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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걸의 세시반] 디지털 백치의 허무한 행복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8. 24. 04:03

[이충걸의 세시반] 디지털 백치의 허무한 행복

등록 :2020-08-23 17:52수정 :2020-08-24 02:37

 

스무살 청년이 ‘이충걸의 세시반’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이충걸 ㅣ 에세이스트

 

친구들은 내가 전자기기를 매우 가뿐하게 다룬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들던 잡지가 그야말로 최신의 것, 가장 현대적인 오브제를 다루었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밥집 아들이 뚱뚱할 거라는 억측과 똑같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케이티엑스(KTX) 티켓 하나 예매할 줄 모르기 때문에.넉 달 전, 휴대폰 배달 앱으로 주문하는 법을 배웠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 손으로 액정 화면을 조작해 물건을 주문하다니, 그때까지 내가 벌인 짓 가운데 가장 비범한 일이며 달 착륙에 견줄 만한 사건이었다.

 

나는 친구가 가르쳐준 대로 침착하게 달걀 스무 개짜리 세 판을 주문했다. 구매 가격은 15만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량을 잘못 눌렀으리라는 것도. 나는 그냥, 배달 서비스는 이 정도 금액을 적립한 다음 주문하나 보다, 그랬었다. 새벽에 배송 완료 문자가 떴다. 이일 저일로 안 자고 있던 나는 미사일처럼 달려갔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대문 앞에 달걀 상자가 내 키보다 높게 쌓여 있었다. 세어보니 모두 스물세 상자. 때마침 빗방울이 애매하게 떨어지고, 나는 미친 사람처럼 달걀을 부엌으로 옮겼다. 그 와중에도 아침잠이 없는 엄마가 이 광경을 보고 기절하실까 봐 너무 조마조마했다. 하필 그때 역시 엄마가 층계를 내려오셨다. 잠시 지구의 것 같지 않은 정적이 흐르더니 엄마는 관우 장비 무릎 꿇릴 기세로 호통을 쳤다. “내가 너 때문에 못 살겠다, 진짜!” 평소 기운이 하나도 없다면서 어디서 그런 소리가 날까. 나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성공적일 수는 없고 그것이 또 나의 매력이라고 항변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 많은 달걀을 둘이서 먹을 자신이 없고, 친구들더러 가져가라 하기도 너무 번거로워 반품 요청을 하고(의외로 가능했다) 땀에 젖은 이마에 처량하게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는데 나 자신, 동물에서 인간으로 가는 순환로에서 이탈한 곤충 같았다. 사람들 행동을 미러링하는 고대인의 능력은커녕, 이 기능적인 시대에 어떤 관할권도 없다고 느꼈다. 나는 몽테뉴처럼 인간사를 고립 상태로부터 조망하며 회의적이고 염세적인 관찰자로 살 작정일까? 그날 나는 대량 주문을 받고 마구 춤을 추었을 달걀 농장 주인에게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전화라도 걸고 싶었다.처음엔 이런 디지털 백치와 의존 경향이 나의 나태 때문에 또는 더 알고 싶어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어떤 건 김광석 노래처럼 ‘마음 하나로는 안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는 산중에서 십 년을 면벽해도 바둑의 심오함을 모를 것이다. 수동으로 트럭 운전을 배운다면 다음 베이징 올림픽까지 2단 기어도 넣지 못할 것이다. 생활의 어떤 분야는 누군가에겐 영원히 문을 열어주지 않는 고약한 주인과 같기 때문에.시력 문제로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지금도 가끔 덧없이 자동차를 검색한다. 1976년에 출시된 현대차 포니, 1987년에 나온 기아 프라이드, 1979년 피아트사에서 만든 소형 사륜구동 피아트 판다. 놀랍게도 하나같이 단종된 소형 해치백이다! 나에겐 인체공학적 날렵함으로 무장한 방금 나온 차보다 무뚝뚝하고 비효율적인 옛날 차들이 더 미학적이다. 구제 옷을 사는 취미처럼 예전 것이 오히려 최신의 유행 같다. 그 옛날 석유난로는 너무 예뻐서 한여름에도 방에 두고 싶다. 거대한 헤드폰은 바보 같아 보여도 귀를 나무늘보처럼 품어준다. 십대 시절의 독수리표 카세트는 성능에 상관없이 거의 신성(神聖)을 띠었다. 그때 나의 청음으로는 완벽한 소리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올이 풀리는 파가니니보단 고딕풍 요들송이 더 좋았으니까. 나는 아직도 1975년, “예열 없는 순간 수상”이라는 삼성 이코노 광고 카피를 안 까먹었다. 흑백텔레비전이 나온다면 제일 먼저 사고 싶어서. 약속을 우직하게 지키고, 나대지 않고 겸손하며, 유달리 범절 있는 친구라면 누구라도 좋아할 것이다.한 친구가 90년대 슈퍼사이즈 휴대폰의 수신율이 더 좋다고 우기는 건 그렇다 쳐도 뭉툭한 핸드셋은 뭔가 좀 액션맨 같긴 하다. 디지털 이전 시대의 사운드를 내기 위해 60년대 기기로 녹음한 레니 크래비츠나 60년대 제작된 주름 카메라 오리지널 폴라로이드 195로 촬영한 헬무트 뉴턴, 형광 노랑 소니 스포츠 워크맨과 모토롤라 스타텍을 끼고 사는 아까 그 친구를 나만큼 이해하는 인류가 또 있을까.나는 분명 테크놀로지 퇴화에 앞장선 기계치가 맞지만, 다시 태어나도 디지털 국경을 쥐처럼 드나드는 털 난 해커가 되고 싶지 않다. (다음 생도 없을뿐더러) 그러다간 새 아이폰이 출시되는 매년 9월12일만 되면 잃어버린 아기를 찾는 유령처럼 온 전자마을을 떠돌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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