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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방역 훼방’에 대한 정치적 관점: ‘잠재적 테러리스트’의 인권 / 김범수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8. 28. 02:49

[왜냐면] ‘방역 훼방’에 대한 정치적 관점: ‘잠재적 테러리스트’의 인권 / 김범수

등록 :2020-08-26 18:05수정 :2020-08-27 02:39

 

김범수 ㅣ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정치학)

 

지난 10여년간 대학에서 인권 관련 강의를 하며 학생들과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해 오고 있다. 수업 주제가 인권이다 보니 이런저런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살펴보고 인권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업에서 다루는 사례 가운데 가장 곤혹스러운 사례 하나가 바로 잠재적 테러리스트의 인권 문제다. 임박한 테러를 막기 위해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잠재적 위험성이 있는 시민을 강제로 연행하고 구금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확실한 테러리스트인 경우는 상대적으로 대답이 쉽지만 잠재적 위험성만 있는 경우 인권 보호라는 명분과 사회 안전이라는 가치 사이에 선뜻 어느 하나의 입장을 단정적으로 택하기가 쉽지 않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샌델은 이 책에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뉴욕 맨해튼에 시한폭탄을 설치할 가능성이 있는 테러 용의자 사례를 예시로 이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고문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물으며 다양한 철학적 입장에 대해 소개한다. 샌델에 의하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하는 공리주의자들은 한명의 테러 용의자에 대한 고문을 통해 수천명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다면 이러한 고문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민주주의적 절차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위 사례와 같이 어느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과 달리 고문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도덕적 원칙주의자들은 아무리 테러 용의자라 하더라도 고문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조금 더 복잡한 사례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신봉하고 아이에스(IS)가 점령한 중동 지역에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확실한 증거도 없이 무고한 시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하여 강제로 구금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일상적인 경우라면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대답하겠지만, 테러리스트가 누군지는 몰라도 조만간 테러 공격이 있다는 확실한 정보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확실한 증거가 없더라도 구금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이익을 생각한다면 구금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는 다수결로 결정하자고 주장할 것이다. 반면 인권의 도덕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사람들은 확실한 증거도 없이 무고한 시민을 구금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고 반발할 것이다.

 

책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이러한 딜레마적 상황이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평소 사랑제일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광복절 광화문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시민들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자가격리를 강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이유를 근거로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딜레마적 상황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하며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인권 문제를 단순히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는 흑백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개별 사례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며 어느 정도까지 인권을 보호할지 또는 어느 정도까지 인권을 제한할지 상식선에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사랑제일교회발 코로나 확산 사례는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 상식선에서 합의가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조금 지나친 비유일 수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코로나 확산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검사를 거부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랑제일교회 교인들과 광화문 집회 참석자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일상적인 경우라면 당연히 반대했겠지만 최근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잠재적 테러리스트’의 인권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잠재적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 인권 침해의 소지도 다소 있겠지만 코로나 확산 위험이 있는 곳을 방문하신 분들은 공동체와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검사에 응해주시고 방역지침을 잘 따라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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