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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해야 합니다Ⅰ[홍종찬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7. 20. 07:34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해야 합니다Ⅰ

 

 

 

 

 

 

 

 

홍종찬 목사

 


신자는 누구나 신성한(그리스도) 성품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 명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은 그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야 함을 잘 나타내 보여줍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상히 기록한 바 있습니다(벧후1:3-7). 그러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신성한 성품에 참여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먼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은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벧후1:3a)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신기한(신령한) 능력”(테스 데이아스 뒤나메오스 τῆς θείας δυνάμεως)이란 원래 전능하신 하나님의 신적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에게도 나타났으며 그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벧후1:1)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동격이심을 이미 증언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신기한 능력”은 “그리스도의 신기한 능력”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는 경건한 생활이나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같은 신기한 능력을 얻은 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공유한 자로서 그 신기한 능력을 행사하셨다는 말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입니다. 여기 “생명”(ζωὴν 조엔)이란 단어는 “생명”, “생애”(life)란 의미로, 인간들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원동력, 즉 예수께서 공급하시는 힘을 의미하는 것으로(요 1:4;요일 5:11,12) “영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경건”(εὐσέβειαν 유세베이안)이란 단어는 “경건”, “복음의 개요”, “거룩”, “신앙심”(piety)이란 의미로, 변화된 자가 지니게 되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행 3:12;딤후 3:5), 곧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순종함으로 누리게 되는 도덕적인 생활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미 영생을 얻은 자는 경건한 신앙생활 즉 자기 안에 내재화 된 그리스도의 성품을 외재화 시키는 윤리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표현 또한 하나님과 나누어 가진 공유적 속성(성품)을 거룩한 삶을 통해 자기 밖으로 드러냄을 의미합니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들은 벧후1:5-7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성경은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1:3b),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 1:8)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게 하여 결국은 좋은 열매를 맺게 하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어떻게 부르셨는가?

 

주님은 자신의 “영광과 덕으로써”(독세스 카이 아레테스 δόξης καὶ ἀρετῆς)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여기 “영광”(독싸 δόξα)이란 단어는 “거룩”, “위엄”, “거룩(한) 영예”, “찬양”, “경배”(롬1:23;고후6:8) 등을 의미하며, 영어성경은 “광휘”, “밝은 빛”(radiance) 혹은 “거룩”, “위엄”(glory)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덕”(아레테 ἀρέτη)이란 단어는 “남자다움(용맹)” “탁월함”, “칭찬”, “미덕”(벧후 1:3)이란 의미로, 영어성경은 “우수하다”, “우월하다”(excellence)고 번역했습니다. “영광과 덕”은 원래 신적 능력의 현시(顯示)로서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습니다(사 42:8,12). 그런데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시며 자신의 “영광과 덕”을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회개시키는 분이심을 가리킵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자기를 알게 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앎(지식)”(ἐπίγνωσις 에피그노시스)이란 “인식”, “완전식별”, “인정”(골 1:9; knowledge)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분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할지라도 인간은 여전히 절대지식에 대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가 얻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온전한 지식이라 표현합니다. 온전한 지식이란 신자가 성경공부, 기도(영적 교제), 그 어떤 방식(方式)을 동원해서 세상 학문과 그리스도에 대한 온갖 지식을 얻었다할지라도 여전히 그리스도 의존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만 주님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깨닫게(지식) 하시며 삶을 풍요롭게 하시는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셋째,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1:4)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약속”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덕”(3절)으로 주어진 것인데, 그리스도인이 미래에 나타날 일, 즉 “그리스도의 재림”(벧후3:4,9,12)과 “새 하늘과 새 땅”(벧후3:13)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벧후1:11)에 들어가게 될 일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라는 말씀에서 “피하여”(ἀποφυγόντες 아포퓌곤테스)라는 단어는 부정 과거 분사로서 “피한 이래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피한 이래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죄와 정욕을 피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택한 자라도 한 번 용서받았다고 죄와 상관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주님 의존적 존재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성경을 기반으로 윤리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각양 지체로서 제 기능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좌우 중에 하나를 선택하거나 양쪽을 모두 비판하는 양비론자가 아니라 바름(오른쪽), 즉 옳음을 선택하고 따르는 자로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신성한(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신성한”(θείας 데이아스)이란 단어는 “신성의”, “신에게 속한”이란 의미입니다. 원래 이러한 표현은 헬라 사상, 즉 이교적이었습니다. 이교도들은 인간 내면에 본래부터 신과 같은 거룩한 성품이 있어서 이것을 잘 계발하면 성인(聖人)이 되고 거스르면 악인(惡人)이 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선설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아담에게서 전가된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에 거룩하지도 성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죄의 성향 때문에 죄악을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그의 논리를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가 어떻게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지극히 큰 약속을 주신 그리스도께서 그 약속을 스스로 지키심으로 가능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하나님께 속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이 된 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참된 영적 교제를 나눌 뿐만 아니라(요 14:16,17,26)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롬8:18; 벧전5:1).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고 그 약속을 십자가에서 이루신 이후 지금까지 자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고 보호 인도하십니다.출처/ 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