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편집국에서] 언론의 인격살인·검찰의 사법살인 / 이재성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6. 15. 08:06

[편집국에서] 언론의 인격살인·검찰의 사법살인 / 이재성

등록 :2020-06-14 16:23수정 :2020-06-15 02:41

 

이재성 ㅣ <한겨레> 문화부장

 

“아냐, 이건 태블릿피시 같은 거야.”

 

<채널에이(A)> 법조팀 지검반장 이아무개 기자가 “윤석열 최측근”이라고 소개한 검찰 관계자는 취재에 자신 없어 하는 이 기자를 독려하며 최순실의 ‘태블릿피시’를 거론한다.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전 대표가 ‘유시민을 칠 수 있는’ 진술만 해준다면, 태블릿피시가 그랬던 것처럼 정권을 한 방에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가 담겨 있는 말로 읽힌다.

 

‘검언유착’ 의혹을 받는 채널에이의 자체 진상 보고서는 모든 잘못을 기자에게 떠넘기고 꼬리 자르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 기자가 후배 기자와 취재 방향을 상의하는 통화 내용은 감추지 않았다. 이 기자의 단독 범행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욕설까지 섞어가며 진솔하게 전하는 ‘최측근’과의 대화가 사실이 아니라고 믿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이들의 대화는 언론을 통해 이뤄지는 ‘검찰 정치’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희소가치가 있다. ‘만수산 드렁칡’처럼 뒤엉켜 ‘불신의 세계’를 창조해온 언론과 검찰의 ‘작전’ 방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소속 언론사의 정파적 프레임에 맞춰 총선 전에 여당 쪽의 거물급 이데올로그를 타격하려는 기자와, ‘검찰개혁 저지’를 위해 정권 핵심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다 한직으로 밀려난 검사는, 조직의 욕망에 개인의 욕망을 투사한다는 점에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한다. 이기적인 삶의 태도와 조직을 대하는 종속적 심성, 그리고 비판적 사유의 실종이 닮았다는 말이다. 누구보다도 근면하고 성실했지만 타인의 권리나 고통에 무감했던 아이히만 같은 사람이 열심히 일할수록, 인류는 가혹한 위기에 빠져들었다고 역사는 증언한다.

 

미국 경찰처럼 목을 짓눌러 죽이는 것만 살인이 아니다. 한국의 언론은 무차별 의혹 제기와 거짓보도로 목을 조르고, 검찰은 법이라는 칼로 찌르고 별건 수사로 비튼다. 의혹이 있으면 보도해야 하고, 불법이 있다면 처벌해야 마땅하지만 보수 언론과 검찰의 행태는 과도하고 불공정하다. 신체에 가하는 물리적 고문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민주화 이후의 고문’이라고 할 수 있는 ‘정서적 고문’이 아무런 제지 없이 반복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손영미 소장과 청와대 특별감찰반 백아무개 수사관이 바로 정서적 고문의 희생자다. 최근 다시 논란이 된 ‘한명숙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리뷰해야 하는 이유도 이런 현대적 고문에 의해 증언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유무죄와 재심 여부부터 따지는 건 달을 가리키는데 해를 쳐다보는 격이다.

 

채널에이 진상 보고서의 마지막에는 재발방지 대책과 개선 방안이 나와 있다. “검찰 취재 중심의 법조팀 취재 관행을 개선한다. 검찰 수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피의자의 입장도 반영하는 균형 잡힌 취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실천한다.”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언론들은 비슷한 약속을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채널에이는 몇가지 조건이 붙은 재승인을 받았고, 검찰은 제 식구 앞에서 언제나 그랬듯 연체동물이 되어 슬로모션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언론과 검찰이 치외법권 지대라는 사실을 우리는 또다시 확인하고 있다. 대단한 권력형 비리가 있는 것처럼 연기를 피워 올렸던 신라젠 수사는 실체가 없다는 발표로 끝이 났지만, 10개월 동안 괴롭혔던 관련자들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선출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두 집단이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게 우리 민주주의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이다.

 

검찰 권력을 그대로 두고 검언유착이 사라지길 바라는 것은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기소 대배심 도입 등 사법 민주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근혜 탄핵 촛불’의 완성으로 평가받는 21대 국회는 언론과 검찰 속 아이히만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을까. 언론의 인격살인과 검찰의 사법살인은 민주주의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 측면에서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악습이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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