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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포스트 코로나, 네 개의 시나리오 / 신진욱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5. 14. 08:22

[세상읽기] 포스트 코로나, 네 개의 시나리오 / 신진욱

등록 :2020-05-12 18:49수정 :2020-05-13 09:29

 

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위기의 한가운데 있는데도, 사회 각계에서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것은 아마도 전대미문의 현 상황에 내재한 심대한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지금 확실한 것은 우리의 무지에 대해, 우리가 불확실성 속에 살아야만 한다는 것에 대해, 이토록 많이 알게 된 적은 이제껏 없었다는 사실뿐이라고 말했다.

 

옛 질서가 흔들리고 새 질서는 오지 않은 위기의 순간은 상충되는 여러 미래의 잠재성이 공존하며 경합하는 불확실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사태 초기에는 정부와 사회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응 자체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위기 대응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각각 어떤 미래의 시나리오를 함축하는지를 분별하고 그중 최선의 시나리오를 현실화하기 위한 대안을 선별해야 한다. 네 개의 시나리오를 구분해볼 수 있다.

 

첫째는 기존 체제가 ‘강화’되는 시나리오다. 코로나 위기는 세계적이지만, 각국은 그들의 제도와 문화에 따라 반응함으로써 기존 체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4차 산업혁명론으로 저명한 클라우스 슈바프는 단기이익과 경쟁을 추구하는 미국 자본주의 모델이 코로나 위기에서 기업과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실패하여 불평등이 심화되는 데 반해, 장기적·동반자적 이익을 중시하는 유럽 사회모델은 기존의 포용적 제도를 더 활성화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둘째는 ‘반동’의 힘이 거세지는 경우다. 국가주의, 집단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등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병리적 부산물 정도로 간주됐지만, 지금 감염병의 공포 속에서 빠르게 떠오르는 중이다. 많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봉쇄하고 감시하며 추적하는 국가를 목격하고 있다. 국제질서에서도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가 대두한다. 오래된 과거의 유물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미래의 새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셋째는 ‘복고적 혁명’의 길이다. 이는 안토니오 그람시가 ‘수동적 혁명’이라고도 불렀던 사례로서, 기존 지배계급이 위기 극복의 전위 역할을 하면서 신질서의 형성을 주도하는 것이다. 나오미 클라인이 ‘재난자본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듯이, 재난 상황은 기업들이 자신의 오래된 기획을 단숨에 실현할 수 있는 기회다. 코로나 위기 중에 부상한 디지털 사회의 미래는 기존 지배질서를 더 가혹하게 만드는 복고적 혁신이 될 수 있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진보적 개혁’의 길이다. 사회 전체의 위기 상황에서 그동안 배제되고 소외되었던 사회집단들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통합하고, 나아가 그러한 사회통합적 원리를 중심으로 하는 제도로 사회의 패러다임을 혁신하는 경우다. 1930년대 스웨덴은 세계적 대공황과 안보·민주주의의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여 일시적인 대책에 그치지 않고 복지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안해내어 세계의 대안 모델로 등장했다.

 

한국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정부와 지자체들은 그동안 각종 기업지원책과 더불어 고용유지지원금, 일자리안정자금, 실업급여 등 기존 제도를 활용한 민생대책, 긴급재난지원금과 지자체 기본소득 등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한국 노동시장 불평등과 사회보장제도의 방대한 사각지대를 드러낸 만큼, 그 약점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위기가 지난 후에 과거의 ‘헬조선’ 체제가 더 심화되어 있을 수 있다.

 

나아가 일각에는 유연화, 무인화, 외주화 등 자본의 기획을 가속화하여 현 위기를 기업식 노동개혁의 기회로 삼으려는 시도들이 ‘코로나 대책’으로 미화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디지털자본주의의 착취적 요소가 전면화된다면, 그 혼돈의 자리에 배타적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적 혐오 같은 반동의 힘이 커갈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겐 한국이 ‘케이(K)-모델’로 모범국이 되었다는 성급한 자부심보다는, 코로나 위기로 드러난 한국 사회 계급구조와 사회안전망의 약점을 보완하여 사회 전반의 체력을 강화하는 내실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

 

노엄 촘스키는 코로나 위기가 천재가 아니라 인재임을 강조했다. 사스, 메르스 등을 겪으며 많은 사람이 대재난을 예견했지만 ‘야만적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 때문에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간 뒤에도 세계화된 위기는 반복될 것이다. 각자도생과 시장논리로 막을 수 없는 위험에 대비한 사회적 안전장치로 무장해야 한다. 지금이 그것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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