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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 재료 찾아내는 ‘내 안의 유난스러움’ 재발견했죠”[작사가 겸 방송인 김이나]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6. 13. 08:19

“노랫말 재료 찾아내는 ‘내 안의 유난스러움’ 재발견했죠”

등록 :2020-06-02 18:48수정 :2020-06-03 09:46

 

[짬] 작사가 겸 방송인 김이나씨

작사법에 이어 노랫말 재료인 언어를 탐색한 에세이를 낸 김이나씨.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육체적인 피로도 때문에 이 쳇바퀴가 문득문득 숨이 막힐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떠올리는 건 언젠가 깨달은 이 생각이다. 나는 이 쳇바퀴를 만들기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았구나.’

 

작사가 김이나(41)씨가 지난달 27일 새 책 <보통의 언어들>(위즈덤하우스)을 펴냈다. <김이나의 작사법>(2015) 이후 5년 만이다. 전작이 일상의 언어에서 노랫말을 건져 올리는 노하우를 전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책은 노랫말의 ‘재료’인 단어 그 자체에 주목했다.

 

골똘히 응시하면 다른 게 보이는 법이다. 그는 타성의 상징 ‘쳇바퀴’에서 자기 긍정을 읽어내고, 꽃향기만 풍길 것 같던 ‘배려’에서 비릿한 피 냄새를 맡는다. 그렇게 뒤집고, 쪼개고, 냄새 맡고, 조물거린 후 재발견한 43개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단어 기술자’ 김이나씨를 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만났다.

 

5년만에 에세이 ‘보통의 언어들’ 출간

뒤집고 쪼개고 조물거린 43개 이야기

‘대충 미움받고 확실하게 사랑받자’ 등

 

어릴때부터 국어사전 읽기·소리 민감

공황장애로 ‘인간에 대한 애정’ 깊어져

“지금 대중 기대치 높지만 지나갈 것”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지만, 같은 의미로 쓰지는 않는 것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는 이번 책에서 사람들이 무심결에 사용하지만, 타인의 개성을 마모시키는 말들을 특히 유심히 들여다봤다. 예를 들면 ‘유난스럽다’는 말이 그렇다. 그는 책에 ‘이 말이 부정적으로 쓰일 때 특히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상대에게 애매한 수치심을 준다는 것 때문’이라고 썼다.“어릴 땐 별것 아닌 일에도 꺽꺽대고 울어서 ‘쟤 여린 척한다’고 욕도 많이 먹었어요. 그렇게까지 감정소모를 안 해도 되는 일에도 저는 호들갑스럽게 반응을 해요. 매사에 연연하고 요동치니까 사는 데 불편했죠.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유난스러우니까 그런 가사를 쓸 수 있는 거라고.’ 지금은 작사가로서 생산력을 위해 필요한, 나를 나이게 만드는 특성이 유난스러움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2000년대 초반 사회생활을 시작해 2003년부터 작사가를 부업으로 삼았다. 2008년 모바일 콘텐츠 회사에서 팀장을 맡았으나 그만두고 전업 작사가가 됐다. 그때의 일을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팀장이 되고 난 후) 지시한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패닉이 오고 결국 팀원들은 할 일이 없고 나만 일을 떠안는 경우가 허다했다. (…) 그때 사표를 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의 ‘벽’에서 뒤돌아봐야 알 수 있는 나만의 가능성이 있다.’ 한계에서 가능성의 씨앗을 발견하듯, 그는 책을 통해 부정적 어감에 갇힌 단어들의 굴레를 벗긴다. ‘겁이 많은 자들은 지켜야 하는 것들의 가치를 아는 자들이다.’ ‘나는 무리에서 늘 튀어가며 소리쳐준 나대는 이들로 인해 세상이 변해왔다고 믿는 사람이다.

 

’단어에 대한 그의 이런 애착은 유년시절부터 시작됐다. “어릴 때부터 국어사전 보는 걸 좋아했어요. ‘쿠시쿠시쿠시’ 속삭이며 책을 읽었죠. 특히 단어의 ‘소리’에 애착이 많았어요. 예컨대 ‘가죽’이라는 단어의 소리는 정말 가죽의 질감을 닮았다고 떠올리는 식이었죠.” ‘단어에 대한 애착’은 2015년 우울의 골을 만나면서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깊어졌다.

 

그 해는 그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대중 작사 부문 대상을 받은 해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팽창할수록 일상에 대한 자신감은 쪼그라들었다고 한다. “은행이나 관공서 가기 전 날엔 극도의 두려움에 휩싸여 잠을 못 잘 정도였어요. 사교활동 전혀 안 하고 집에만 있었죠.” 사회불안장애와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치료와 상담, 운동을 시작했고 해가 잘 드는 통창 작업실로 옮겼다. “타조가 모래판에 얼굴을 묻어버리듯 죽음을 외면하고 살았어요. 왜 그랬을까 따져보다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생의 의지’가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 그러다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는데, 겨울나무에서 새순이 나오고 있더라고요. 죽음과 생은 순리구나, 받아들였어요. 그날 이후 한 명 한 명의 삶이 소중하게 느껴졌고, 양가적인 모든 것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는 언제부턴가 2030 여성들에게 롤모델로 거론되고, 인터넷에는 ‘김이나 어록’도 떠돌아다닌다. 커져가는 대중의 기대치가 부담스럽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그러다가 또 다른 분들한테 (기대가) 옮겨 가지 않겠냐”며 “저라는 시간대를 지나고 있는 거 같다”고 웃었다.

 

책에서 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인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인 소수와의 관계는 견고한 것’이라며 ‘대충 미움받고 확실하게 사랑받자’고 힘주어 말한다. 이 말은 대중의 기대치와 자신의 부담감 사이에서 요동쳤던 그가 마침내 손에 쥔 균형봉처럼 보인다. 라디오 진행에 티브이 오디션 프로그램(<펜텀싱어3>) 심사위원 출연까지 바쁘지만, 요즘도 방송 없는 날엔 무조건 작업실에 간다. “스쿼트 하는 마음으로 가서 이메일이라도 써요. 책상 앞에 앉는 게 어색해지면 안 되니까요.” 쳇바퀴를 얘기하는 그의 얼굴이 잔잔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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