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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국민의힘, ‘김종인의 강’ 건널 수 있나 / 이주현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9. 9. 04:46

[편집국에서] 국민의힘, ‘김종인의 강’ 건널 수 있나 / 이주현

등록 :2020-09-07 16:45수정 :2020-09-08 12:55

 

이주현 ㅣ 정치부장

 

김종인이 제1야당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끈 지 100일. 당 안팎의 불필요한 잡음은 차단하고 정돈된 메시지로 정국의 가르마를 타는 능력은 왜 여의도에 끊임없이 ‘김종인 수요’가 있었는지 거듭 확인시켰다. 빛의 속도로 당을 장악하거나 파격적인 중도화로도 관심을 끌었지만, 그의 탁월한 기술 중 하나는 ‘대선 후보 찾기 스무고개 게임’을 자연스럽게 벌였다는 점이다. 본인은 이미 야권의 대표 선수가 누군지 알고 있는 것처럼 알쏭달쏭 퀴즈를 내며 긴장감을 조성해왔다. 초장엔 ‘1970년대생 경제전문가’라는 기준을 내세워 홍준표·김태호의 김을 확 빼고, ‘당 밖에 꿈틀거리는 사람’을 언급해 김동연 전 부총리를 띄워주더니 도중엔 백종원까지 툭 던지며 완급을 조절했다. 최근엔 국민의힘 울타리 안에서 차기 주자가 탄생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흥미로운 점은 김종인이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킬 때마다 언론은 손끝이 향한 방향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야권의 인물 기근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특정 주도 세력이 없는 권력 진공상태를 활용하는 김종인의 영리한 전략이기도 했다.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4년 전인 2016년 6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였던 김종인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때는 이미 4·13 총선 뒤 비대위 체제 유지를 놓고 직전 대표였던 문재인에게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다. 이에 당시 서울시장, 충남지사였던 박원순, 안희정을 잇달아 만나며 ‘잠룡 감별사’로서 자신의 위상을 부각했다. 김종인은 올봄 발간한 회고록에서 자신의 이런 정치 감각이 유년 시절부터 길러졌음을 밝힌 바 있다. 다른 아이들은 구슬치기하던 때 선거 유세장을 돌아다니며 후보 연설과 청중의 반응을 지켜보고 누가 당선될지 가늠해 보는 게 취미였다고 한다. 1940년생이니 70여년간 인물의 정치적 근량을 재는 습관과 기술을 갈고닦았다고 할 수 있겠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거쳐 새천년민주당-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까지 흘러온 정치역정을 쭉 살펴보면, 그는 매번 ‘정책 전문가’ ‘정치적 구원투수’로 불려갔다. 새천년민주당은 9석에 불과한 소수정당이었으니 일단 제쳐두자. 그는 늘상 1대 주주가 확실한 곳에서 일했다. 전두환·노태우는 말할 것도 없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엔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박근혜, 문재인이 있었다. 실제론 1인자의 ‘조력자’였음에도, ‘경제민주화는 내가 가장 잘 안다’ ‘나는 누구의 사람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했던 김종인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다가, 또는 전권을 쥐려다가 ‘팽’당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국민의힘은 사정이 다르다. 잠재적 대선 주자로 손꼽혔던 기존 인물들은 대부분 원외 또는 당 밖에 있다. 장제원 등 몇몇 중진 의원들이 김종인을 견제하거나 경쟁하려고 하지만 화력이 약하고 결집력도 떨어진다. 이제서야 감별뿐 아니라 인큐베이팅 역할의 공간도 열린 셈이다.

 

목동 없는 초원에서 양떼를 호령하는 김종인을 보면서, 일각에선 본인이 직접 대선에 뛰어들 가능성을 전망한다. 버니 샌더스(1941년생), 조 바이든(1942), 도널드 트럼프(1946)가 있지 않냐, 김종인이 달력 나이가 가장 많다 쳐도 건강 나이로 보자면 뒤질 게 없으니 나이 많다고 못 나설 이유가 뭐냐, 이런 식이다. 지난 1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 김종인은 1.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2001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노무현 지지율이 1.5%였으니 숫자로만 보자면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는 ‘경우의 수’일 뿐이다.

 

이런 불확실성 앞에서도 확실한 게 있다. 야권의 대선 후보가 되려면 모두 김종인이란 ‘강’을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승리로 이끌어 민심이 자신에게 쏠린다면, 김종인은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리 없다. 뱃사공을 고용하든 헤엄을 쳐서 건너든, 야권의 대선 주자가 되려면 이 노회한 경세가와 경쟁해 시대적 과제를 풀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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