의 엄혹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은 어느 겨울 더블린의 낡은 집과 음습한 거리 모퉁이에서 보았던 낮고 짙게 깔린 안개를 닮았다. 그토록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외치던 나라에서 순식간에 펼쳐진 디스토피아다. 이를 견디지 못한 친구들은 케이(K)방역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밤새 문자 하나가 또 들어왔다. 독재 경험이 있는 나라가 방역을 잘한다는 계량통계적 증거가 나왔다 한다. 읽다가 그만둔다.

 

그때 잠에서 막 깨어난 아내가 알려준다. 자유를 일찍 찾은 이태원 클럽에서 대규모 바이러스 감염이 있었다고 한다. 성공은 부패하기 쉽다. 한국인들은 성공한 탓에 ‘실패의 고통’을 잘 알지 못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방역을 위해 자유를 조정할 방법과 시간을 찾지 못해 극단적인 ‘감금’을 선택했다. 자유는 아슬한 균형이다. 타인의 건강을 존중해주지 못하는 자유는 결국 길을 잃고 스스로 유폐된다. 자유와 감금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아내에게 출근 인사를 한다. 이런 실없는 ‘의례’마저 재택근무의 버팀목이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책상에 앉는다. 출퇴근시간이 없어지니 근무시간은 늘었다. 재택근무의 역설은 넘치고도 넘친다. 모든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면 재택근무의 장점은 사라진다. 모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이메일과 온라인 회의 제안을 쏟아낸다. ‘워라밸’은 더 어려워졌고, 노동강도도 높아졌다. 다른 한편, 일거리가 대폭 줄어든 행정직은 혹 잘릴까 걱정한다. 휴대폰에는 단체문자가 여럿 와 있다. 하나는 수요일에 온라인 회의를 금지하자는 제안이고, 다른 하나는 수요일에 온라인 요리 코스를 열자는 것이다. 버티어보려는 발버둥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치다. 재택근무 하면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많지 않다.

 

밤새 온 첫 이메일은 이번에도 워싱턴과 뉴욕발이다. 우리가 잠을 청할 때 그쪽은 한창 바쁠 시간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인이다. ⟨IMF, 불평등에 맞서다⟩라는 책을 낸 사람인데, 얼마 전에 논문을 새로 썼다 한다. 2000년대 이후 메르스와 사스 같은 유행병을 살펴보니, 예외 없이 그 이후에 불평등이 늘었단다. 노동 취약계층이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 감소를 겪게 되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인데, 한숨이 먼저 나온다.

 

인터뷰 요청이 밀려든다. 경제와 고용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 또는 언제쯤 좋아질지를 묻는다. 아주 불확실하며,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런 뻔한 얘기를 자꾸 하기가 미안해지면 슬쩍 다른 동료에게 떠넘긴다. “지금, 너무 바쁨. 네가 처리해줄래.” 부탁의 형식을 취한 ‘명령’이다. 그러면서 미안함보다 안도감이 먼저 느껴진다. 나도 이렇게 일상의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다.꽃이 잘 도착했다고 한다. 보스가 며칠 전 정년퇴직 통보를 받았다. 그녀의 노련한 지도력이 필요한 상황인데, 의외의 결정이었다. 코로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계산의 완고함이다. 우리는 그녀의 작별 통보를 화상으로 전해 들었다. 네트워크 과부하를 걱정해서 화면도 켜지 못하고 목소리만 들었다. 떨리는 목소리, 하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니 긴 적막만 남았다. 그래서 꽃을 보냈다. 나는 프랑스, 그녀는 스위스에 있으니, 배달 주문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남의 손’으로 전달하는 것마저 조심스러워 동료에게 부탁했다. 눈물꽃이 날렸다는 말, 이메일로 전해 들었다.

 

이제 뉴스가 밀려든다. 예상했던 뉴스를 듣고 나는 여전히 놀란다. 오늘은 미국 실업 통계가 발표되었다. 4월에 실업자 수가 2천만명을 넘었다. 실업률로 따지자면 15%에 가깝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구직을 포기했거나 어쩔 수 없이 시간제로 일하는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23%에 달한다. 위기는 물론 평등하지 않다. 고졸자의 실업률은 이미 20%에 도달했다. 취약계층에게는 이미 대공황이다.

 

하지만 이 숫자가 가리키는 현실의 어려움을 알기 어렵다. 일자리도 잃고 집에 갇혀 있으니, 그들은 목소리마저 잃은 상태다. 이들이 거리로 나오면 어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지금은 총을 든 사내들이 거리에 나서지만, 내일은 주먹을 불끈 쥔 이들이 나올 것이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오후 내내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하며 쉬쉬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최악의 실업’을 외치던 날, 미국의 주식시장은 ‘최고의 반등’을 보였다. 주식은 일제히 상승하고, 나스닥은 코로나 위기 이전 수준으로 간단히 회복했다. 주식시장만 보면 우리는 이제 안녕하다. <파이낸셜 타임스>도 이런 ‘파이낸셜’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걱정스러워한다. 오후에 막 나온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실물경제와 금융경제의 괴리를 다루었다. 이 둘이 마치 대지진이라도 난 듯 쪼개져 그랜드캐니언같이 되어버린 상황을 표지 그림에 담았다.

 

오후 햇살이 무뎌질 때, 짧은 문자가 왔다. 똑똑하고 야무진 직원이자 오랜 친구다. 인도에 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나와 아내가 만난 적도 있다. 딸을 늘 애틋하게 여기고 자랑스러워했다. 당연히 그러고 남을 딸이었지만, 아버지의 사랑에는 그런 당연함을 넘는 깊은 애잔함이 있었다. 딸은 그것을 너무 잘 알았고, 인도와 스위스를 오가며 아버지를 돌봤다. 그런 아버지였다. 하지만 아버지를 보러 가지 못한다. 공항도 꽉 막혀 있고, 설령 인도에 도착한다 해도 2주 동안 격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녀의 남편은 지금 인도에 있지만, 장인이 있는 곳까지 달려갈 방법이 없다. 철도도 차량도 모두 막혔다. 멀지 않지만 국경 반대편에 있는 나도 가 보질 못한다. 어쩔 줄 몰라 우는 그녀의 흐느낌만 듣는다. 해가 진다.

 

오늘도 거대한 상실의 하루였다. 상처는 깊어지고, 치유의 시간은 아직 멀다. 인내하며 기다리는 굼벵이처럼 살다 보면 언젠가 우리 모두 장수하늘소가 되어 날 수 있을까. 금요일의 저녁은 그렇게 왔다.

이상헌 ㅣ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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